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석

이름차명석(車明錫 / Myeong-seok Cha)
생년월일1969년 4월 20일
출신지서울특별시 용산구
학력사당초 - 성남중 - 성남고 - 건국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2년 2차 1순위(전체 5순위)
소속팀LG 트윈스(1992~2001)
지도자경력LG 트윈스 투수코치(2004~2005)
LG 트윈스 불펜코치(2006~2009)
LG 트윈스 재활코치(2009)
LG 트윈스 육성군 투수코치(2009)
LG 트윈스 불펜코치(2010)
LG 트윈스 투수코치(2010~2014.2.10)
LG 트윈스 수석코치(2015)
kt wiz 투수육성총괄코치(2016)

1 소개

LG 트윈스 소속의 투수. 오랜 기간 LG 트윈스 투수코치로 활약했으며, 잠깐 동안 맡았던 MBC 스포츠플러스의 야구 해설자 시절에도 특유의 입담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LG 트윈스 역대 투수코치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코치 + 역대 해설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해설가.

2 선수 시절

성남고등학교건국대학교 야구부를 거쳐 1992년 2차지명 1라운드에서 LG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덧붙여 그 해 1차 지명 선수는 휘문고등학교임선동.

초기에는 주로 선발로 등판했다. 그러나 공이 빠른 것도 아니고, 컨트롤이 좋은 것도 아닌 그에게 선발이라는 보직은 버거웠던 듯. 그대로 가면 존재감이 안습인 선수인 채로 아무도 모르게 은퇴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김용수한국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선구자였다면, 차명석은 중간계투의 에이스, 즉 셋업맨의 선구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패턴이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 충족 → 최대한 이닝을 길게 끌고 간다 → 7~8회에 마무리를 올린다'였다면 차명석은 주로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등판하여 셋업맨으로써 1~2이닝을 책임지고, 그 후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이전에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차명석 이전에 팀 선배인 차동철과 후배인 강봉수, 해태 타이거즈의 마당쇠 송유석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노예처럼 마무리 투수를 불러내기 애매한 상황에 나와서 마구잡이로 던지던 승리조 투수에 가까웠지 메이저리그 식의 프라이머리 셋업맨 개념은 아니었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고 정착한 것은 투수 분업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이광환 당시 LG 트윈스 감독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6~8회에 공을 던지는 투수'와 '전문 셋업맨'을 본격적으로 분리시킨 것이 바로 이광환 감독이 도입한 라루사이즘식 투수 분업화이기 때문. 차명석은 이런 시스템에서 '전문 셋업맨'이라는 역할을 잘 해 내면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성공한 투수로 평가받을 만한 선수다. 그덕에 중간계투 투수로서 최초로 억대 연봉자에 이름을 올렸다. 즉 이 성공이 이동현, 안지만, 정현욱 등을 있게 해준 뿌리인 셈. 이처럼 이광환 감독의 체계적인 투수분업화 도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보직도 없이 마구잡이로 혹사당하면서 사라졌을 수많은 투수들의 선수 생명을 10년 이상씩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커리어 하이는 11승을 기록했던 1997년이다. 그 해 1군 68경기에 등판해 119⅓이닝이라는, 중간계투로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등판을 해서 11구원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이 당시의 뛰어난 활약상 덕분에 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차덕스였다. 1990년대 후반 LG 트윈스 마운드의 대표적인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그가 비록 그가 A급 선수라고 부르긴 힘든 성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가 2001년에 방출되어 은퇴한 이후 2000년대 LG 마운드에서 이동현을 제외하면 그에 버금가는 활약을 해준 셋업맨은 전무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습.

2001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서 9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고 재활하다가 시즌 후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것도 결혼을 며칠 앞두고였다. 32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한지라 차명석 본인으로서는 후회도 물론 많지만, 처음 본인이 하고자 목표로 세웠던 선수 생활 10시즌, 억대 연봉, 300게임 출장을 모두 달성해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특히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중간계투 최초의 억대 연봉 기록은 그로서도 의미가 깊은 듯. 1990년대 트윈스 프랜차이즈 계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이 아마 그일 것이다. 김용수, 이상훈 등 여러 명이 있지만 그들은 선발, 마무리 가리지 않고 출전했기에 이름 넣기에는 애매하나 차명석에 비하면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다. 단지 차명석은 입단할 때 부터 보직을 못잡고 헤매었다.

