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라 미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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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히라 미쓰요 / 大平 光代 (おおひら みつよ)
생년1965년 10월 18일 ~
성별

일본변호사이자 청소년문제 협의회 특별 위원. 그리고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 현재는 우메다종합법률사무소 소속 객원 변호사다.

방황과 역경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기록한 자전 수기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1]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 책을 보면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힐 정도로 파란만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1 집단괴롭힘의 피해

효고니시노미야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중학교 1학년 시절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이유없이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처음에는 무시당하는 정도였지만, 그 강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필통이나 부적을 함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천장에 물세례를 한다던지 등등 강도가 점점 강해져서 등교 거부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프다고 학교를 안 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 부모님이 계속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아 결국 고백했고, 그날 미쓰요의 아버지는 바로 "선생들은 뭐하고 있는 거냐!!"면서 학교에 전화해서 학교에 따졌다. 2~3일후 다 해결됐으니 학교 오라고 전화를 걸어오셨다고 해서 미쓰요는 불안해하면서 학교에 갔지만 1학년 시절 담임이 서로 화해의 뜻에서 악수하라고 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고. (당시 미쓰요는 "화해의 악수라니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따돌림 주동자는 선생님의 말대로 손을 갖다 대기만 했지 잡지는 않았다. '화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냥 선생이 하라는 대로 시늉하는 것이다.'라고 미쓰요는 생각했고, 주동자의 손에서 전달된 뜨뜻미지근한 불쾌한 감촉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이러한 상황 속에 담임이 분위기를 읽지 못했는지 "이걸로 화해한거야, 잘됐다, 이제 오케이!"라고 만족스러운 듯 책상 위에 놓여있던 녹차를 맛있게 들이켰고 아니나 다를까 이걸로 더 이상 괴롭힘이 사라졌을 거라는 미쓰요의 기대와 다르게 교실에 들어가자 마자 주동자는 오히려 미쓰요를 매서운 눈으로 보면서 "저 년이, 꼰대한테 일러 바쳤다"고 하면서 미쓰요를 고자질쟁이로 만들었다. 이 모든 괴롭힘의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불량학생의 우두머리격 되는 주동자가 미쓰요한테 말을 걸어왔는데 미쓰요가 듣지 못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라고 한다.

2학년이 되어 새로 사귄 친구들마저 미쓰요를 노골적으로 배신하고 따돌림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사실, 1학년 때 따돌림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 그다지 신경은 안 썼다고 한다. 하지만...그들은 앞에서는 친구인 척하면서 미쓰요의 비밀을 캐내어, 뒤에서 그 비밀을 퍼뜨렸다. 몸이 약해서 걸린 병이라든가, 좋아하는 남학생 등의 상당히 예민한 것들. 핵폐기물만도 못한 년들

그리고 배신하는 과정도 계획적이고 매우 충격적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던 미쓰요를 동급생 여자애들이 다가와 다짜고짜 할말이 있다고 불러내고, 미쓰요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교실로 들어가니, 그 곳에는 친구라고 믿고 있었던 새끼들도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미쓰요를 장난전화의 범인으로 몰더니 미쓰요의 집에도 그 장난전화가 걸려왔다고 하자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니?"라고 하면서 아무도 믿어주지도 않고 갑자기 장난전화 이야기를 끝내버리고 일방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우린 네가 전학 왔을 때부터 재수없다고 느꼈어"라고 시작해서 미쓰요가 앓고 있던 병 얘기를 꺼내며 빨리 죽으라고 비웃고, 또 미쓰요가 좋아하는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넌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도 없다"고 비웃어댔다.

여기서 저들이 언급한 장난전화가 뭐냐면, 2학기 접어들면서 반 아이들의 집으로 젊은 여자 목소리의 장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신네 집 애가 도둑질을 했다 혹은 성매매도 했다는 식의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왔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으며, 전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장치까지 설치했지만 결국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어 미쓰요와 친구들과 넷이서 함께 모여 놀던 날 장난전화 범인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범인을 어떻게 잡을까 이야기하고 예를 드는데 무섭고 소름돋는 것이, "모두에게 미움 받고 있는 애의 뒤를 밟아 본다던지", "대략 범인이 누군지는 짚이는 데가 있다."라고 3명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미쓰요가 범인이 누군지 아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 세 년들은 "개학하면 너도 알게 될 거야."라고 알려줬다고... 이때 미쓰요는 평소와 달리 이상하다는 걸 느꼇지만 그년들을 진정한 친구라고 믿고 있던 미쓰요는 '설마 걔들이 날 범인으로 지목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15살의 나이에 유서를 쓰고 부엌칼로 배를 찔러 할복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도 주위를 지나가던 타인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2]

