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교통

1 개요

공주시의 교통 관련을 다룬 항목으로, 기존 공주시 문서에서 분리되었다.

2 철도

철도계의 영고라인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공주시 철도의 역사

유독 철도와 인연이 없다. 아니 거의 악연수준이다. 경부선은 공주 옆의 조치원-대전으로 이어지는데, 철도 부설 당시 한말 공주의 유생들의 극렬하게 반대 여론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풍수지리나 기타 여러 것들이 돼지의 기운이 강했는데, 길고 구불구불한 모습의 철도가 마치 돼지와 상극인 을 상징한다거나(철도의 모양이 계룡산(鷄)과 상극인 지네와 닮아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철도부설로 지맥이 끊긴다면서 반대했다 카더라.공주, 110년 만에 鐵馬가 달린다

그런데 사실 유생들이 반대해서 철도를 내쫓았다는 얘기는 별 근거가 없다.

흔히 유생반대설의 근거로 제시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1901년 확정된 경부선 철도 노선으로 서울-수원-천안-전의-공주-노성-금산-황간-김천-약목-대구-현풍-창녕-영산-삼랑진-부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노선은 1899년 쿠노 후루야(久野知義)가 이끄는 측량팀의 답사루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주로 기존 인구밀집지역을 한데 훑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것이 불과 몇 년만에 전의-대전-김천으로 변경된 이유로 지목되는 것이 유생 반대설인데, 사실 경부선 수원 이남 공사가 본격화되는 1903년에 접어들면 일본은 본격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 준비에 착수하게 되고, 당연히 일본은 빠른 시일내에 최단거리로 서울-부산-신의주를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하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사설철도회사에 정부예산을 투입해가며 경부선 완공을 무려 2년이나 앞당기도록 독촉하는 상황이었다. 설령 공주지역에서 경부선 유지를 극렬히 희망한다 해도 가망이 없었던 것이다.사실 당초 공주경유안도 의도가 불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서울-목포간 철도를 대놓고 방해하려는 복안이 깔려 있었기 때문.[1]

경부선 건설 직후인 1905년부터 '군산지선', 즉 호남선 노선을 두고 공주 경유안이 등장했다. 당초 경부철도측에서 계획한 노선은 태전(대전)-강경-군산이었으나 경부철도측은 공사비 문제로 이 노선을 빠른 시일내에 착공하기 힘들었고, 이에 한국인 서오순과 일본인 오타 슈사부로 등은 조치원-공주-노성-연산-은진-강경으로 철도를 놓으려 하였다. 이 계획은 꽤 진척이 되어서 1906년에는 호남철도회사 공주지사가 설치되고 1908년 2월에는 주식모집 공고까지 나왔는데, 만일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공주지역에서 철도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면 이 정도로 일이 진행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호남선 문서에서 설명했듯 애초에 일제가 호남선을 건설한 1차적인 목적은 호남지방의 농산물을 부산항으로 실어오는 것이었고 경부철도회사에서 대전-군산노선을 건설하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조치원과 청주에서 조치원분기를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국권 피탈 직전인 1910년 4월 2일에 호남선 분기점은 대전으로 결정되어버린다.

