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三司(고려)
고려시대의 화폐와 곡식의 출납 담당과 회계 기구로, 북송의 제도를 이름만 따와서 만들었다.
2 三司(조선)
조선시대의 정부기관 중 사헌부(관리 감찰 및 기강 단속), 사간원(정책 간쟁 및 논박), 홍문관(기록 관리 및 정책 자문)을 함께 일컫는 말. 왕 또는 유력 대신[1]의 정책에 대해 이견(異見)을 가져 이를 철회시키기 위해 이 부서의 관리들이 단체로 시위하는 걸 '합사복합', 또는 '삼사가 합계한다'라고 한다.
이를 무시하거나 강제 해산시키려 하면 폭군, 또는 권신으로 낙인 찍힐 뿐만 아니라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에 권력자 입장에선 골치 아파진다. 대부분 왕의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불필요한 면도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종 때 삼사의 지나친 간쟁으로, 이 때문에 연산군 때의 사화의 한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림 세력의 대두와 붕당간의 대립이 표면화되자, 삼사는 공론을 반영하기 보다는 상대 세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기 붕당 세력의 유지와 상대 붕당의 견제에 앞장서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삼사의 관원들에 더해서 이조와 병조의 전랑(정랑과 좌랑)을 더한 것이 당상관 코스라고 부르는 청요직이다. 이 청요직이란 것이 얼마나 권한이 있으며 또한 문제가 있는지는 해당 항목을 참고. 이처럼 3사와 전랑의 권한은 많은 부작용을 낳아,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결국 혁파되었다.
같이 묶이지만 이들 관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간단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헌부는 관리의 감찰을 단속하는 기관인만큼 부서 내 기강이 다른 관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했다. 매일 조회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이를 다시(茶時)라 했으며, 밤에 특별히 여는 다시는 야다시(夜茶時)라 했는데 이는 누군가 곧 잡혀 들어갈 것이라는 암시라고 한다. 장은 대사헌(大司憲)으로 종2품에 해당했다.
반면 사간원은 근무 분위기가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해서 업무 시간 중 음주가 가능한 유일한 관청이었으며, 임금의 금주령을 무시할 수 있었다. 술기운이라도 없으면 전제군주제 하에서 깡 좋게 상소를 올릴 수도 없으니 그에 대한 배려인 셈이다[2].
조회가 끝난 후 가장 나중에 나가는 이들이 사간원 관헌들이었으며, 품계가 높은 자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관청이었다.[3] 장은 대사간(大司諫)이며, 정3품으로 삼사의 장관들 중 가장 품계가 낮았다.
홍문관은 명목상 성균관과 같은 학교였다. 즉 그냥 문치적 분위기. 성균관은 대과 치를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반면, 홍문관은 정치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인 게 차이점이다. 사실 홍문관은 세조 때 폐지된 집현전의 실질적 후계자나 마찬가지의 위치에 있었다.
성종이 집현전을 부활시키려고 해도 명분상으로 조부인 세조가 폐지한 것을 바로 부활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기능과 관직을 옮긴 것이 홍문관과 예문관인데, 일단은 집현전의 정통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예문관이 실제로는 춘추관과 함께 있던 시절처럼 실록 편찬 쪽에 주로 관여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홍문관이 집현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4].
삼사 중에서 홍문관만은 직계아문(直啓衙門)이 아닌 예조의 속아문(屬衙門)이다. 실질적인 장은 정3품 부제학(副提學)이며 그 위의 종2품 제학(提學), 정2품 대제학(大提學)은 다른 관청의 관리가 겸직하며 정1품 영사(領事)는 의정부의 의정(議政)이 겸직한다.
이들은 파직되어도 파직기간이 일종의 휴가로 취급되며, 관직 경력이 중지되지 않았다. 삼사 관헌들도 자신의 임기를 채워서 끝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고 한다.
국사 과목에서는 고려의 삼사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로도 7차 교육과정 시대에 이 차이를 묻는 문제가 자주 출제됐다.
3 조선시대 외국에 보내는 사신단을 일컫는 말 三使
4 三史
국사/한국근현대사/세계사(~2013학년도 수능)
한국사(필수)/동아시아사/세계사(2017학년도 수능~)
이하 내용은 2014년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 일부 존재합니다.
