95식 4륜 자동차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기갑장비
장갑차차륜 장갑차93식 장갑차
궤도 장갑차98식 장갑운반차 소다, 1식 장갑병차 호키
경장갑차카식 기총차, 92식 중장갑차, 94식 경장갑차, 97식 경장갑차 테케
반궤도차량1식 양장궤장갑병차 호하
전차경전차갑형 전차, 을형 전차, 95식 경전차 하고, 98식 경전차 케니, 2식 경전차 케토, 4식 경전차 케누
수륙양용전차특 2식 내화정 카미, 특 3식 내화정 카치, 특 4식 내화정 카츠
중형전차89식 중전차 이고, 97식 중전차 치하, 1식 중전차 치헤, 3식 중전차 치누, 4식 중전차 치토, 5식 중전차 치리
중전차95식 중전차, 100식 초중전차 오이
노획전차M3 스튜어트, 1호 전차
공병전차장갑작업기
자주포1식 포전차 호니, 1식 포전차 호니2, 2식 포전차 호이, 3식 포전차 호니3, 4식 포전차 호로, 12리 자주포
차량95식 4륜 자동차, 94식 6륜 트럭
프로토타입 /
페이퍼 플랜
5식 경전차 케호, 특 3호 전차 쿠로, 97식 중전차 치니, 98식 중전차 치호, 특 5식 내화정 토쿠, 시제 5식 포전차 호리, 5식 포전차 나토, 시제 4식 중박격포 하토, 5식 구축전차 호루, 치세
그 외일본 기갑 병기/기타
기갑차량 둘러보기
대전기 (1914~1945)냉전기 (1945~1991)현대전 (1991~)


car95-2.JPG

car95.JPG

위에서부터 초기형, 후기형.

B_00630103.jpg

1935년경에 찍힌 프로토타입들.

B_00630104.jpg

B_00630105.jpg

위부터가 프로토타입, 아래가 최종형.

B_00630101.jpg

B_00630106.jpg

복원된 차량(후기형).

1 개요

九五式小型乗用車(くろがね四起)

일본군의 첫 4륜 자동차. 한 마디로 독일에는 퀴벨바겐이, 미국에는 윌리스 MB 지프, 소련에는 GAZ-67이 있다면 일본에는 이 쿠로가네 자동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제원

첫 실험 년도 : 1934년
생산 시작 년도 : 1935년
생산대수(대) 4,755
길이 : 3.56m
폭 : 1.55m
높이(m) : 1.77m
휠베이스 : 2.0m
트레드 앞뒤 : 1.25m
최저지상고 : 0.27m
무게(kg) 1060 1111
승차정원(명) : 2+2
엔진 형식 : 공랭식 V2 OHV
배기량(cc) : 1399
최고출력(마력/rpm) : 33/3300
타이어 : 6.00-18
최고시속 : 70km

3 역사

제1차 세계대전(1914∼18) 때 자동차가 작전수행에서 큰 힘을 보이자, 일본 육군은 자동차 개발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뒤 1930년대 초, 일본의 만주 진출 등으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져 일본은 새로운 군용차 개발을 서둘렀다.

그 무렵 만주에서 일본군이 쓰던 차는 포드와 시보레의 트럭, 일본제 트럭, 사이드카(측면에 보조좌석이 장착된 이륜차) 등이었으나 만주의 험로를 극복할 수 있는 성능은 아니었다. 이륜구동의 한계를 통감한 일본 육군은 험로 주파성이 뛰어난 4륜구동 차량을 개발하기로 한다. 이시기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막 태동하는 시점이었기에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크게 뒤쳐저 있었다. 그 속에서 개발을 맡게 된 것이 일본내연기(內燃機)주식회사였다.

이 회사는 1927년 일본 최초의 소형 삼륜트럭을 만들었던 기술진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다음해에 새로운 삼륜 트럭 쿠로가네(엔진 750cc)를 내놓아 큰 인기를 얻고있었다. 이에 힘을 얻어 소형 승용차도 개발 중이었고 이런 실적 덕에 1934년 육군으로부터 군용 사륜구동 차량의 시험제작을 부탁 받게 되었다.

