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비판

1 음악적 역량에 대한 비판

서태지를 비판하는 입장 중 가장 주된 비판은, 당시 한국에서는 대중화적이지 않았던 미국 음악 스타일을 가져와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본인의 의도였는지 언론플레이였는지는 모르지만, 본인이 이에 관련한 잘못된 흐름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일종의 착각이 상당히 퍼져나간 경향이 있고 이로서 비판의 여지를 남겼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국 음악을 수입해서 파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역업자라는 별명을 붙여부른다. 물론 서양 음악을 따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고, 애초에 락이라는 장르의 모든 것이 기원을 서양에 두고 있긴 하지만, 서태지는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당시 대중적이지 않았던 서양의 음악 스타일을 적절히 이용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음악적 역량 역시도 과대평가되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의 수준에는 개개인의 주관 이외의 절대적인 비교 기준은 없지만, 서태지의 초기 음반들이 국내에서는 상당히 앞선 완성도와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도되었던 장르를 가져와서 만든 것에 불과한 그의 음악을 마치 세계 최고의 음악이라고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가 시도한 장르도, 그가 처음 들여왔다고 알려졌으나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1집과 2집에서 난 알아요하여가, 우리들만의 추억등에서 보여준 랩과 락의 결합에 대해 이동연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본인의 입으로 "한국은 흑인과 백인의 분리된 생각이 없으니까 이런 음악이 가능한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독창적으로 시도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말했으나 실제로 랩 음악에 록사운드를 결합한것은 이미 80년대에 Run DMC에 의해 시도되었던 것이다.

또한 3집 이후, 그리고 솔로 프로젝트로서 발표한 뉴메탈의 사운드를 도입한 6집의 경우, 기존 음악인들이 했던 음악 스타일에 비해서 대단할 것 까지는 아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1] 특히 스래쉬 메탈의 경우 서양에서는 80년대에 시작된 것이고, 국내에서도 다수의 팀들이 연주하던 음악이었다.[2] 물론, 이러한 음악들을 가지고 서태지 나름대로 소화하여 나름의 느낌을 부여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건 뮤지션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실제 같은 장르로 분류되는 밴드라고 해도 서로 비교해서 들어보면 전혀 딴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나, 어떠한 기초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사람은 없고, 역량에 대한 비판이라지만, 역량이라는 것도 자를 대서 비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위의 모든 내용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여겨질 수 있다. 결국 이 항목은 읽는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읽고 '서태지는 쓰레기다!' 같은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한 항목이 아닌, 읽는 사람 개개인이 생각하며 받아들어야 할 항목이라는 것이다. 그 유명한 The Beatles라도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둘 중 어느 한 입장이 틀린 것이 절대 아니고, 취향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2 일부 악질적인 팬들, 빠가 까를 만든다

2.1 개요

서태지 본인보다는 서태지의 팬덤이나 언론플레이를 지적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음악적 스타일을 차용하여 본인의 음악을 만든 것에 불과하나, 언론이나 팬덤에서는 서태지가 그러한 스타일을 처음 창조해낸 인물인 양 보도하고, 본인 역시도 딱히 긍정이나 부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3], 기존 음악 팬들, 특히 프라이드가 강한 이나 헤비메탈팬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는 주장이다. 기레기가 문제다

그런데 사실, 서태지의 실제 인터뷰 기사를 보면 "나는 해외 뮤지션(림프 비즈킷이나 콘 등)에 비하면 발톱의 때도 안 된다"고 하는 등 겸손한 표현이 많다. 또한 언론 기사도 엄밀히 따져 보면 서태지가 처음 그러한 스타일을 창조했다고 쓴 것은 없다. 서태지가 솔로 2집으로 컴백하면서 하드코어라는 명칭이 회자되기 전에도, 노바소닉 등의 밴드가 하드코어 장르 음악을 하는 것으로 매스컴에 소개된 바가 있는데, 대중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해 금세 잊혔고, 일반 대중들의 뇌리엔 서태지가 처음 한 것처럼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4]

또한 6집에서 절정에 달했던 하드코어 논란에 대해서도 서태지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태지 본인이 자신의 장르를 하드코어라고 말한건 맞지만, 서태지 안티를 하던 언더밴드들까지도 6집은 하드코어란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심지어 핌프 록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뮤지션들이 사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당시만 해도 코어-메탈의 구분은 골수 코어팬이 아닌이상 제대로 구분 안 하는게 보통이었고 이건 지금도 그렇다. 아니 구분을 못 한다. 당시 서태지를 싫어하던 뮤지션들에게도 코어-메탈의 개념자체가 전혀 안 잡혀 있었다고 봐도 된다. 애당초 뉴메탈이란 개념이 널리 퍼진때도 아니었고. [5]

단지 문제가 있다면 서태지가 어떤 장르를 했을 때 언론이 그 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해당 장르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겐 서태지가 이를 처음 시도한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서태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비주얼락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엑스재팬, 글램 락을 대표하는 데이빗 보위도 모두 그 장르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으니, 이를 부작위사기로 해석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

