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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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와의 크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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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LD 애니메이션 타이틀 표지들.위 사진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세일러 스타즈이다.

레이저디스크(LaserDisc). 약칭으로 LD라고도 한다.
혹은 라지 디스크(Large Disc) 라고도 부른다[1]

1978년 12월 15일에 상용화한 최초의 광학식 영상 미디어. CD보다도 4년 일찍 나왔다.

외형은 지름 30cm(12인치)에 두께 1.8mm이며, 재질은 PVC에 내부에 반사층이 있다. LP와 크기가 같아 정말로 크기가 크고 아름답다. 더불어 은근히 무겁다. 크고 무겁기 때문에 보관에도 주의가 요구되었는데, 오랫동안 가로로 놓아두면 자칫 휘어버리는 일이 있어 세로로 보관해야 했다.

양면 기록이 가능하며, 등각속도(CAV)와 등선속도(CLV) 기록으로 면당 30분 또는 60분 기록이 가능하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큰 사진 및 일러스트를 수록할 수 있지만, 대신 무겁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단점이 있다. 녹화가 가능한 규격도 있지만 비싼 가격으로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신호를 읽는데는 적외선 레이저를 이용하며, 기록 방식은 아날로그이다.(주파수 변조 방식을 이용) 이후 음성은 디지털 신호를 기록할 수 있게 되어, 리니어 PCM 및 AC-3을 적용한 타이틀이 출시되었다.

(러시의 노래 Lock And Key의 1988년(!) 라이브 공연 영상. 해당 영상은 레이저디스크로만 존재한다.)

최대 수평해상도 420선 정도의 화질을 표현할 수 있어서, 당시 많이 이용되던 VHS(약 240선)는 물론 공중파 방송(약 320선)에 비해서도 좋은 영상을 제공하였다. 영상 압축을 이용하지 않지만, 영상을 저장할 때 아날로그로 컴포지트 신호(휘도와 색차 신호를 혼합)를 저장하기 때문에 고급 기종과 저급 기종의 성능에 차이가 크다. 잘 만든 타이틀을 고급 기종에서 재생하면 DVD에 가까울 정도의 화질이 나온다. 아날로그 방식이라 MPEG 비디오에 나타나는 디지털 아티펙트가 안 나타나기에 사람 취향에 따라서는 DVD보다 오히려 체감 화질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타이틀은 아니나다를까, 살색이 잘 나오는 포르노 타이틀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명동, 돈암동, 이태원, 신촌 등 당시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모이던 거리에 해외 뮤지션의 공연이나 뮤직비디오, 국내 미개봉 영화(특히 그때도 상영 금지던 일본 영화)LD를 프로젝션 TV나 레이저 프로젝터로 틀어 놓고 술, 음료와 안주거리와 간단한 식사를 파는 A/V카페(중간의 슬래시를 빼먹으면 그렇고 그런 뜻이 되니 주의)가 여러 군데 영업을 하고 있었다.(식당, 술집의 영업이 끝나는 밤12시 이후 심야가 되면 문을 걸어 닫고 슬쩍 야리꾸리한 것을 틀어주는 일도 많았다. 자정 넘어 영업하면 단속하던 시절.) 2000년대가 되기 훨씬 전에 유선방송, MTV가 활성화되고 노래방 등에 밀려 다 사라지긴 했지만.