3 은퇴 후

3.1 해설자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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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후 허구연의 제안으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MBC 스포츠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을 맡았다. 해설가로 활동한 시절에 특이한 어록 등을 많이 남겨서 재미를 선사했는데, 아래에 언급되는 저 수많은 어록들이 해설가를 맡았던 단 1년 사이에(…) 나온 것이다. 해설자 경력은 다음해에 코치 신분으로 친정 팀에 복귀하게 되면서 마무리하게 되는데, 해설을 계속 해 보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자신은 현장에서 뛰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 코치로 복귀했다고 한다.

3.2 LG 트윈스 지도자 1기

2003년 시즌이 끝난 뒤 친정 팀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어 이후 불펜, 재활, 육성군 투수코치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코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박종훈의 뒤를 이어 김기태 수석코치가 LG 트윈스의 감독이 되자 2011년 10월 14일 LG의 1군 메인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그 전에 코치일 때도 큰 실적이 없었고 해설가일 때 개드립(?)을 많이 날렸던 탓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명목상 1군 투수코치일 뿐 사실상 조계현 수석코치가 1군 투수진을 총괄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LG 팬들로부터 의외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변화구를 잘 전수해 준다는 듯했다. 2011 시즌까지 고인화되었던 김광삼 & 정재복의 부활이라든지 중간계투의 투입 타이밍이라든지 괜찮은 평가를 들었다. 아쉬운 점은 투수코치 재임 후 2012년 LG 투수들의 최고 구속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 변화구 & 컨트롤 UP & 스피드 DOWN 하지만 레다메스 리즈는 162km/h 찍었다 물론 2012 시즌 LG 1~2군 투수코치진을 보면 전원이 현역 시절 변화구와 제구력이 특기였고 구속은 떨어지는 사람들이긴 했다.
2012 시즌에는 팀 평균자책점이 4.02로 3점대 평균자책점에 근접했고, 불펜 평균자책점이 3.65로 전체 3위를 기록하면서 마운드의 개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13 시즌에는 정현욱의 FA 영입과 더불어 팀 불펜진이 더 강해졌고, 우규민신정락, 류제국 등 토종 선발진이 자리를 잡으면서 6월 21일 기준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그 와중 7월 8일 콩팥 종양 제거 수술을 받느라 2주 동안 병가를 냈다. 따라서 엔트리에서 잠시 말소되었고, 그 사이 1군 투수코치 대행은 강상수 1군 불펜 투수코치가, 1군 불펜코치 대행은 경헌호 2군 투수코치가 1군에 잠시 올라와서 맡았다. 7월 23일 후반기 첫 경기인 잠실 KIA전에 요양을 마치고 복귀하였다.

2013 시즌 시작 전 단장, 사장과 같이 모인 자리에서 2013 시즌에는 적응기라 생각하고, 빠르면 2014 시즌, 늦어도 2015 시즌까지 삼성 라이온즈평균자책점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공언하여 모인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2013시즌 LG트윈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실제 삼성을 제치고 1위를 달렸기에 수많은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4년 정규 페넌트레이스가 끝나고 삼성의 평균자책점은 4.52로 2위, LG의 평균자책점은 4.58로 3위이다. 참고로 1위는 4.29의 NC 다이노스. 타고투저의 시즌으로 불린 2014년 시즌에서 팀 평균자책점이 4점대인 팀은 위 세 팀 뿐이다.

