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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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심상정 (沈相奵)
출생일1959년 2월 20일
출생지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최종 학력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 학사
배우자이승배
자녀1남
소속 정당정의당
지역구경기 고양시 갑
의원 선수3
의원 대수17, 19, 20
소속 위원회정무위원회
현직정의당 상임대표
제20대 국회의원
약력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장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민주노동당 비대위 대표
진보신당 공동대표
정의당 원내대표
외부 링크공식 사이트

1 개요

진보정당 최초이자 단 둘뿐인 3선의원[1]

한국정치인. 2016년 현재 정의당의 당대표이자 고양시 갑(구 덕양구 갑) 선거구를 지역구로 하는 원더우먼국회의원이다. 의 심.

2 생애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출생해, 대조초등학교, 충암여자중학교, 명지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1 노동운동가 시절

정계에 입문한 것은 2004년, 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민주노동당의 의원이 되면서라고 알려져있으나,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연대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이 정치적인 이유로 발생한 연대 파업이라 공개수배범이 된 이때를 정계 입문시기로 보기도 한다. 애초에 노조 활동을 비롯한 노동 운동이 다른 운동들보다 정치 활동과 연관되는 점이 많긴 하다. 특히 좌파쪽 인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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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시절의 심상정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며 노동운동계의 스타가 된 후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창립에 참가하였으며 1986년 인천 5.3 운동으로 김문수가 체포되자 그 뒤를 이어 서노련 지도위원이 되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의 해산 후 수배생활을 해오다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 결성에 조력했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자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하며 노동운동가로서 입지와 기반을 확고히 했다.

1993년, 법정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거 받았고 집행유예가 종료된 1995년부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의 사무차장을 역임하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반을 닦았다. 2001년, 구로동맹파업이 민주화 운동으로 분류되어, 수배경력이 말소되었고 금속노조가 정식으로 설립되자 다시금 사무처장을 역임, 노동운동을 계속했으며 2003년 금속노조에서 물러나 [2] 2004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의 자리에 오른다.

2.2 정계 입문

17대 국회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여러 활약이 있었으나 특히 노무현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 반대에 적극 나서면서 벌인 논쟁들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3]에서 권영길, 노회찬과 경쟁하여 권영길에 이어 2위[4]로 결선투표에 진출하여 2%차이로 석패. 이후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격랑에 휩싸이면서,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된다.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출당 등을 건 혁신안이 결국 당내 NL계의 반발로 부결되자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노회찬, 조승수 등과 진보신당을 창당하여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 재선에 실패했다.

국회의원 낙선 후 다시 노동운동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운동을 벌였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경기도 지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국민참여당후보로 출마한 유시민[5] 지지를 선언하고 마지막에 사퇴한다. 이를 계기로 진보신당 내부는 격론이 벌어진다. 이후 진보대통합 과정을 거쳐 2012년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고양시 덕양구 갑 국회의원에 매우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어 4년만에 국회에 재입성하였다.[6]

2.3 정의당(舊 진보정의당) 창당

2012년, 5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통합진보당이 내외적인 갈등과 부정경선 사태로 탈당, 진보정의당을 창당, 이후 10월 14일, 대선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야권단일화를 위해 당시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은 민주통합당 문재인후보를 지지하고 후보등록을 포기한다.

이후 정의당의 원내대표로서 활동하다가, 2015년 6월 8일자로서 원내대표의 임기를 마치고 당대표 선거에 참여, 1차 선거 때는 노회찬 후보와 큰 차이로 2등을 득표했지만, 결선에서는 노회찬 후보를 앞서서 당선하여 당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2년 임기의 정의당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일방적인 노동개혁 강행을 골자로 한 기자회견을 하고 온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2015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이 폭풍 사자후를 토해내어 화제가 되었다. 이 영상을 토대로 만든 loose your 임금피크제란 영상도 나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요한 건 대선에 앞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 살아남는다면 진보정당 최초 3선 의원이 되지만,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2월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8% 정도 앞서고 있다. 만약 야권 연대가 무산되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후보들과도 대결해야 되므로 더욱 힘든 싸움이 예상된다.

2016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국면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당연하고 마땅한 결정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의 상임대표직을 맡고 있어 필리버스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을 격려하거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방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필리버스터 마지막 날인 3월 2일 정의당 마지막 주자로서 필리버스터 연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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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의원 발언을 방해하는 조원진 의원에 맞서는 심상정 의원

필리버스터를 포함한 관련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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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계십니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준 후보와 단일화가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이상을 득표하는 기염을 토하며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를 16%p 이상 따돌리고 압승을 거두며, 이날 승리한 같은 당의 노회찬 의원과 함께 한국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중진 의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심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심상정에게 거의 몰표가 쏟아진 수준이었고, 기존 19대 총선에서 손범규 후보가 우세했던 농촌 지역들 중에서조차 단 한군데를 제외하고는 신승하긴 하지만 모두 이겼다. 그 기반에는 꾸준한 지역 의정활동과 농촌 지역 개발이 주요 요인으로 뽑힌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보여줌으로써 의정활동에서 큰 흠이 없는 한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진보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던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인사였으나 주요 여러 사건들[7]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정치권에서 은퇴하거나 물러난 사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만한 여러가지 활동을 한 결과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선 노회찬과 함께 진보정당의 독보적인 중량급 인사로 성장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만 당대표로서 정의당의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견인했어야 하는데, 단 6석만을 획득하는데 그치며 전체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게 한계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20대 총선이 지난 19대 총선과는 달리 비례대표가 7석 축소된데다,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는 물론 더민주와의 단일화마저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의당 자체의 지지기반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2.4 20대 국회 활동

정무위원회에 배정되었다.