13수능까지에 해당하는 내용 바로 아래 문단에 '14수능 관련 내용을 서술합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의 국사, 세계사, 한국근현대사를 통틀어 이르던 말. 2014학년도부터 사회탐구 영역 역사군의 교과목에는 한국사, 세계사, 그리고 동아시아사가 편성되어 있어 역시 삼사 체제이기는 하지만 이해 수능부터는 탐구영역 선택이 최대 2개로 제한되면서 이름처럼 실현되는 것은 2013년 수능을 마지막으로 불가능해졌다. 다만 쌍사는 가능하다. 그러나 17수능부터는 한국사가 필수가 되어서 삼사실현이 다시 가능해졌다.
비슷한 말로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를 통틀어 이르는 삼지리가 있었으나 경제지리가 사라짐에 따라 삼사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2014년 9월 모의고사 기준 삼사 과목의 응시자 수는 한국사 37,496명, 동아시아사 39,388명, 세계사 28,203 명으로, 동아시아사 응시자가 세계사 응시자보다 많다. 경제 12,424명 꼴찌 탈출 이야 신난다
셋 다 역사 과목이라는 점을 감안해 적은 양의 공부로 시너지 효과를 누리려는 학생들이 선택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2014학년도 수능부터 사회탐구가 두개로 줄어드는게 위안이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한국근현대사 외의 과목은 고를 일이 거의 없다. 그나마 대부분 국사 + 근현대사까지는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만, 세계사는 이름에서부터 풍겨나오는 압박감 + 대부분의 학교 내신에 반영 안 함이라는 현실 때문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포기한다.
국사와 근현대사가 통합된 한국사는 내용도 난이도도 사실상 근현대사[5][6]이지만 선택율이나 교과로서의 위상은 예전의 국사 포지션이다. '13 수능 당시 근현대사 선택 인원이 167,236명인데 비해[7], 2014학년도 대수능 9월 모의평가에서 한국사 선택 인원수는 37,496명에 그쳤다. [8]
동아시아사는 세계사의 내용 중 동아시아 지역에 해당하는 내용을 떼어와 편성한 과목인데 동북아 3국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동북아 3국 간 교류에 있어 큰 영향을 준 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특징을 빼면 그 내용이 세계사와 다를 게 없다.[9]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역덕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인해 1등급 컷이 지지리도 높다는 점이 있다. 문제를 아무리 어렵게 내더라도 기어이 다 맞힌다. 심지어 한국사나 세계사의 경우에는 1등급 컷이 50[10]인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대학교의 필수 조건이라 서울대 지망생들까지 가세한 국사가 특히 악명이 높다. 국사 항목 참조. 2개 이상 틀리면 1등급은 안드로메다 저 멀리로 날아간다.[11] 이 두 과목은 표준점수도 낮게 나온다.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그나마 응시자 수가 많아서 표준점수라도 괜찮게 나오지만. 2014년도부터는 국사와 근현대사가 통합되어서 더욱더 혼란스러워질지도...였으나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가 필수 지정되면서 문제 난이도 급락과 함께 1등급 컷이 40점(절대평가)으로 고정되었다.
한국사도 국사의 자리를 이어가면서, 응시 집단은 그대로인데 난이도가 대폭 낮아져 표준점수가 낮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무슨 소리야 한국사는 등급제라 고3때는 표준점수 산출 안한다. 고1, 2들 성적표에는 표준점수도 같이 나오는 것 같지만 정작 등급이 안 찍힌다 뭐지? 국사와 근현대사를 모두 공부했던 재수생이라면 현행 한국사 문제를 못 풀 수가 없다.
사실상 한국사를 제외하고는 역사에 취미있는 사람의 전유물인 경우가 많다.
