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갈마아재들과 꼴갤러들의 키배의 장.
이래저래 단합 안되는 꼴빠들
제리 로이스터가 2008년 시즌을 종료하고 팀을 첫 가을야구에 진출 성공을 했는데, "8888577의 탈출은 로이스터 감독의 공"이다 라고 주장하는 의견과 "전임 감독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과대평가 된 것이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1 선수단 구성에 대한 논란
1.1 부정 : 선수빨이 컸다.
환상론은 그저 몇몇 선수들이 중심타선에서 미쳐주고(08년 조성환과 카림 가르시아, 09년 홍성흔) 전임 강병철 감독이 오만 욕을 다 먹어가면서 키운 선수들(ex. 김주찬, 이인구, 강민호, 장원준, 강영식 등)이 우연히 로이스터 감독 시기에 잠재력이 폭발하고 2군에서 정영기 전 2군 감독이 키운 선수들이 시기적절하게(김이슬, 김민성, 장성우, 박정준) 백업해줘 가능했던 것일 뿐이란 주장이 요지.
롯데는 8888577 선수단 그대로 이어 받지 않았다. 애초 암흑기 초창기에 있던 멤버들 상당수는 백인천, 양상문이 내치거나 박살냈다.(조경환, 노승욱 등) 2군의 산실이자 돌풍의 주역들이 자란 상동구장은 07년 10월 완공되었고 08, 09년 4강을 이끈 멤버들은 용병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임 강병철 감독과 정영기2군 감독에게 중용되거나 그의 코칭을 받은 인물들이다. 투수의 경우 강영식은 삼성에서 트레이드 되어 중용되었고 장원준은 박동수 현 용마고 감독의 코치 아래 에이스 수업을 받았다. 김이슬은 07년 초반 쏠쏠하다가 부상으로 이탈, 조정훈은 양상문때 너무 성급하게 굴려진 탓에 쓸수 없었다. 또한 강병철 감독 떠나고 로이스터 부임 이후 오히려 퇴보한 선수도 여럿이다.
사실 08시즌 갑자기 튀어나와서 팀 분위기까지 다 잡아주는 리딩히터급 선수 조성환과, 당 시즌 같이 강림해서 타점왕을 얻어먹은 카림 가르시아도 없었고, 10승급 투수 송승준도 07 시즌 다 끝나가면서야 들어왔다. 거기다 07 시즌 김주찬은 소집해제 떨어진 다음 첫 시즌을 소화했으니 당연히 기대하기 힘들었고, 팀 분위기 흐리기 1등 공신 정수근이 진작에 사고를 쳐서 떠나가지 않았다.
1.2 옹호 : 선수단 구성면에서 07년 멤버와 차이가 없었다.
그 반대편은 그럼 왜 이전엔 포텐이 안 터졌냐는 주장. 애시당초에 이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이 2년 전까지 8888577을 찍던 그 선수들 거의 그대로 내려왔는데, 단순히 운 좋게 그때 포텐이 터졌을 뿐이다, 운이 좋을 뿐이라는 건 지나친 폄하라는 것. 운도 실력이다. 왜 이전엔 운이 없었냐.
반박글에서 선수단을 그대로 물려 받지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2002~2006년과 비교하는 것보다 2007년 시즌과 비교해야 된다.
2007년 야수진 주전은 강민호, 이대호, 박현승, 정보명, 이원석, 정수근, 이승화, 페레즈, 김주찬, 이인구 정도가 된다. 투수진은 손민한, 송승준, 최향남, 장원준, 이상목, 염종석, 임경완, 강영식,조정훈, 배장호, 카브레라, 최대성 정도가 레귤러인데
2008년 야수진은 강민호, 이대호, 박현승, 조성환, 박기혁, 가르시아, 김주찬, 정수근, 이인구 정도며, 투수진은 손민한, 장원준, 조정훈, 이용훈, 송승준, 배장호, 최향남, 임경완, 염종석, 강영식, 코르테스 정도로 요약할수 있는데 이중에 로이스터때 추가된 선수는 소집해제된 조성환과 용병으로 온 가르시아, 코르테스 정도다.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2007년 롯데에 있던 선수들이다. 조성환이 이시기 들어와서 이정도 활약을 할수 있던것은 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감독, 코치의 지도도 마땅히 포함 되는 것이다. 선수의 활약이 감독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SK 왕조를 이끌었던 김성근이나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김응룡도 비슷한 소리를 들어야한다. 물론 로이스터 감독이 그와 동급이라는 건 아니다. 우승청부사들과 비교는 불가. 하지만 코끼리는 칰끼리 되면서 망했어요 그리고 김성근마저도
결국 비슷한 선수단으로 전시즌 7위를 했고, 다음 시즌 3위를 기록한 것은 마땅히 칭찬받아야지 강병철 이전 선수단을 거론하면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용병이 잘들어 왔네, 팀의 구심점이 들어왔네 운운하는건 "로이스터가 이뤄낸 344는 운빨이다."라고 주장하는 것,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
2 선수 기용에 대한 논란
2.1 부정 : 선수 기용폭이 극단적으로 좁다.
