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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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42 점2012년, 세계72위[1]
언론자유지수26.112013년, 세계57위[2]
이탈리아의 역대 총리
83대 엔리코 레타84대 마테오 렌치(현직)

1 개요

의원내각제, 양원제, 완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대통령은 명목상 상징적인 위치에 있는 명예직이고 실질적인 모든 권한은 총리가 가지고 있으며, 매년 총선으로 내각을 구성하여 이탈리아 내각의 우두머리가 되어 실권을 행사하는 권력의 중심을 담당한다. 물론 대통령 선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선거일 뿐이다.

2 역사

제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무솔리니가 처형되고 국왕이 폐위되어 민주정부가 출범한 이탈리아는 기독교민주당(이탈리아)(독일의 기민련과는 다르다)이 오랫동안 제1당을 차지하고 이탈리아 공산당이 제1야당으로 견제하는, 마치 일본의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의 일본 사회당55년 체제와 비슷한 정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지금도 이탈리아 정치, 경제의 기본적 세 요소는 우파와 가톨릭[3], 좌파, 그리고 협동조합(중도)이다.) 그 구도는 대개 기민당과 민주사회당, 사회당, 공화당, 자유당 등이 연정을 하는 방식이었다.[4]

하지만 1990년대의 변화는 이런 균형을 깨트렸다. 1992년 들어 마니폴리테(깨끗한 손)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져 기존 기민-사회-민사당-자유당 정치인들과 재계의 부정부패가 대대적으로 까발려지면서 기성 정치권이 완전히 붕괴되다시피했고 기존의 기민당 좌파들과 공산당이 갓 이름을 교체한 좌파민주당(PDS) 등의 선거법 개정 운동으로 이탈리아는 완전 비례대표제[5]소선거구제(일부 비례대표 포함)로 변화시켰다. 94년 총선으로 이탈리아는 기존의 기민당 우파 지지가 대거 우파 선거연합[6] '자유의 집'으로 넘어갔으며[7], 헌법은 교체되지 않았지만 이후의 정치사를 '제2공화국'으로 부를만큼 엄청난 변화가 벌어졌다. 하지만 의아스럽게도 그 변화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1기 집권(...)[8] 급조된 정당인 '전진 이탈리아'가 급부상하는 원인이 되었다. 또 북부에서는 극우 분리주의 정당인 북부동맹(NL)이 극성하게 되었다.

이후 베를루스코니가 2년만에 온갖 추문 끝에 실각하고 로마나 프로디의 중도좌파 '올리브(월계수) 연정'(PDS 등의 참여, 재건공산당 등의 불참)의 좌파가 집권했으나, 다음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가 다시 승리하면서 5년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양당제 하인지라 양 선거연합의 지지율이 큰 차이(2% 조금 넘는 수준)가 없어도 정권이 갈릴 수 있게 되었던 것. # 본격 면도날 선거 그렇게 좌우파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도 언론을 장악한 베를루스코니에 미묘하게 세력이 약했던 좌파 올리브연합[9]이 밀리게 되었고 결국 2년만에 베를루스코니가 복귀하게 되었다. 94년 첫 집권한 베를루스코니는 94~96, 01~06, 08~11년까지 무려 전체기간으로는 18년, 실제 임기는 10년을 총리로 재직하게 되었다.

미묘하게 이런 과정에서 좌파는 재집권을 위해서 색깔이 점점 옅어졌다. 지난 20년간 공산당 -> 좌파민주당 -> 올리브연합 -> 연합 -> 민주당으로 변화한게 특징. '올리브 연합'의 경우 한국의 진보, 민주계열 정당의 선거연대나 통합 과정에서 모델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현재 이 중도좌파 연합에는 이제 재건공산당, 민사당과 급진당 등의 장미동맹, 녹색당[10] 등이 참여하고 있다. 우파의 경우 북부동맹의 주요 지역인 북부와 남부에서, 좌파는 볼로냐 시를 중심으로 로마와 피렌체 등의 수도권에서 우세를 드러낸다. 참고로 2006년 선거법이 재개정되면서 이탈리아는 다시 완전비례제로 회귀하였으나 정당간의 의석차가 줄어들어 정치가 좀더 불안정해진걸 제외하고는 큰 변화는 없다. 되려 북부동맹의 의석이 꽤나 줄어든지라.. 다만 이런 비례제가 아래와 같은 2013년의 혼란을 빚어냈다.

