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식 경장갑차 테케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기갑장비
장갑차차륜 장갑차93식 장갑차
궤도 장갑차98식 장갑운반차 소다, 1식 장갑병차 호키
경장갑차카식 기총차, 92식 중장갑차, 94식 경장갑차, 97식 경장갑차 테케
반궤도차량1식 양장궤장갑병차 호하
전차경전차갑형 전차, 을형 전차, 95식 경전차 하고, 98식 경전차 케니, 2식 경전차 케토, 4식 경전차 케누
수륙양용전차특 2식 내화정 카미, 특 3식 내화정 카치, 특 4식 내화정 카츠
중형전차89식 중전차 이고, 97식 중전차 치하, 1식 중전차 치헤, 3식 중전차 치누, 4식 중전차 치토, 5식 중전차 치리
중전차95식 중전차, 100식 초중전차 오이
노획전차M3 스튜어트, 1호 전차
공병전차장갑작업기
자주포1식 포전차 호니, 1식 포전차 호니2, 2식 포전차 호이, 3식 포전차 호니3, 4식 포전차 호로, 12리 자주포
차량95식 4륜 자동차, 94식 6륜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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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 전장 : 3.70m
  • 전폭 : 1.90m
  • 전고 : 1.77m
  • 중량 : 4.7t
  • 속도 : 42km/h (견인시 30km/h)
  • 항속거리 : 250km
  • 주무장
    • 지휘관용 : 98식 37mm 대전차포 1문
    • 일반용 : 97식 7.7mm 경기관총 1정
  • 장갑 : 8~16mm
  • 엔진 : Ikega식 공랭직렬 4기통 디젤 (65마력)
  • 출력비 : 10hp/t
  • 승무원 : 2명 (전차장, 조종수)

2 개요

97式輕裝甲車 テケ

1937년(황기 2597년)에 채용된 일본군장갑차. 정식 명칭은 '97식 경장갑차 테케'이며, 주로 일본 육군에서 운용했다. 중일전쟁 당시 손쉽게 사용하며 일본 육군의 기계화에 도움을 준 94식 경장갑차가 여러 가지 결점을 나타내자, 이를 개선할 목적으로 히노 자동차 공업에서 1936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제식 채용될 당시에는 일본 육군의 주력 중(中)전차인 97식 전차도 함께 채택되었다. 그리고 둘 다 무능력을 입증했다

3 상세

상술했듯이 97식 경장갑차는 94식 경장갑차를 개량한 것이며, 그 변경점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서 94식과는 달리 본격적인 경전차에 가깝게 변화했다.

  • 무장 강화: 경기관총 1정의 빈약한 무장을 98식 37mm 전차포로 교환했다. 단, 이렇게 무장한 차량은 소수라서 소대장차로 분류되었으며, 일반형은 그냥 94식처럼 경기관총 1정이라 실질적으로는 화력 강화가 전혀 안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는 유사시 근접한 보병에게 대응사격이 가능하도록 구멍을 만들었다.
  • 출력 강화: 엔진도 연비소비가 큰 가솔린 엔진 대신 디젤 엔진으로 변경했으며 출력도 65마력이 돼서 94식 경장갑차의 출력보다 15마력 이상 증가했다. 다만 전황이 악화되면서 불량 부품이 사용된 후기형은 출력이 48마력으로 저하되기도 했다.
  • 내부환경 개선: 엔진을 전차후부에 설치해 조종수의 탑승환경을 개선했으며 무전기를 탑재해 작전연락도 가능하게 되었다. 또 방탄유리를 채용하여 적군의 총격이나 포탄의 폭발로 인한 파편이 난무할 때 개방된 직시창에 총탄이나 파편이 날아와서 조종수가 눈에 부상을 입는 경우를 막았다.
  • 주행능력 강화: 엔진을 교환해서 항속거리가 늘었으며, 무한궤도도 센터가이드 방식으로 변경해서 장기간 주행시나 고속주행, 급격한 선회시에 무한궤도가 제자리에서 이탈해서 장갑차가 전복되거나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을 방지했다.
  • 적절한 중량유지: 94식 경장갑차보다 중량이 늘었으나, 일본군이 운용하던 표준화물선 크레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인 5톤보다 약간 낮은 4.25톤이라 특별한 기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륙전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나중에 장갑강화 및 내부기기 증설등의 이유로 4.7톤으로 중량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5톤 이하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전투력 향상을 위해 승무원을 3인으로 늘리려던 계획은 중량 증가 문제 및 경장갑차의 목적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장이 지휘, 사격, 장전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4 실전