국사는 근현대사의 두세 배의 양이고, 근현대사도 외울 부분이 은근히 많다. 다만 세계사는 문제 은행화 되어 있어 변수가 적은 탓에 의외로 개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일부분만 암기하면 손쉽게 고득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편견만큼 어렵지 않다. 그래봤자 표준점수가 시궁창이라 중위권이하의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
세계사가 시험을 쳐 보면 어려운 과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 수가 적은 것은, 고득점자들 중에 역사에 정통한 매니아들(이라고 쓰고 역덕후라고 읽는다.)이 많아서 2등급까지는 쉬워도 1등급은 어렵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사에 관심이 없는것인지는 불명. 일단 이름부터 방대해 보이는 탓에 손대기가 힘들고, 학교에서도 거의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안 고른다는 게 통설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세계사가 국사보다 쉬운 편이다. 세계사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출제위원들이 고3 수준을 기준으로 하는 수학능력시험에서 도저히 세세하게 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추정도 존재하고, 가뜩이나 보는 사람 없는데 그걸 또 어렵게 내면 그나마 있던 사람들마저 떨어져 나가 시험 같지 않은 시험이 되리라는 염려 때문에 그런다는 소문도 있다. 세세한 지역사, 아프리카, 근세 이전의 아메리카, 동남 아시아 등의 경우는 전공 교수가 없어서 못 낸다는 말도 있다.
다만 세계사도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 2000년 초엽의 세계사 문제와 최근의 문제의 수준차는 정말 심하게 나는 편이다. 세계사를 쉽게본 학생들이 피를 보기도 했다.
여담으로, 줄임말 끝에 "사"자가 붙는 다른 과목인 "법과사회(법사)"를 합쳐 '사사'라는 이름으로 부를 때도 있다. 지금은 없지
2012년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과목들에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진다. 중학교 때 전근대사를 배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근현대사 위주로 통합된 역사 교육을 받으며 2, 3학년 때 동아시아사, 세계사 중 1개를 선택해 배운다. 국사는 여러 과목들로 나뉘고, 근현대사는 1학년 과정으로 통합된다. 세계사는 동아시아사를 제외한 내용으로 구성될 듯 했으나, 실제로는 예전 구성과 큰 차이가 없다. 동아시아사는 중국, 일본의 역사를 세계사의 그것보다 좀 더 심화한 내용이 들어가 있으며, 기준에 따라 동아시아 문화권에 포함시키기도 하는 베트남사를 조금 부각시킨 것이 특징. 물론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국사 내용도 곁다리로 아주 조금 들어가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국가들(한국,중국,일본,베트남)[12]의 역사를 종합해서 다루고 있다.
동아시아사에 관련해선 해당 항목 참조.
5 한국의 주요 지상파 방송 3개사를 일컫는 말
6 대원미디어 계열의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사들
7 육군3사관학교 三士
육군3사관학교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8 단군신화에 나오는 운사, 우사, 풍백을 일컫는 말 三師
- ↑ 사간원의 독립은 왕권강화를 추구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이뤄졌다. 삼사의 기능은 오로지 왕권 견제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유력 대신을 포함한 '당대 실권자의 권력행사에 대한 견제'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뭐 말은 이렇지만 워낙에 삼사 언관들에 대한 보호가 잘 되어 있어서 왕들이 어지간히 작심을 해서는 유배보내기도 어려웠다.
- ↑ 조선에서 품계가 낮은 자는 품계가 높은 자를 만나면 반드시 인사를 해야했고, 품계가 높은 자는 이에 대해서 답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 ↑ 이 때문인지 예문관과 홍문관은 고위 관직의 겸직이 많았다.
- ↑ 근현대사 내용이 70%이다. 실제 수능 모의평가에서도 전근대 6문항, 근현대 14문항이 출제되고 있다.
- ↑ 반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는 전근대비율이 더 높은 편이고 실제로 수능에서도 전근대사문제가 더 많다. 다만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한국사,세계사,동아시아사를 가리지않고 근현대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생각해보면 팔레스타인 문제,카슈미르 문제,일본의 과거사 부정,아프리카 내전 등의 국제문제들은 모두 근현대시대와 연관이 되어있다.
- ↑ 국사 응시자 43,441명
- ↑ 물론 사탐 과목 최대 선택 수가 2개로 줄은 것도 응시 인원 감소의 원인이긴 하다.
- ↑ 되려 더 부실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 하나만 틀리면 2등급으로 추락...
- ↑ 2점짜리를 틀려야 가망이 있지, 3점짜리를 틀리면 정말 등급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 ↑ 베트남의 경우 이견이 있기도 하나 한자(근대 이전), 유교, 중국계 불교(대승불교)등 공통적인 부분이 많아서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