일본 육군은 만주사변까지의 경험과 독일과 미국의 기계화부대의 실태를 보아, 가능하면 대형 차량을 바랬으나 일본내연기는 소형차 제작시설만을 갖추고 있었다. 마키다 데쓰지 상무를 중심으로 한 기술진은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이용한 사륜구동 구현 차량 개발안을 내놓았다. 시제품의 완성시기가 1935년 말인 이 구상에 대해 육군은 ‘1935년 3월까지 시험제작하면 그 다음해에는 주문하겠다’고 다그쳐, ‘지휘, 연락, 정찰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이드카 크기 정도의 소형차’ 개발로 낙찰되었다.

새 4WD(사륜구동) 개발팀은 영국의 선빔 오토바이 600cc 엔진을 참고해 공랭식 V형 2기통 1.2X 엔진을 만들고 3단 트랜스미션과 앞뒤 바퀴가 직결된 풀타임 4WD 방식의 1단 트랜스퍼를 설계했다. 폭이 좁은 프레임, 뒷바퀴는 리프 스프링을 쓰는 리지드 액슬이었으나 앞바퀴는 더블 위시본과 코일 스프링으로 된 독립 서스펜션이었다. 앞바퀴 브레이크는 인보드 형으로 무게를 덜면서 핸들링 성능이 좋게 구상했다.

쿠로가네 4WD의 트랜스퍼는 어째서 센터 디퍼렌셜이나 4×2로 바꾸는 메커니즘이 아닌 ‘직결방식’으로 구상되었는지 조금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 그러나 앞바퀴 디퍼렌셜의 좌우에 달린, 드럼을 쓴 인보드 브레이크와 앞바퀴의 더블 위시본 독립 서스펜션은 일본 최초의 시도로, 이것만 보아도 이 차가 새 기술을 이용한 뛰어난 모델인 것을 알 수 있다.

1935년 1월 말, 쿠로가네 4WD는 섀시 상태로 도쿄 나카노에 있던 군부대 곁의 황무지에서 시운전을 받았다. 그 결과 예상보다 좋은 주파성을 보여 관계한 이들이 흡족해 서둘러 차를 완성시키기로 했다.

일본내연기는 한 달만인 2월말에 2도어 세단형을 완성했다. 이것으로 보아 제작회사의 들뜬 마음을 알아볼 수 있고 처음 보는 4WD에 군 관계자도 다같이 놀란 모습이 떠오른다. 이때의 개발속도는 5년 뒤, 미국에서 육군의 요청으로 지프가 개발되던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육군자동차학교의 쿠로가네에 대한 본격적인 테스트는 1935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약 1주일 동안 후지산 기슭과 해안지대에서 비포장 급경사면 오르기, 모래밭 달리기 등 여러 가지로 이루어졌다. 그때까지는 캐터필러로 구르는 차밖에 달릴 수 없던 곳도 내달려 성능이 높게 평가되었다. 이 테스트에서는 차체 모양과 출력 등이 지닌 문제점도 뚜렷하게 드러나 이것들을 개선한다는 조건으로 1935년 4월∼36년 3월에 약속했던 대로 10대 생산이 주문되었다.

이때 바뀐 중요한 내용은 ①보디 형태를 2도어 세단형에서 뒤쪽 트렁크를 열면 2인용 보조좌석이 나오는 스포츠 로드스터형으로 바꾸어 이용도를 높이고 무게를 던다. ②배기량을 1.2X에서 1.3X로 늘려 성능을 높인다는 두 가지였다.

주요 제원은 3천400×1천480×1천670mm, 휠베이스 1천960mm, [1] 트레드 1천270mm, 무게 1천60kg, 최고출력 24마력, 최고시속 70km, 등판경사 1/2 이상(2명 승차) 등이었다.

시승 뒤에 추가로 만든 프로토타입 10대는 육군기술본부의 테스트까지 거쳐 개선된 뒤 ‘95식 소형 4륜기동(起動) 승용차’라는 공식이름이 붙었다. ‘95식’은 다른 무기와 마찬가지로 1935년이 일본이 개국한 지 2천595년이 된다는 데서 온 것이다. 공식명칭 외에 일반은 ‘쿠로가네 4기’나 ‘95식 쿠로가네호’라 불렀다.

프로토타입에서 대량 양산형으로 될 때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다.

① 보조좌석을 트렁크 안에 넣는 방식에서 차내로 이동시켜 트렁크 부분을 없앴다. 앞 보네트는 그릴을 고정식으로 한 보통형으로 바꾸고 또 차체 모양을 2도어 세단으로 변화시켰다.