97식 경장갑차는 주로 보병사단의 수색연대에 배치되었으며, 무전기를 탑재하고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인해 전선에 직접 투입되는 것보다는 주로 전차연대 등의 부대에서 연락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독일군에서 편제한 정찰부대를 모방한 것이었다. 다만, 독일군의 장갑차는 초기형이라도 기본적으로 20mm 기관포를 탑재한 것을 감안한다면 성능 면에서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래도 94식 경장갑차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많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1939년에 할힌골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전차 제3연대에 배치되어 첫 실전을 겪었다. 그러나 전투 면에서는 소련군T-26같은 전차나 장갑차들이 45mm 전차포를 탑재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화력이 약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으며, 특히 BT 전차는 험지돌파력과 속도에서도 압도적이라 정면승부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휘관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경기관총 1정밖에는 무장이 없었으므로 대전차전 능력은 0에 수렴했다. 이처럼 전선에서 활동하는 장갑차량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음이 입증되었지만, 고질적인 일본군의 장비부족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 시기에도 대량으로 투입되었다. 당장 개전 초기에 벌어진 싱가포르 전투의 시초인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할 때 사에키 돌격대가 97식 경장갑차를 운용했으며, 필리핀 공략전에는 수색 제16연대의 제3, 4중대가 본 장갑차로 미군과 조우했다. 여기서 97식 경장갑차는 다른 일본군 전차와 마찬가지로 진격 자체는 수월했지만, M3 스튜어트와의 대결에서는 그야말로 폭죽처럼 터져나갔고, 재수 없으면 보병의 소총에서 발사되는 소총탄용 철갑탄에도 관통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렇게 각종 전투에서 한계점을 팍팍 드러내던 도중, 전황이 악화되자 수색연대들이 차례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고질적인 일본군의 장비부족으로 인해 97식 경장갑차는 다른 부대에 소속되어 여러 곳에서 방어전에 참가했다. 방어전에 배치되었기에 기동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원래라면 진작에 운용을 그만두었어야 했지만, 일본군의 궁핍한 상황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장갑차를 퇴역시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 이 때는 미군이 대량으로 M4 셔먼을 투입하기 시작한 시기였으므로 97식 경장갑차는 미군과 교전하는 족족 박살났으며, 만주 작전 때는 밀려오는 소련군의 T-34/85나 IS-2를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5 말로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남아 있던 97식 경장갑차의 대부분은 해체되었지만 일부는 무장을 철거한 후 불도저로 개조되어 전후 복구에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군의 항복으로 중국에 남겨진 97식 경장갑차는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에 벌어진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의 군대인 국부군과 공산당의 군대인 홍군 양측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97식 경장갑차의 실물은 본국인 일본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러시아의 쿠빈카 전차박물관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육군전차박물관에 각각 1대씩 전시되어 있다.

