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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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연대 홈페이지

1 개요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극좌 트로츠키주의 운동단체. 반전, 반자본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있다. 트로츠키주의 국제조직인 국제사회주의자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 IST)의 한국 지부이다. 국내 극좌 조직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높다고 해봤자 IS 자체가 마이너한 운동권 내부에서도 특히나 마이너하다. IS와는 다르다.

기관지로 격주간지 '노동자 연대'계간지 '마르크스 21'[1]을 발간하고 있고, 2001년부터 매년 여름 국내 최대의 진보포럼 '맑시즘'을 개최해오고 있다. [2]

2 역사

최일붕이 1990년 만든 트로츠키주의 학습모임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90년대 초반 소련이 쇠퇴하며 PD계열 운동이 퇴조에 접어들었을 때 국제사회주의자들(International Socialist,IS)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에 느슨한 연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는 큰 영향력이 없는 이념적 엘리트 운동권들로 대학가나 집회현장에서 팸플릿을 만들어 파는 정도의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2년과 1994년 두차례 안기부에 의해 조직원 수십여명이 체포돼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적이 있다. 이후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1990년대 후반 비공개, 비합법 노선을 청산하고 공개적인 대중노선으로 전환하였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한동안[3] "민주노동당 학생그룹"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공식적으로는 당 학생위원회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대학생이 아닌 활동가들까지 학생그룹이란 간판을 달고 활동하였다.[4] 학생그룹 시절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잡지 <다함께>를 대학가나 시위현장에서 판매하다가, 이것이 유명해지자 2000년 초반부터 '다함께'로 조직 이름을 변경하였다.2003년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조직의 세를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국제주의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민족주의가 노동자계급혁명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현실 정치에선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NL 그룹과 함께해왔다. 특히 민주노동당에서 NL, PD등과 모두 함께 활동하던 시절, 당직자가 당원 300명의 신상정보를 북한에 넘긴 일심회 사건[5]으로 민주노동당이 종북세력의 이미지를 덮어쓰고, 종북주의 청산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을때도 다함께는 일관되게 NL을 지지하였다. 당시 다함께는 '종북'을 이유로 진보진영을 탄압하려는 정권과 우파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NL의 종북노선을 비판하던 좌파들은 경기동부연합에 빗대서 '런던연합'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결국 종북주의 청산을 담은 당혁신안이 당대회에서 부결되자, 노회찬, 심상정을 위시한 좌파들이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하는데, 다함께는 이들은 배신자들이라면서 격렬하게 비난하고 자신들은 NL이 장악한 민주노동당에 잔류하였다. 이후 통합진보당까지 함께 따라갔으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이석기, 김재연 제명이 무산되자 2012년 7월 29일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집단탈당하면서 드디어 NL세력과 손을 끊었다.

2012년부터는 '노동자 연대 다함께'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3년 노동자중심 진보정당 건설을 내세운 노동정치연대참여했으나, 이후 다시 빠지면서 정의당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2014년 3월 조직 이름을 노동자 연대로 바꾸면서 기관지 이름 역시 '레프트 21'에서 '노동자 연대'로 바뀌었다. [6]

2.1 PD계열과의 차이

국내 운동권에서 IS계열도 노동자계급을 중시 하는 것이 PD랑 비슷해 보이니깐 PD로 함께 분류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발생학적으로 전혀 다른 정파이다.

PD계열은 구 소련 시절에 공식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사실상 스탈린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어, 90년대초까지는 소련의 노선을 따랐다. [7]

IS계열은 소련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다 추방된 트로츠키의 사상을 따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탈린을 대차게 깠다. 트로츠키주의에도 계파가 여럿이 있는데, 그중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8]에서 출발한 국제사회주의자경향에서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다. 지금도 노동자연대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이론과 노선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주장을 수용해서 구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9]

IST 계열의 단체들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미국, 타이, 터키, 이집트, 한국 등 30여개 나라에 존재한다. 그중에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가장 규모가 크며, 이론적으로 IST계열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한국의 노동자 연대는 IST계열의 단체들 중에서는 작지 않은 단체이다.

