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누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기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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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궤도차량1식 양장궤장갑병차 호하
전차경전차갑형 전차, 을형 전차, 95식 경전차 하고, 98식 경전차 케니, 2식 경전차 케토, 4식 경전차 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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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전차89식 중전차 이고, 97식 중전차 치하, 1식 중전차 치헤, 3식 중전차 치누, 4식 중전차 치토, 5식 중전차 치리
중전차95식 중전차, 100식 초중전차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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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三式中戦車(3식 中전차) チヌ(치누)
승무원5명 (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 무전수)
길이5.73m
너비2.33m
높이2.68m
무게18.8t[1]
장갑11~50mm
주포75mm 3식 대전차포 1문
부무장7.7mm 97식 기관총 1정
엔진統一 제 100식 발동기 4스트로크 V형 12기통 공랭식 엔진
출력240마력
최대속력39km/h
항속거리210km

2 개요

일본군이 만들어낸 중전차. 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에 90식 75mm 야포를 개수한 대포를 단 포탑을 신규제작해서 장착한 물건이다. 정식 명칭은 3식 중전차 치누.

3 특징

3.1 장점

치누에 달린 90식 야포가 75mm 포이고, 이 포가 M4 셔먼에 달린 그 75mm 포와 본질적으로는 같은 프랑스제 M1897 75mm 야포를 원형으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제야말로 일본 전차의 안습전설에 종지부를 찍을 기회가 찾아왔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화력은 이제 대등해졌으니까. 치누를 개발한 일본군은 드디어 미군에 복수할 기회가 왔다고 기뻐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구일본군약소열전에서도 신나게 깐다. 어째 장점 항목인데 장점이 안써있는듯한 기분? 기분 탓이야

3.2 단점

-위에 써있다-

3.2.1 주포

치헤의 작은 차체에는 과분한 포를 달았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차체에 비해 포가 무거워서 신뢰성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주포 피격! 사격 불가능!

게다가 별다른 개수 없이 야포가 원형인 포를 탑재했기 때문에 포탑이 차체에 비해 커지는 등 여러가지 단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주퇴기가 포탑 외부로 노출된 설계가 되었다는 것. 노출된 것만 해도 약점인데, 설상가상 격으로 주퇴기가 외부로 튀어나온 부위가 안그래도 포탑 전면이라 적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에다가 약점을 만들어놓은 셈과 다름없게 되었다. 당장 해당 부위에 포탑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는 소구경의 포탄만 맞아도 포의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했는데, 이는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또한 포의 주퇴제어에 발사가스를 사용했는데, 문제는 이 당시 전차라면 필수로 갖추어야 할 환기용 팬을 장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시 밀폐상태에서 사격을 가하면 포탑에 가스가 충만하여 포수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예사고 심하면 코피까지 흘리게 되었다. 당연히 승무원의 전투효율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이러한 상태로는 아무리 전차의 성능이 좋아 봤자 종합적인 전투력이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뻘짓을 거쳐 그나마 달아둔 75mm포조차도 셔먼 전차의 전면장갑을 관통시킬려면 철갑탄으로 사격해도 300미터까지 접근해야만 했다. 이게 감이 안오는가? 300미터 안이면, 76mm 피모철갑탄 으로 차체를 20도로 기울인 티거의 전면장갑도 관통이 가능한 거리다! [2] 애써 만든 권총탄이 5cm거리에서만 사살할수 있다는 거다. 그정도 거리면 공포탄으로도 사살할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게, 90식 야포의 원형인 M1897 75mm 야포는 원래 고폭탄에만 특화된 포여서 철갑탄 관통력이 동급 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떨어졌다. 당장 영거리 사격으로도 티거를 비롯한 독일 중전차들을 격파할 수 없던 M4 셔먼에게 붙은 도어노커라는 악명높은 별명이 바로 이 75mm 야포의 낮은 철갑탄 관통력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당시의 일본군은 부족한 야금 기술력과 자원 덕분에[3] 철갑탄을 제대로 만들어낼 기술력이 부족해서 명중한 포탄이 그냥 깨져버리는 증상이 흔했다.

