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데아 라이브.
1 개요
대표곡은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등. 락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앨범이며 동시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하다. 서태지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음악성이라고 평가받는다. 수많은 악재들로 인해[1] 앨범 판매고가 크게 떨어졌다...만 그 크게 떨어졌다는게 120만장. 1집이 170만장, 2집이 220만장이었으니 크게 떨어지긴 떨어졌다(...).
몬데그린의 일종인 피가 모자라 사건으로 서태지 사탄 숭배설이 크게 흥했다. (자세한 내용은 피가 모자라 항목 참조) 인터넷 대중화는커녕 PC통신망조차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도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수많은 테이프들이 절단났다. 그것 때문에 앨범을 두번 산 아이들도 많았다.[2] 관련내용. [3]
전체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스래쉬 메탈을 주축으로 하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준다.특히 이 앨범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 세계 록의 흐름을 주도하던 얼터너티브 록.록 마니아들 사이에선 극과 극의 록 음악으로 불리우는만큼 골수 정통록/헤비메탈 키드인 서태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텐데,이 앨범에선 꽤 높은 수준의 흡수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발해를 꿈꾸며>의 전개부(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타일의 펑키한 기타 연주가 나타나고,후렴부(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에는 U2 디 엣지를 연상시키는 쌩딜레이톤이 나타난다.장르적으로 두 밴드는 얼터너티브록 그룹은 아니지만,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주목할만한 기타 연주의 스타일들이 이 곡엔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1,2집이 기본적으로 사랑 타령에 댄스 음악인데 반해 난데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주제인 <발해를 꿈꾸며>가 타이틀 곡이었다. 또한 <교실이데아>로 입시 제도를 비판, 그래서 10대들의 우상을 넘어서서 문화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시기. 김대중 前 대통령하고 악수하고 뉴스에 나고 그랬다. <발해를 꿈꾸며>는 교과서에도 실렸다.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할 당시 무대에 태극기를 도배하는 연출을 하기도 했다.그런데 뮤직비디오에서 저 대형 태극기를 걸어놓은 곳이 다름아닌 철원 노동당사[4]2011년 MBC 평화콘서트에서는 MBLAQ과 Miss A가 그 노동당사 현관 위에 또 올라가서 발해를 꿈꾸며 커버링을 찍기도...(근데 포인트인 대형 태극기는 안 걸었다.)
그리고 3집 컨셉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나름 충격을 안겼다.[5] 이후 치마 콘셉트는 조금 순화되어 삼국시대 복장 비슷한 걸로 바뀌었는데(아래 콘서트 영상 참조), 정작 치마패션 자체는 이후 김원준이 '너 없는 동안'으로 활동할 때 다시 차용해서[6] 흥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사실 치마 콘셉트는 발해 왕자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당시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원래 전공이 한국 전통 의상이었기 때문에 바지 위에 덧 입은 치마가 금관조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개량 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다.
교실이데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를 품고 있는 공교육 때문에 현재에도 회자되는 희대의 명곡. 지금도 '매일 아침 7시 30분'이 '8시'로 바뀐 것 말고는 바뀐게 없다.(여담 : 08년도 ebs 고등학교 언어영역 수능특강 문제에 응용되어 실린바가 있다.)
양현석, 이주노가 약간 쩌리였던 시절. 아닌게 아니라 저럴거면 밴드로 나오지 여전히 <서태지와 춤추는아이들>이어서 위화감이 들긴 했다.[7]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마지막 앨범으로 생각하고 냈던 앨범이라 서태지가 이것저것 다 해본 거라고 한다. 즉 4집 앨범은 일종의 뒤풀이격으로 준비한 거였는데 이게 다시 대박을 쳤다.
녹음도 외국에서 해서 당시 대중들 사이에선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주로 컴퓨터로 찍어대던 1, 2집에 비해[8] 세션들을 대거 기용해서 제대로 된 음악을 한다라는 느낌이 든 앨범. <영원>같은 경우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단순 스트링이 아닌 클래식사운드를 구현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제작시 녹음 자체는 1집부터 외국에서 후반 마스터링 작업을 하긴 했다. 서태지가 사비로 집에다가 꾸린 Techno Taiji Studio의 설비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는데, 세션까지 전부 외국계로 갈아치운 것은 2집의 표절시비가 계기가 된 듯. 당시 이태섭이 테스타먼트의 기타 애드립을 도용해서 하여가에 붙여준 게 문제가 컸다. 이후 3집에는 Tim Pierce[9], Kevin Scott 같은 미국/캐나다계 세션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다. 그래서 사운드 자체는 매우 괜찮은 편.