1916년에는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에서 (음죽-)청주-조치원-공주, 성환-충주, 장호원-여주의 3개 노선안을 총독부에 제출하였는데 이는 충북경편철도주식회사에서 추진중이던 부강-청주-충주-제천간 舊충북선 계획과 충돌하였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가 치열하게 싸운 끝에이때부터 시작이었군 결국 절충안으로 조선경철[2]에서 평택-충주, 충주-공주간 노선을 부설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조치원 이남 구간은 이후 쥐도새도 모르게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1920년에 접어들면 철도 빨리 안 지어줘서 현기증 난다고 난리가 났었다.(...) 사실 현기증이 날 만도 한 게, 이 시기에 충남에서는 슬슬 도청이전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1920년대 내내 공주에서는 조치원과 연계하여 이런저런 철도노선들을 끌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몇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조치원-공주 궤도자동차: 1921년 초 나온 안. 일본에서 개발된 가솔린 추진 궤도자동차를 조치원-연기-갈운[3]-대교-신관-공주로 부설하고 추후 논산, 부여, 장항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이었다. 궤도자동차는 이후로 조선에 많이 부설되었던 762mm 협궤를 말한다. 건설비가 저렴하여 6개월이면 공사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1922년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 조치원-공주-전주 철도: 1923년에 등장한 안. 사실 첫 등장은 꽤 오래전으로, 1905년에 조치원-공주-전주를 호남선 본선으로 하고 강경-군산을 지선으로 부설하는 계획이 제시된 바 있었는데 이 시기에 다시 불거져나왔다. 이후 아래에서 등장한 조치원-대천선에 밀려 잠잠했다가 1928년경 다시 등장했다. 당시 광려선[4]을 운영하던 민간업체 남조선철도주식회사는 순천-경부선간 연결노선으로 대전-선천[5] 철도를 계획했는데, 공주는 전주와 연합하여 전주-강경-논산-공주-조치원으로 이어지는 가칭 충전선 노선을 요구했다. 1931년까지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국은 대전-관촌과 조치원-전주 둘 다 사이좋게 사라져버렸다(...) 다만 요구 자체는 살아있어서 1939년에도 이야기가 나왔다.
  • 조치원-공주-대천/서천 철도: 1926년 일본 정부의 조선철도12년계획선 편입을 노리고 추진한 노선. 당시 보령군 송학리에는 송학항이 건설될 예정이었고 조선경남철도[6]는 자회사로 충남임항철도회사를 설립하여 송학항 임항철도 건설에 나섰는데, 이와 맞물려 경기남부 및 충남지역 물자를 송학항으로 수송하기 위해 안성선과 함께 조치원-대천 노선이 추진되었다. 최초 계획은 조치원-공주-부여-대천-송학항이었고 이후로 조치원-공주-청양-대천-송학항, 조치원-공주-부여-서천 판교리 노선과 대천-송학항 지선을 별도로 건설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었으나 결국 군산항의 기능 약화 문제와 공주-대천/서천 사이의 지형 기복으로 인한 공사비 폭발, 연선인구 부족으로 인한 경제성 문제등이 겹쳐 송학항 계획 자체가 흐지부지되고 이 철도계획도 죽어버렸다. 대략 현재 이야기되는 충청선 철도(조치원-공주-대천)의 전신격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1931년 충남도청을 대전에 빼앗기면서 공주의 철도부설운동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그나마 도청이라는 강력한 행정기능이 있으니 철도부설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는데, 그 추진동력의 핵심이 사라져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일본의 만주침공과 이어지는 15년 전쟁의 여파로 일본은 주로 조선 북부에서의 철도망 확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충전선이나 조치원-장항철도 부설운동이 1930년대에도 나타나는 등 1931년 이후로도 공주의 철도유치운동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 몇가지 새로운 방안들도 나타났다.

