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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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기원한 곡도를 일컬는 말. 흔히 초승달처럼 휘어있는 곡률이 큰 중동제 곡도라고 말하지만……. 한자로는 신월도(新月刀)라고 표기한다. (중국식 음역도 어느정도 가미된 이름일 것이다) 왕왕 언월도라고 표기하는 예도 있지만, 언월도라고 하면 장병기의 인상이 강하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1 단어의 어원

사실 시미터라는 영단어는 역사적인 근원이 확실한 도검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며, 심지어는 중동의 말도 아니다. 중동에서는 이 단어를 쓰지 않았다.

일단, 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드먼드 스펜서, 벤 존슨 같은 극작가나 시인들이 이 단어 scimitar의 고어형/변형 스펠링을 사용한 바가 있다(scymitar가 옛 스펠링으로 보편적). 그러니 대략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58–1603)의 영어권에서는 이미 시미터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사용되었다고 추측 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단어라면 대중에게 이해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까 시인이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대개의 사전에서는 1540~50년대 정도가 시미터라는 단어가 도입된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영단어 시미터의 기원이 되는 것은 이탈리아어의 scimitarra, salvaterra, 불어의 cimeterre나 semitarge, sauveterre 등으로 여겨지는데, 현대 영어의 scimitar 스펠링은 이탈리아어의 scimitarra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허나 막상 영어에 영향을 준 그 단어들도 정체가 모호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cimaterra는 바스크 말에서 온 것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뜻하는 단어이고, cymitharra는 오스만 제국예니체리가 사용한 도검을 가리키는 단어였다는 추론으로 어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OED도 이 추정을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중동의 영향이 강하던 터키 지방과의 접점이라는 가정은 제법 그럴듯하고 오스만과 유럽이 접촉하는 때와 시미터라는 단어가 로망스 언어 계열에 소개되는 때의 시대적 배경도 맞아떨어지지만, 막상 터키 쪽에서는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스만의 곡도를 유럽인들이 시미터라고 부른 것은 확실하고, 단지 어원으로 삼기에는 근거가 부족할 따름)

페르시아의 샴쉬르를 말하는 šamšīr, šimšīr, šafšēr, šifšēr의 sham-이나 shim- 발음이 옮겨간 것, 또는 그리스말에서 야만족 검을 가리키는 sampsera가 변형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것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신빙성은 좀 그렇다.

2 시미터의 형태

유럽인들이 시미터라고 싸잡아 부르는 도검들은, 중동 지역의 국가에서는 저마다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 아라비아의 saif, 페르시아의 shamshir, 인도 지방의 talwar, 아프간 지방의 pulwar, 모로코 지방의 nimcha, 터키의 kiliç, 몽골 영향의 동아시아 만곡도(dao)까지 유럽에서는 시미터라고 싸잡아부른 적이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단어들은 그냥 그 지역 말에서 보편적인 의미의 도검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래서 곡도가 아닌 것도 흔하다. 아랍어의 사이프는 말 그대로 sword 그 자체이며 중세 초중기까지만 해도 보편적인 saif는 직선형 양날검이었다. 샴셔 역시 마찬가지로 직검과 곡도를 포함하며, 터키의 kilij 역시 그냥 도검이란 말이니 터키산 도검은 다 kilij로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대충 아무거나 중동삘이 날듯말듯 그럴싸해보이지만 역사적 고증이 없는 제멋대로 만든 판타지 곡도에다 시미터라고 이름붙였더라도, 그거 시미터 맞다. 중동제 곡도 아무거에나 대고 시미터라고 해도 (적어도 서양인 기준으로는) 맞는 말이다. 반면에 shamshir나 talwar, kilij 등의 중동 도검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질을 가진 진짜 시미터라고 따로 분류할만한 도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다. 시미터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시미터의 형태가 반드시 이렇다 라고 말하거나 시미터와 샴셔가 서로 다른 것/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보짓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샴셔와 어떤 시미터는 동일하게 생겼을 수도 있지만, 어떤 샴셔와 어떤 시미터는 전혀 다른 물건일 수도 있다

즉, 시미터는 중동이나 오리엔탈 도검(특히나 곡률이 큰 곡도류)에 대한 유럽인들의 편견으로 만들어진 허상, 내지는 그냥 중동 곡도를 유럽식으로 싸잡아 부르는 편의 상의 명칭일 뿐이다.

3 시미터에 대한 편견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이슬람 군주 살라흐 앗 딘이 서로 만나서 회담을 했는데, 리처드가 직선형의 장검으로 강철 창대를 절단내는 시범을 보여주자 살라딘은 비단 방석을 던지고 곡선형의 시미터로 부드럽게 베어내는 것을 보여주었다" 라거나 "십자군이 중동으로 갔을때 이슬람 이교도들이 악마의 초승달처럼 생긴 칼(=시미터)을 휘두르더라" 라며 시미터를 본 십자군들이 "악마의 칼"이라고 꺼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고 19세기에 쓰여진 역사소설에서 나온 이야기다. 애초에 시미터는 중세 시대에 존재치도 않았던 단어인데다가, 중동에서도 11~13세기까지는 대개 직선형 을 쓰거나, 칼 끝 정도만 휘어있는 것을 사용했다. 휘어있는 곡도가 중동과 유럽에 강력하게 전파된 것은 곡도를 기병도로 사용하던 몽골이 13세기 유럽과 중동에서 설쳐대면서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아라비아 saif, 페르시아 shamshir, 인도 talwar, 아프간 pulwar, 터키 kilij, 맘루크 검(Mameluke sword), 유럽 sabre와 cutlass는 모두 몽골의 만곡도에 영향을 받은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십자군을 배경으로 한 영화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살라딘과 이슬람군은 곡도가 아닌 직선형의 검을 들고 싸운다.(감독이 살라딘만큼은 곡도를 쓰도록 하려다가 고증을 더 중시하여 그만두었다는 말이 있다. 오오)[1]

중동에서 항상 시미터를 썼을거라는 이미지는 신밧드 이야기 같은 것이 만들어낸 오류이기도 하다.
천일야화》는 8세기 인물인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Hārūn ar-Rashīd가 등장하기도 하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그리고 이 시기 페르시아와 아랍에서는 직선형 검을 썼다.) 그런데 《천일야화》는 10세기 경에 인도와 페르시아 아랍 권의 이야기가 엮이고 바그다드에서 기록된 것도 있으며 중세 이집트 설화 등등이 섞여서 14세기 카이로에서 정리한 적이 있고, 후대에 이것을 수집해 영어로 번역한 리처드 버튼 경은 19세기의 인물이다. 즉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개정이 일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이야기꾼과 기록자들의 세부 디테일이 달라졌음은 있을법한 이야기다.

3.1 참고

4 픽션 속의 시미터 사용자

5 관련 항목

  1. 정반대의 경우로 영화 13번째 전사에서 아랍인 주인공(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이 바이킹들과 함께 원정을 가면서 바이킹의 직선검을 밤새 갈아내어 가벼운 곡도로 만들어 쓰는 장면이 있다. 시기를 고려하면 당연히 고증오류.
  2. 레드가드 족의 전통 무장으로 나온다. 다른 종족들은 흑형들이 휘어진 칼 쓴다고 신기해한다.그리고 나중에 그 시미터중에 누군가가 타고있는배에도 하나있는데...
  3. 과거 인물이라서 쓰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두자루의 시미터가 있다.
  4. 칼의 모양은 곧지만, 일단 완구상의 설명은 'Electron Scimi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