선거제도 변화 이후 이탈리아 좌파 정당은 이합집산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쉽게 그 구조를 알기는 어렵다. 그래도 프랑스 우파들만 하겠어 예를 들어 지난 20년간 좌파계열 중 2등 노릇을 하던 재건공산당은 분열 끝에 득표에 밀려 사라졌으며, 좌파운동, 사회당, 녹색연합 등이 참여한 좌파생태자유당이 2013년 현재 좌파연합내 제2당(3% 득표)이다. 경제위기와 함께 중도 정당도 부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포퓰리즘 세력의 급성장은 이탈리아 정치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3 특성

국민의 지지로 언플의 제왕이며 CEO 출신 수장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선출되었다는 것이 비슷하다. 하지만 임기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 대통령제의 한국과 총선과 정부 구성에 따라 임기가 유동적인 의원내각제의 이쪽은 이미 3선째로 도합 9년간이나 집권했으니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11].

베를루스코니 또한 포퓰리즘식 행보로 여론에게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 난니 모레티 영화인 '카이마노'와 '4월'을 보면,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지식인들의 분노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뭐 이탈리아답게(?) 좌파라고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만 기민당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집권하기는 했다.) 전후 최초의 사회당 출신수상 베티노 크락시[12]는 5년의 장기집권을 달성했지만 부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되자 해외 도피하여 그곳에서 객사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동생은 언론 재벌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언론에서는... 아무튼 여러가지 스캔들과 경제난으로 베를루스코니의 자리는 매우 위태로웠고 결국 2011년 11월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몬티의 중립내각 끝에 2013년 2월 총선이 치뤄졌다.

그 결과는 무승부. 2013년 중도좌파 민주당은 하원에서는 승리했으나 상원 선거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자유국민당에 밀려버려서 결국에는 어떤 당도 내각을 구성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더라.# 결국 극단적인 북부동맹(과거 자유국민당과 연정)이나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13] 등이 배제된 민주당-자유국민당-전 총리로 중도파인 몬티의 정당 등이 대 연정을 구성했다. 총선결과에 책임을 진 민주당 대표 피에르 베르사니가 사임 하고, 4월 28일 부로 민주당 부대표 출신의 46살의 젊은 엔리코 레타가 총리로 취임. 뒤를 이어 2014년 2월 14일에는 더 젊은 39세(1975년생)의 신임 당대표(2013년 12월 취임) 마테오 렌치가 취임했다# 제3의 길영국 토니 블레어 수상을 우상으로 삼는 인물로, 같은 39세에 총리가 된 베니토 무솔리니 이래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젊은 총리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사법부 만큼은 개념적으로 절대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건이 1992년에 있었던 바로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운동 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정치, 경제에 종사하는 관료들의 비리를 밝혀내어 3200명을 기소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 큰 사건으로 기독교민주당, 사회당 등의 기존 거대정당들이 한순간에 몰락해버렸고, 넓어진 정치공백은 신흥 정치가였던 베를루스코니가 야금야금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아니었고, 마니풀리테 수사팀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성역없이 수사하여 부패혐의로 철창행 시켜버렸다.

문제는 철창 안에서 당선되었다는 것. 국민이 뽑아줬는데 검찰 법원이 아무리 집어 쳐넣어봤자... 그리고 베를루스코니가 언론재벌이라서 언론은 이미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우린 끝났어라고 말할 정도... 여러모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들이 많다.