LG 트윈스의 2013 시즌 돌풍의 원인으로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쉽, 김무관 타격코치의 무관매직과 더불어 마운드를 꾸려낸 차명석 투수코치의 능력이 상당히 높게 평가받았다. 게다가 2013 시즌 후반에 내놓은 공약으로는 2014 시즌에는 국내파 선수 중 15승을 거두는 에이스 투수를 키워내보겠다는 말도 있었다.[1] 이런 돌풍에 가까운 활약 덕분인지 이듬해인 2014년 3월에 2013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프로코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13년 시즌 후, 3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다행히 팀 내에서 정치적인 문제랑은 상관없이, 잠시 몸을 추스리게 하기 위해 구리로 보낸 것이라고 프런트가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 신장 종양제거 수술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가을야구까지 선수들을 지도했으니. 실제로 병원에서도 1년 간 안정을 취하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규제가 LG 트윈스에 새로 영입되었다.

2014년 시즌을 앞두고 3군 총괄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아내의 병환으로 수술을 받게 되자 자신의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2014년 2월 11일 3군 총괄코치직에서 사임했다. 하지만 건강과 가정상의 이유로 잠시 쉬는 형태인지라 완전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사정이 좋아지는 대로 코치직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했다.

3.3 해설자 2기

2014년 3월 2일 11년 만에 MBC 스포츠플러스해설자로 돌아왔다. # 1년 뒤 현장에 복귀하려면 경기 감각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해설을 하면서 공부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선택했다는 것이 이유. 오전에 메이저리그 방송을 하고 저녁에 가족을 돌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유로 작용한 듯 싶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해설만 맡는 것은 아니며 한국프로야구 중계와 베이스볼 투나잇 출연도 병행했다. 결국 2014년 3월 8일 시범경기를 통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이후 2014년 시즌 초반 LG 트윈스의 투수진이 막장으로 치닫자 새삼스레 차명석의 위엄이 부각되기도 하였다.그런데 김기태 감독 사퇴 관련 기사 내용을 보면 자진 사퇴라기 보다는 프런트가 계약을 안 해줘서 그만 둔 것처럼 보인다. 역시 프런트는 악의 근원

2014년 9월 13일, 엠스플의 해설위원을 그만두고 친정팀인 LG 트윈스의 코치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같이 중계를 하던 한명재 캐스터도 경기 중간에[2] 차명석이 해설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10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또 헤어지게 된다니 아쉽다면서 솔직한 감정을 토로했다.[3]
스스로는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코치로 현장에 복귀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차명석은 이날 중계 초반에는 선수들 사이에 줄무늬 피가 흐른다는 말을 한다고 언급했으며, 스트라이프 셔츠에 붉은 넥타이[4]를 매고 왔다.

3.4 LG 트윈스 지도자 2기

2014 시즌 도중 김기태 감독의 사퇴 과정에서 수석코치였던 조계현이 2군 감독으로 옮기며 공석이 된 LG의 수석코치직을 맡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기간에 팀에 합류하여 선수들을 지도할 것으로 추측되었다. 지난 2014년 2월 3군 총괄코치 사직 이후 약 7개월 만에 다시 LG에 복귀하는 셈이다.

그러나 양상문 감독은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찍지 않았다. 설령 계약하더라도 지금 체제로도 잘 돌아가고 있으므로 당장 1군에 합류시킬 계획은 없다"며 차명석이 수석코치로 임명된다는 이야기에 선을 그었고, "10월 미야자키 교육리그 파견이라던가 손이 모자란 부분을 지원하게 될 것이며, (차명석 코치의)선수단 합류는 2014 시즌 후가 될 것" 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으로 LG 선수들은 차명석의 복귀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이다.관련기사

뒤이어 나온 기사내용 으로 볼 때, LG에서의 차명석의 역할은 ①인천 아시안 게임 기간 투수코치로 파견된 조계현 2군 감독의 대행 ②10월 초 미야자키 교육리그 파견 선수단 담당 인 것으로 보여지며, 정식 계약은 시즌 종료 후가 될 것이고 보직 또한 그 때 정해질 전망이다. 아무튼 차명석의 LG 복귀는 거의 기정사실이며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플레이오프 종료 후 LG에 복귀, 2014년 시즌 마무리 훈련을 총괄 지휘하게 되었다. 양상문 감독이 2015년 시즌을 대비한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시즌이 끝나고 바로 도미니카 공화국 으로 출국했고,[5] 약 2주 동안 차코치가 양감독을 대신하여 선수단을 이끄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그렇고 차코치 자신도 수석코치 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아 LG 수석코치직은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그러나 2015년 시즌 팀의 부진으로 책임을 지고 KIA 타이거즈와 맞붙은 최종전 이후 수석코치직에서 사퇴했다. 아니 수석코치외 안맞아서 운이 안따라줬을 뿐이지, 이렇게 섭섭하게 나가시면 어떡해요?