로이스터 매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의 또다른 주장은 선수 기용폭이 극단적으로 좁다는 것이다. 미국 마이너리그와 한국 2군은 차이가 극심한데[1] 자기가 조금이라도 아는 선수들 위주로 쓰는 것.
- 이원석은 이대호 3루로 자리 빼앗긴 전반기 내내 벤치 데우다 후반기 실책 한번하고 기회박탈. 그리고는 두산 베어스로 가서 주전 3루수가 됐다.
- 이인구는 정수근이 사고쳐서 빠진 다음에야 활약.
- 차기 3번 타자감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정준은 09년 반짝한 후 묻혔다.
- 군필 황성용과 2군 리그에서 손꼽히는 거포인 오장훈은 확장 엔트리때 대타로나 보일 전망이다.
- 김민성이 급 부상한건 박기혁이 체력저하로 완전히 방전된 다음이었다. 김민성과 박정준은 결국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 장성우와 최기문은 강민호가 한 시즌 1000이닝 넘게 출전하고 WBC까지 뛴후 팔이 부러진 다음에야 기회를 잡았다. 이후 최기문이 은퇴하고 장성우가 군대로
끌려가면서 두산에서 용덕한을 영입한 후에야 강민호가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 대학리그 최고 3루수였던 전준우는 변변한 기회도 잡지 못한 채 수비부담이 가장 심한 중견수로 몇번 기용되다 벤치를 데웠다.
물론 1군에게 믿음을 주는것도 중요하겠지만 1군 선수들이 부상이나 체력저하로 쓰러진 다음에야 2군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건 문제가 아닐까? 아무 변화 없는 철밥통 코치진도 문제지만 무리한 운용으로 주전 선수들에게는 과중한 부담과 부상을 후보 선수들에게는 출전기회 박탈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날려버리며 비밀번호 찍으며 축적한 성장 동력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로이스터 본인이 데려온 페르난도 아로요도 문제가 없진 않았다.
로이스터의 가장 큰 책임은 4강에서 허무하게 탈락했거나 우승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근시안적 운용으로 팀의 성장동력을 날려버린데 있다.
2.2 옹호 : 편파기용? 그냥 실력이 없어서다.
우선 2군 활약하는 선수들을 왜 쓰지 않았냐고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로이스터를 둘러싸고 있는 무능한 철밥통 코치진들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야구 경험이 전혀 없는 로이스터 입장에서 기존 코치들이 추천한 몇명 위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2] 이재곤, 김수완도 2군에서 방치되다가 로이스터가 우연한 기회에 보고 직접 올린 것이다. 2008년 이성득해설이 주구장창 주장했던 조정훈은 불펜투수감이다라고 했지만 로이스터는 조정훈의 2군 경기 투구수까지 정해주면서 직접 관리를 했다. 그외에도 주전급 대신에 잘한다 싶은 손아섭,박종윤등을 기용한것도 로이스터였다. 2008년 로이스터가 전시즌과 다르게 1.5군을 기용했다는 기사.
그리고 2009시즌, 초반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을 겪으며 -13까지 내려간 일화만 봐도 알수있듯이 롯데 자이언츠 2군과 백업은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원석을 내보낸건 아쉬운 판단이었지만 이원석도 2009년 커리어 하이를 찍은 이후로는 두산에서조차 준레귤러로 뛰고 있다.[3] 단순히 이적후성적만 보더라도 보상선수로 내준 이원석 보다, 홍성흔이 4년간 보여준 모습이 압도적이다. 단순히 실책만으로 주전을 기용 하지 않았다는 소리도 어불 성설인게, 2010년 롯데는 실책수가 리그 1위를 기록할정도로 안습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주전 선수는 교체되지 않았다. 이원석이 주전으로 뛰지 못한건 2008년에 3루수로 전향했던 이대호에 비해 "실력이 부족해서"이지 선수를 편파적으로 기용한게 절대 아니다. 경기중 본헤드 플레이를 했던 김주찬을 질책성 교체로 뺀 경기후 인터뷰에서 "빼고 싶어 뺏다"며 김주찬의 본헤드 플레이가 맘에 안들어서 뺏다고 언급했지만 여전히 주전으로 기용했던 것만 봐도 로이스터가 선수가 실력이 되는데 본인이 싫어서 기용을 안했다는건 말이 안된다.