6 평가

종합적으로는 95식 전차인 하고의 열화판으로 보면 된다. 애초에 태생 자체가 견인용 다용도 장갑차인데다가 일부나마 장비한 전차포의 성능도 열강 중에서 최악의 성능을 가졌으며, 그나마 수량도 부족해서 대다수의 차량이 경기관총 1정의 무장을 유지하는 등 실질적인 무장 강화는 거의 하지 못했으므로, 일본군에서도 경장갑차로 구분할 정도로 화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개발이 시작된 1936년 당시에는 이미 각국의 경전차도 기관포를 장비하거나 본격적인 37mm급 대전차포를 장비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장갑 강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방호력은 매우 미약했다. 그냥 기관총에 철갑탄을 장전하고서 연사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게 뚫렸으며, 심지어 보병이 지근거리에서 철갑탄을 장전한 소총을 쏴도 장갑이 관통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반적인 보병들도 바주카판처파우스트같은 대전차 화기를 손에 넣었고, 그 전의 보병들도 총류탄을 발사할 수 있거나 대전차 소총을 적어도 1정은 보유하는데, 이들조차도 97식 경장갑차 따위는 단번에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따라서 대전차전 능력은 아예 없었고, 대보병전 능력도 약한 이도저도 아닌 차량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연합국의 기갑부대나 장갑차 부대와 정면으로 충돌할 경우 생존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이미 능력부족이 입증된 94식 경장갑차를 약간 개수하는 정도의 개량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써먹으려던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냥 견인용 차량으로만 사용되었다면 딱 어울렸을 물건을, 중국군을 상대하기 좋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약간의 개수만 거쳐서 제대로 된 중전차가 날뛰는 전장에 집어넣었으니 당연히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결국 일본군 대부분의 장갑차량들이 그러하듯이, 97식 경장갑차 테케는 일본군의 막장행각이 뻘짓이었다는 점만 입증하고 사라진 비운의 차량이 되고 말았다.

7 파생형

7.1 98식 장갑운반차 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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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노획된 소다.

7.1.1 제원

九八式装甲運搬車 ソダ
생산1941~?
무게5 t
길이3.8 m
넓이1.9 m
높이1.6 m
승무원2명
장갑최대 12 mm
엔진디젤
최대 중량1 t
현가장치벨 크랭크
속도40 km/h

7.1.2 개요

일본군이 사용한 궤도 운반차량. 탄약도 나르고 견인포도 견인하고 병력도 수송하고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되었다. 94식 경장갑차를 대체할 97식 경장갑차 테케가 개발되자 테케는 본연의 임무 중 하나였던 수송보다는 전투에 더 사용되게 되고 비무장한 수송차량이 하나 필요했던 일본군이 개발을 시작했다. 테케의 차체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1톤 정도의 물자나 10명을 수송할 수 있었다. 중일전쟁에서 처음 사용되고 2차 대전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총 100대 정도 생산되었다고 한다.

7.2 100식 관측차 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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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 년도1940
무게4.9 ton
길이4.07m
넓이1.99m
높이1.9m
장갑최대 6 mm
최고 속도40 km/h
엔진디젤 엔진(65마력)
승무원6~8

포병관측 차량이다. 소다와 거의 비슷하지만 장갑이 더 얇고 미묘하게 다르다. 극소수만 생산되었다.

7.3 자주대공포 키토

테케의 차체를 활용한 프로토타입 자주 대공포. 아마 소다의 차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철갑탄, 예광탄, 고폭탄을 모두 사용 가능한 98식 20mm 대공포를 얹었다. 이 포는 최대 5500미터의 사거리와 830m/s 정도의 포구속도로 1분에 120~300발 정도를 사격할 수 있었다. 완성은 했지만 대공포가 제대로 보호가 안되고 공간이 너무 좁아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7.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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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 포방패를 제거하고 도저 블레이드를 장착해서 개조한 형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8 매체에서의 등장

월드 오브 탱크에서 일본의 2단계 프리미엄 경전차로 등장한다.

걸즈 & 판처의 스핀오프 만화인 리본의 무사에서 주인공 츠루기 시즈카가 사용. 문제는 전차도부가 해체된지 오래된 학교라 남아있는 전차가 없어서 시즈카 개인이 보유한 차량을 등록한 것. 즉 이 학교 전차도부의 유일한 전차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