3 현황

대학에서 매우 활발하게 리젠되며, 조직망은 적지 않은 대학으로 걸쳐 있다. 대학에서는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활성화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소수 정파인것에는 변함없다. 적지 않은 대학에 분포돼 있다지만 실제로 제대로 운영되는 대학은 몇 안 된다. 비 NL 학생운동 단체중에 어디가 안 그렇겠냐만은. 덕분에 학내 정치적 파워는 NL에게 많이 밀린다. 근데 요새는 NL 애들도 상태가 말이 아니다

고려대학교 본관 교수 감금 사건과 출교 사건의 주축이 된 집단이기도 하다. [10] 고려대에서 신나게 욕먹는데다 고대 내에서의 기존 운동권과도 심하게 대립하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출교 사건의 원인이 된 본관 교수 감금 사건 때에는 NL, PD(전국학생행진) 계열의 학생들이 일찍 발을 뺐고, 끝까지 남아서 교수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집단이 다함께였기 때문. 그래서 다함께는 다른 정파들에게 배신자라고 까고, 다른 정파들은 다함께에게 과격 집단이라고 깠다(...). [11]

근성스러운 집회 참여력이 눈에 띈다. [12] 한남동 대사관 앞의 2011 이집트 혁명 지지 시위나 2011 홍익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농성에는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다.

2011년 11월 25일 기준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 FTA 집회에서도 2008년 촛불집회 당시와 같은 선동(+순수한 참여자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까지)을 한다는 제보가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해당 단체가 나눠준 유인물에서 다함께 마크를 찢어내고 쓰는 사람들도 눈에 띄는 듯.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있어왔던 마스코트로 시위가 끝날 때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확성기녀가 있다 카더라. [13]

2014년 회원 일부가 지도부의 비민주적 운영 등을 지적하며 탈퇴하여 '변혁재장전'이라는 그룹을 형성한다. [14]

4 사건사고

4.1 2002년 민주노동당 강남지구당 사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다함께 회원들이 2002년 봄 일순간에 서울 강남구로 대규모 위장전입하여 순식간에 강남 지구당을 장악하고 기존 지역간부들과 기간당원들을 내쫗은 사건이다.

원래 서울 강남/서초 지역에는 민주노동당 창당때부터 이선근[15]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을 중심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고학력자 전문직과 자영업자 위주의 당원들이 뭉쳐서 활동해왔다.

그런데 동네에 살지도 않고, 지역활동에 전혀 참여도 안 하던 다함께 회원들이 갑자기 주민등록을 옮긴 다음에 우르르 몰려와서는 머리숫자로 밀어붙여서 강남갑지구당 위원장 이하 모든 간부 자리를 싹쓸이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지역활동에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기존 지역 당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한 다음에 강남갑지구당 깃발들고 다함께 활동만 열심히 하였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지시도 무시하고 오로지 다함께의 투쟁지침만 따라다녔다. 즉 간판은 민주노동당 서울 강남갑지구당인데 실상은 다함께 서울본부인것이다.

생각해보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백명 단위로 갑자기 주민등록만 옮겨놓고 자기도 강남갑 지구당 소속이라면서 나타나서 기존 사람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자기들 멋대로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기존 당원들은 이런 사태에 격분해서 중앙당에 거칠게 항의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비판도 했지만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시 다함께의 한 간부는 반발하는 강남갑 일반 당원에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 쪽수가 민주주의 인데, 왜 당신들은 우리를 반대하는가?. 답이 없다 운동권 내부 상황을 잘 모르는 몇몇 신입당원들은 강남갑지구당 깃발을 따라다니다가, 이게 민주노동당 활동이 아니고 자신들이 다함께의 세 과시에만 활용되고 있다는걸 꺠닫고 나가버렸다.

이들은 다음해인 2003년에는 서초갑 지구당도 똑같은 방식으로 장악하였으며, 나중에는 종로지구당도 접수하였다. 특히 종로지구당은 민주노동당이 해산하는 순간까지 온갖 다함께 행사에 이름만 걸어두는 조직이었다.[16]

아시다시피 서울 강남지역은 진보정당이 국회의원은 커녕 구의원조차 당선자를 낼 가능성이 전혀~~~~어 없는 지역이며, 또한 용산미군기지나 청와대처럼 투쟁의 목표물이 될만한 것도 없다. 따라서 여타 운동정파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지역 특성상 기존 당원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따라서 자기들 회원 정도면 충분히 머리숫자로 밀어 붙일 수 있고, 당지도부나 다른 정파들도 별 신경안쓰리라 계산한 것이다.

