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

1 후한 말의 인물

오서 「종실전(宗室傳)」
손정손유손교손환손분손보손익손광손소손환

孫輔
(? ~ 200)[1]

손책손권 휘하의 장수로 자는 국의(國儀). 손견의 큰 형인 손강의 아들, 손분의 동생이며, 낙통의 장인.

손강이 죽었을 때 손분이 손보를 직접 길렀기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돈독했다고 한다.

양무교위의 신분으로 손책의 강동정벌을 도와 손책이 단양을 토벌할 때는 역양에 주둔해 원술군을 대비하면서 그 땅에 남아있던 문중들을 설득해 뿔뿔히 흩어지게 했으며, 노릉태수가 되어 능양의 조랑을 공격할 때 조랑을 사로잡는 전공을 세웠다. 유훈과 싸울 때는 형 손분과 함께 8천명을 이끌고 평택에서 매복해 사졸보다 앞서 싸우니 유훈은 초강으로 달아나고 손보는 여강태수로 봉해졌으며, 후에 단양 사람인 동지가 스스로 여릉태수라 칭하자 손분과 함께 남창에 주둔해 손책의 계책대로 행동하면서 그를 토벌했다.

후에 평남장군으로 봉해지고 가절을 받아 교주자사의 작위[2]를 수행했는데, 손책이 죽고 손권이 즉위하자 손보는 손권이 강동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해서 손권이 동야로 나간 틈을 타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강동을 바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손권은 곧 바로 돌아와 장소와 함께 손보를 만나서

형은 행복이 이제 지겹습니까? 왜 다른 사람을 불러 들이십니까?

라고 추궁했다. 손보는 자신이 한 일을 부정했지만 곧 편지를 꺼내 장소에게 주어 손보에게 보여주니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권은 모든 손보의 측근[3]을 죽이고 손보의 지휘 아래 있던 부대를 나눠 다른 장수들에게 분할시킨 다음 동쪽으로 이주시켜 손보의 세력을 와해시켰다. 손보는 죽지 않았지만 유폐되었다가 몇 년 후에 죽었다.

이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유돈이 이후 손권 밑으로 들어가 손익의 죽음을 예측했기에 손익이 죽기 이전 즉, 손권이 손책의 뒤를 이은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자치통감에서는 200년의 일로 두었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孫𠅨

생몰년도 미상

오나라의 황족으로 손휴의 사남.

2.1 이름 논란

𠅨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의 자형이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는데(위 글자는 그 중 하나) 이 중에 어느 글자가 진짜인지는 미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중 하나가 오리지널이고 나머지는 잘못 쓴 글자였을 것이지만 어느 쪽이 원래 자형인지 단정하기가 어렵다.[4]

첫 번째 자형은 위에 돼지해머리(亠)[5] 밑에 왼쪽에는 먼저 선(先), 오른쪽에는 칠 복(攵)의 형태이다. 나머지 자형들은 위에 집 면(宀)자 또는 돼지해머리(亠), 밑에 왼쪽에는 으뜸 원(元) 또는 먼저 선(先), 오른쪽에는 칠 복(攵)을 붙인 것이다.[6]

오록에 따르면 이 글자는 포(褒)와 음이 같다고 한다. 손휴가 아들이 황제가 되더라도 사람들이 피휘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새로운 한자를 만들었다고 하며, 손보 뿐만 아니라 손휴의 다른 아들들도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이 한자는 손휴가 오직 손보를 위해 만든 한자이기 때문에 다른 활용 예도 없다. 그리고 문헌에 이 글자의 음에 대한 설명만 있고 훈에 대한 설명은 없어서 무슨 뜻으로 만든 글자인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위에서 설명했듯이 본래의 자형이 어떤 것인지조차 불확실하니 대체 무슨 글자들을 합친 건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형들(손만, 손공, 손망)의 이름에 쓰인 글자들보다 뜻을 짐작하기가 훨씬 힘들다.

2.2 생애

264년에 손휴는 죽으면서 손만을 후사로 임명했지만 만욱의 추천으로 인해 장포, 복양흥손호를 황제로 옹립할 계획을 추진했으며, 주부인의 허락으로 인해 손호가 황제가 된다. 이 때문에 264년 10월에 예장왕이 되었지만 손호가 그 뒤에 마구잡이로 인간들을 죽일 때 손보는 오군의 작은 성으로 보내졌다.

이 작은 성으로 보내졌다는 기록은 얼핏보면 찾기 힘들지만 손호전에 손휴의 넷째 아들을 오군의 작은 성으로 보내고 나이가 많은 두 아들도 찾아서 죽였다는 대목이 나오면서 손보가 오군의 작은 성으로 보내진 것이 나온다.
  1. 자치통감 기준.
  2. 일단 손책의 지휘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손분, 손보 형제가 칭하고 있는 지위는 오히려 손권, 손책보다 높았다.
  3. 측근 중에 점술가 유돈은 살아남았다.
  4. 참고로 같은 한자에 수많은 이체자(동일한 음훈을 가지지만 모양은 다른 글자)들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들은 자형이 표준화된 것이고 실제 옛 문헌에는 조금씩 획이 다른 글자들이 많이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손보의 '보' 자도 세월이 흐르면서 이체자들이 생겼을 것이다.
  5. 이 글자는 독립된 글자가 아닌데 한자를 정리할 때의 편의를 위해 부수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亠는 원래 뜻도 없고 음도 없다. 돼지 해(亥)의 윗부분이라 하여 부수로서는 그냥 '돼지해머리'라고 부르고, 발음이 필요할 땐 머리 두(頭)에서 딴 '두'라고 읽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의로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 부수는 단순히 자전에서 글자들을 '편의상' 자형별로 정리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므로, 亠부에 속한 글자에서 亠가 음훈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金부에 속하는 글자는 쇠와 관련이 있고, 水부에 속하는 글자는 물과 관련이 있는 식인데 반해, 자전에서 亠부로 정리돼 있는 글자들은 그냥 자형에 亠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亠부로 분류됐다는 뜻이다.
  6. 다만 宀+元+攵은 아닐 것이다. 그럼 도둑 구(寇)와 같은 글자가 되기 때문이다(攵=攴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