게다가 철갑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성과를 요구하는 일본군 상층부의 압력을 받은 기술진이 쓰지 말아야 할 꽁수를 쓰는 바람에 포구초속은 더 높은데 관통력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상층부에 보고할 카탈로그 스펙인 포구초속을 늘리기 위해 탄피와 약실의 용적을 늘리고, 포탄의 중량은 줄인 결과다. 원래 이렇게 하면 성공적인 경우 고속철갑탄처럼 관통력이 올라가야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반 철갑탄도 목표에 명중하면 깨지는 판이라 거기서 속도만 끌어올린 포탄을 쓰면 관통력이 더 떨어진다. 애초에 고속철갑탄을 만들려면 관통자나 탄두의 내구성등을 크게 올리는 특별한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미국의 동급 75mm 주포에 비해서도 100m에서의 관통력이 100mm대 80mm로 20mm나 차이나는 사태가 발생한다. 구일본군 약소열전에서도 이 점을 지적한다.

3.2.2 장갑

치누는 치헤의 차체를 사실상 그대로 썼기 때문에 장갑이 얇다. 한발이라도 적 전차포탄에 맞으면 바로 죽는다는 현실은 그대로였던 셈이다. 전면장갑의 두께가 셔먼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A3 이전의 셔먼과 비슷할 뿐이었고, 모든 차량이 전면적인 경사장갑을 채용한 셔먼과는 달리 4호 전차 마냥 경사장갑이 일부분만 많이 드러난 형식이라 설계적으로도 한참 방어력이 모자랐다. 게다가 셔먼은 기동계통이 좋았기에 장갑을 더 붙일 여지도 존재했지만, 후술하겠지만 치누는 그러한 임기응변 조차 여의치 않았다.

3.2.2.1 치누 장갑은 정말 연철인가
당시 일본은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전차 장갑판에 니켈과 같은 귀중한 금속을 할애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니켈은 치누의 제작시기 이전인 1943년부터 당시 필요량의 10%도 충당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항공기의 프로토타입에 써먹기도 모자라서 니켈을 조금만 더 달라고 울부짖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갑판이 프라이팬 수준의 연철을 사용했다.

위가 과거 일본 밀덕계, 그리고 현재 한국 웹상에서 정설로 퍼져있는 연철 사용설의 근거로써 사용되는 자료를 기반한 추정이며, 이와 관련해서 언급되는 시바 료타로의 일화도 유명하다.

시바 료타로의 주장완성품의 장갑을 줄로 밀어서 가공할 수 있었다. 연철장갑인가?
구 설계진들의 반론표면경화장갑보다 더 방어력이 좋은 균질압연장갑을 사용했으나, 탄력있는 새(치하기준) 장갑 특성상 줄로 갈릴 수 있다![4]
치누의 생산공정에 있었던 현장사람들의 재반론허허허... 진짜로 연철 썼다니까? 하지만 양심의 가책은 있어서 치하처럼 장갑은 물론, 리벳도 포탄튕겨내라고 전부 줄로 갈아서 매끈하게 가공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교수는 자신의 저서 '쇼와사의 비밀을 쫒는다(昭和史の秘密を追う)'에서 시바 료타로의 소속부대 관계자를 인터뷰한 결과, 시바 료타로는 당시 신참 견습사관이었고, 치누의 승조원이 아니었으며,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기량과 지식이 부족했었다는 이야기와 시바 료타로가 언제나 구 일본군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면서, 시바 료타로의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단, 하타 교수 역시 구 일본군을 지나치게 좋게 본다는 비판을 듣는지라, 이 역시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결국 치누의 연철 사용여부는 증언보다는 확실한 증거인 문헌 밖에 없는데, 현재 남은 문헌들 중에서 치누가 연철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더군다나 이 떡밥은 한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 밀덕계에서 해당 떡밥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위의 시바 료타로의 일화로 짐작 가듯이 이 설 자체도 일본 밀덕계에서 먼저 퍼진것이다. 한국에 들어온 것도, 일본 밀덕계의 영향 때문이다.[5]

이 설이 퍼졌다는 것에 몇가지 설들이 있는데

1. 연철로 제조된 치누 모조품 때문에 퍼지게 됐다는 설

- 치누 시제 모형 겸 전시 흥보용 모조품이 잘못 알려져서 퍼지게 됐다는 설[6]
- 전후 만들어진 치누 모형이 잘못 알려져서 퍼지게 됐다는 설
2. 치누 부품 일부가 연철이 들어간 것이 과장됐다는 설
3. 맨 위의 일본군 자원 부족에 근거한 추정 설

볼트 같은 치누의 일부 부품에 연철이 섞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전차들도 볼트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품들 일부에 연철이 섞였기에, 왜 치누만 이런 소문이 퍼졌는지는 의문이 남기에 2번설은 다소 납득이 힘들기는 하다.