  • 조선중부횡단철도 동부선 기성운동: 1935년에 강원도 지역에서 조선중부횡단철도 동부선의 건설을 촉구하는 기성운동을 벌였다. 이 횡단철도 동부선은 당시 충주까지 건설되어 있던 충북선을 제천, 영월, 정선, 강릉으로 연장해 달라는 것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태백선-영동선 루트다. 이 당시 기성회에서 제시한 노선은 삽교-공주-조치원-충주-제천-영월-정선-강릉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광복 이후 충주 이북 구간만 건설되고 조치원 이남은 짤렸다.
  • 경부선 복선화 공주 경유안: 1936년 조선총독부는 경성-대전간 경부선 복선화를 추진하면서 조치원-대전 구간의 터널공사비를 줄이고자 공주 경유를 검토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주시내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고 조치원-대평리-유성-대전으로 이어지는 노선이었고[7] 대전에서도 사업비를 줄여 빠른 시일내에 복선철도를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8] 하지만 공사기간을 1년이나 단축시켰을 정도로 시일이 촉박했던 탓인지처음 부설할 때에도 그러더니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어 기존 노선을 그대로 복선화하게 되었고 공주는 그나마 반경 10km 이내에 철도역이 생길 기회마저 사라졌다(...)
  • 조치원-공주-장항 철도: 1939년에 제시된 안으로, 위에서 언급한 조치원-대천 철도의 변형안 중 조치원-서천(판교)안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9] 이유는 장항항 확장으로 인한 물동량 처리 및 부여신궁 조성으로 인한 참배객 수송을 위해서(...) 그래서 당시 이 철도 부설운동의 이름은 참궁(參宮)철도 기성운동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방 후 부여신궁이 사라지고 장항항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묻혀버렸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초기에 기존 철도 유지에도 벅찬 현실이었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호서/호남지방의 식량자원을 일본과 중국 등지로 반출하면서 성장한 군산, 장항 등 서해안 항구들이 무역구조 변화로 쇠퇴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급감하였다. 해외 지원을 통해 어느정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 1960년대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도로가 투자 우선순위에 놓이면서 공주는 예나 지금이나 철도 없는 동네로 남게 되었다.

파일:공주시/교통/행정수도공주.jpg

그런데 사실 현대에 들어서도 공주시에 철도가 들어올 기회가 한 번 있었다. 1970년대 계획했던 행정수도는 장기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현 세종행정도시, 서로는 공주 강북지역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현 행정도시 지역에는 일반철도를, 현 공주 강북 일대에는 고속철도를 건설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행정수도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한동안 잊혀졌는데....

호남고속철도 분기 당시 천안아산역 분기가 실현된다면 바로 위의 방안이 그대로 부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천안아산역 분기는 거리상 이익일 뿐더러 공주에 고속철도역이 설치될 경우 행정도시로부터 15분 이내에 접근 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든 철도 동호인들이 공분해 마지않는 높으신 분들삽질로 인해, 결국 호남고속선오송역에서 분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나마 공주시의 여론을 달래고자 공주역 설치가 결정되었고 시내에서 15분 걸리는 계룡면 일대에 역이 들어서면 제법 이용할만 했겠지만, 이조차도 말도 안 되는 이유 덕택에 하루 이용객 500명이 예상되는 기괴한 위치인 이인면 신영리에 역이 들어서게 되었다. 자세한 사정은 공주역 참조. 이 쯤 되면 진짜로 지세가 철도랑 안 맞는건지 의심될 수준.금호고속은 여전히 건재하다

마지막의 마지막 희망으로 조치원-공주-청양-보령간 충청선(가칭) 철도와 천안-논산간 철도 계획이 있다. 그런데 충청선 철도는 2007년에 예타에서 물먹은 이후로[10] 감감무소식이고 천안-논산간 철도는 그냥 논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유구한 논쟁의 충청선 철도는 조치원-세종행정도시-공주 구간의 타당성이 다소 높게 나온데다가 세종시가 도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라 조금은 희망이 있긴 있다. 일단 2016년 총선에서는 세종지역의 핵심공약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말 마지막 희망이라면 천안~논산 사이에 직결 철도를 설치할 경우 물리적으로나 중간역 간격이나 여러모로 공주시내에 가까운 지역에 역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인데, 실제로 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안습.

