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분

1 손견의 조카

오서 「종실전(宗室傳)」
손정손유손교손환손분손보손익손광손소손환

孫賁
(?~210)[1]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백양(伯陽). 손견의 형 손강의 아들이다.

손분이 부모를 여의였을 때 동생 손보는 어린 나이였으므로 손분이 직접 길렀는데 그 때문에 형제간의 우의가 돈독하였다. 군의 독우와 현장을 지냈는데 숙부 손견이 장사에서 거병을 하니 손분은 그를 따라 나서게 된다.

192년에 숙부 손견이 유표와의 전쟁에서 죽게 되자 손견의 직무를 이어 남은 무리를 이끌고 손견의 영구를 지켜 고향으로 후송한다. 후에 거의 모든 손견 휘하의 장수들이 그랬듯 원술에게 의탁한다.

193년에 원소주앙을 구강태수로 임명하자 원술의 명으로 그와 싸우게 되며 주앙의 원군으로 주우까지 오나 음릉에서 그들을 격파하고 그 공으로 예주자사 단양도위로 임명되었으며, 정로장군을 대행해 산월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양주자사 유요가 쫓아내 역양으로 가게 되었다가 이에 원술은 원군으로 오경을 보내 다시 번능장영을 공격하게 하나 또 패하게 된다.

194년에 결국 이들은 1년이 지나 손책이 원군으로 와서야 번능, 우미, 장영을 무찌르고 유요를 예장군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 손분은 오경과 함께 원술에게 경과를 보고하러 가는데 이때가 마침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고 부서와 백관을 설치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손분은 회남윤[2]에 제수되나 손분은 바로 원술과의 관계를 끊고 처자식 다 내팽겨치고 버린 다음에 손책을 의지하러 간다.

199년에 황조유훈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황역을 보내자 손분은 손책을 따라 강하를 치는데 종군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유요가 병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손책은 예장을 평정한 다음 손분을 예장태수 도정후에 봉한다.

208년에 조정에서 손분을 정로장군에 봉하면서 예장태수의 직위도 인정해주며, 손분은 관직에 11년간 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후손으로는 현손인 손혜(孫惠)가 있으며, 서진에서 호조연을 지냈다.

2 손권의 오남

오서 「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손등손려손화손패손분

孫奮
(? ~ 270)

삼국시대의 오나라의 인물이다.

손권의 다섯째 아들로 자는 자양(子揚). 어머니는 중희(仲姬).

252년에 제왕에 봉해져 무창에서 지냈으며, 손권이 죽은 후 제갈각의 왕들을 군사 요충지에서 내부로 옮기는 정책으로 예장으로 옮겨지게 되자 온갖 땡깡을 부리며 거부하나 제갈각이 편지로 협박 한 번 해주니 겁 먹고 남창이라는 곳으로 옮긴다. 하지만 그 대신에 사냥 하는 등 놀고 먹는 것의 수준이 너무 심해져서 소속 관원들이 손을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253년에 제갈각이 죽자 무호로 가 건업에 머무르며 자기에게 기회가 올까 기대를 하며 엿보려고 하는데 부상과 사자라는 자들이 그러지 말라고 말리자 이 둘을 죽여버린다. 이 일 때문에 그는 서민이 된후 장안현으로 쫓겨나게 된다.

270년에 손호의 좌부인 왕씨가 죽자 손호는 너무 슬픈 나머지 곡을 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며 손분과 손봉 둘 중 하나가 뒤를 이어야한다는 풍문까지 돌게 된다. 이 때 예장태수 장준이 이 말을 믿고 손분에게 미리 잘 보일 생각에 손분의 어머니 중희의 묘를 청소한다. 이 일이 그런데 손호한테 까지 들어가게 되고 손호는 장준의 삼족을 멸하고 덤으로 손분과 그의 다섯아들을 모조리 죽이고 봉읍을 없앤다.

보면 알겠지만 장준이 죽은 것은 지가 잘못한 일이나 손분은 진짜 마른 하늘에 날벼락으로 죽은 꼴이라 평에서도 다음과 같이 죽을 만은 했으나 죽은 이유는 억울했다고 말한다.
  1. 예장태수를 지낸 다음 11년으로 계산했을 경우 210년이 된다.
  2. 원문은 구강태수이긴 한데,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면서 구강태수를 회남윤으로 바꿨으므로 회남윤에 임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