힘든 입원 치료도 겨우겨우 끝나가고… 미쓰요는 그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러나 미쓰요의 부모는 주위의 이목과 체면에만 신경을 쓰며, 이사나 전학 등의 조치도 취해주지 않고, 미쓰요를 본래 다니던 학교로 돌려보내고 만다. 미쓰요는 3학년이 되어 새 학급에 편성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녀를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쟤 취미는 할복이래!"라고 크게 놀리며 비웃는 등 상황은 악화되어 있었다. 하나 예를 들자면 3학년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미쓰요의 차례 때 어느 남학생이 이렇게 비꼬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담임 선생은 미쓰요가 2학년 때도 담임이었기 때문에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쓰레기는 "이놈들!!" 이라고 한 마디 소리친 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듯이 "이놈들!!"이라고 소리친 다음 수습이 귀찮은지 "자, 다음 사람"이라고 다른 학생한테 자기소개를 시켰다. 또 이때 미쓰요는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비웃거나 무시하는 등 상황이 날이 갈수록 매우 악화일로를 걷기만 했다. [3] 비행 청소년이 된 결정적인 원인도, 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로부터 "제대로 죽지도 못한 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아무리 부모님에게 전학을 요구해도, 부모님은 딸의 고통보다 남의 이목[4]에만 신경 쓰느라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걸 보면 그녀의 부모에게도 확실히 잘못이 있다....

결국 너무나 가기 괴로워진 학교를 자꾸 빼먹게 되고, 혼자 밤거리를 방황하다 폭주족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탈선을 시작한다. 계속된 비행과 등교거부로 인해 고등학교 진학이 불가능할 정도로 학업도 처져 버렸으나, 사실 반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떠드는 것을 듣고는 그녀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그 후에는 나름대로 공부해서 미용학교에 합격, 담임 선생님한테 합격통지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담임이라는 사람은 격려하고 응원해도 모자랄 판에, 합격통지표는 쳐다도 안 보고 미쓰요의 염색한 머리를 보고 "그 양아치같은 꼬락서니로 네가 뭘 하겠어?"라고 불쾌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말했다.[5]사실 이때 선생님이 "힘내라, 열심히 해라" 라는 말만 했어도 염색도 풀고 다시 처음부터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잠시 기뻐하셨지만 이내 곧 "고등학교도 못 가고 미용학교에 가는 것을, 친척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라며 여전히 남의 이목만을 신경썼다. 미쓰요는 다시 의욕을 잃었고, 간신히 합격한 미용학교도 도중에 그만두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이 일을 후회했다. 그때 의욕을 잃고 다시 나쁜 길로 빠져버리지 말고,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훌륭하게 미용사가 된 모습을 보여주어 할말 없게 만드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고.

그 후로는 다시 폭주족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살았다. 자전거 절도, 음주 등으로 유치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왜 나를 낳았어!'라면서 자기 부모마저 폭행했다고…. 그러나 이 폭주족 친구들마저도 미쓰요의 할복자살 시도라는 과거를 알고 따돌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던 폭주족 중 고지라는 소년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자 고지의 아파트에 모여 장례를 지르던 중이었는데, 고지를 좋아하던 유카리라는 소녀가 술에 잔뜩 취해 미쓰요를 향해 "원래 네가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유카리는 미쓰요의 자살시도를 언급하고, 고지의 꿈을 이야기하며 "그런 애가 왜 죽어야 해? 죽고 싶은 넌 왜 아직도 살아있냐?"라고 하였다. 미쓰요가 "친구라고 믿었는데 왜 그런 가슴 아픈 소리를 하냐?"라고 하자 유카리는 "친구라고? 여기 있는 누구도 널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비웃었다. 그리고 얼마 전 다른 친구들이 각성제를 맞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오히라를 그 친구들이 "넌 이런 거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보냈던 일도, 사실은 오히라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살시도할 정도로 이상한 앤데 약까지 먹으면 무슨 짓할지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폭로했다. 미쓰요가 "그럼 내가 걔들을 찔렀으면 좋았겠니?"라고 묻자, 유카리는 "그럼!! 나라면 걔네를 찌르지, 네가 만약 그랬다면 진정한 친구로 삼았을 텐데"라고 말했고, 미쓰요는 그 자리를 뛰쳐 나왔다고 한다. [6]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16세 때 어느 야쿠자 두목과 결혼까지 했다.[7] 하지만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4,50대가 젊은층에 속하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16살짜리가 사모님이랍시고 앉아 있다며 무시와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고. 그러던 중, 미쓰요를 줄곧 사랑하고 걱정해주시던 외할머니[8][9]마저 돌아가시자 엄청난 절망감에 빠져, 결혼생활 6년 만에 이혼하게 된다.