한편, 서태지의 음악계에 미친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음악을 서태지 이전/서태지 이후로 나누고 그 전까지의 음악계의 수준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언동도 서슴치 않는 경우가 많아 7-90년대 한국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서태지의 팬덤 중 일부 몰지각한 일부 팬들은, 서태지 식 록이나 메탈만이 진리이고 국내 인디 밴드 및 서양 밴드들의 음악은 배척하거나, 서태지가 시도했던 장르만을 최고의 장르로 우대하고 다른 장르는 무시하는 태도를 계속적으로 보이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후 서태지 본인은 Nell이나 Pia 등 실력있는 인디 밴드를 지원하여 인디 음악 및 록 음악의 저변을 넓힌 공로는 있기는 하나, 앞서 말한 팬들은 딱 거기까지만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거기서 나아간 것이라고 해봤자 모던 록이나 브릿팝에 대한 관심 정도이며 메탈의 경우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서태지 본인이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본인의 컨셉이며 개인 자유이나, 언론과 팬덤의 설레발로 인하여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어떤 음악을 좋아하든지 그것은 자유이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까대는 태도를 보인다면 좋은 소리를 듣기는 힘든 것이다. 처음에는 건전한 리뷰 내지는 비판으로 시작하였지만, 서태지의 팬덤이 그것을 비난 내지는 안티 행위로 인식하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까내리고 서태지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안티로 바뀐 사람들도 많다. 즉 빠가 까를 만드는 것. 이러한 안티 중에서도 서태지는 인정하되 그 팬덤을 싫어하거나, 심지어는 서태지 팬이면서도 서태지의 팬덤을 극히 싫어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태지 항목의 반론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까 vs 서빠의 구도는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게 서태지는 따라쟁이 vs 재해석한 명곡들의 구도라서 심판이 있어도 관점에 따라 판정이 다를 수 밖에 없다.[6] 문제는 눈살 찌푸려지는 신격화. 서빠들의 입장에서는 모함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과거 엔하위키 시절 비판 항목이 들어서기 전의 서태지 문서가 다른 문서들과 얼마나 괴리감이 있었는 지를 보면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다른 아티스트의 항목을 보면 업적과 병크, 칭찬과 까대기가 혼재해 있는 읽기 유쾌하게 작성되어있는 데 반해 서태지 항목만큼은 찬양 일색이었다. 서태지 항목에 몇 번 손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보통은 반론이 덧붙여지고 수정되어야 할 문구가 그냥 삭제된다. 심지어 음악적 평가 이외에도 개인에 따라 취향을 탈 수 있는 부분인 모기 소리 보컬이라든가 부족한 언변, 어이없는 TV프로 출연, 병적인 신비주의 등에 대한 지적도 그냥 삭제되어 버리거나, 객관성이 없는 비판이라는 식으로 반론이 덧붙여진다. 근데 이것은 사실 비판이라기보단 서태지의 독특한 점을 재미있게 묘사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못한다.

락 갤러리, 악숭[7] 등의 음악 커뮤니티에서 서태지 언급 자체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서태지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결국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고 전쟁으로 까지 번져 싸우게 되니까이다. 후술되었다시피 10년전의 떡밥을 가지고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서빠들도 지겹겠지만 그 덕분에 서까가 양산된 것도 엄연한 사실.

또한 서태지를 감싸고 도는 팬덤의 태도는 다른 모든 사람을 서까 또는 서빠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실 어떠한 뮤지션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서태지의 음악이 맘에 들더라도, 그 사람의 어떤 점은 맘에 안 들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만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는 순간 안티로 낙인찍어버리는 태도는 원래 그를 좋아하던 팬들까지도 치를 떨게 만들며, 새로운 팬의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그냥 빠순이에 가까운 태도일 뿐으로, 그들이 신격화하는 서태지라는 뮤지션의 이름을 오히려 깎아내리는 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태지컴퍼니 주최의 락 페스티벌인 ETPFEST 등에 출연하는 밴드가 맘에 드는데도, "서태지"라는 사람이 관련되었다는 것만으로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진짜 대부분의 십대들이 서빠였다. 그 이전에 댄스 음악 및 미국 음악을 듣던 음악 매니아들은 전술되어 있다시피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별이 빛나는 밤에나 듣는 순진한 시절이었고, 당시의 서태지는 십대들의 대통령이었다.[8]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해석되었던 시절. 은퇴도 정점에서 간지나게 했다. 물론 지금은 아이돌팬들과 비교했을 때 극성 팬들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뮤지션과 비교해 볼 때 그 정도 팬덤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이후로도 서태지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밀리언셀러를 한참 기록했다. 또 8집을 발매했던 시기가 2008년으로, 데뷔하고 큰 인기를 얻고 나서 15년이 지난 이후이다. 90년대를 장악했던 신승훈, 김건모를 비롯해 후배인 클론, H.O.T., god, 신화 등 중에서 누가 그 시점까지 큰 인기를 유지하고 엄청난 수의 팬덤을 유지하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없다고 해야 맞다. 역사적으로도 대중가수가 정점을 지난 이후에 15년, 20년 이후에도 대중적 인지도와 팬덤 수가 적다는 논리로 평가당한다고 하면 이 역시 서태지여서 필요 이상으로 까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9]

2.2 궁예질과 편가르기

사실 궁예질과 편가르기는 모든 팬덤, 어쩌면 인류 역사에 출몰한 모든 집단에서 다 나타나는 것이므로 서태지 팬덤도 예외는 아니다. 서태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과 친밀해 보인다는 이유로 안티로 의심을 받는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YG의 수장 양현석이 배출한 아이돌 빅뱅이 엠넷에서 노브레인과 합동 공연을 펼치자, '안티 서태지 공연에서 물의를 빚은 노브레인과 친한 것은 옛 동료를 배신한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는 팬이 일부 있었다. 그럼 엠넷은 안티 서태지 방송국인가?

2014년 10월에 서태지 음원과 악동뮤지션의 음원 발매일이 겹친 것을 둘러싸고도 그러한 해석이 있었는데, 서태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음에도 일부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이러한 논란의 연장선상으로 YG 소속 가수 자체를 적으로 여기는 서태지 팬도 있다.