위에서 언급된 일화들을 보자면 지나치게 까내리려고 뻥튀기 해놓은게 많다.
- 이인구를 쓰지 않고 정수근이 빠지니까 그제서야 썻다는 주장 : 그냥 이인구가 주전감이 아니었던거다. 로이스터가 편파적으로 기용했다? 그럼 양승호는 기회를 그에게 줬나? 2011년에 몇번 기용하다 2012년에는 단 2경기 출장했고 그후 선수생활 그만뒀다. 그 기회를 줬다는 2009년에도 오히려 사람들이 이승화와 정수근을 찾을 정도로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었다. 다음 해에 딱 5경기 출장한 것이 이런 이유. 그리고 이인구는 따지고 보면 좋은 활약을 보인 2008년에 풀타임을 뛴 것도 아니었다. 정수근이 사고치기 전만 해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굳이 이인구를 쓸 이유가 없었던거다. 로이스터가 떠나고 양승호가 부임한 2011년에도 확실한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는 것은 주전으로 뛰기엔 실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 차기 3번 타자감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정준은 09년 반짝한 후 묻혔다? : 선수가 반짝 묻힌걸 감독 탓 하는 것도 웃기지만 선수의 실력이 1군에서 안 먹힌거다 2010년 이후 넥센, NC에서의 성적을 보고 와라.
- 군필 황성용과 2군 리그에서 손꼽히는 거포인 오장훈은 확장 엔트리때 대타로나 보일 전망 : 황성용은 2011년 잠깐 주전급으로 기용되다 2015년 현재까지도 김문호,김민하등에게 밀려 1군 엔트리에서 보이지 않고 있고, 오장훈은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지만 그곳에서도 2군 본즈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감독들도 안쓰고, 다른팀 가서도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선수들인데 이것도 해당 감독들의 근안시적인 경기 운용인가?
- 김민성이 급 부상한건 박기혁이 체력저하로 완전히 방전된 다음이었다. 김민성과 박정준은 결국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 당시 박기혁은 전시즌 골든 글러브 수상,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 유격수로 선발된 리그 S급 유격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백업 유격수를 쓴다? 어떤 정신나간 감독이 주전 유격수를 놔두고 백업 유격수를 쓴단 말인가. 김상수가 나가리 될때까지 유격수로 기용한 류중일도 근안시적인 경기운영을 하는 감독인가? 통합 4연패 감독이? 그리고 당시 김민성은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신인이었다. 조금 잘한다고 경험이 부족한 신인선수를 무조건 주전으로 출장시키는 감독이 어디있는가? 그것도 확고한 주전이 있는 상태에서?
- 장성우와 최기문은 강민호가 한 시즌 1000이닝 넘게 출전하고 WBC까지 뛴후 팔이 부러진 다음에야 기회를 잡았다. 이후 최기문이 은퇴하고 장성우가 군대로
끌려가면서 두산에서 용덕한을 영입한 후에야 강민호가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 장성우, 최기문은 강민호의 팔꿈치 부상이후 로테이션으로 꾸준히 등장했다.[4]
- 대학리그 최고 3루수였던 전준우는 변변한 기회도 잡지 못한 채 수비부담이 가장 심한 중견수로 몇번 기용되다 벤치를 데웠다? : 이 비판에서 가장 웃긴건 전준우는 중견수로 포텐이 터졌고 전준우 본인도 양승호가 3루로 기용했을때 3루보다 외야가 편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준우도 김민성과 마찬가지로 1군에 데뷔한지 얼마 안되는 신인이었다.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게 로이스터가 기회를 몇 번 줬지만 영 아닌 모습을 보여서 중견수로 전향한거다. 신인선수가 프로에서 수비문제를 보이거나 다른 선수들이 더 잘해서 포지션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5]
또한 양승호가 오고나서 박진환이 "(영어를 쓰는 로이스터와는) 소통되지 않아서 못뛰었는데 소통 되는 감독이 와서 기쁘다"라고 했으나 결국 양승호 감독 2년 내내 1군 무대 밟지도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업 멤버들이 1군에서 못뛴건 백인천 처럼 로이스터 개인의 호불호 때문이 아닌 실력이 안돼서 못뛴거다.[6] 편파 기용 이거 갈매기 마당에서 주장하던 논조인데....아재들도 위키하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로이스터가 외면했던 선수 중에 지금 잘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3 투수 혹사논란
3.1 부정 : 어쨌든지 투수혹사를 했다.