3번설 역시 납득이 힘들다는 점은 이미 연철이 일본군만이 아닌 민간 분야에서도 수요가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던 형국이었기에, 가뜩이나 부족하던 연철을 다른 곳에 돌려 사용한다는 것 역시 다소 납득이 힘들기는 하다.[7] 물론 제대로된 장갑제는 연철보다 훨씬 구하기 어려웠으므로 압연장갑 대신 연철을 쓴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일본 밀덕계에서는 중국군이 제조한 짝퉁 치누가 연철로 만들어져서 잘못 퍼지게 됐다는 설이 있었는데, 이게 일본 밀덕계 내부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당했다. 당시 중국의 복합적 상황 때문에 불가능하다는게 정설. 중국은 만주 작전 이후 소련군으로부터 무기 공여 및 기술 지원을 받았기는 해도, 여전히 기갑 장비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생산할 시설도 못가진 상황에서 전차 생산이 가능하겠나?

3.2.3 기동력

치헤의 차체에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포탑을 단 덕분에 그럭저럭 쓸만한 기동성을 보유했던 치헤보다 기동성이 상대적으로 더 낮아져 버렸다.

치누의 중량은 포탑을 포함해도 19톤에 불과했으며, 중량 자체는 매우 가벼운 편이었기에 치누의 중량을 고려해보면 240마력 엔진은 그렇게 모자란 출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동성이 좋다고 말할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치헤의 단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무슨 지거리야! 기어를 넣으려면 레버를 망치로 때려야 하는 등(…) 조종하기 참 엿같다는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렇다보니 운용 편의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보면 치헤의 기동계통은 빈말로도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조작의 난이도가 동시대의 소련 전차 수준이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그래도 소련전차는 쓸만하기라도 했지....

3.2.4 생산량

일본군의 만성적인 물자부족은 치누의 양산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제작개시 시간도 1944년 12월 제조개시로 늦었기 때문에 종전까지 166량(1944년 55량, 1945년 111량)이 생산되었다. 한마디로 200대도 못 만든 것. 참고로 M4 셔먼은 5만 대가 넘게 양산되었다.

그리고 체급 자체가 다른 M26 퍼싱은 1945년 2월까지 300대, 12월까지 총 2000여대나 생산되었다. 그야말로 버틸 수가 없다!

4 실전

그런 거 없다.

물자를 일본 본토로 수입할 배조차 연합군의 해상봉쇄에 막혀 말라죽어가는 판국에 어떻게 전차를 태운 배를 전장으로 내보내겠는가. 게다가 일본군으로서는 이런 강한 전차[8]를 본토결전을 위해 온존해둬야 했고, 그 이전에 나가서 싸울 땅 역시 한참전에 다 잃은 상태였다. 안습.

만약 본토 침공 작전인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다면 미군은 전차병의 안전을 위해 약간이나마 격파될 가능성이 있는 셔먼보다는 M26 퍼싱을 다수 투입했을 것이다. 만약 치누가 퍼싱을 마주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종전 이후

일본의 패전 후 남아있던 치누는 미군의 간단한 조사를 받은 후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우는 등 체계적으로 파괴돼서 고철로 처리되었다. 그 중 2량만이 남아서 1량은 미국에 전시되었고, 나머지 1량이 쓰치우라의 육상자위대 무기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본의 아니게 시바 료타로가 소설가가 되는데 일조하기도 했는데, 당시 견습 사관이었던 시바 료타로가 본토 결전을 준비중에 시민들과 아군이 길을 막으면 어찌하냐는 질문에 상관이 그냥 깔아 뭉게버려라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전쟁에 미친 일본인을 규탄하는 소설을 쓰게되었다.