2.5 팬클럽

2016년에 만들어졌다. 추가바람.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1번)
민주노동당2,774,061(13.3%)당선 (1위)2008.2.11 의원직 상실
(민주노동당 탈당에 따른 자동상실)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
진보신당25,049 (37.7%)낙선 (2위)
2010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진보신당-5.30 후보사퇴야권단일후보 유시민 지지[8]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
통합진보당43,928 (49.4%)당선 (1위)2012년 정의당으로 당적변경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갑)
정의당71,043 (53.0%)당선 (1위)

4 정계 평가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으로서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열심히 싸워왔지만, 소통은 미흡하다는 게 중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을 제대로 자극했던, '야당에는 친노 vs 비노가 싸우지만 정의당엔 친국민 뿐이다!'라며 전형적인 양비론 문구를 써붙였던 현수막 건이나 당원게시판 무더기 징계 건에서 대처도 매우 늦었고 특히 무더기 징계 건에서 면담요청에 응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전임자였던 천호선 대표 시절에는 당직자를 공채로 뽑았지만 심상정 대표 체제에 들어와서는 그런 거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개선 노력은 안드로메다로.. 결국 당직자의 자질 논란이 불거졌고, 그로 인해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건에서 초동 진화를 전혀 못하는 추태를 보였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호통 사건이나, 살찐고양이법 발의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유도하는 스타성은 준수하다는 평가이고, 지역활동에도 성실히 참여해 진보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지지기반을 안정화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다.

16년 8월 16일,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있는 한미연합 훈련을 비난하는 성명에 서명하여 논란이 되었다. 내부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고 변명하였지만, 내부 내용을 모르고 국회의원 서명을 해준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건때도 문예위의 월권행위[9]에 대해 당대표로서 신속히 조치를 해야 됨에도 못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개인 팬클럽 창단식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의식했는지 현장 질문을 받지 않고 사전선정된 질문만 받으면서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게다가 생각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갈릴 수 있는 개고기 식용 문제에 대해 당대표 직함으로 반대 집회에 참석했으면서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통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

사건발생 9일만에 당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만연체로 길게 늘여쓰기만 하고 별 핵심은 없는 내용을 쓴 데다가, 사건의 핵심논점이라고 볼 수 있는 메갈리아에 대한 입장 및 문예위 간부들 처우 문제에 대해선 대단히 애매모호한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서 심상정 대표의 결단을 원했던 일부 지지자 및 당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5 여담

  • 학창 시절 자기가 수애 뺨치는 미모를 지녔다고 자랑했다.

수애(?) 시절의 심상정 의원 (...)
  • SNS에 심블리를 밀고 있는 것 같다. 노회찬 의원과는 다르게 유머 감각이 좀 떨어지다보니, 보좌진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 페이스북에 아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아들이 훈남이라 뭇 누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 PD 계열의 대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지역구의 기초의원들은 모두 정의당에서 석권하고 있고[10][11] 이들은 당 내외에서 심상정의 행보를 지원하고 있다. 다른 지역구에서는 국회의원은 커녕, 기초의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정의당의 안습한 현실에 비하면 이례적인 모습.[12]
  •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무조건 대화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져가는 바람에 '8대2'(...)라는 별명이 있다고 전해진다. 본인도 알지만 잘 안 고쳐진다고.
  1. 또다른 의원은 같은 당이기도 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다만 노회찬 의원이 19대 도중 삼성X파일 폭로 관련해서 억울한 면이 있지만 의원직이 박탈된 것을 감안하면 깔끔한 3선은 심상정 의원이 유일하다. 아울러 여성 3선의원은 국회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
  2. 그래도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는 하며, 사석에서도 평생 그 자격은 유지할 것이라고하였다.
  3.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인 진보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었다. 말그대로 한국 진보정당 (현재로선) 최후의 리즈시절
  4. 권영길 후보가 과반에 0.6% 미달하여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5. 당시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여론조사 경선으로 단일화한 상태였다.
  6. 당시 마지막 투표함인 재외국민 투표함에서 역전하여 당선되었다고 한다.
  7. 전부 통합진보당에 관련되어 있는데 그만큼 통진당에 관련된 사건들이 진보 정치에 입힌 내상이 컸다.
  8. 하지만 유시민도 졌다.(...)
  9. 해당 성우에 대한 옹호가 당 입장처럼 비추어져 당내외에 혼란을 초래한 점.
  10. 고양갑(국회의원) 선거구에는 경기도 고양시 가,나 선거구(기초의원)와 게리멘더링으로 20대 선거에 편입한 식사동이 있는데 가,나 선거구의 기초의원 모두 정의당 소속이다. 물론 고양갑을 벗어나면 정의당 의원이 없다.(...) 참고로 고양시 기초의원은 31명.
  11. 한 기초자치단체에서 정의당 기초의원이 2명 있는 곳은 익산, 목포, 고양으로 3곳밖에 없다.
  12. 반대로 노회찬조승수는 조직과는 담을 쌓고 개인기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PD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사람 안 키우는 행보가 두 정치인, 특히 NL과 척을 진 조승수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