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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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信範
1950년 03월 10일 ~

대한민국정치인이다.

1950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7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었다. 1980년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한 이후 미국에 망명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통일민주당에 잔류해 정책연구실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88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인해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꼬마민주당에 몸담았다. 1992년 통합야당 민주당에 몸담지 않고 신정치개혁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홍사덕 후보와 민주자유당 김만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같은 해부터 1995년까지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김대중 저격수로 활동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김성호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국민중심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 및 한나라당 복당 신청을 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덕룡, 문정수, 강삼재, 김정수, 심완구, 박희부, 노병구, 최기선 등 상도동계 일부 정치인들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하였다.

2015년부터 한국LPG산업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