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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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강(金剛 / Kang Kim)
생년월일1988년 10월 16일
출신지광주광역시
학력광주화정초-무등중-광주일고
포지션1루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7년 한화 이글스 2차 3라운드(전체 21순위) 지명
소속팀한화 이글스(2007 ~ 2011)
상무 피닉스(2012 ~ 2013) (군복무)
두산 베어스(2014 ~ 2016)
2010년 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홈런왕
오장훈(롯데 자이언츠 2군)김강(한화 이글스 2군)모상기(삼성 라이온즈 2군)
2008년 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타점왕
모상기(삼성 라이온즈 2군)김강(한화 이글스 2군)오장훈(롯데 자이언츠 2군)
2010년 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타점왕
오장훈(롯데 자이언츠 2군)김종호(삼성 라이온즈 2군)
김강(한화 이글스 2군)
모상기(삼성 라이온즈 2군)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2009)
김사연(2008)김강(2009)김회성(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2010~2011)
김태균(2003~2009)김강(2010~2011)김태균(2012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10번(2014)
최준석(2007~2013)김강(2014~2016)-

1 소개

대한민국야구 선수. 前 두산 베어스 소속 1루수.

참고로 2009년에 53번이었으나 2010년부터 52번을 달았다. 52번은 김태균이 쓰던 등번호였다. 한화가 김강에게 가졌던 기대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국 2011년 2차 드래프트에 올려 김강을 두산 베어스로 보내 버릴 수밖에 없었다.

2 아마추어 시절

중학교 시절부터 투타 양면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던 선수이며, 그때부터 연고 팀 KIA 타이거즈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KIA의 성골이라 할 수 있는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해 고교 생활을 하면서 중심 타선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2학년 당시 황금사자기에서 0.538의 맹타율을 보이며 팀 우승에 일조해 두각을 드러냈었으며,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할 당시에도 4번 타자 겸 팀의 주장으로서 활약했다.

광주제일고 2학년 당시만 해도 당연히 KIA에서 1차 지명을 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3학년 때 이렇다 할 좋은 성적을 보여 주지 못한 탓에 밀렸다. 일설에는 변화구 대처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오랜기간 그를 지켜본 KIA에서 그냥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고는 하나 김강의 고등학교 때 모습을 못 본 사람들이나 할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고교 시절의 김강은 박병호같은 스타일의 파워 히터가 아닌 김현수같은 스타일의 중장거리 히터에 가까웠다. 좋은 결의 스윙에 힘이 좋아 장타를 양산하는 스타일. 보다 정확한 이유를 들라면 자존심이 센 김강과 김강 아버지의 기질을 들 수 있다. 실제로 2차지명 1라운드 밑에서 지명되면 대학에 가거나 어떻게는 미국에 가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3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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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차 지명 2장에서도 밀려났고 2차 1지명에서도, 2차 2지명, 3지명에서도 고향팀인 기아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리고 고향 팀에게 지명받지 못했던 그를 한화 이글스가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순위로 지명하면서, 프로 생활이 시작된다.[1] 비록 지명 순위는 밀려났지만 워낙에 창창했던 유망주였기에 1군에서 곧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됐지만….

오직 검증된 선수만을 쓰는 김인식 감독의 특성상 신인이었던 김강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대표되는 한화 이글스에서 설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김인식 감독을 깔 수도 없는 것이, 당시 한화에서 김강의 포지션인 1루수에선 어느 별명많은 야구 선수가 미친듯이 별명 숫자를 늘려가는 중이었다. 태산이 버티고 있으니 유망주로서는 답답할 노릇.

거기다가 백업으로 김태완이라는 만만찮은 오른손 거포가 동일 포지션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김강은 그저 2군에서 묵묵히 인내의 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동기 중 인천 간 누구는 팀의 제1에이스로 우뚝 섰고, 광주 간 누구 역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으니 본인도 답답해 미칠 지경. 그냥 같은 우승 동기인 부산 간 누구처럼 일찌감치 군대라도 다녀 오지 소문에 의하면 본인이 자청해서 입대하려 했으나, 팀에서 군대에 가는 것을 뜯어말렸다고 한다. 역시 한화

3.1 2010 시즌

2009 시즌을 끝으로 마침내 김태균이범호라는 두 거포가 FA를 선언하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여 팀을 떠나게 되면서 김강에게도 기회가 오나 했으나…. 신임 한대화 감독은 김태완을 주전 1루수로 기용했다. 그래도 백업의 기회라도 있지 싶었는데 그 해 6월 8일 3:3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장성호가 1루수 포지션을 차지해 버렸다.

결국 김강은 2군에서 세월아 내월아 기다리며 묵묵히 기회만을 기다렸다. 안 그래도 2군에 관심 없는 한화 이글스에서 어느 세월에 빛을 보나 했지만 김강은 2군 남부리그 85경기에 출장해 312타수 86안타, 타율 0.276, 14홈런 61타점으로 남부리그 홈런 및 타점왕에 오르며 물먹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된 한화 이글스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결국 시즌 말 엔트리 확대 제도의 혜택을 받아 9월, 드디어 1군에 합류했다. 장성호의 부상과 김태완의 부진을 틈타 14경기에 출장해 24타수 10안타 타율 0.417의 경악할 타격을 보여주었다. 시즌 말이고, 14경기 한정이긴 하지만, 규정타석 채운 타자 중 3할 타자가 딱 1명인 2010시즌 한화 이글스로서는 진흙 속의 진주인 셈.