투수들을 쥐어짠다는 점에 대해서 옹호론자들은 로이스터 감독이 조범현, 김시진 감독과 함께 가장 적게 혹사시킨 축이라고 반론하는데, 중요한건 혹사를 시킨다는 것 그 자체이지 누가 누가 더 혹사를 많이 시켰냐는 병림픽이 아니다. 그리고 롯데가 투수진, 특히 계투진이 튼튼한 팀이 아니고 자원도 부족하다는걸 고려하면 더더욱.
08년 126경기중 62경기, 거의 2경기당 한번 출전했던 강영식은 이후 스터프를 상실한 채 수술대에 올랐으며 작은 체격과 느린 구속으로 좌완 원포인트 이상은 힘들었던 김이슬은 우타, 좌타 가리지 않고 내보냈다 박살, 김일엽은 09시즌 초 롱릴리프, 선발, 셋업 등 온갖 보직으로 다 나오다가 전열이탈, 이정민과 이정훈, 임경완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넘어갔다.
불펜투수 혹사는 단순히 많이 던진걸로 결정되지 않는다. 매일 던지는 연투(09년 강영식은 3일 연투도 빈번했다.), 불펜에서의 피칭, 그리고 단기간에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던지지는 않는가? 로이스터 식 투수운용을 살펴보면 여럿에게 분배하지 않고 단기간에 한둘의 투수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건 단순히 많이 던지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3.2 옹호 : 투수혹사논란은 물타기다.
로이스터가 투수혹사를 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강영식의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 수술은 2009시즌 종료후에 받았으며 이게 2008년의 여파라고 이야기하는 기사나 관계자들은 없다. 오히려 2009년에 선발진이 모두 나가리되는 바람에 사도스키, 송승준, 장원준을 제외하고 모두 선발로 한번씩 서봤을 만큼 선발진이 안습한 상황이라 마산경기에서 선발 등판하기도 했던 팀 사정때문에 무리해서 팔꿈치 수술을 받은거 라고 보는게 무방하다.
또한 2008년 이용훈이 수술후 복귀전에서는 본인이 더 던질수 있다고 이야기 했음에도 절대 안된다며 강제로 내려보냈고 이후에 이용훈이 "로이스터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전 작년에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이야기 할정도로 배려를 많이 한 감독이었다. 팀보다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감독이 로이스터 감독이었고[7] 팀의 불펜에 비상이 걸려서 조정훈을 끌어다 써야하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때도 무리하지 않고 철저하게 선발 수업을 시킨 것도 로이스터였다.2008년 기사 그 결과가 2009년의 에이스 조정훈이었다. 김이슬 같은 경우는 '그 무리했다던 08년에 소화한 이닝수가 단 8이닝이다!- ↑ 로이스터 감독 본인은 다른 팀들의 운영을 보고 08년 시즌 종료후에야 한국 2군의 정확한 성격을 알았다고 한다. 미국 마이너리그와 한국 2군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못한 롯데 프런트와 코치진의 책임이다.
- ↑ 히딩크 감독 성공의 1등공신은 바로 이용수 기술위원장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대학, 실업, 프로를 총망라해서 선수들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유망주들의 경기를 직접 관전할 수 있게 주선했다. 물론 테스트와 최종선발은 전적으로 히딩크가 했지만, 그 선택의 폭을 넒혀준게 이용수위원장이다. 어느 종목이든 다양한 선수들을 알길이 없는 외국인 감독에겐 이런 지원이 필수적하다.
- ↑ 2014시즌까지 최주환 등과 주전 싸움을 하고 있다.
- ↑ 참고로 포수는 전담 포수를 제외한다면 주전급 포수를 바꾸지 않는게 원칙이다. 거기다 장성우 고평가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막상 선발로 나올때 강민호보다 좋은 모습을 보였나? 그것도 아니다. 용덕한이 트레이드로 온후에는 용덕한에게 조차 밀렸다. 최기문은 나이와 더불어 풀타임 소화능력도 되지 않기 때문에 주전으로 쓸래야 쓸수도 없었고.(더불어 최기문은 소녀어깨로 유명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데 장성우는 당시 1군에 올라오고 풀타임을 치르는 첫 시즌이었다. 강민호도 데뷔 2년차때 주전으로 풀타임을 뛰기는 했지만 수비에서는 좋은 소리 못들었고 타격도 2할 5푼대로 별로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공수에서 주전급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 ↑ 원래 포수였다가 수비문제로 중견수로 전향한 이택근이나 블래스 신드롬때문에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김주찬이 대표적인 예.
- ↑ 정확히 말하면 2011시즌 시즌 개막전부터 11경기에서 8푼 치고나서 바로 2군에 쳐박히다가, 2012시즌 이후 방출되었다.
- ↑ 한 예로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어서 팀을 떠난 최향남에게 마이너리그 팀을 소개시켜준 사람도 로이스터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