특히 2014년 12월 3일에 열린 MAMA 시상식 서태지 공연 때 YG 소속 가수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치지 않자 '건방지게 모두 자리를 떴다'고 생각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오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카메라가 관객석만 내내 비추지 않는 한 그 많은 가수들의 모습이 화면에 모두 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락비의 지코가 서태지와 함께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빅뱅 멤버의 반응보다는 블락비 멤버들의 반응이 더욱 궁금한 시청자도 있을 수 있다. 서태지 순서에서 카메라의 방향이 블락비 멤버 유권이 있는 쪽을 향한 것은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덤으로 유권 주변에 있던 걸스데이, 에일리의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혔다.
이미 서태지 무대에 앞서 지드래곤과 타블로의 서태지 업적 찬양 발언이 나왔기 때문에 굳이 카메라가 YG 소속 가수의 모습을 계속 비출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지드래곤과 타블로가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이라도 올려야 할 듯

2014년 12월 21일에 방송된 SBS 가요대전 때도 YG쪽 가수들이 환호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약국 패밀리라고 싸잡아 까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SBS 방송이 항상 그렇듯 마지막 곡인 '마지막 축제' 공연을 중간에 끊고 방송을 마무리했으니 무대 전체의 반응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YG 소속 가수들이 작심하고 생깠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

더욱 큰 문제는 기자들이 게시판 반응을 보고 일부러 논란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 음원 발매 날짜 논란 기사도 사실은 팬들 사이트에서 먼저 나온 이야기를 기사화한 것이었다. 이런 논란은 설령 YG의 안티라 할지라도 서태지 팬이 아니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태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논란이다.

게다가 서태지 팬 사이에서도 에픽하이 등 YG 소속 가수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양현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들 모두를 '약국 패밀리'라 깐다는 것은 같은 팬들의 마음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10]

이는 아이돌 그룹이 태생적으로 악성 팬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멤버를 다 좋아하는 팬도 있지만, 어느 한 멤버만 편애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멤버를 다 좋아한다고 해도, 서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 한 그룹이었을 때처럼 살갑게 챙길 수 없기 때문에 가족으로 생각하고 응원하던 팬의 관점에선 이것이 서운함을 넘어서 배신으로 비칠 수가 있는 것.

2.2.1 양현석과 일부 서빠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얀데레

사실, 일부 서태지 팬이 YG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직후부터 있었던 뿌리 깊은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일부 양현석 개인 팬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해체키로 결정한 서태지를 비난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애초에 워낙 소수였고, 당시엔 '서태지 기념사업회' 등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추억을 보존하는 각종 행사를 기획하는 등 서태지와 아이들 모두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분위기였기에 표면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게다가 양현석이 기획사 양군기획(후에 YG로 명칭 변경)을 차리며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서태지와 양현석은 누가 보기에도 끈끈한 관계였다. 홍보 차원에서 스스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양현석은 훗날 흑역사가 된 솔로 1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 서태지는 '아무도 안 믿어'라는 곡을 주었고, 피처링까지 하기도 했다. 또한 양현석은 '은퇴선언'을 부른 시나위의 신대철을 겨냥한 듯한 '무시'라는 곡에 가사를 써서 신대철을 '머릴 길러댔던 돼지'라고 디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성 개인팬이 표면화된 것이 바로 이 시점이기도 하다. 양현석이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매스컴은 양현석에게 서태지 관련 질문을 쏟아 냈는데, 양현석에 여기에 일일이 답변하는 것이 일부 서태지 팬에겐 '추억팔이'로 비쳤던 것.

이로 인해 한때 PC통신에선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서태지가 6집으로 컴백하고 한동안 기획사가 없는 상태에서 양현석이 잠시 매니지먼트를 맡아주면서 논란은 즉시 사그러들었다. 또한 당시 '태지의 화(話)' 전국투어에도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둘의 관계는 상당히 좋은편이였다.[11] 여담이지만, 훗날 YG 소속 가수가 되는 세븐의 집 지하실을 서태지가 연습실로 쓰기도 했다.#

이후 2002년에 열린 제2회 ETP[12]에선 YG패밀리가 무대에 올랐으며, 서태지 15주년 기념 공연[13]에서는 빅뱅이 영상 공연 형식으로 참여해 '필승'을 부르는 등 한동안 양 팬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YG가 크게 성장하면서 이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YG가 각종 사건 사고로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것도 있지만, 더 이상 YG쪽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없었고, 서태지와 양현석도 몇 년간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두 사람이 연락을 자주 하는 스타일은 아니긴 했지만, 이것이 구구한 억측을 불렀다. 심지어는 양현석이 홍보를 위해 자신의 소속사 아이돌이 신인이었을 땐 서태지팬 코스프레를 하도록 했다가 이용 가치가 없으니 돌아섰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양현석은 2014년 12월에 방영된 '힐링캠프'에 나와 '자신이 가정을 꾸리면서 둘 사이에는 더 이상 공통 관심사가 없어져 다소 어색한 관계가 되었다'고 해명했으나, 애초에 양현석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던 일부 태지팬에겐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조차 제대로 기억 못하는 발언이 더더욱 불을 지폈다(...)[14]
특히 2NE1이 2집 앨범 타이틀 곡을 '컴백홈'으로 정한 것이 일부 서태지 팬의 어그로를 끌었다. 산다라박의 비니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특히 서태지를 연상케하여 노렸다는 느낌을 주었다.

안 그래도 서태지를 연상케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물론 제목이 같은 곡이 전 세계에 한둘이 아니고, 산다라박 패션은 오마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외 K팝 팬들은 '컴백홈' 하면 2NE1 노래만 생각하니 그저 안습. 그런 점에선 2NE1 쪽에서 서태지에 대한 오마주 의도가 있음을 해외 팬들에게 적극 알렸으면 좋았겠지만, 당사자인 서태지는 가만히 있는데[15] '서태지 허락 없이 도용했다'고 분개하는 것은 지나친 반응이다.