진보정당을 자신들의 투쟁도구로만 활용하는 이런 다함께의 종파주의, 분파주의 행태는 여타 운동정파와 일반당원들의 많은 반발을 사게 된다. 그나마 NL은 워낙에 머리숫자가 많고[17], 소위 운동판에서 주류니까 뭉게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함께는 고작 몇백명 데리고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 반감만 잔뜩 쌓이게 된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당 대표는 물론 국회의원 후보, 지역구 지구당 위원장과 부위원장까지 모두 당원 직접선거로 선출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특정 세력이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해서 특정 지구당을 장악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빈발했다. 다함께가 일으킨 2002년 강남지구당 사태와 인천연합이 일으킨 2001년 용산지구당 사태 그리고 창당이전에 경기동부가 일으킨 성남지역 창당준비위원회 사태[18]가 대표적이다. 비슷한 사건이 수십군데 지구에서 벌어졌고, 결국 위장전입과 유령당원을 동원해서 지역조직을 장악한 NL주사파들이 2004년 전당대회에서 중앙당 지도부까지 장악하였다.[19]

4.2 2008년 촛불집회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집회와 시위가 일어나자,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사분란한 지도가 필수적이라는 자신들의 트로츠키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자기들 멋대로 시위대를 끌고 다니는 행태를 보였다. 당시 멋대로 메가폰 들고서 시위 군중 선두에 서서 이리 갑시다 저리 갑시다 소리지르는 터에 시위 참여 경험이 없는 순진한 시민이 많이 뒤따라갔다가 경찰에게 다수 연행되는 사태가 있었다. 게다가 다함께가 사람들을 이끌고 경찰이 기다리는 쪽으로 몰고가서는 자기들은 도망가 버리는 듯한 모습이 상당히 많이 포착되면서, 온갖 억측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집회초기 거리행진이 끝나고 동대문 두타에 사람들이 모이자 다함께 회원 한명이 거기에 남은 사람들에게 연행을 당하자는 식으로 선동을 하다가 촛불예비군 초창기 인원들에게 제지당한 사례도 있으며, 촛불예비군으로 참여했던 인원들 수십명을 진압경찰들이 모여있는곳으로 이끌고 가서 경찰에 연행당할 뻔한 경우도 있다. 이때문에 인터넷과 집회 현장에서는 좌파운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들이 경찰과 결탁했다는 유언비어부터, 폭력투쟁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 일부러 경찰과의 충돌을 유발한다는 일부 운동권 출신들의 추측까지. 즉 경찰이 시민들을 대규모로 두들겨 패서 유혈이 낭자한 모습을 연출할려고 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소위 개혁진보매체에서도 심도있는 취재 대신에 수박겉핱기식의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더더욱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였다. [20]

일반시민들은 이해하기 힘든 다함께의 이러한 행태가 경찰의 과잉진압과 더불어 촛불예비군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는 원인이라고 많은 이들은 분석하고 있다.

기존에는 좌파진영내에서만 유명했지만, 이 촛불집회를 통해서 다함께는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안좋은 쪽으로.

참고로 촛불집회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뒤 다함께는 촛불집회가 집회로만 끝난건 "지도부"가 없어서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위에 언급된 데로 사회변혁은 각성한 전위 혁명가 조직의 일사분란한 지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자신들의 사상에 따라서 분석했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몇몇 사람들은 촛불집회 때 깃발을 들고 나와서 그랬다고 했지만, 촛불집회 극초반을 제외하면 깃발은 항상 있었다. 다함께가 집회때 시민들 이끌고 다니다가 연행시켜서 싸잡아 까이다 보니 깃발까지 욕먹었을뿐. 수만명이 모이는 집회에서, 그것도 언제 경찰이 치고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깃발 자체를 금지하면 그야말로 카오스다. [21]

그런데 일부는 이를 두고서 운동권 그룹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집중 공격 대상이 되었던 결과로 분석하기도 한다.(집회 초창기 끈질기게 사람들을 경찰들한테 먹이주듯이 던져주고 자기들은 빠져나오는 듯한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서 수시로 생중계됐는데 좋은 모습으로 보여질리가 있나?)

4.3 2011년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자세한 내용은 다함께 대학문화 성폭력 사건 문서 참조

2011년 서울시립대 교지편집위원회 '대학문화' MT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다함께가 연루되어 운동권, 페미니즘 진영 쪽에서 한동안 또 시끄러웠다. 서울대 담배녀 사건처럼 어이없어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대학문화 편집장(다함께 회원 아님)이 다른 편집위원(다함께 회원)의 방조 하에 여성 편집위원에게 야동(..)을 틀어주며 보게하였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주 가해자인 편집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함께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가해를 벌이면서 사건이 커지게 된다.

