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웅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38대 조영길39대 윤광웅40대 김장수

1 개요

대한민국 해군 출신의 군인, 관료. 해군 출신으로는 두번째 국방장관.[1]

2 생애

1942년 10월 13일 부산부에서 태어났다. 1961년 부산상고[2]를 졸업했고 재수를 하여 1962년해군사관학교 20기로 입학했다. 1966년에 해군 소위임관했고 대령 시절에는 합참 등에서 근무했고 제2함대 사령관을 지냈다. 해군작전사령관해군참모차장을 지낸 뒤에 중장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원태호 중장과의 차이점이라면 원태호가 해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낸 정도로 둘의 보직이 비슷하다.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이라는 책에 의하면 현역시절 민병돈과 엄청난 알력을 주고 받은 사이로 이 책에서는 민병돈을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으로 묘사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39대 국방장관을 지냈는데 손원일 이후 간만에 나온 해군 출신 국방장관이었고 포스타가 아닌 쓰리스타 출신이었다.[3] 2005년 530GP 사건 당시에 처음으로 합동분향소를 도입했다.[4] 당시 국방관료들이 가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직접 분향소를 찾아가 분노한 유족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국방장관이 참여하니 육군참모총장도 분향을 가야 했다. 이 때문에 육군 출신들은 그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반대로 문민 관료들에겐 그나마 문민통제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5]

아무래도 군부에서 거부감이 심했던[6]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냈다보니 국방예산 많이 올려줬는데도? 단지 그 이유로 평가절하당하기도 하긴 하지만 군에 대한 민간의 견제의 수단을 만들려고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만 하다. 2005년 9월의 <국방개혁 2020>도 그의 장관 재임 시절에 수립, 발표된 것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한국 국방정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인물.
  1. 이동 최초의 해군 출신 국방장관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던 손원일 제독이다. 역시 해군의 지휘를 받고 있는 해병대 출신의 김성은 전 장관까지 포함하면 3번째가 된다.
  2. 이동 노무현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3. 이동 간간이 중장 출신 정치인을 앉히는 경우가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천용택이나 김영삼 정부 시절에 이병태 등이 있다.
  4. 이동 그 전에는 각 국군병원에 시신을 산재 배치했고 유족들도 제각각으로 흩어졌는데 합동분향소를 만들면서 유족들이 공동 대응 등을 할 수 있는 게 가능해졌다.
  5. 이동 전역 후 5년 뒤에 장관이 됐기 때문에 합동참모의장 퇴임 후 바로 장관이 되거나 1-2년 내로 장관이 된 사람들보단 문민통제에 가깝긴 하지만, 완벽한 문민통제라기 하기는 곤란. 한없이 문민에 가까운 비문민 참고로 미 국방성에서 직업군인 출신으로 장관이 되려면 퇴역 후 10년은 경과해야 한다.
  6. 이동 정확히는 육군 장교단이다. 해군이나 공군은 장교단도 작고 군 내에서 별 힘이 없으니 육군의 견해가 강하게 군심(軍心)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