국내에서는 비싼 가격 때문에 가정에는[2] 거의 보급되지 않아 매우 소수의 타이틀[3]만이 발매되어 거의 매니아들의 전유물이었고 잠시동안만 팔리다 말았다. 동네에서 비디오 테입을 쉽게 대여할 수 있었던 시기였으니 새로운 포맷의 영상물에 손을 잘 대지 않았다. 전축 위의 사치스런 부속품이란 인식도 컸을 것이다. 레이저디스크를 재생하기 위해선 레이저디스크뿐만 아니라 전축의 부속품이기도 한 앰프를 전축과 공유하는 것이 경제적이었으며. 레이저 디스크 재생만을 위해 크고 비싸고 무거운 재생기와 앰프를 둘다 사는건 대형 전축중심의 오디오시대였던 당시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효율적인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시절 한국에서는 아직 댄스음악이나 아이돌 같은 '보는 음악' 시대가 아닌, 라디오나 테잎 등으로 팝송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고상한 축에 들던 '듣는 음악' 시대였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가정용 전축이나 음반 산업이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막 크게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결정적으로 컬러tv도 이때 막 보급될 쯤이어서 비디오테입보다 훨씬 나은 화질을 추구할 단계까진 아니었다. 사족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 이전의 '듣는 음악' 시대에는 지금보다 순수하게 음악 실력으로 가수의 인기를 가늠할 지표가 되는 경향이 강했다는 의견이 있다.(이 설에 따르면 대표적으로 조용필이 이러한 보정의 최대 수혜자다.) 그때도 토토즐같은 TV 음악방송쇼에 무대장치를 당시로서는 화려하게 내세우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지 않았지만, 뮤직비디오라기보다는 즉석 무대에 가까워서 뮤직비디오 문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이후 1990년대 이후에서야 '보는 음악' 시대가 갓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런 시대적, 기술적 한계로 인해서 재생기는 결과적으로 갑부의 전축 세트 사이에서나 있는듯 없는듯 묻어가게 되었으며 그들만의 과시적 소비경향의 일부로 소비되었을 것이다.
다만 소수수 수요중 예전 1~2세대 오타쿠의 경우 LD 한정매체를 VHS로 보기위해서 용산과 더불어 자주 찾아갔다는 회현역 지하상가가 있는데 거기서 전문적으로 LD영상을 VHS로 떠주는 업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미국에서 LD는 오늘날의 DVD블루레이 시장을 예고한 홈미디어 매체로서 주로 사용되었다. 비록 플레이어 및 타이틀의 비싼 가격 때문에 대세는 VHS가 쥐고 있었지만, LD는 고급 홈미디어 매체로서 VHS와는 다른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영화광들은 언제나 더 좋은 화질을 원하기 마련이지만, 80년대에는 35mm 필름 영사기를 집에 설치할 수 있는 갑부가 아닌 이상 집에서 영화를 보려면 VHS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VHS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LD의 뛰어난 화질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적절한 구매력을 가진 영화광들은 영사기 없이도 LD 플레이어로 화질을 향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매체였기 때문에 발매되는 타이틀들 역시 이에 발맞춘 전략들을 내놓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날 DVD 및 블루레이를 사면 언제나 따라오는 서플먼트다. 배급사들은 LD 타이틀에 촬영장 B롤이나 각종 인터뷰를 담은 서플먼트 디스크를 추가하여 홍보를 위한 도구로 삼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들 중 일부는 이후 DVD나 블루레이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빠지는 바람에 지금도 오로지 LD로만 볼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의 LD는 열성적인 덕후들을 공략하기 위한 고가의 시장을 형성했고, 그만큼 훌륭한 타이틀들도 많이 나왔다. 오늘날에도 이베이 등지에 가서 LD 타이틀들을 찾아보면 디스크 크기에 걸맞는 크고 아름다운 패키지 안에 여러 장의 디스크가 들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일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파워로 상당히 인기를 얻어 미국보다도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만을 포함해 잘사는 편에 속하는 자본주의계 중화권인 홍콩, 싱가포르에서도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OVA중에서는 LD로만 발매된 타이틀도 있다.(…생각해보니까 불꽃의 전학생 하나 뿐인 것 같다.) 하지만 간혹 국내에서도 LD를 영화 홈미디어 매체로 기억하고 심지어 이걸 모았던 사람들이 과거를 회고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십중팔구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80년대에 인터넷도 PC통신도 없고 취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훨씬 편협했던 시절부터 꿋꿋이 버텨온 덕후 조상님이시다.

결국 크기와 화질, 기능 등에서 DVD와의 경쟁에 밀려 약 1999~2000년경부터 급속도로 사양길에 접어들어, 2002년경에는 플레이어 및 타이틀 생산이 거의 중단되었다.(아직 플레이어의 재고는 남아 있다.) 2006년 12월에는 엔카 가수인 카와나카 미유키의 '카나자와의 비'가 마지막 발매 작품이고, 2007년 3월까지는 가라오케용 소프트웨어가 발매되었다. 2007년 3월에 결국 생산 라인이 전부 정지되어, 30여년간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일본 고유의 아날로그 HD 방송 방식인 MUSE 신호를 고밀도로 저장하고 적색 레이저를 이용하여 재생하는 MUSE LD라는 규격도 있었는데, 비싼 전용 플레이어와 역시 비싼 외부 디코더(그리고 고화질을 지원하는 비싼 TV)가 필요하고 발매된 타이틀의 수도 적었지만, 1080i 영상을 지원하는 등 DVD 화질을 훨씬 넘어 현재의 블루레이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주로 영화가 발매되었다.

백 투 더 퓨처 2편을 보면 뒷골목에 LD 디스크를 대량으로 버려 놓은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미래에 기술이 발전해서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 같다. 그런데 이미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참고로 백 투 더 퓨처의 미래는 2015년) 가지고 있는 LD를 모두 처분했다거나, 쓰레기를 모아놓은 곳에서 옛날에는 나름대로 비싸게 팔리던 LD 박스를 봤다는 글이 인터넷에서 가끔 보인다.

DVD로 나오지 않은 애니메이션이 P2P에서 고화질 립 파일로 돌고 있다면 십중팔구 LD판을 재생시켜 디지털 소스로 변환한 것이다.