이탈리아 사법이 이처럼 독특한 것은 검찰이 행정부 소속이 아니라 사법부 소속이라는 점이다. 검사가 수사해서 범죄자를 잡아넣은 다음에 법원에 기소하는 이상 법원이 스스로 범죄자를 처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검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미국, 한국, 일본, 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검찰이 정권지배자가 지배하는 행정부의 법무부 안에 있고, 정권을 지배하는 자에게서 명령을 받으며 검찰을 지배하는 자도 정권을 지배한 자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삼권분립이 아니다. 재판을 시작하는 자가 행정부에 들어있는 자이고 판사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는 중립의무를 지고 반대편 피고는 정부권력의 보호를 못받으므로, 이런 나라들의 법원은 정권지배자가 지배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검찰이 법원과 같은 사법부 소속이어서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해서 잡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소추기관인 검사와 심판기관인 판사가 같은 조직에 있는 것은 법 이념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14] 마피아의 암약과 정치인들의 심각한 부정부패라는 이탈리아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런 구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마피아들은 자신들에게 가혹한 판사와 검사들을 종종 암살한다(...). 제아무리 엄중하게 법에 따라 심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

4 부패인식지수

이탈리아의 부패인식지수 추세# #
연도부패지수
2004년52
2005년62
2006년62
2007년52
2008년48
2009년43
2010년39
2011년39
2012년42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 지수는 100점에 가까울수록 청렴하고 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한 국가이다. 이 지수는 공무원정치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국제적으로 판단하는 척도로 자주 활용된다. 이탈리아는 2007년을 기점으로 부패지수가 폭락하기 시작한다. 근 10년 동안 이탈리아의 부패인식지수는 20점 가까이 추락하며 40점대라는 낮은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이나 독일 등과 비교하여 매우 낮은 수치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부패인식지수는 50점대로 이탈리아 보다는 높다.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남유럽 국가들은 유럽에서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한편 남유럽의 경제위기를 이런 정치적 후진성에 찾는 경우도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부패지수는 174개 국가중 7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의 청렴도를 가진 국가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있으며 동일한 72위를 기록하고 있다.

5 관련 항목

  1. http://cpi.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2.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3. 당연히 이탈리아에서 기독교는 곧 가톨릭이다. 본고장인데 심지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들은 기독민주당을 뽑도록 종용당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정교분리가 이루어졌다.
  4. 이는 공산당과 사민당, 민사당간의 사이가 나빴던것에 기인한데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타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 좌파정당들의 지지세가 낮지않음에도 우파정당인 기민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다.
  5. 명단에서 3,4명을 선택하여 65% 이상 득표자를 당선시키는 '선위투표'도 있었다.
  6. 여러정당들이 연대를 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탈리아는 연합과 총리 후보를 중심으로 정당들이 줄을 서고 그 득표의 합에서 우세한 측이 총리를 차지하는 식의 시스템이다.
  7. 물론 잔존세력인 기독중도당과 기독민주연합당 등은 아직도 연합내 자민당, 북부동맹에 이은 제3당 정도로 우파연합에 참여하고 있다.
  8. 근데 별로 새삼스러울것도 없는게 베를루스코니는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이미 미디어계의 황제로 등극한데다가, 부정부패 사건이 너무 터져나오는 바람에 유권자들이 무덤덤해져갔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를 잘 활용해서 집권할수 있었던 것(...)
  9. 2006년 베를루스코니 집권 저지를 위해 재건공산당 등을 받아들이면서 '연합(L' union)'으로 변경되고 올리브나무연합 자체가 하나의 정당이 되었다.
  10. 민사당(SDI)과 함께 2001년 잠시 해바라기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연합 내 연합을 이루기도 했다.
  11. 전후 최장재임 기록이다. 이탈리아 통일 이래 역대 최장기록은 무솔리니
  12. 이 인간이 소속된 정당을 보면 이해가 안갈수도 있지만 밀라노 시장 시절때부터 베를루스코니하고 친하게 지내서 총리가 되면서 방송규제를 완화하고(민영방송의 전국송출을 허용) 베를루스코니에게 여러가지 특혜를 주어 나중에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게 된다. 정작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되었을때 수배자 신세여서 튀니지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야 했지만
  13. 베페 그릴로라는 정치 코메디언이 구성한 반유로 포퓰리즘 정당으로, 시칠리아 등의 이탈리아 남부에서 크게 성장해 25% 지지의 제3당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다른 기존 양당도 지지율이 고작 29% 대인지라.. (몬티 전 총리의 중도당이 10% 득표)
  14. 내가 소추하고, 내가 심판하면 유죄로 판결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 단,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논리가 그다지 크게 작용되지는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