특히 <교실 이데아>의 백미는 곡 전체에서 쏟아지는 DJ 스크래치의 향연인데,당대의 신성 DJ이자 이후 본토에서도 최고의 DJ로 추앙받게 되는 DJ Q Bert의 솜씨이다.서태지와 당시에도 연이 있던 지누션의 션의 소개로 이 앨범에 참여했다고 하며,직접 자신의 장비를 들고 한국에 와서 서태지의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참고로 '95년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세션을 맡았던 국내 연주자가 '발해를 꿈꾸며'의 기타 애드립 부분은 후일 1박2일의 백두산 특집 티저영상에서 다시 한 번 써먹었다.[10] 다만 콘서트에서는 국내 세션맨이 다르게 편곡. 속주와 테크니션을 중시하는 피어스의 원곡보다 좀 더 유연해졌다.
실제로 서태지는 이 곡의 연주 버전을 8번 트랙에 집어넣었는데, '사운드 떡칠해놨으니 즐길 사람은 즐겨보라'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 반면 '교실 이데아'는 아예 크래쉬가 편곡까지 전부 새로 해서 크래쉬스러운 사운드를 내놓았다. 다만 멀티큐브와 연동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했기에[11] 천하의 크래쉬가 (미리 합주를 녹음해놓긴 했지만) 핸드싱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서태지 안티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시나위의 베이스 주자였던 서태지는 원래부터 본류라 할 수 있는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에겐 전향자 취급받고 있었고, 3집의 행보는 오히려 자존심 센 락매니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교실 이데아'에 협력하고 라이브에서는 아예 특별게스트로 참가한 크래쉬 같은 경우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나중에 인터뷰에서 보컬 안흥찬이 해명한 적도 있을 정도. 이 때가 PC 통신의 태동기라고 할 만한 시기였는데 음악 게시판 등지에서 많은 논쟁이 오갔었다.
크래시가 편곡하고 연주한 교실 이데아 95 라이브. 제대로 스래쉬메탈.
자세히 보면 서태지가 안무 한 부분 삐끗하는 부분이 있다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75위에 랭크되었다.
2 트랙 리스트
- 1.Yo! Taiji
- 3집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예고하는 듯한 트랙.
- 2.발해를 꿈꾸며
- 남북의 분단 상황을 얼른 끝내고 북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싶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서태지의 마음을 담은곡으로 서태지가 단순한 10대에게 인기있는 아이돌 가수가 아닌 사회문제를 다루는 의식있는 뮤지션임을 알린곡. 3집이 전체적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노래가 많았으므로 3집은 평론가들에게 서태지의 별명인 문화대통령 타이틀을 얻게 만들었다.
- 3.아이들의 눈으로
-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 발라드 곡으로, 서태지의 커리어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곡 후반부에 엄청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방송에선 모두 AR로 대체. 이후 콘서트에서는 제창으로 "완벽히" 대체 했다. 라이브를 자주 하지는 않아서,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태지의 화 전국투어/Quiet Night 전국투어 말고는 연주된 바가 없다.
- 4.교실 이데아
- 한국의 교육문제를 직격으로 비판하는 노래였으며 후일 H.O.T.(전사의 후예, 열맞춰), 젝스키스(학원별곡)등 초창기 아이돌 가수들에게 학원문제를 꼬집는 노래를 만들게된 장본인(...)스러운 노래. 이 노래를 계기로 수능몰입교육을 바꾸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살짝 있었으나...학교는 2016년 현재까지도 이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크래쉬(Crash)의 보컬 안흥찬의 참여도 화제였지만, 백 마스킹 '피가 모자라' 사건으로도 유명. 물론 우연의 일치다. 여담으로 TAP SONIC에도 등장한 바 있는데, 단타+긁기의 미친듯한 난이도 때문에 8레벨 보스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 5.내 맘이야
- 전형적인 펑크락 공식에 충실한 곡.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가사와 재미있는 펑크락 사운드가 즐거운 곡이다.
- 6.제킬박사와 하이드
- 서태지가 유명한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만든곡.사악하게 변해가는 지킬박사의 심경변화를 곡을 들으며 느낄수 있다. 중반부 지킬박사가 범행을 저지르는 중반부의 '내리쳤어'는 폭력성을 이유로 심의에 걸린다.