또한, 아무리 YG쪽에 잘못이 있다 해도,단순한 의심을 넘어 음모론으로 발전한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YG 팬 이상으로 YG 소식을 눈팅한다. 뜬금 없이 서태지 관련 게시판에 "YG에선 서태지 신곡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든지, "특정 포털에 YG 알바를 깔아 언플을 하는 것 같다"는 글을 올린다. YG 게시판으로 착각하고 글을 올린 것처럼 보일 정도. 여기서 더 나아가 심지어 YG가 포털을 고나리하기 때문에 서태지에 대한 안티성 기사가 나온다는 음모론을 펼치는거나, 서태지를 엿 먹이기 위해 MAMA 무대와 가요대전 무대에서 소속 가수들을 철수시켰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퍼트리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YG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서태지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싸이의 신곡 뮤직비디오에 정우성이 출연하는 것을 서태지를 엿 먹이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는 것. 힐링캠프 이지아 편에서 정우성이 긍정적으로 언급되었다는 게 그 이유다. 물론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이 따져 보면 여러모로 허점이 많다.

YG가 거대 연예 기획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포털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할 정도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업계 1위인 SM 엔터테인먼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재일한국인이 일본을 지배한다 주장하는 넷우익이 연상된다. 본격 YG 프리메이슨설

또한 양현석이 서태지를 무너뜨려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수만의 몰락을 기원하는 게 더 빠를 듯. 물론 2014년 10월 디스패치에서 악동뮤지션의 새 음원 발표 날짜가 서태지의 음원 발표 날짜와 겹친 것이 마케팅 전략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이는 서태지가 건재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이다. 서태지가 처절하게 몰락한다면 서태지를 이용한 언플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양현석이 굳이 서태지를 무너트리려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설령 양현석이 서태지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는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서태지는 차트 순위로 평가받는 인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으로서 높이 평가를 받는 인물이므로, 서태지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면 고작 국내 음원 차트 1위 자리를 놓고 다툴 필요가 없다. 이미 빌보드 차트 2위를 찍은 싸이가 있다. 따라서 설령 양현석의 전략으로 인해 서태지의 음원 순위가 광탈한 것이었다 해도, 서태지에겐 그다지 타격을 주는 게 아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이는 일종의 얀데레로, 이러한 글들을 올리는 이들의 상당수는 본래 YG 소속 가수와 서태지의 콜라보레이션을 학수고대하던 이들이었다. 안티와 팬은 한 끗 차이 과거 팬들 사이에서 나온 팬픽만 보더라도 서태지와 양현석은 애틋한 커플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수만은 이들에게 불행을 안기는 악의 축이었다[16]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 오히려 '누구처럼 언플은 안 한다'며 이수만을 개념인으로 치켜세우는가 하면, SM 소속 아이돌은 개념인들인데, YG는 범죄자 소굴이라는 극단적인 대비를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는 신생팬들이 이들의 음모론을 사실인 줄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러한 분위기를 바람직하지 못하다 보고, 설득을 시도하는 서태지 팬들도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서태지 갤러리의 경우 뜬금 없는 YG글은 절대로 개념글에 올라가지 못하며, 설령 올라갔다 하더라도 궁예질이란 비판을 받는다. 또한 서태지 팬인 척 하고 일부러 YG를 끌어들이는 어그로 패턴이 흔하게 발견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17]

2.3 꼰대

앞서도 지적된 문제이지만 서태지가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서태지 이후의 아이돌 음악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팬들도 있다. 또한 현재의 아이돌이 서태지의 음악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다.

윤하가 유희열을 백발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고 했다가 토이 팬들에게 악플 세례를 받은 것과 비슷하게, 애프터스쿨의 나나는 '서태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발언했다가 서태지 팬들의 악플을 받았다. 또한 MAMA 무대에서도 서태지가 소격동을 부를 때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현재 아이돌들이 대선배를 예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소격동이 조용한 음악이기 때문에 조용히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볼 수도 있다.크리스말로윈은 뭘로 설명할건데 이후 <컴백홈>에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즐기는 아이돌이 많았고, 실제 기사들도 그 점을 강조했다

현재 아이돌이 서태지의 자식뻘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의외로 큰 반응이었다 볼 수 있다. 또한 방송의 음향이 현장과 달라서 빚어진 오해도 일부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컴백홈 시작할 때 걸 그룹 멤버들이 다리 꼬고 앉았다고 비난을 받은 것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장면은 베이스 연주가 조용하게 흘러나올 때의 모습이다. 보통 조용한 연주가 나오면 가만히 앉아서 연주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소리만 제대로 들렸다면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으로 여겨졌을 것이지만, MAMA 본방 때는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향이 열악했기 때문에 연주를 듣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아시아권에서의 인기만을 기준으로 아이돌들에게 상을 몰아주어, 정작 대선배인 서태지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 시상식의 편향성에 있는 것인데, 일부 팬들은 엉뚱한 곳에다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도 서태지 무대에 대한 반응이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아이돌에 대한 필요 이상의 비난은 신생팬 유입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현재 아이돌 팬덤과는 다르다는 지나친 자부심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서태지 신혼집 침입 스토커는 30대 여성이었다.

2.4 빠와 까의 콜라보레이션

한편,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의도적으로 서빠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2년에 열렸던 제2회 이티피 페스트의 경우 YG 패밀리가 출연하는 것을 비판하는 서태지 팬들의 반응을 왜곡하여 '서태지 팬들이 듣보잡 인디 밴드들 출연을 반대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록 마니아들이 서태지 팬들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인터뷰 진행자가 유도신문성 질문을 던져 평론가에게서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서빠를 자극해 졸지에 그 평론가가 서까로 몰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의도적으로 서태지의 표절 시비를 언급하면서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가 외국 음악의 모방을 받았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질문을 받은 평론가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답변을 하게 되는데, 이를 본 서태지 팬들은 그 평론가가 서태지의 음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어그로성 떡밥을 던지는 사람들에 의해 서태지 팬들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 이를 서까가 이용하여 빠와 까의 콜라보레이션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2.5 나무위키에서의 과장된 서술

여기서 잠깐 서태지 문서나 관련 항목에서 사실과 거리가 있는 서술이나 미사여구를 몇개 예를 들면...[18]