3.2 2011 시즌

결국 그대로 1군에 자리박는데 성공하여 2011 시즌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1군에서 시즌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장성호는 부상으로 복귀가 늦어지고 있고, 김태완은 2010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1루수 주전경쟁에서 무리 없이 이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감독이 신인 스위치 타자 김용호에게 김강보다 높은 평가를 주고 있어서 이번에도 밀릴 위험도(…). 시범경기에 별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해지고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낙점받아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게 된다.

이범호의 복귀에도 실패하고 최진행까지 허리부상을 당한 한화 이글스 2011 타선의 마지막 희망.그러나 김강도 군대 가야 한다는 거

그러나 개막전, 그것도 류현진 등판일에 만루상황에서 1루쪽 타구를 못 잡아내어 류현진 강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바람에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역적 수준으로 까이고 있다.[2]

그리고 충격과 공포의 응원가가 나왔다. 모두 함께 들어보자. 이것은 어느 축구선수의...! 강두리 그리고 이 응원가를 예견한 성지가 있다. 게다가 이 짤은 뉴스도 탔다! 역시 한화는 응원가밖에 없다! 참고로 간때문이야를 개사한 응원가는 넥센 히어로즈김민우 선수에게도 있다.

그렇게 신뢰를 받으며 밀어줬지만 1군 6경기에 나와서 17타수 2안타에 0.118리라는 처참한 타율에 삼진 6개를 기록했다. 전 경기 출전하면 140개의 삼진을 당할 기세. 경기 때마다 어떨땐 어설픈 트리플악셀 스윙으로 폭삼을 당하고 어떨 땐 그냥 데꿀멍상태로 삼진을 당해 버리니…. 물론 투수 유망주보다 야수 유망주 키우는 게 훨씬 힘들다는 걸 보여 준 반면교사이기도 하지만…. 특히 야구 인생 내내 1루수를 봤음에도 1루 수비가 지옥급이다.

결국 4월 11일자로 2군으로제자리를 찾았다 강등당했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1군으로 돌아와 그 날 SK전에서 1루수로 선발 출장했으나, 1회초 1아웃 상황에서 역시 1루쪽 타구를 못 잡아내어 김혁민이 적시타와 쓰리런 홈런을 맞는 빌미를 제공한다. 덕분에 김혁민4실점 무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안습. 그리하여 다음 날 5월 6일 다시 2군으로 강등당했다. 이후 정원석이 1루를 안정적으로 보고 있고, 장성호지명타자로 중압감을 더해 주면서 김강이 설 자리는 다시 사라졌다. 결국 그 날이 한화 이글스 1군에서의 마지막 출장이 되었다. 2011 시즌 종료 후 나이도 있기 때문에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4 두산 베어스 시절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 2라운드 13순위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이적하였다. 강때문이야 강때문이야 승리는 강때문이야 강때문이야 강때문이야 두산의 강때문이야 당시 2차 드래프트 때 한화 이글스에서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여 올린 선수들 중 유일하게 지명을 받아 팀을 옮겼다. 그만큼 한화 이글스의 열악한 2군 현실을 보여 준 셈이었다. 다만 일주일도 안 되어 김강 본인은 11월 28일에 발표된 상무의 최종 합격자에 포함되어 군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은 2014 시즌부터이다.

2013년 9월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으며, 9월 30일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렸던 두산 베어스 2군과 동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하여 백넘버가 없는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첫 선을 보였다. 어차피 시즌이 끝나갈 시점이고 11월 22일에 룰5 2차 드래프트가 있기 때문에 등록하지 않고 군보류로 묶어 놓은 듯하다. 그 연습경기에서 한때 상무에서 함께했던 투수 서진용을 상대로 홈런을 쳤다. 그리고 좌완투수 정대현 등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진이 기사에 실렸다.

2016년에는 2군에서 최영진과 함께 자주 나오고 있는데 심지어 어떤 분의 대타로도 나온다.

그러나 두산 소속으로는 단 한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하고 2016년 9월 구단 공홈의 선수단에서 사라졌다. 투명인간 그리고 10월 19일 조인식 기자의 트위터를 통해 오장훈, 김명성, 최영진과 함께 웨이버 공시 된것이 확인 되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7한화 이글스12.00000000000.000.000
20081군 기록 없음
200976.50030000000.500.500
20101424.417102004202.500.462
2011819.10521001004.158.261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12두산 베어스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무
2013
20141군 기록 없음
2015
2016
통산(8시즌)3051.294153005206.353.368
  1. 재미있게도 2년 뒤 마찬가지로 중학교 시절에 광주지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뒤 광주일고에 진학하나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않아 마찬가지로 연고 팀에게 지명받지 못한 투수가 한화에 지명된다. 이 선수는 한화의 노안 원투펀치의 일원인(…) 장민재다. 또 거기서 2년 뒤 그해 최대어인 같은 학교 후배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그해 드래프트 최대어가 되어 한화에 1차 지명을 받게된다. 현재 광주일고 3인방이 미래 한화의 중심 선수들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2. 사실 이건 수비코치 잘못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