6 차기 전차

상황이 계속 급박하게 돌아가다보니 후속차량도 계속 연구 되었지만, 결과물은 4식 중전차 치토와 5식 중전차 치리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7 대중매체에서의 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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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즈 앤 판처에서 현립 오아라이 여학원 소속으로 등장한다. 온라인 탱크 게이머로 구성된 개미핥기팀의 차량이 되지만 팀 자체부터 결승 직전에 다급하게 결성한 탓에 훈련이고 뭐고 다 건너뛰고 바로 실전 투입했다가 첫 출전에서 시작하자마자 광탈당한다. 상술한 거지같은 변속 레버와 승무원들의 실력 미숙으로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플래그 차량을 노린 티거 2의 공격을 본의 아니게 프렌드 실드로 막아주며 오아라이 전력 중 가장 먼저 탈락. 그래도 플래그 차량의 격파 위험을 막아준 덕분에 성능과 실력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활약(?)은 했다고 평가받았다.
이 치누도 이전의 전과와 마찬가지로 국산 전차라는 이유로 호평을 받으며[9] 애니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본편에서의 결말을 보면, 결국 감독 및 제작진들도 나중엔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게 된 듯..
극장판에서는 분기탱천하며 훈련을 거듭한 개미핥기 팀이 75mm를 활용하여 M26 퍼싱을 격파하는 등 나름대로 활약하지만 최종전에서 이번에는 변속 레버를 부셔먹고 조종불능 상태에 빠져 센추리온 전차에 의해 리타이어. 이번에도 원흉은 그놈의 변속기(...). 여러분들도 게임을 접고 운동을 하면 변속기를 부셔먹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언급한 훈련의 효과가 미쳤는데 포탄을 던져서 건네고 그걸 한 손으로 잡아서 장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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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오브 탱크/일본 테크 트리에 추가되었다. 0.8.8 패치 이전에 치토의 주포를 장착한 치누 改형이 5티어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테스트 서버에서 처음 등장했다. 대전 최후반 전차가 5티어란게 개그[10] 다소의 쉴드를 쳐주자면 3식이나 4식이나 5식이나 실제 개발 및 배치는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 졌다. 하지만 3식 개(改)는 4식 포탑을 얹고도 5티어. 정규 테크에서도 치누는 5티어 중형전차로 확정되었다.
  1. 75mm포 장착형 중형전차인 4호 전차M4 셔먼에 비해선 심각하게 가볍다.
  2. 차체를 기울이지 않은 경우 900m 이상에서도 가능하다. 30도인 경우 공략불능.
  3. 사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일본은 당대의 특수 철갑탄의 주 재료였던 텅스텐의 매장량이 매우 풍부했다. 당시 텅스텐 산출량 1위인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일본은 미국 같은 강대국들처럼 텅스텐을 대량으로 가공할 설비와 기술이 없어서 있는 자원을 그냥 놀리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4. 재미있게도 치누 개발에 참여한 '소네 마사노리(曽根正儀)'는 전차매거진(戦車マガジン) 1980년 5월호에서 위와 같은 뉘앙스로 말하며, 연철을 사용했다는 소문을 부정했다.
  5. 과거 한국 밀덕들은 대부분의 밀리터리 사료들을 일본에서 들여왔었다.
  6. 이 설에 의하면 위의 시바 료타로의 일화도 이 설 때문에 퍼지게 됐다고 한다.
  7. 이미 연철은 장병들 수통이나 밥통부터 해서 여러 분야에서 수요가 요구됐었고 그마저도 턱 없이 부족했었다.
  8. 물론 일본군 기준으로
  9. DVD 특전영상 중, 육자대 전차학교에서 일본산 전차들에 대해 설명하던 스즈키 타카아키(걸&판의 밀리터리 슈퍼바이저 담당)가 4호 전차와 거의 동등한 전차라며 자랑하니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 감탄을 하는 장면이 들어있는데, 사실 이 영상은 막 제작결정이 되어서 사전조사작업을 진행하던 때에 찍은거라 미즈시마 감독이 전차에 대해 거의 모르던 시기였다. 또는 전차에 대해선 아는데 마이너한 자국 전차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수도 있다. 어쨌든 밀리터리 슈퍼바이저가 좋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집어넣는 건 당연한 결말(...)
  10. 시대 다른 국가의 전차는 8티어 정도에 배치된다. 물론, 2차대전에서 조기 탈락한 프랑스는 대전기 전차는 4티어 B1가 끝이고, 중국의 대전기 전차는 M5 스튜어트가 마지막. Type T-34(T-34 1943년 형)은 소련에서도 씨가 말라가던 때라 소량만 중국에 넘어갔으며 실전 투입 용도는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