  • 우연히 듣게 된 랩음악에 심취해 와불면벽하는 스님처럼 반년동안 방에 쳐박혀 음악 공부를 하는 서태지
    • 있을만한 에피소드라고 해도 묘사가 닭살스럽다... 그렇지만 스님에 비유한 표현은 전매니저 최진열이 쓴 "태지 주노 양군과 함께한 1036일"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서빠들의 찬양을 위한 표현이 아니다.
  •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잠적기를 갖는 현재의 국내 연예계의 시스템은 사실상 서태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 과언은 아닌것이, 서태지 안티들은 이전에도 많이 그러했다고 주장하곤 하는데, 많이 그러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궁금하다. 실제로 서태지와 같은 그런 경우 드물었다. 물론 인기가 정점을 지난 경우는 그러했을지 몰라도. 그 시점에선 인기가 정상에 올라선 가수들은 쉬지도 않고 앨범이 줄줄 나왔다. 가왕 조용필 마저도 전성기였던 80년대에는 1년에 한 앨범 발표라는 계약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한 앨범은 본인이 제작에 참여하고 다른 앨범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외부에 맡긴 사례가 있다.
  • 5, 6, 7집은 발매 당시엔 인정 못받다가 후에 명반으로 인정받음
    • 애초에 5, 6, 7집 음반 자체가 나왔을 때 평가절하 당한 것도 아니었다. 서태지의 솔로 음반들은 최소한 수작 이상의 평가를 늘 받아왔다. 또한 이 음반들이 시간이 지나며 갑자기 높게 재평가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발매 당시 격렬한 찬반 양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서태지에게 호의적인 평론가가 주는 점수와 부정적인 평론가가 주는 점수가 항상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평론가가 포문을 열고 이를 긍정적인 견해를 지닌 평론가가 반박하는 식인데, 아무래도 최초의 의견이 기억에 남기 쉽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제기된 표절 의혹의 대부분은 장르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사운드의 유사성에 의한 것으로, 해당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 물론 표절 논란이 불거지게 된 데에는 해당 장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의 오해가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초의 표절제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다다. 해당 장르의 팬들이 비슷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거고, 극렬 서까가 그걸 과장하면, 서빠들이 쉴드치는 것이 일상적인 루트... 그런데 지금까지 표절 논란은 많았건만 단 한번도 언론매체에서 표절 논란을 제기한 적은 없다. 심지어 논란이 불거졌던 korn 이나 사이프레스 힐의 경우에는 직접 '표절이 아니다. 오히려 곡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 노력파이다. 어느 정도냐면 기본 합주 시간이 3-4시간이다.
    • 다들 그 정도 한다. 더 하고 싶어도 합주실 비용이 없어서 못하는 밴드가 수두룩하다. 근데 이거보다 더하지 않아?
  • 서태지 군면제 사유는 정신질환이 아닌 위천공과 중졸 학력
    • 당시 기사 검색해보면 그냥 나온다. 서태지는 정신질환으로 군면제를 받았다. 그런데 이는 네이버의 옛날 신문 기사가 당시 기사들을 그대로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사가 나온 시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신문사마다 내용이 모순되는 경우도 있다.(사실 이는 다른 연예인 기사도 마찬가지로, 임재범이 성폭행을 해서 출연 금지를 당했다는 루머도 사실은 한 언론사의 오보 때문인데, 해당 언론사는 아직도 사과나 정정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일단 서태지 측의 해명에 의하면 당시의 기사는 전부 정정되었다고는 한다. 실제로 중졸 학력이 면제 사유라고 나온 기사도 있다. 링크
  • 특히 락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정부 방침에 의해서 불온한 장병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입대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때 사유가 보통 정신질환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런 루머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 터무니없는 과장. 록커 중에도 군필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이는 서까를 자극할 뿐이다. 그보다는 학력이 주된 사유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당시엔 중졸도 면제 사유가 될 수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였기에 청년 인력은 넘쳐났지만, 군대에 필요한 장병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밥값만 해도 얼마냐...) 그러나 지금은 저출산에다 병역 비리 문제로 기준이 강화되어 당연히 중졸로는 면제를 받을 수 없다. 이청용이 왜 중학교를 중퇴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 컴백홈 발표된후 통계에서 가출 청소년이 절반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물론 일부 사례가 뉴스를 통해 보도된 바가 있긴 하나, 전체적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 림프 비즈킷이랑 은 서태지 덕분에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 이전에도 팬덤이 있었다. 물론 서태지를 통해 림프 비즈킷이나 콘을 알게된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 전세계 최다 음반정보 사이트인 올뮤직닷컴에서 좋은 평점을 받았기 때문에 음악 적으로 서태지를 까기 힘들어졌다
    • 올뮤짓닷컴은 최다 음반 정보로 이름 높인 곳인 만큼 리뷰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매체 취향이 다르므로 어차피 깔 사람은 깐다. 리뷰보다는 음반 정보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온 리뷰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극렬 서까가 아닌바에야 서태지가 음악 완성도있게 잘 만드는 거 정도야 안다. 외국 평론가들한테 그 정도 평론받는 게 개과천선 할 정도로 신기한 일은 아니란 소리. 한국의 음악평론가 몇몇이 이런 자국 문화계 무시에 빡쳐서 컬럼도 쓴 바 있다. 그러나 리뷰보다는 음반 정보로 유명하다해서 올뮤직 가이드가 볼 만한 가치가 없는 허접한 곳은 아니다. 피치포크 항목에 언급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올뮤직 가이드가 구약성서이면 피치포크는 신약성서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 참고할 만찬 가치는 있다.
또한 이곳이 아무에게나 후한 점수를 주는 곳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게, 신스팝의 거장 디페시 모드의 정규 앨범 중에는 서태지 7집보다 별점이 다소 낮은 것들도 꽤 있다. 더욱 심한 것은 메탈리카 항목인데, 1996년 Load 앨범부터는 점수가 매우 짜다.(얼터리카에 후하지 않은 듯)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는 피치포크에 비하면 후하게 보일 뿐이지, 거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이곳 또한 냉정한 것이다. 이는 피치포크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는 릴 웨인보다는 지드래곤 2집에 더 높은 점수를 준 적도 있었다.
이전 버전에서 서태지 팬들이 리뷰를 요청했는데 나쁜 얘기를 어떻게 쓰겠냐는 말도 있었으나 이는 6집 때 웹진 리뷰 추진과 혼동한 서술인 듯. 올뮤직닷컴에 리뷰가 올라온 사실은 팬들 사이에서도 뒤늦게 알려졌다. 서태지 7집은 2004년에 나왔는데, 올뮤직에 리뷰가 올라온 사실은 4년 후에야 기사화되었다. 그리고 설령 요청했다 할지라도 어차피 관심 없으면 리뷰를 써 주지도 않는다.
  • (난 알아요 표절 의혹 반박 중에) 곡자체를 유심이 들어보면 난 알아요는 90년대초 당시 국내외적으로 드물었던 메틀과 랩을 크로스오버한 곡임을 알 수 있을것이다.
    • 엄밀히 말해 힙합의 크로스오버는 이미 여러 뮤지션이 시도한 바 있다. 1986년 발매된 힙합 그룹 Run DMC와 하드록 밴드 에어로스미스의 콜라보레이션인 Walk This Way가 빌보드 차트에서 5위까지 오른 적도 있다. 그러나 메탈 사운드와 의 조화는 RATM 등에 의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그 년도가 대략 90년대 초임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도 꽤 빠른 시기에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 6집 녹음 당시 수많은 드러머로 녹음을 시켜봤는데, 맘에 드는 사운드가 나오질 않아서 본인이 직접 드럼의 소스를 녹음하여 일일이 집어넣은 거라고는 한다. 물론 미디로 찍은 거 하고는 생판 다른 작업이니 착각은 금물.
    • 오히려 그게 더 착각. 본질적으로 미디로 찍는 작업하고 다를 바 없다. 샘플링 기법으로 소리는 샘플링을 했을지라도 미디 신호에 따라 소리가 나오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상한 설명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수정되었다.