4.4 기승전반미, 계급환원론적 논평

2016년 들어 각종 국내외적 사건들에 대한 평가가 오로지 기승전반미, 계급환원론적 논평으로 일관하는 것이 알려져 일부 비판을 받고 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었던 여성혐오 살인여부에 대해서 "정신질환이 원인이므로 여혐살인이 아니며, 여성이 여성이라서 살해당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남성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성별분리주의"라면서 사건의 여성혐오성을 부정하고 뜬금없게도 자본주의 체제를 원인으로 지목해야 한다는 동시에 원인을 성별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화장실에 돌리는 성명을 냈다.(홈페이지 원문).[22] 이러한 견해는 여러가지 비판을 받았고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서는 "노동자 연대의 입장이 여성,장애인에 대한 낮은 인권감수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노동자 연대용 부스를 배정하지 않는 조치를 하였다. 그리고 노동자 연대는 역시나 이 조치에 대해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노동자연대처럼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일부인 마르크스주의 단체는 배제하면서,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은 선정하는 이중잣대..." 라고 비판했다.[23] [24]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한 논평에서는 성소수자 혐오,미국의 총기문화,이슬람 극단주의 여부등이 주요 관점이었음에도 역시나 반미/반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일관하여 미국을 비난하고 사건 발생의 원인에서 노골적으로 성소수자 혐오를 지우는 동시에 이슬람을 반미적 시각에서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옹호하는 견해를 보인다. 물론 미국이 일으킨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할 수 있지만 ,사건의 맥락을 보았을때 성소수자혐오에 기반해 발생한 혐오범죄의 원인이 기승전 미제국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영국노동계급의 일보 전진이라며 환영하는 성명을 냈으며, 유럽연합을 유럽의 서민,노동자 및 난민을 탄압하는 악의 단체 비슷하게 보고 있다. 뭐라고요? 이는 노동자연대의 영국 본사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국대사 마크 리퍼트가 습격당한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대해서 "미국의 호전적인 군사훈련과 한일관계사 왜곡 비호가 낳은 사건"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미국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김기종에 대한 비판도 짤막하게 있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인한 비판이 아니라 단지 김기종의 행동이 방법론적으로 비효율적이기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라서 더더욱 문제가 있는 성명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한겨레 등 진보언론이나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도 김기종의 범죄행위를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사적폭력은 용인할 수 없다는 태도를 확고히 했고, 심지어 민중의 소리 등에서도 이례적으로 테러라는 표현을 쓰면서 정치극단주의적 행태에 대해 우려했음에도, 오히려 이런 진보진영의 태도를 비난하면서 김기종의 행동이 미국인의 망언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식으로 두둔하고, 사실상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미국만으로 돌리는 성명을 발표해 진보진영에서도 빈축을 샀다.

