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식 중장갑차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기갑장비
장갑차차륜 장갑차93식 장갑차
궤도 장갑차98식 장갑운반차 소다, 1식 장갑병차 호키
경장갑차카식 기총차, 92식 중장갑차, 94식 경장갑차, 97식 경장갑차 테케
반궤도차량1식 양장궤장갑병차 호하
전차경전차갑형 전차, 을형 전차, 95식 경전차 하고, 98식 경전차 케니, 2식 경전차 케토, 4식 경전차 케누
수륙양용전차특 2식 내화정 카미, 특 3식 내화정 카치, 특 4식 내화정 카츠
중형전차89식 중전차 이고, 97식 중전차 치하, 1식 중전차 치헤, 3식 중전차 치누, 4식 중전차 치토, 5식 중전차 치리
중전차95식 중전차, 100식 초중전차 오이
노획전차M3 스튜어트, 1호 전차
공병전차장갑작업기
자주포1식 포전차 호니, 1식 포전차 호니2, 2식 포전차 호이, 3식 포전차 호니3, 4식 포전차 호로, 12리 자주포
차량95식 4륜 자동차, 94식 6륜 트럭
프로토타입 /
페이퍼 플랜
5식 경전차 케호, 특 3호 전차 쿠로, 97식 중전차 치니, 98식 중전차 치호, 특 5식 내화정 토쿠, 시제 5식 포전차 호리, 5식 포전차 나토, 시제 4식 중박격포 하토, 5식 구축전차 호루,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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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 (1914~1945)냉전기 (1945~1991)현대전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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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mm 기관총 장착형.

1 제원

개발년도1931
생산년도1932–1939
생산량167
무게3.5 t
전장3.95 m
전폭1.63 m
전고1.86 m
승무원3
장갑6–12 mm
주무장13.2 mm 92식 중기관총
부무장7.7 mm 97식 경기관총 1정
엔진프랭클린/이시카와 스미다 C6 공냉식 6기통 가솔린 엔진(45마력)
현가장치벨크랭크
작전반경200 km
최고속도40 km/h

2 개요

뭔가 강력해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92식 중장갑차는 일본군의 첫 번째 국산 탱켓이다. 기병대에서 정찰과 보병지원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이시카와지마 자동차회사(현재는 이스즈)에서 생산했다. 장갑차보다는 경전차에 가깝지만 일본군 내에서의 구분법 때문에 장갑차로 불렸다. 일본육군에 따르면 탱크는 보병부대 소속인데 92식 중장갑차는 기병 소속이어서 장갑차라고 불렸다. 일본군만 이런건 아니고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도 기병소속의 경전차를 M1 전투차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3 개발

1차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는 기병부대를 기계화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고 일본 또한 이에 동참했지만 성과는 그닥 좋지 못했다. 당시 일본군이 깽판을 치던 전투를 수행하던 만주는 도로사정도 좋지 않았고 겨울이 되면 차량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장갑차를 운용해도 진짜 말타는 기병부대와 섞어서 운용하려고 했다.

20년대 초부터 일본육군기병학교에서는 카덴-로이드 탱켓이나 르노 FT-17 같은 유럽 전차들을 테스트하면서 1929년 국산 신형 장갑차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카든-로이드 탱켓을 많이 참고했고 적의 장갑차량에 대항할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

92식 중장갑차는 처음에 궤도를 벗기고 바퀴로만 달릴 수도 있는[1] 수륙양용으로 계획되었다. 이때의 이름은 92식 아이고. 방수 차체에 프로펠러도 둘 달리고 프로트도 있었다. 프로토타입이 두대 완성되었는데 실험에서 영 좋은 결과가 안나오자 수륙양용 컨셉을 버리고 지상전용 궤도 차량으로 개발을 시작한다.

양산은 1932년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회사에서 시작되었으나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39년까지 167대만 생산되었다. 구동계에 문제가 좀 있었지만 혹독한 만주땅에서 92식 중장갑차는 꽤 잘 굴러다녔고 몇 대는 서치라이트와 94식 Mk.4 을형 무전기[2]를 장착하고 야간 작전에 투입되었다.

대부분 관동군조선군에게 전달되어 사용되었다.

중일전쟁 때 94식 테케로 대체되었는데 연합군 문서에서는 두 차량을 자주 헷갈린다고 한다. 어차피 뭘 가져다 쏴도 터진다

4 설계

장갑은 리벳접합과 용접을 둘다 사용하였는데 차체는 고작 6mm에다 포탑도 12mm 밖에 안된다. 이정도면 소총에도 그냥 뚫린다. 당시 전세계 탱크들이 고만고만했지만 92식 중장갑차는 당시 기준으로도 장갑이 너무 얇았다. 얇은 장갑 덕분에 무게는 상당히 가벼운 2톤에서 3톤 사이(당시 왠만한 탱크들은 이거 2배는 나갔다)이고 무장도 빈약한데 속도는 40 km/h 정도로 추중비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3]

무장은 기관총 2정인데 하나는 차체에 하나는 포탑에 있었다. 차체 기관총이 13.2mm 92식 중기관총이었는데 그걸 실질적인 주포로 썼다. 포각은 안좋은데 특수 조준장치와 고각 사격용 마운트가 있어서 대공 사격을 할 수 있는 기묘한 기능이 있다. 추가로 외부에 대공기총용 마운트가 있어서 91식이나 97식 기관총을 달 수 있다. 여기서 또 일본군의 기묘한 기능이 있는데 엔진 해치를 열어서 고정하면 외부 기총 사격할 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완성된다!복지강군 일본군 포탑의 무장은 본래 6.5mm 91식 기관총이었다가 나중에 7.7mm 97식 경기관총으로 대체되었다. 포탑은 수동으로 돌린다. 여러모로 독일의 1호 전차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도 13.2mm 중기관총 덕분에 화력은 1호 전차보다는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13.2mm 기관총이 그냥 7.7mm로 교체되어 버리면서 차이가 없어졌다.

생산 종료후에 도태된 92식 중장갑차를 다시 전장에 맞게 개량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실제로 13.2mm 기관총 대신 98식 20mm 기관포를 장착하기도 해서 꽤 괜찮은 실험결과가 나왔고 몇몇대가 이렇게 개수되어 전장에 투입되었다. 또 37 mm 대전차포까지 얹으려고 했는데 이건 결과가 좋지 못했다.

5 바리에이션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궤도를 벗기고 달릴 수 있는 수륙앙용 프로토타입의 상당수를 차용한 극초기 생산형은 서스펜션에 문제가 있어서 고속으로 달리면서 선회할때 궤도가 잘 벗겨졌다고 한다. 나중에 이 문제는 서스펜션을 개량해서 해결했다. 초기형 모델들은 6.6mm 기관총 두정을 장비했고 1932년 하얼빈 공격에서 기병대에 의해 사용되었다.

개량된 초기형과 중기생산형들은 13.2mm 중기관총을 장비하고 8사단 제1 특수 전타 중대에서 1932년 내몽골 침략때 쓰였다. 이 과정에서 몇 대가 대공사격 기능을 추가하는 개수를 받았다.

후기형은 1942년 4월 만주에 배치되었고 구동계통과 관측창이 개수되었으며 신형 7.7mm 96식 기관총이 장비되었다.
  1. 엄청 독창적인 기능은 아니고 소련의 BT 전차에도 같은 기능이 있다.
  2. 1km 정도의 통신범위를 가졌는데 무게는 40kg에 안테나 길이만 7m였다.
  3. 예를 들자면 독일의 1호 전차가 5.4t에 비슷한 속도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