2 갱생과 그 이후

그 후 긴자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23세 때 만난 현재의 양아버지인[10] 오히라 히로사부로(大平浩三郞)씨를 우연히 재회하였는데, 그는 미쓰요의 망가져버린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필사적인 설득을 여러 차례 하게 된다. 이런 그의 노력에 마침내 미쓰요도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얻게 된다.

그 후 한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지적 상태에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29살의 나이에 일본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인 사법시험[11]에 합격변호사가 되었다. 겨우 중졸의 학력으로 9년 동안의 노력으로 사법시험단 한번에 통과한 것이다! 한국의 사법시험은 전년 1차 합격자는 다음해 1차를 면제해 주지만, 일본의 사법시험은 1, 2차를 한번에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1, 2차를 동시에 합격하는 동차 수험생 수가 손에 꼽힌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다.

그 후 한동안 연을 끊고 지냈던 부모님과도 곧 눈물의 화해를 했다. 특히 미쓰요의 친아버지는 자신이 남의 이목만 신경쓰느라 정작 딸의 고통은 모르고 지냈다며, 오히라 씨를 찾아가 아버지가 될 자격도 없는 자기 대신 미쓰요를 양녀로 받아달라고 직접 부탁했을 정도.[12] 이 부탁이 받아들여져 미쓰요는 오히라 씨의 양녀가 되었으며 얼마 후 미쓰요의 친부는 직장암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로 자서전인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13] 절망에 빠진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있다.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청소년 문제 협의회 특별의원직을 맡으면서 비행청소년들이나 학부모, 교육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2001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전국의 소년원 원생들과 학부모, 지도위원들 앞에서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한국어를 사용해가며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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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변호사 남편을 만나 결혼[14]하여 딸 하루카(悠)를 출산했지만 다운 증후군인데다 심장에 이상을 가진 아기였다.[15]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육아일기를 <오늘을 산다>란 책으로 펴냈다.[16]

그리고 <오늘을 산다>에서 나오길, 그녀는 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행복은 잠시, 어머니의 말씀이나 행동이 좀 이상하다 싶을 때가 잦았다.[17] 즉시 어머니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했지만 병원에서는 알츠하이머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병의 진행은 조금은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약물치료로 1년간은 딸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고 평상시처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만, 그후에는 병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미쓰요는 '겨우 1년이라고는 해도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부탁했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했기에 미쓰요가 지방에 강연을 할때 같이 모시고 가기도 했다. 강연이 끝나면 온천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모녀 간의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1년 후에는 증상이 악화되어 툭하면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고. 하루 24시간 3교대로 간병인이 왔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18]

그 사정을 케어매니저에게 털어놓고 상담을 했더니 갓 생겨난 그룹홈[19]을 소개해줬고 그 시설을 직접 견학해보니 식사 등은 모두 시설 내에서 만들었고 모든 직원과 환자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기에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처음 그룹홈에 입주하셨을 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면회를 갔지만 미쓰요가 돌아오고 난 후면 어머니가 불안정해지면서 직원들에게 떼를 쓰신다고 했다.(미쓰요가 없으면 밥도 안 먹겠다고 하시고 집에 가고 싶어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쓰요는 다시 집으로 모셔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미 병은 악화되어 가고 전문가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는 일상, 그 평온한 일상이야말로 기억이 사라져가는 어머니께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리고 미쓰요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와 화해하고 그리고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기 전 어머니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던 것 덕분에 마음속의 짐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만약 화해하기 전에 이런일이 발생했으면 당사자한테는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 엄청난 후유증이 남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호스티스 시절 엄청나게 마시고 피웠던 담배 때문에 간이 악화되어 오래 살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도 2015년 현재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빌자.

