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나이티드 No.77 | |
김재성 (金在成 / Kim Jae-Sung) | |
생년월일 | 1983년 10월 3일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능곡중 - 수원공고 - 아주대(중퇴) |
키 | 180cm |
소속팀 |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5~2007) 포항 스틸러스 (2008~2014) 상주 상무 (2012~2013/군복무) 서울 이랜드 FC (2015~2016 ) 제주 유나이티드(2016/임대)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윙어/수비형 미드필더/ |
종교 | 개신교 |
2015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 |||||||||||
FW 조나탄 | FW 주민규 | ||||||||||
MF 고경민 | MF 이승기 | MF 조원희 | MF 김재성 | ||||||||
DF 박진포 | DF 신형민 | DF 강민수 | DF 이용 | ||||||||
GK 조현우 |
2015년 K리그 챌린지 도움상 | |||||
최진호(강원 FC) | → | 김재성(서울 이랜드 FC) | → | 2016년 수상자 |
1 소개
화려한 공격포인트 보다는 중원에서 팀이 경기를 원활하게 풀어나가게 만드는 조율사 스타일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눈에 확 띄진 않지만 팀에 있어서는 필요한 살림꾼. 그런 이유로 2011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를 꼽으면 포항 팬들은 두 말 없이 김재성과 수비수 김형일을 꼽는다. 어쨌든 미들만 살아있으면 팀은 굴러간다.
2015년 서울 이랜드 FC 에서 주장이자 창단 첫골의 주인공.
2 선수 경력
제주 시절 구자철과 함께 연약한 제주 구단의 중원을 떠받들었던 선수로 활약이 많긴 했지만, 당시 팀이 워낙 약체였던지라 눈에 띄지 않다가 2008년에 포항으로 이적하면서 만개했다. 이때 당시 약체팀의 미드필더를 매의 눈으로 보고 낚아채온 감독이 바로 포항 스틸러스를 2007 K리그 우승, 2009 ACL 우승으로 이끈 세르지오 파리아스다. 그리고 그에 보답하듯이 김재성 역시 파리아스 축구의 핵심축으로 성장하여 우승에 일조한다.[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그리스전, 나이지리아전에는 교체로, 우루과이전에는 선발로 활약을 했다.
2010 시즌이 끝나면 FA로 풀리는 지라 포항팬들은 제발 김재성과 김형일만은 잡아달라며 아우성.
선수 본인은 먼저 군문제를 해결할 생각인지 현재 상무 서류 전형 통과상태다. 나이를 고려하면 병역을 더이상 미룰 이유도 없으니 내년 포항에선 못 볼...줄 알았는데 2차 전형에서 탈락했다. 읭?
2011시즌 명단에도 있는걸 봐서는 재계약을 한 모양. 실기 테스트에서 탈락한 것이 아니라 아예 테스트에 응하지 않았던 듯. 그리고 여전히 공격도 시원찮고, 수비는 눈물나는 상황에서 오로지 미드필더의 힘만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리그 2위로 이끌었다. 포항을 먹여살리는 미들 가장들의 대표
2011년 11월 28일 팀 동료 김형일과 함께 상주 상무의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012 시즌 포항의 전력누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리고 황 감독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서 2012 시즌 포항의 미드필더진은 말그대로 붕괴...되다가 이명주와 신진호가 가세함으로써 미드필더진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버렸다.(...) 그리고 U-19 아시안컵 우승의 주역 문창진과 이광훈이 이 자리의 뒤를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다.(...) 그러면 뭘 해 사장놈이 다 팔아버리는데
2013시즌 말 김재성이 복귀하면 포항의 즉시 전력감인 중앙 미드필더만 6명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다만 신형민은 이미 중동으로 이적했고 황진성 역시 2013 시즌 이후에는 입대 예정이라 자연스레 황진성과 자리를 바꾸는 전철을 밟게 될 듯. 하지만 수도권 팀들은 매의 눈으로 김재성을 노리고 있다는 게 문제 어찌됐든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2013년 11월 13일자로 팀에 복귀했다. 미들진에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은 포항 스틸러스였기에 처음에는 주전 자리가 의심되었지만...황진성의 시즌 아웃, 그리고 포항 미들진의 체력 저하 및 수비진의 줄부상 등의 악재가 겹치자 풀백과 미드필더를 가리지 않고 출전하여 포항의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3]. 신의 한수라든지 그런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포지션에 뛰어도 평균 이상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가 존재하면 팀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최고의 사례이다일단 더블이잖아.
2014 시즌에는 황진성이 장기 부상으로 팀에서 방출되면서 황진성의 자리를 그대로 다시 이어받아서 활약중. 그 외에도 뛸 수 있는 포지션이 워낙 넓기 때문에 중미, 라이트 윙 등 여러 위치에서 뛰고 있다. 다만 AFC 16강 전북과의 경기에서 어깨 부상을 당하는 동안, 중미에서는 김태수-손준호가 자리잡고, 기존의 황진성 자리에도 이명주가 거기서 또 포텐이 터지면서 오른쪽 윙에도 문창진이 주전이 되면서 로테로 떨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명주의 알 아인의 이적으로 인해 다시 자연스럽게 주전이 되었다.
2015 시즌 K리그 챌린지 신생구단인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였다. 주장을 맡으며 창단 첫골의 주인공이자 시즌 초반 팀을 먹여살리는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을 하며 수비에 안정을 더하는데에 집중, 공격포인트가 급격하게 늘고있진 않지만 10월 14일 현재 33경기 4골 10도움으로 도움 1위를 기록중이다. 이후 2016 시즌 전반기까지 서울에서 보내다가 후반기에 제주 유나이티드로 반 시즌 임대되었다.- ↑ 조광래호 시절에 강제로 오른쪽 풀백 알바를 했다. 김재성 본인 말로는 유소년 시절에 풀백으로 뛴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오래전 일이고 유소년팀과 성인팀의 격차를 생각하면 풀백에 대한 감각도 사실상 없는 상태였다. 결국 이 사건은 조광래의 윙백 페티쉬와 함께 국대 운영의 막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어쨌든 이 경험 때문에 이후에도 가끔씩 땜빵으로 좌우 풀백 알바를 뛰기도 한다. 조광래의 유일한 유산.
- ↑ 원래는 파리아스가 주도한 영입이 아니라 파리아스도 데려오고 한동안 잊어버렸는데(…) 김재성이 면담을 요청해서 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제서야 파리아스도 영입했던게 생각났는지(…) 그 면담 이후로 김재성을 중용했고 결국 2008년 대한축구협회 FA컵,2009년 ACL 우승 주전 멤버가 됐다.
- ↑ 포항 스틸러스의 2013시즌 마지막 경기인 울산 현대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김대호의 결장으로 인해 왼쪽 풀백으로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