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1 先生

일반적으로는 교사를 칭하는 표현이다. 사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의사선생이나, 사람에 따라서 2인칭 대명사로 선생을 쓰기도 하는 등 바로 아래 문단에서 쓰이는 존경의 의미가 상당히 남아있다. 순수하게 남을 가르치는 직업으로서 교사를 일컫는 단어라기보다는 전문 지식과 인생의 노하우를 겸비한 존경하고 따를 만한 사람을 일컫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상담이나 자문을 받을 때 상담을 해주는 전문가를 그 사람의 전문분야에 관계없이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다.[1])

원래 선생이라는 단어 자체의 뜻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역시 관직에 있지만 직급이 조금 낮은 사람이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유래는 중국 "남송"이다. 정확한 시기를 말하자면 그보다 과거에도 쓰인 흔적[2]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었고 오늘날처럼 널리 쓰이는 확고히 주류단어가 된 것은 남송 시절 이후로, 그 때부터 유행한 것으로 본다. 그 전까지 진나라나 한나라 때부터는 "경(卿)"[3]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당나라 시절에는 "랑(廊)", 송나라 때에는 "현(賢)"[4]을 주로 썼다고 한다. "선생"은 남송 시절 기록부터 많이 등장한 걸로 보아 그때부터 "현"과 함께 쓰이다가 독보적인 단어로 쭉 쓰이게 된 걸로 보인다. 본래의 뜻이 관직에 있는 손윗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었으나 유행이 된 후 의미가 확장되어 "가족관계가 아닌 손윗사람(어른, 어르신)"이나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점점 변해가게[5] 되고 원나라 시절(고려)과 명나라 시절(조선)에 한반도에도 들어와서 자리 잡은 단어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조선은 "주자학"[6]의 영향으로 중국 쪽 의미보다 굉장히 빡빡하고 좁은 의미로 쓰인다.[7]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선생(先生)이란 표현은 학식과 덕이 높은 자에게만 붙이는 칭호였다.[8] 현대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김선생", "이선생" 하는데 당시에 아무에게나 이런 표현을 쓰면 큰 실례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퇴계 이황은 대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이란 칭호를 꺼려왔는데, 임종 시 후손들이 묘지명에 멋대로 "퇴계선생"이란 칭호를 쓸까봐 두려워 죽기 전 스스로 묘비명을 썼다. 참고로 그 당시에 영의정 셋 나온 가문이 대제학[9] 하나 나온 가문과 맞먹고 대제학 셋은 선생 하나 나온 가문과, 선생 셋은 처사 하나 나온 가문과 맞먹는다.고 평한 걸로 보아, 강력한 관료체제 하의 조선시대에도 고위 공직자보다 배움과 가르침에 통달했음을 이르는 선생과 처사라는 칭호가 더 큰 명예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학문이 뛰어나거나 본받을 점이 많은 위인 뒤에 선생을 붙여 존경한다. 퇴계 이황 선생, 율곡 이이 선생 등은 전자, 단재 신채호 선생, 백범 김구 선생은 후자의 예가 된다.

중국, 북한에서는 한국의 '씨', 일본의 'さん'처럼 상대를 존중하는 호칭으로 쓰인다. 선생은 앞으로 아이를... 특히 중국은 先生에 특정 직업이나 학식이 풍부한 사람에 대한 의미는 거의 없으며, 영어의 미스터처럼 성인 남성의 성, 본명 뒤에 붙이는 경칭이나 남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므로 주의.

일본에서도 보통 교사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고, 그 외에 시인, 소설가, 만화가 등의 작가를 높여부를 때도 사용된다.

한국 한정으로 높여서 부르는 말인 선생님이 있다.

2 트라이건의 등장인물

본편에서 본명은 나오지 않고 선생이라는 호칭만 쓴다.

사해의 마을 출신으로 사막 한 가운데 쓰러져있었던 밧슈 더 스탬피드를 발견하고, 그를 마을로 인도해 준 사람. 그때문에 오래전부터 밧슈와 알고 지내던 사이고 그의 고뇌도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밧슈에게 붉은 코트와 의수를 달아준 사람이기도 한다.

트라이건 맥시멈에서 밧슈의 요청으로 브래드와 같이 사해의 마을을 떠나 밧슈와 다시 만나 업그레이드된 코트와 의수를 달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뒤를 몰래 밞았던 레오노프 더 퍼펫마스터에 의해 사해의 마을이 노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망하여 퍼펫마스터의 인형이 되는 굴욕(?)을 맞이했다.

  1. 좀 극단적인 예로, 요즘 젊은층들이 사주타로 등의 점술가와 상담을 할 때 점술가를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그러나 위의 뜻과 조금 다른 뜻으로 쓰였다.
  3. 진나라 이전은 "자(子)"가 많이 쓰였고, 많이 깍듯하게 높이는 표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 맹자, 장자, 노자 등의 "자"다. 이후시대의 "경" 역시 깍듯한 표현이었으나 그 이후 시대부터의 호칭들은 좀 더 표현 범위가 넓어져 깍듯함(?)이 조금씩 줄어든다.
  4. "현"은 원나라 때까지도 쓰인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5.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변형이라고 보는 게 어떤 의미에선 더 맞을 수 있다. 원래 이 단어가 퍼져나갈 초기에는 손윗사람이라 해도 급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경우에도 많이 쓰였고, 친구에 가까운 사회관계, 그러니까 사회친구관직친구, 사회선후배끼리도 썼던 단어인데, 현재는 명백히 위아래가 크게 갈리는 경우의 손윗사람, 그것도 가르침의 관계가 있는 경우 위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위에 나온 고대 중국의 호칭 범위보다 좁을 지도
  6. 혹은 성리학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장기간 주류 유학이 아니었으나 특별하게 조선에서는 오랜 기간 유학 쪽 주류 학문이 된 영향으로 조선 유학이 중국과 달리 엄격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일단 남송시대 사람이면서 수백년전 한물간 호칭인 "자(子)"로 자신을 칭하게 한 주자(진짜 이름은 주희)만 보아도 뭔가 좀 주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지 않은가..
  7. 본디 "자"와 "선생"은 유행하기 시작한 역사적 뿌리도 다르고, 의미도 적잖이 다른 것인데 주자의 영향으로 이를 거의 동일시 한다. 아래 이황의 예를 보자.
  8. 자기보다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선생이 아니라, 공자맹자 혹은 삼황오제가 살았을 적 사람만큼이나 뛰어난 사람이란 뜻. 한자 문화권에서는 나라 시절까지의 역사는 거의 신화와 역사의 접목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칭송하며, 이들은 옛날 것(최대 하나라/상나라 시절, 최소 한나라. 그러니까 중국 문화라는 것이 정립되었을 시절)이라고 하면 무조건 닥치고 떠받들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일단 문체반정을 생각해 보고, 박지원열하일기가 동시대 사람들한테 개까였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9. 성균관의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