참고로, 이걸 이용한 게임이 아케이드 게임으로 1995년 전까지 발매되었다. 대표작으로 드래곤즈 레어이나, 타임 걸, 스페이스 에이스, 디베이스터 등이 있다. 미리 만들어진 영상을 조작에 따라 챕터를 선택하여 보여주는 간단한 방식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좋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게임기 안에 영상을 담은 LD 플레이어 메카가 들어가 있고 컨트롤을 하는 기판이 붙은 형식이었다. AVGN에도 언급이 되는데 동시대의 오락실 게임인 팩맨 등과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90년 경 초창기 노래방에서는 지금처럼 기계내부 메모리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음원이나 인터넷 회선을 통해 데이터를 받아와서 노래를 틀어주는 게 아니고, LD를 이용하여 일종의 뮤직비디오인 영상과 음악을 틀어주고 나오는 자막을 따라하는 방식이었다. 요즘 노래방처럼 영상이 노래와 가수만 같거나 엉뚱한 열대지방 바닷속처럼 전혀 안 맞는 것이 나오는 게 아니라, 노래 내용까지 일치하는 것이라 노래방의 각 노래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OST라면 그 장면이 나오기도 했으나, 대부분 무명 배우들을 기용했기 때문에 때로 윤현숙, 음정희 등 나중에 유명해진 연예인의 데뷔 초창기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렴한 노래방처럼 합성한 반주가 아니고 원곡의 실제 반주가 들어가 있고, 배경도 그 곡을 위해 따로 제작한 거라서 음질과 화질은 디지털 방식 노래방의 상대가 안 되었다. 반대로 노래방 입장에서는 가수, 신곡마다 크고 비싼 LD를 전부 구비하고 신청곡이 들어오면 맞춰 갈아끼워야 해서 관리하기는 아주 어려웠다. 반면 메모리 기반 노래방기기는 신곡 롬만 주기적으로 넣어주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LD 기반 노래방이 없어진 이유.

업소용 외 민간용 노래방 LD가 따로 팔리기도 했으며, 이것을 레이저 디스크 가라오케(LDK)라고 불렀다. 국내에서도 LD는 물론 마이크를 꽂으면 LDK 기능을 지원하는 LDP가 국내 기준 1992년부터 약 3-4년까지 생산되었다. 인켈, 삼성 등 여러 회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레이저디스크에 음악을 저장해서 트는 시대가 훨씬 지나고 디지털 파일로 노래를 저장해서 틀어주는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깔끔한 배경화면을 꾸미기 위해 레이저 디스크에 저장된 배경화면을 깔고 노래방 기계를 작동시키는 경우가 적어도 2천년대 초반까지는 남아있었다. 물론 정보기술이 발달해서 노래방 기기 안에 배경영상마저 저장할 수 있게된 90년대 말 이후부터 시작해서 2천년대 초반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사장되었다. 이유는 노래방기기 자체적으로 배경영상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자체적으로 배경화면이 지원되지 않는 노래방기기의 신곡이 단종된것이 주 원인이다. 90년대 이전 세대라면 노래방에서 열대같은 풍경이 나오는 것따위를 보다가 보이밴드가 뜨면서 노래방에서도 엠넷의 영상이 반영되는 현실을 맛보았을건데, 이 시기가 바로 반주기 발달속도가 빠른 시절이다. 다만 엠넷 실시간 방송을 배경화면으로 끌어당겨 쓰는 경우도 있었다.

LD포맷을 이용한 교육 타이틀도 국내에서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이어 등장한 DVD에 의해 급격히 사라진 것은 마찬가지. LD 플레이어 중 대부분이 CD, Video CD, Kodak Photo CD등 여러 포맷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어 자체는 미디어가 안 나오게 된 이후에도 한참 동안 쓰였다.(지금도 LDP를 CD듣는 데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크기가 커서 그렇지 보통 CDP보다 성능이 좋았기 때문.)

DVD보다 LD를 선호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데 색상 표현이 LD가 부드러워서 그렇다고 한다.

여담으로 일본의 애니송/영화 OST 전문 레이블인 제네온 엔터테인먼트[4]파이오니어의 LD사업부가 전신이라고 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규격으로 발매된 게임도 존재한다. 대부분이 일본에서만 발매되었으며 메가드라이브PC엔진중엔 일부 대응기종이 존재한다.
  1. 농담은 아닌게, 일반 디스크와 달리 매우 크다. 밑에 후술.
  2. 가정에서야 보기 힘들었지 앞서 말했던 A/V카페, 노래방이나 대형 놀이시설, 아주 가끔씩은 큰 학원에서는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노래방에서는 늦어도 이미 레이저디스크에 노래를 저장하던 시대가 훨씬 지난 2천년대 초중반까지도 갖추던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유는 뒤에 설명.
  3. 그런데 비디오로는 나오지 않은 킹콩 1933년판이 국내에서는 LD로 삼성에서 정발되기도 하여 괴수물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나중에 DVD로도 나왔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정발 괴수물로 LD로 나온 경우는 이게 유일했다. 그외에도 SKC나 나름대로 이름있는 영상매체사는 LD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국산영화의 LD도 제법 나워줬웠다. 다만 포맷자체가 심하게 마이너해서 알려지지 않았을뿐이지.
  4. 유니버설 픽쳐스 계열사. 이때문에 제네온-유니버셜이라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