5 관련인물

  • 허재현 한겨레신문 기자 - 다함께 중앙대 모임 출신. 직접 발로 뛰는 기사[25]로 호평을 듣기도 하지만, NL의 종북/패권주의 논란에 대해선 계속 물타기성 기사를 내놓아서 빈축을 사곤 했다. 공교롭게도 다함께가 경기동부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통진당을 탈당한 이후에는 그런 기사가 일체 없다.
  1. 2012년 봄 13호를 낸 이후 휴간에 들어간 상태다가... 2014년 여름에 14호가 나왔다! 최근에 15호가 또 나왔다.
  2.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당수를 초빙해 토론회를 열기도 하고, 각계의 노동운동 인사나 저명한 운동권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연다. 참조.
  3. 당지도부의 승인도 없이 자기들 맘대로
  4. 진보정당을 자신들의 투쟁도구로만 보는 태도는 이때부터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5. 일심회 사건에 관한 정보는 다음 기사 참조.뷰스앤뉴스, 민중의소리 단 민중의소리는 경기동부연합의 기관지 격이므로 참고.
  6. 정부와 사용자들은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도 소생하고 있다면서, 이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기관지 역시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심층적으로 다루는데 할애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제호까지 '노동자 연대'로 바꿨다고 주장한다.
  7. 소련의 붕괴 이후엔 다양하게 분화되어 왔기 때문에 신좌파 세력과 그 궤를 비슷하게 가져가는 측면이 있다.
  8. Socialist Workers' Party(SWP). 국회의원이 한명도 없는 원외 정당으로 영국의 제1야당인 중도좌파 영국 노동당(Labour Party)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9. 반면에 트로츠키주의의 주류 그룹인 제4인터내셔널은 구소련을 타락한 노동자계급 국가로 평가한다.
  10. 참고로 촛불집회 당시 고대녀로 세간의 화제를 이끌었던 김지윤씨가 이 단체 소속이다.
  11. 사실 이 사건 자체가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건인 것은 사실이다. 이 당시 본관 점거를 주도한 것은 당시 보건대 학생들이었고 다함께는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사실. 그런데 학교는 당시 본관에 없었던 사람들도 출교시켰고, 이는 이건희 철학박사 수여식 때 학생들의 반발이 일어났을 때 그 주동자들을 타겟으로 삼아 출교시킨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었다.
  12. 현장활동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13. 근데 확성기는 시위에 필수요소(...)인지라, 어느 정파에나 확성기맨들이 존재한다...
  14. 2013년 노동자 연대의 모당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도 성폭력 추문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로 분파가 일어나는데, 지부도 그대로 따라가는듯..
  15.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임대아파트 입주자 보호를 위한 표준약관 개정, 부동산 불로소득 방지를 위한 임대사업자 소득세 신설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한 인물이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진짜 민생경제 전문가라고 평가받았지만, NL주사파들이 당을 장악한 이후에는 겉돌다가 결국 탈당하였다.
  16. 민주노동당 종로지구당 위원장이었던 김인식이 다함께의 리더라는 썰이 있다. 다함께는 NL주사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조직체계를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으니 알 길은 없지만, 2008년 촛불집회라던가 각종 시위현장에서 보면 김인식이 다함께 대열을 지도하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었다.
  17. PD계이었던 이재영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은 NL 계열이 당내 경선에서 동원가능한 숫자를 최대 35000정도로 추산했다.
  18. 경기동부와 범좌파 그룹이 따로 지구당 창준위를 만들자, 중앙당이 승인을 보류하고 통합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경기동부 조직원이 당대표 직인을 훔쳐서 멋대로 도장을 찍은 다음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 버렸다.
  19. 사실 1999년 정도부터 NL그룹들이 몇몇 지역에서 이런 사고를 치고 있었고, 2001년 소위 9월 테제로 NL들이 집단입당하면서 부터는 전국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노회찬, 심상정, 권영길 등 당시 당주류 그룹들이 NL의 대중조직력을 총선과 당내경선에서 써먹을 생각만 하면서 이들을 전혀 제어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행패에 반발하는 일반당원들의 항의와 호소가 빗발쳤지만, 권/노/심 세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자기들이 역관광 당하지... 진중권은 이런 당지도부의 행태에 반발하면서 '이러면 결국은 주사파에 먹힌다'면서 일갈하고서는 탈당했다.
  20. 80~90년대에 IS계열은 극소수파 였기 때문에, 학생운동/노동운동 출신이라도 IS그룹은 잘 모른다. 워낙에 사람이 없어서 실제로 이들을 만나보거나 함께 투쟁해본 사람이 찾기 힘들다.
  21.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깃발들이 주도하는걸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08년에 일반인들의 참여가 엄청났던 이유는 깃발들이 등장하더라도 아웃사이드위주였으나 점점 후반기가 되어갈수록 깃발들이 인사이드로 들어오는 것에 반비례해 일반인들의 참여는 점점 줄어들어갔다. 하지만 시위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외에도 조직적 참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조직들을 상징하는 깃발은 항상 계륵과 같은 존재라는 점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22. 자본주의가 범죄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뜬금 없는 게 맞으나 강남역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범죄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23. 다만 이 소동을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쫓겨났다는 시선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노동자 연대가 제창한 '화장실이 성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하자. 이건 공공 장소에서 화장실 이용 문제로 고통받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빅엿을 먹이는 망언이다. 여성혐오 살인이 아니라는 주장이야 일리있다고 수긍하더라도 당장 퀴어축제에서 일부러 신경써서 성 중립 간이 화장실을 설치할 정도로 트랜스젠더들에게 민감한 문제인 성별 구분 화장실을 살인 사건의 원인이자 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 들먹였다면 솔직히 쫓겨나도 할 말 없다.
  24. 다만 앞의 각주에 대해서도 반론은 가능한데, 기사 원문을 보면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의 편의가 아닌 건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을 도입했지만 범죄 예방 대책은 전무했고, 여성 전용 화장실이 이용하기 편한 여성들도 선택권 없이 남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소수자의 편의를 위해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본진인 영국 SWP나 노동자연대 활동가들도 지지한다. 다만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는 그 화장실의 존재 목적 자체가 건물주들의 비용 절감에 있었고 따라서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에서 우려되는 사항인 범죄 예방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진짜로 성소수자를 위해 화장실을 만들었다면 거기에 대한 대책도 마련을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선택권 못지않게 시스 여성이 마음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건물주들의 비용 절감을 위해 침해되었다는 것이 요지다.
  25. 일례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때 직접 중국까지 가서 국정원이 제시한 각종 문건을 검증하고, 관련 인물을 인터뷰한 것은 대한민국 언론에서 허재현 딱 한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