3 앨범에 대한 이야기

3.1 서태지 솔로 2집

2000년도에 출시된 이 앨범이 국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마이너였던 랩코어, 뉴 메틀을 인기의 노래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라고들 생각하는 서빠들이 많은데,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그런 류의 음악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었으며, Rage Against The Machine, KoRn, Limp Bizkit 등은 서태지 컴백 전부터 한국에서도 인기있던 밴드였으며, 이런 스타일의 국내 인디밴드들이 이미 결성되어 활동중이기도 했다. 서빠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국내에선 생소한 마이너 밴드였는데 서태지 덕분에 한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말은, 원래 그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주객전도에다가 모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외국이나 국내의 상위문화에서 이미 유행하던 음악들을 서태지가 받아들여 시도한것을 외국문물이나 인디씬에 무지하던 하위문화인 어린이 및 청소년 계층이 그것을 서태지가 창조한 고유의 음악으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촌극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국내 대중들에게 생소한 장르인건 사실이며, 그 들이 서태지의 컴백과 음악으로 생전 듣도보도못했던 장르를 접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서태지 이후로 한국에서 뉴 메틀하는 밴드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거나 인기를 거뒀는가?를 생각해보면 서태지 덕분에 인기를 끌게 되었다라는 말 자체는 애초에 대꾸할 값어치도 없는 치기어린 서태지팬들의 착각일 뿐. 서태지가 들고나와서 인기 끌었다고 다른가수들이나 밴드들도 따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팬들은 여전히 과거에 살고있는것이다.

또, 시나위출신인 서태지의 예로 들면서 서태지는 원래 을 해오던 사람이라서 조예가 깊다고 하며 원래 하던 장르를 다시 찾아간 것 뿐인데 무슨 무식한 소리들하냐고 서태지의 팬들은 주장하곤 했었다. 실제로 시나위출신인건 맞지만, 이미 서태지가 솔로2집을 내기 한참전에 서태지의 행태에 대한 비판곡인 '은퇴선언'이 이미 시나위 앨범으로 나왔던 상태. 서태지를 디스하는 곡을 수록하여 이미 서태지팬들에게 각종 협박/위협등을 당할정도의 시나위로서는(혹은 팬들은) 언제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언제는 시나위 출신이란게 정당성을 심어주니 참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이 여러 매체에 나와서 한 소리나, 최근의 신해철의 죽음으로 각종 팟캐스트[19]에 출연해서, 시나위 멤버였을적에 조차 서태지레드제플린이 누구에요를 시연하셨다고 한다. 다만 이때 서태지는 이제 음악의 세계에 막 발을 디딘 고등학생이었음으로 이걸 문희준하고 등치시키는건 억지다.

좀 원점으로 돌아와 레드제플린을 모르는건 분명히 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유명한 뮤지션을 모르며 락을 한다는거 자체가 깊이 있는 락커는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시나위 시절 서태지는 고등학교 중퇴한 한 소년이었고, 신대철의 증언에 따르면 그냥 시나위의 팬이라 시나위 노래들의 코드를 잘 외우고 있는 수준이었으며 당시에 와해전수준까지 내몰렸던(임재범이 갑자기 군대에 갔고 2집의 김종서가 급탈퇴를 하였으며 3집의 대실패로 팀해체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 시나위에겐 더 여유롭게 멤버를 구축할 만한 수준이 안 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레드제플린은 결국 시나위에 들어와서 신대철이 들어보라고 추천해줬다고...