2015년에는 의사 카마타 미노루와 <비교하지 않는 삶>이라는 대담집을 펴냈다.

  1. 2000년도에 출판되었다가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2. 더 한심하고 충격적인 건 나중에 오히라가 변호사가 되고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출판한 후 나타나서는 주제도 파악 못하는 폐기물들이 그러니까 인간말종쓰레기들이 "우리 예전에 친구였지? 그땐 어려서 잘 몰랐어."라는 역겨운 소리를 했다. 그러자 오히라는 그 핵폐기물들 면상에 물을 쫙 뿌렸다. 심지어 1학년 때부터 괴롭힌 폐기물에겐 뺨따구를 날렸다고.
  3. 사실 일전에도 러시아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아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괴롭힘 당한 아이의 아버지는 격투기 선수(삼보 챔피언이었다.)라서 가해자 놈들과 가해자 부모를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렸다.(노골적으로 배신하고 따돌림에 앞장선 녀석들은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담임도 마찬가지로.
  4. 자살미수 이후 많은 이웃들이 걱정해줬지만 일부 사람들은 '부모가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저런 소동을 피운 거야?!'라며 조롱했다.
  5. 나중에 변호사가 되고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출판한 후 나타나서는"내가 그 말을 한 덕분에, 네가 더 큰 꿈을 꾸게 만들어 주었다."라는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그러자 오히라는 "아 그러세요, 그러면 내 눈앞에서 꺼지세요"라고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고. 옛 급우들도 그렇고 담임도 그렇고, 다시 나타나서는 이런 망언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는 내가 정말로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더라면 미쓰요의 반응도 달라졌을지 모르지만...역시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다.
  6. <오늘을 산다>에서 미쓰요는 폭주족 애들이 본인한테 각성제를 안 놔준 걸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기까지 와서도 외톨이라니, 왜 이런 데서까지 따돌림을 당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까지 했다고.
  7. 야쿠자들의 세계에 입문하려면 등에 문신을 해야 했는데, 미성년자였던 미쓰요는 부모님의 허가가 필요했다. 허가 도장을 받기 위해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았으나 허락을 해주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또 부모님을 때리고 강제로 도장을 찍어왔다. 문신을 한 후엔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 때문에 위궤양까지 생겼다.
  8.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미쓰요의 양육을 도맡아 주셨기에, 미쓰요에게는 매우 각별한 분이었다.
  9. 병상에서 사망하던 그 순간까지도 외손녀인 미쓰요의 걱정만 했으며, 입버릇처럼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미쓰요가 여기 오고 내가 거기에 대신 가있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10. 원래 오히라 씨는 그녀의 아버지와도 사업상 지인이었기에 그녀도 어렸을 때부터 오히라 씨와 안면이 있었다.
  11. 기수로는 수습 49기.
  12. 미쓰요의 현재 성씨인 오히라도 바로 이 양아버지의 성씨를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다른 성씨였다.
  13.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저 정도의 어두운 과거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양아버지도 그녀에게 몸의 문신을 지우길 권했으나,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감추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놔뒀다고.
  14. 양쪽 다 재혼이며 둘 다 자식은 없었다.
  15. 다운증후군은 심장 기형을 동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6. 당시 그녀의 책을 번역했던 역자 김인경이 직접 일본에 방문해서(자녀와 함께 갔다고 한다) 그녀와 오히라의 딸 하루카를 만나고 온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17. 어떤 일이냐면 사무실에 계속 찾아와서 낮에 집과 사무실이 가까웠기 때문에 "얘기는 밤에 같이 하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돌아가시게 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려 어느 날 집에 가봤지만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고 거기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았으며, 어머니를 찾아 동네를 헤매다가 채소가게에서 발견했지만, 어머니는 지갑도 안 가지고 있었다고...
  18. 당시 그녀는 오사카 시 부시장에 취임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19. 지적장애인이나 치매노인 등이 자립적으로 생활하도록 조직된 시설로 일상생활을 돕는 도우미를 배치하고 환자 5~6명이 함께 생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