이 가슴아픈 역사를 지도로 확인해보자.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날 있는 건가? 위에서 언급한 조치원-공주-대천 철도가 추가검토 사업[11]으로 가칭 "충청문화산업철도"가 계획에 반영되었다는 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총 비용은 약 1조 9천6백억원 정도. 제3차 국가철도망으로 확정 고시될 경우 조치원을 기점으로 공주-부여-청양-보령을 잇는 철도가 건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철도가 공주역 살리겠다고 그쪽으로 가버린다면 정말 답이 없다

3 도로

반면, 도로교통은 편리하다. 2002년 12월, 민자도로인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 방면 교통이 편리해졌다.[12] 그리고 2009년 5월, 당진영덕고속도로 유성구-당진시 구간과 서천공주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동서 방면 교통도 편리해졌다[13]. 국도23번 국도, 32번 국도, 36번 국도, 40번 국도가 있다.

4 버스

공주시버스 터미널
주요 터미널부분 터미널
공주종합버스터미널유구시외버스터미널
시내 정류소
공주산성정류소

각 터미널과 정류소에 관해선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간단하게, 주요 터미널인 공주종합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일부 시외노선의 정류소인 공주산성정류소유구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이외에도 각 지역별 중간 정류소 등이 많지만 주요 항목만 작성되어있다.

위 도로 문단에서도 알 수 있듯, 2002년 논산천안고속도로 이후로 고속도로 확충과 도로 선형 개선 등이 이루어져 과거에 비해 많은 버스 노선이 개통했다.[14]

또한 시에서 2013년에 준공, 2014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공주공영차고지가 있다. 참고로 나무위키에 기록된 충남 유일의 공영 차고지다.

공주시 시내버스시민교통이 운행 중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공주시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다만 실제로 한국인들이 반대해서 노선이 틀어진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안양-수원 구간은 원래 전통적으로 이용되던 통로인 지지대고개 인근에 터널을 뚫으려 했으나 사도세자와 정조의 묘인 융건릉의 지세에 영향이 간다는 이유로 수원지역에서 난리가 나 한국정부가 직접 일본측에 노선변경을 요청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경부선 전체에서 보면 그야말로 사소한 변경에 불과하고 중심축을 넣고 빼는건 애초에 레벨이 다른 문제다. 사실 여기서 일본이 한국측의 노선변경요청을 들어준 것도 한국 황실이 엮여있으니 그런것이지 민간인 상대였으면 얄짤없었다.
  2. 1919년 조선중앙철도로 변경
  3. 구 연기군 남면 갈운리, 현재 도담동 북쪽지역.
  4. 광주-여수
  5. 임실군 오천면 선천리, 현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
  6. 충남선(현 장항선)을 건설, 운영한 사철업체.
  7. 참고로 대평리는 바로 지금 세종터미널이 있는 곳이다!
  8. 이러면 기존 경부선에 비해 선형이 상당히 돌아가게 되는데, 위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이설안은 부산항의 포화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여수항 활성화도 아울러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만약 이대로 됐으면 노은동에 유성역이 들어서서 호남선 분기역이 되고 한밭대로를 따라 경부선이 달리는 비범한 광경을 볼 수 있었을지도....
  9. 사실 장항선과의 합류지점이 명확하게 나온 것은 아니라서 위에서 제시된대로 판교 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사라진 계획이지만.
  10. 이 때 함께 예타를 받은 서해선 철도는 살아남았다. 지못미....
  11. 무슨 뜻인지는 기사에 나와았지만 보기 귀찮은 위키러를 위해 설명하자면 여건에 따라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뜻이다.
  12.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천안까지 국도로 이동 한 다음에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해야 됐다. 당연히 국도로 이동하는 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차령고개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야했다. 과거에는 고개를 넘다가 추락한 사고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2016년 현재는 차령고개 일대는 도로 선형이 아주 좋게(거의 고속화도로 수준) 개선되어서 도리어 과속카메라가 기본이다.
  13. 단 이 고속도로는 애매한 도로가 되어버렸다. 해당 문서 참고
  14. 예로, 부천(2010년 4월 21일), 인천국제공항(2013년 6월 20일), 경기광주/하남(2015년 2월 27일, 2015년 11월 1일 운행 중단(사실상 폐지)), 광주광역시/함평(2015년 6월 11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