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 왕세자의 칭호
Prince of Wales. POW? 대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 그러니깐 영국의 왕세자에게 붙는 칭호이다. 현재 이 칭호를 수여받은 사람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남 찰스 왕세자. 확정상속인에게만 수여되는 칭호이기 때문에 역대 왕위계승자였던 여성들이나 다른 방계 친척들[1]에게는 수여된 적이 없다.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추정상속인이었기 때문에 웨일즈 공을 거치지 않았다.
왕세자에게 붙는 칭호라는 이유로 '웨일스의 왕자'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웨일스 왕자...라고 하는 건 틀린 번역이고 웨일즈 공이라 하는것도 어색하다. 영국 고유의 작위이기에 그대로 읽어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 쓰기도 하는데, 대한민국 밀덕계에서는 보통 이 칭호에서 따온 영국 군함의 함명을 가리킬 때 이렇게 쓴다.
영국의 공작(Duke)와 혼동이 많으나 프린스(Prince)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왕자라는 뜻만 있는것이 아니라 특권자나 왕족, 소국군주, 작위로의 공작이라는 다양한 뜻이 있다. 따라서 영국 고유의 왕위계승자 호칭으로 이해해야지[2]프린스= 왕자 내지 프린스=공 (公)으로 보는건 마땅히 대체어가 없어서 그렇지 틀린 번역이다. 웨일스 공이란 작위 자체가 잉글랜드에서 만든 작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13세기에 접어들어 웨일즈 지역을 통일한 러웰린(Llywelyn)은 스스로를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이라 칭하였고 잉글랜드의 헨리 3세가 이를 정식으로 인정하면서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이 수립된 것이 기원이다. 하지만 헨리 3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를 무력으로 정복하면서 웨일스 공 역시 잉글랜드의 작위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이 작위의 뜻은 절대 '왕자'가 아니다. 그럼 웨일스 대군이라고 하죠
일반적으로 영국의 왕세자가 웨일스 공 칭호를 받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원래 웨일스는 프린스(Prince)라는 지배자의 명칭을 사용하며 잉글랜드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웨일스를 정복한 에드워드 1세는 웨일즈의 귀족들을 모아놓고 충성서약을 요구하였으나 웨일스 귀족들은 웨일스의 지배자는 웨일스 출생이며 웨일스어를 할 줄 알 것, 비행이 없어야 할 것 등의 조건을 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에드워드 1세는 1285년 왕비를 웨일스의 카나번 성으로 데려와 에드워드 2세를 낳게하고 웨일스 출신의 사람을 유모로 붙여주었다. 그리고 웨일스의 귀족들을 불러들여 "이 아이는 웨일스에서 태어났고, 가장 먼저 하게 될 말은 웨일스의 말일 것이다."라 선언하였다. 이에 웨일스 귀족들도 만족하고 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의 작위를 주었다. 이것이 이후 전통으로 굳어져 영국 왕세자의 명칭은 항상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가 되었다.
워낙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역사가들의 연구 결과 후대에 창작된 내용.
에드워드 2세가 웨일스 원정이 한참 진행중이던 시기 웨일스의 카나번 성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에드워드 1세는 말 안 듣는 웨일스 공국과 그에 복속된 제후들을 무력으로 때려잡고 있던 시기였기에 웨일즈 귀족들이 저런 요구를 했다간 바로 밟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2세가 웨일스 공 작위를 수여받은 것은 1301년으로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 지역을 완전히 정복한 직후 상징적인 의미에 따라 직접 서임한 작위이다. 저런 내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에드워드 1세 이후 왕으로 즉위한 에드워드 2세도 부왕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이나 왕세자인 흑태자 에드워드 왕세자에게 웨일스 공 칭호를 수여하였고, 후대 왕들도 이를 따라하면서 일종의 관례로 자리매김하였고 이후 잉글랜드 왕가에서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장차 왕이 될 왕족에게 부여하는 칭호로 굳어졌다.
참고로 이런 상징성 때문에, 찰스 왕세자의 후처 카밀라는 웨일스 공작부인(왕세자비)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등에서는 웨일스 공작부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웨일스 공작부인은 차기 왕후라는 의미인데, 다이애나와 찰스가 이혼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카밀라와 찰스의 관계의 관계 때문이었으며 영국의 후계자를 낳은 왕세자비의 의무를 다한 건 카밀라가 아닌 다이애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밀라가 호칭되는 가장 격이 높은 작위는 '왕의 맏며느리' 격식에 해당하는 콘월 공작부인·로스시 공작부인(스코틀랜드) 칭호다.
2 영국 해군의 전함
기공 | 1937.1.1 |
진수 | 1939.5.3 |
취역 | 1941.1.19 |
침몰 | 1941.12.10 |
기준배수량 | 38,000톤 |
길이 | 227미터 |
너비 | 31미터 |
최고속도 | 27노트 |
주무장 | 356mm 4연장포 2기 / 연장포 1기 (10문)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군함. 어원은 당연히 영국의 왕세자의 칭호. 네임쉽이 조지 5세라는 것을 생각하면 함명이 에드워드 8세를 가리킨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역시 이름부터가 영 좋지 않았다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2번함으로, 1941년에 취역한 영국의 최신예 전함이었다. 다만, 아직 포탑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여하였는데 덴마크 해협 전투에서 비스마르크가 쏜 포탄에 함교가 피격당하고 4연장 포탑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 없어서 퇴각한 뒤 수색 작업에 참가했다가 귀환 6주간 수리를 받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비스마르크가 프랑스로 꽁무니를 빼게 만들기는 했지만....[3]
이후 수상 윈스턴 처칠이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만나러 갈때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타고 갔으며, 지중해 지역의 호송작전에 참여하여 이탈리아의 공군기를 격추하기도 하였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고, 일본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침공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Z기동부대(Task Force Z)를 조직하여 파견하였는데, 이때 기함 역할을 맡았다. 원래 Z부대에는 항공모함 한 척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수리를 해야될 일이 생겨서 결국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항공모함이 따라가지 못한 대신 동남아 지역의 항공대로부터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F2A 버팔로 중심으로 편성된 동남아시아 지역의 영국 공군은 일본군에게 거하게 털려서 항공력을 지원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서, 일본군을 견제하려고 당당히 출항하였지만 항공지원이 없는 바람에 같이 따라간 순양전함 리펄스와 함께 일본 해군항공대의 육상공격기들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격침당했다. 존 리치 함장과 필립스 제독은 가장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다가 탈출하였으나, 살아남지 못했다. 혹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을 결심하고 일부러 배에 남았다는 설도 있다.
이걸 '말레이 해전'이라고 하며, 2차대전에서 전함의 몰락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꼽고 있다.
일본군은 말레이 해전 승전 당일에 이를 소재로 한 영국동양함대궤멸이라는 군가를 만들어서 뉴스에서 불렀다. 그리고 얼마 뒤...
굽시니스트는 이것을 1 항목과 연관시켜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찰스 왕세자로 표현하고 '이건 다이애나의 몫이다'라고 외치는 육상공격기에게 공격받은 것으로 묘사하였다.
2018년 취역 예정으로 2011년 6월 30일에 기공된 영국의 신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의 2번함에도 같은 이름이 붙을 예정이다. 그런데 현 웨일스 공도 그리 좋은 소리는 못듣고 사는 양반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