참고로 계간지 <리뷰> 1997년 겨울호에도 비슷한 인터뷰가 나오지만, 늬앙스는 다르다[20] 음악 경력은 짧지만 눈빛만을 보고, 즉 향후 성장 가능성과 열정을 보고 기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서태지의 나이가 어렸음도 고려해야 한다. 당시 10대였던 서태지에겐 1969년에 데뷔한 레드제플린보다는 80년대를 대표하는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머틀리크루가 친숙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서태지가 처음 록을 접했던 것은 80년대 초였지만, 한국 록의 대부를 아버지로 둔 신대철은 그보다 훨씬 일찍 록 음악을 접했으므로 신대철의 발언은 세대 차이도 고려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신대철이 록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레드제플린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신대철에겐 레드제플린이 친숙했겠지만, 80년대 헤비메틀 밴드를 통해 록을 처음 접한 소년 서태지에겐 옛날 가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80년대는 헤비메탈의 황금기로, 지금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추앙받는 메탈리카, 메가데스, 잉베이 맘스틴, 아이언 메이든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헤비메탈 뮤지션들이 모두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으니, 그 시대 음악만 파도 들어야 할 음악의 범위가 어마무시하게 방대하다. 80년대 메탈 덕후였던 서태지에게 그 이전 시대 음악은 관심 밖이 될 수밖에 없어을 것이다. 이미 그 때부터 록 음악은 범위가 워낙 방대해져서 록커 사이에서도 관심 영역이 다른 경우가 많았고, 시나위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김종서만 해도 음악 취향이 신대철, 서태지와 달랐다.
누구나 처음에는 동시대 가수들의 노래를 계기로 음악에 입문하고, 그 후 경력이 쌓이면서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을 접하고, 원래 관심 없던 장르의 음악으로까지 관심을 넓히게 된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서태지가 처음에 레드 제플린을 몰랐다는 것이 서태지 솔로 2집의 진정성을 깎아내리거나, 서태지 음악 인생 전체를 깎아내리는 근거는 될 수 없다.아무리 첨에 음악 무식자라도 20년 넘게 음악을 들었다면 더 이상 음악 무식자일 수 없다.

무언가 대단한 컴백을 기대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는 이제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옛날처럼 듣도보도 못한 음악이 아니었다. 서태지는 전혀 새롭지 않았다. 서태지가 무언가 바꿔줄줄 알았던 기대는 차츰 냉소로 바뀌었고, 이 때다 싶었는 지 각종 언론과 음악 평론가들은 신나게 서태지를 까댔다. 문화적 파괴력을 이 시점에서 완전히 잃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당시 신승훈 김건모도 밀리언셀러를 간신히 하거나 밀리언셀러지위에서 내려왔다. 전성기 지난 가수가 120만장 판매고면 누가봐도 괜찮을 편이다. 더군다나 장르는 국내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이너한 메탈.

120만장 판매량으로 폄하는 하는건 지나친 빠에 대한 비판의 글에서 오히려 서태지에 대해 지나친 기대감데 대한 배신감을 이야기하는듯한 위화감에 생기는 주장인듯보인다. 그 이후로 10여년도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보면 그 정도면 잘한것이라는게 대세인듯.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빠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적 파괴력이 없다고 까고 있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당시 태동기를 넘어서 인디신에서는 안티 서태지 운동을 전개했다. 사실 그 때 생각해도 억지스런 트집잡기였고, 후에 노브레인 등의 몇몇 인디밴드들은 그저 한번 튀어보려는 것 이상의 시도는 아니었다고 고백한 바도 있지만, 당시의 중2병쯤 되는 인디 밴드들과 그 팬덤에서는 서빠들의 락 공연에 가서 풍선 흔들기서태지 덕분에 Limp Bizkit같은 애들이 한국에서 인기라든가 콘보다 서태지가 더 좋은 거 같던데?라든가 하는 아이돌 빠순이 같은 행태에 좀 빡쳤던 거. 게다가 자기네들이 열심히 락의 저항 정신, 순수성 그런 거 추구하고 있는데, 서태지가 갑자기 나타나 그저 흉내낸 음악을 미친듯이 팔아치우고 있으니 서태지로 대표되는 상업주의적 가요판에 대한 저항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지금 들어보면 개소리지만 다양성의 시대로 가는 과도기적인 시점에서 벌어지는 부작용 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 일단 무슨 음악이든 상업적인 성과가 없으면 굶어 죽는다. 또한 그때 안티서태지 하던 노브레인은 멤버 교체 이후 상업적 펑크로 방향 틀었고, 닥터코어 911은 이정현 무대 뒤에 서서 핸드싱크 선보인거 생각하면 코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21]

3.2 음악 스타일

참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표현해내고, 만들어내는데다 한곡 한곡을 따져봤을 때는 꽤나 물건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팬이건 아니건 중립적으로 봤을 때 이런 성향이 디스코그래피는 물론 앨범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4집에서의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와 Come Back Home을 수록하면서[22] 앨범 자체 곡의 통일성을 무너뜨린 것이라든가[23] 6, 7집에서 8집으로 넘어가면서의 과도한 음악 스타일의 변화는 디스코그래피 자체의 흐름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4집처럼 같은 앨범의 수록곡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취향에 따라서 곡마다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며, 솔로활동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도 각 앨범마다 팬층이 크게 나뉘어지는 편이다. 특히 5, 6, 7집에서는 그런 게 그나마 적었지만, 8집에서의 호불호는 정말 명확하게 갈릴 정도.

딱히 본인이 하고 싶은데로 할 자유가 있으니 고정스타일이나 고정팬을 노릴 필요는 없지만, 프로젝트음악도 아니고 본인의 정규앨범자체가 이렇게나 스타일이 들쑥날쑥한 것에 대해서는 팬들도 유감을 표하고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서태지 끝까지 좋아하고 싶긴한데, 7집에서 매력의 랩과 크로스오버가 없어진 건 아쉽다.", "서태지 끝까지 좋아하고 싶긴 한데 8집은 영 귀에 안들어온다. 6, 7집이랑 너무 이질감 든다."라는 식으로.