② 직결형 4WD 대신 뒷바퀴굴림만으로 바꿀 수 있는 변환 레버를 트랜스퍼에 신설했다.

③ 인보드형 브레이크를 앞바퀴에서 뒷바퀴로 바꾸었다.

④ 출력을 높이기 위해 1.3X 배기량을 1년 뒤 1.4X로 늘렸다.

1936년부터 쿠로가네 4기는 이와 같이 개선되면서 외관도 시험제작차 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미군 지프는 1940년 9월, 밴텀 시험제작차로 출발해 윌리스로 양산하기로 결정된 것이 그 다음해인 1941년 8월이어서 쿠로가네 4기는 지프보다 5∼6년 앞서 개발된 4WD다. 그 당시 일본은 미국에 비해 자동차에 관한 전반적인 기술과 지식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뒤쳐저 있던 상황이었음을 염두에 두고 쿠로가네 4기를 보면, 당시 일본의 자동차로서는 최고수준의 메커니즘이 반영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육군은 신병기를 ‘극비’로 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쿠로가네 4기만은 뜻밖에도 거꾸로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1938년 초 일본내연기에 대해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회사에서 만드는 신형차들을 줄지어 전국 순회시켜 국민에게 널리 보이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일본내연기는 5인승 3륜 지휘차, 사이드카, 쿠로가네 4기 등 3대를 동원해 전국을 순회하면서 전시하고, 쿠로가네의 계단등판으로 4WD의 위력을 선전했다.

1.2X 엔진으로 출발한 쿠로가네 4기는 뒤에 1.4X 엔진을 썼고 차체도 세부적으로 여러 번 변했다. 1940년 8월에는 프레임과 앞 서스펜션의 스프링 변경, 엔진 서퍼트 변경, 새로운 차체 스타일링과 승차정원 증원(4명) 등의 큰 변화가 있었다. 1942년에는 앞 그릴이 다시 바뀌고 냉각성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개선도 있었다.

쿠로가네 4기의 섀시는 일본내연기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차체는 일본자동차가 수공업적으로 만들어 세부적인 변화가 손쉬워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정확한 규격을 기초로 프레스로 양산된 지프와는 대조를 이룬다.

쿠로가네 4기는 양산되기 시작한 1936년부터 중일전쟁, 소련과 만주국경에서 국지전을 벌인 사건을 거쳐 2차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10년이란 긴 기간에 걸쳐 일본 육해군의 주력 소형 승용차로 활약했다. 그동안 1939∼41년의 전성기에는 연산 850대를 기록했고 육군에 4천275대, 해군에 480대가 제공되어 모두 4천755대가 생산되었다. 현재로 보면 ‘기껏 그 정도?’라고 할는지 모르나 그 당시의 일본 공업력으로 보면 드문 대량생산이었다.

그 사이에 쿠로가네 4기 대신 좀더 경쾌한 4WD의 개발이 다이하쓰를 비롯한 여러 회사에서 이루어졌으나 자원부족 등으로 모두 시험제작에 그치고 말았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번져 일본이 미국 지프를 노획한 뒤에는 도요타 AK-10 같은 고성능 4WD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모두 대량생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보아도 여러 면에서 쿠로가네 4기가 당시의 일본 자동차 업계로서는 한계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쿠로가네 4기는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민간에 불하되어 전후 혼란기에 발로 혹사되어 대부분이 1940년대 후반에 자취를 감추었다. 1987년 조사 당시, 확인할 수 있는 쿠로가네는 쿄토시에 방치된 것과 니가타에서 복원 중인 차 등 2대뿐이었다. 그 뒤 쿄토시의 쿠로가네는 행방불명되고, 니가타에 있던 것은 우여곡절 끝에 복원되어 1995년부터 이시가와켄 고마쓰시에 있는 일본 자동차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외 한국에는 고 육영수 여사 친정에 한 대가 남아 있었는데(초기형) 현재 KBS가 복원해서 소품으로 굴리고 있다고 한다.

아래 마이웨이의 쿠로가네와 동일차량으로 추정된다.

4 미디어 등장

myway_000255_c03.jpg

myway_003401_c21.jpg

myway_003844_c00.jpg

i585215.jpg

마이웨이에서 일본군 소형차량으로 등장.

걸즈 앤 판처현립 오아라이 여학원선도부가 운용하는 차량이다.
  1. 길이×너비×높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