- 7.영원(永遠)
- 서태지의 미성을 느낄수 있는 순수한 느낌의 발라드. 서태지의 소녀팬들을 위한 곡이라고 봐도 무방.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별을 다룬 곡,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운드 때문에 김동률이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디즈니풍이다. 서태지가 디즈니 작품이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그렇다. 2008년 서태지 심포니에서 제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서 엄청난 퀄리티로 라이브앨범에 수록되었다.
- 8.발해를 꿈꾸며 (Inst.)
- 9.널 지우려 해
- 양현석이 작사를 했다. 발라드로 시작했다가 강렬한 메탈 사운드로 연인에 대한 이별을 외치는 강렬한 곡으로 서태지 콘서트에 단골로 올라오는곡.서태지도 양현석도 애착이 있는지 이후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YG소속 후배 가수들이 커버링하기도 했다. 특히 서태지 솔로활동 이후는 아예 Nell(2003~05 서태지컴퍼니 소속) 스타일로 새로 부른 버전이 따로 존재할 정도.
재발매판 추가 수록곡
- 10.Opening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1.널 지우려 해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2.너에게 (이제는 너에게)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3.Farewell To Love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김종서와의 협연. 이 곡을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모두가 세션이 되었다. 이주노는 원래 기타를 잘 쳤기에 베이스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양현석은 드럼을 새로 배워야 했다고. 춤 실력으로 갈고 닦은 박자감을 토대로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 14.태지 Solo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5.교실 이데아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크래쉬가 편곡하고 직접 연주까지 했다.
- 16.07 교실 이데아 (Remix)
3 제작진
- 기획: 최진열
- 프로듀서: 서태지
- 마스터링 엔지니어: 빌 마쩨띠 (Bill Mazzetti)
- 마스터링 스튜디오: 파이브 필 마스터링 스튜디오 (Five Feel Mastering Studio)
- 레코딩 스튜디오: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 (Conway Recording Studio)
- 드럼 테크니션: MR. DRUM DOCTORS T.M.
- 기타 테크니션: 케빈 스콧 (Kevin Scott)
- 베이스 기타 테크니션: 데이비드 프리드먼 (David Freedman)
- 디자이너: 권혁방, 임성구 (Ivy Production)
- 컴퓨터 그래픽스: 이욱재 (Shins Graphics)
- 사진: 임두현
- 카피라이터: 채송아
-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김국현
4 Special Thanks To Our Fan
깊은 것은 언제나 믿음이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들 -
믿음으로 마음이 닿아 있었기에
이제, 세 번째의 앨범을 여러분께 바치며
새롭게 시작되는 날엔
- ↑ 피가 모자라 사건, 방송 금지 처분 등등
- ↑ 그런데 피가 모자라 사건 당시 서태지 본인은 처음에 즐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백마스킹 같은 걸 아는구나 싶어서... 근데 반품이 되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 ↑ 참고로 이 사건에서 서태지 자신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지, 최근 발매된 15주년 앨범의 교실이데아 리믹스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는 '피가 모자라' 백워드 마스킹이 나오면서 얼굴에 덮인 신문지를 찢어버리는 장면이 담겨있다.
- ↑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북한 유적이란 점에서 남북화해 무드영상을 찍기엔 이 만한 장소가 없다. 판문점에서 공연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 ↑ 처음에 이주노도 이 선택을 두고 깜짝 놀랐다고.
- ↑ 웃옷을 앞치마처럼 둘러 입었다.
- ↑ 당시 이주노는 '태지야, 이건 아니잖아.'라고 했다고 후술.
- ↑ 서태지는 사운드덕후 기질이 강해서 혼자 지지고 볶고 찌고 해야 속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이 기질은 갈 수록 노하우와 짬이 붙으면서 더 강해졌다. 후에 낸 5집과 6집은 아이들 신경 쓸 거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데다가 서태지의 연주력과 사운드덕후 기질이 합쳐져 미친 듯한 퀄리티의 작품이 나왔다.
- ↑ 브루스 스프링스틴, 본 조비, 조 카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셀린 디옹, 엘튼 존, 에릭 클랩튼, 오지 오스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등과 작업했다.
ㄷㄷ - ↑ 당시 1박2일의 vice pd는 서태지 팬으로 여러 번 인증되기도.
- ↑ 지금은 컴퓨터로 싱크 맞춰버리면 끝이지만, 당시 멀티큐브는 그냥 영사기 같은 거라, 필름이나 비디오테이프로 구동되었다... 한 마디로 싱크 안 맞으면 절딴나는 시스템. 이걸 방지하려면 방송국 부조를 몽땅 옮겨와야 한다. PPT도 없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