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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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成太
1915년 07월 28일 ~ 2000년 08월 17일

대한민국의 전 관료, 교육자, 정치인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두언의 먼 친척이다.

1915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40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자신의 보성전문학교 재학 당시의 스승이었던 설산 장덕수의 권유로 한국민주당에 입당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탈당했다. 이후 이범석의 족청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광주상업고등학교(현 광주동성고등학교)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무소속으로 전라남도 광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민주당이 창당하자 이에 참여하여 민주당 구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대에는 정치판이 혼탁하여 선거판에 나온 사람들 모두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이 예사였으나, 정성태는 구루마를 타고 다니면서 연설을 할 정도로 검소한 선거운동을 하였다. 지역구 유권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선거운동원들에게도 제대로 식사를 챙겨주지 못할 만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거운동을 했지만, 매번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한일기본조약 반대운동에 참여했으며, 1965년 8월 13일 한일기본조약 비준에 항의하는 뜻으로 민중당에 탈당계를 제출해 윤보선, 김도연, 서민호, 정일형, 김재광 등과 함께 국회의원직이 자동 상실되었다. 이로 인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는 정민회 유수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1966년 신한당에 참여하였다가 다시 통합야당 신민당에 참여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갑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1970년 6월부터 1971년 6월까지 국회부의장직을 역임했다. 1969년 8월 31일 광주에서 ‘3선 개헌반대 천리길 헌정수호행진’을 시작해 11일 동안 걸어서 서울에 진입하려다가 정사복 경찰중대에게 저지당하고 서울 삼청동 자택으로 이끌려갔다. 당시에 정성태의 천리도보 행진은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일당 김녹영 후보와 민주공화당 박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같은 항렬의 친척 동생을 그의 운전사로 일하게 했는데, 그 운전사의 넷째 아들이 정두언 의원이다. 정두언은 자신의 족숙인 정성태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