그런데 사실 한 앨범의 곡들이 통일성이 없다고 깔 수는 없는게, 앨범을 받아드리고 구성하는 기준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골수적인 코어 팬층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고정팬은 별로 없는 뮤지션이 된 셈.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발매 되었을 때 2집 당시 팬들 상당 수가 떨어져나갔었다. 떨어져 나간만큼 신생 팬들이 들어섰고(...). 이는 7집 활동 후 8집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가수가 년차가 더해가면서 음악적인 변신을 더해가는것이 비판의 이유가 될순없다. 이런 계열로 가장 이질감이 큰 가수가 이승환이다. 감미로운 발라드로 인기를 끌었으나 본인은 락을 선호해서 갈수록 락의 비중이 높아진 앨범을 발매하고 콘서트도 신명난 락페스티발이 된다. 발성도 갈수록 자기 취향 발성이 나와서 호불호가 명백히 갈린다. 김건모같은 경우는 신나는 댄스곡에서 소울풍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김건모의 스타일 자체가 원래 소울풍이었기에 잘 어울리고 무난히 넘어간편. 신승훈도 변신을 꿈꾸었으나 목소리 자체가 변신할수없는 목소리였고, 가수 이소라는 아예 락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해철 역시 개인 앨범은 발라드계열이었다. 즉, 다른 가수에도 흔히들 일어나고, 서태지가 아니었으면 크게 까일 일도 아닌 일인 것이다.
  1. 이미 그 전에 상당한 수의 한국 인디 밴드들이 시도하여 주목받기도 하였다. 물론 락 자체가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기 때문에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2. 그 중 하나가 서태지가 과거 재직했던 시나위이다.
  3.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재산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부작위에 의한 사기로 볼 수 도 있다. 판매자로서의 서태지는 쌍무계약의 일방으로, 상대방인 구매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지게 되는데, 상대가 부족한 정보 때문에 기망에 빠져있는 것을 이용하여 재산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작위사기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4. 실제로 노바소닉 보컬이었던 김진표는 "우리가 하드코어 한다고 할땐 아무도 몰라주더니 서태지가 한다고 하니까 다들 주목하더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불평한 적도 있다.
  5. 뉴메탈의 전조는 90년대 후반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2세대 밴드들이 인기를 끌고 한국에 청취자가 많아진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6. 서빠들이 외국 평론가들에게 평론을 의뢰한 것도 괜히 심판을 부른 격이라고는 하나, 사실 평론 의뢰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알리기 위해 나서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7. 여긴 정확히 말하면 자기도 서태지를 좋아하면서 서태지 팬들을 까는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것도 2000년대 중반 정도까지의 이야기고, 악숭 망하고 악숭 유저들이 다수 유입된 Rock Chicken 에서는 오히려 서태지에 대해 호의적인 편이다.
  8. 수학 여행 가서 반 대항 장기자랑하면 10반 중 8반이 서태지 춤을 추었던 시절.
  9. 2014년 10월, 즉 데뷔 22년차가 된 시점에서 서태지가 아이유와 9집 선공개곡 소격동의 음원을 발매해서 당일 음원 1위에 올랐다. 물론 가왕 조용필이 그 전에 컴백해서 좋은 실적을 올린 적이 있지만, 어쨌든 여전히 팬덤이 어느 정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성기 이후 20여년 지난 가수에게 폭발적인 팬층을 기대할수는 없는건 당연하다. 이 역시 서태지라는 이름에 과잉 기준을 설정해서 비판한것 뿐.
  10. 에픽하이 같은 경우 YG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는지라 사실 여기 들어갈 예로는 부적절하다.
  11. 라이브 앨범 수록곡 중 '컴백홈'하고 '하여가'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12. 서태지가 기획해 2001년에 록 페스티벌로 현재는 열리지 않음
  13. 서태지의 곡을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공연으로, 서태지는 직접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14. 본인은 8년전이 마지막 만남이였다고 하나 정작 8집 활동 기록을 담은 dvd에는 6년전 2008년 당시 만난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15. 저작권에 깐깐한 서태지가 이런 일로 가만히 참고 있을 위인이 아니다.
  16. 이는 H.O.T 전성기 당시 서태지팬덤과 H.O.T 팬덤이 앙숙이었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등장한 아이돌 그룹인 데다가 십대들의 대변자 콘셉트였기 때문에 서태지의 저항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먹은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17. 뜬금없이 서갤에 가서 양현석이 엑소 컴백을 방해한다는 음모론을 편다거나.
  18. 지금은 수정되어 찾을 수 없는 문구도 있다.
  19. 대표적으로 이이제이 신대철 편
  20. 사실 팟 캐스트 이이제이는 진행자가 서까라 처음부터 악의적인 방향으로 방송을 이끌어갔음을 고려해야 한다. 초대 손님의 발언보다 진행자의 발언이 앞선 방송이었던 것이다. 반면 계간지 리뷰에서 김호경은 처음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 신대철이 이야기를 최대한 풀어 나가도록 인터뷰를 진행했다.
  21. 사실 락이란 장르나 힙합이란 장르의 저항정신타령이 또 한편으로 중2병의 또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이하늘의 미아리복스발언이라든가 문희준이 락을 한다는 이유로 죽도록 까인것만봐도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가 또 다른 권위가 되어, "감히 너 따위가 우리 흉내를 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선 락이 무슨 벼슬인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
  22. 곡을 넣자고 제안한 건 양현석이었다. 양현석이 만악의 근원
  23. 생각해보라. 슬픈아픔과 Come Back Home 둘 다 명곡인 건 사실이지만, 한 앨범의 수록곡들로 생각해보면 절대 한 앨범 안에 들어가 있는 곡이라고는 일절 상상이 안갈 정도로 스타일이 정반대의 곡이다. 앨범자체가 서태지와 아이들 셀프프로듀스 방식이었기 망정이지 외부 프로듀서 썼으면 둘 중 한 스타일이 갈려 앨범에 수록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실제 뮤지션 중에서도 저런 식으로 앨범의 곡을 구성하는 프로듀서들도 드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