3.5 kt wiz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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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kt wiz의 투수육성총괄코치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다른 팀에 몸담게 됐다. #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팀을 옮기게 되었다고. 시즌 중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는 투수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어린 투수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재계약하지 못하게 되자, 육성총괄직에서 사임했다. 신임 김진욱 감독이 적극적으로 잡지 않았다고 하며, 야구발전연구소라는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가 감독, 단장 등이 바뀌면서 백지화된 것도 이유 중 하나라는 듯. kt에서는 차 코치의 사임으로 육성총괄 파트도 해체시킨다고 하였다.

4 어록

차명석/어록 항목으로

5 코칭 스타일

정명원 투수코치와 확연히 정반대 스타일인데 같은 팀에 재직했지만 이젠 떠났다

2013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재직하면서 두산 베어스의 마운드를 부활시켰고 kt wiz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했으며 야구 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정명원 투수코치는 전형적인 속구 & 포크볼 전수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지도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차명석 투수코치는 정작 스타일이 정명원 투수코치와 완전히 다르다.

우선 안정된 제구부터 먼저 잡아야 하는 지론을 가졌으며, 실제로 주축 투수들의 볼넷이 크게 줄었다. 사실 그동안 LG를 거쳐간 많은 투수코치들이 대부분 이런 스타일[6]이었지만 능력이 딸리는 고로 스피드만 왕창 줄고 제구는 눈꼽만큼 업된 악순환을 불러왔는데, 차명석은 이렇게 하면서 투수들의 제구도 확실히 잡고 그 나비효과로 속구도 자신있게 던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신정락에게 구속을 약간만 줄이자고 했을 때 설득에 두 달이 걸렸다는 일화가 있기는 하다.

2번째로는 포크볼 성애자 소리를 듣는 정명원과 달리 대표적인 포크볼 족까 스타일이다. 투수들에게 무리한 부하가 들어가는 변화구를 무조건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의 변화구 전수에 있어서는 역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주로 투수의 어깨나 팔꿈치를 덜 갉아먹는 종류의 변화구를 가르치는 방법을 쓴다.

3번째로는 투수를 절대로 갈구지 않는다는 것. 은근히 자존심이 강한 류제국이 승리 투수를 눈앞에 두고 위기에 빠질 때면 그가 마운드로 올라와 씨익 웃으면서 "내려가기 싫지? ㅋㅋㅋ"라는 말로 긴장을 풀어 주며 잘 다독여 주었고, 멘탈이 약하다는 평가를 듣는 신정락을 확실하게 선발의 한 축으로 만든 점은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유원상중간계투 보직으로 고정한 장본인도 차명석이다.

아무튼 확실한 사실은 6668587667로 대표되는 LG의 암흑기 시절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투수 왕국을 차명석이 구축했다는 것이다. 2014년 시즌 막판 차명석이 LG 코치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LG 팬들은 물론 선수들 모두가 쌍수를 들고 입을 모아 환영했다는 점도 그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 투수코치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2LG 트윈스278505203.92773752
199335125⅓79104.881464761
1994266123104.28692224
1995920⅓11002.662446
19963171⅓44104.04812034
199768
(2위)
119⅓114702.791003966
19985677⅓34303.96782043
19995067⅔72203.46682445
20005474⅔34211
(3위)
4.82842950
200198⅓01008.641676
통산10시즌365710⅓383719114.02743249387
통산 365경기 710⅓이닝 3완투 38승 37패 19세이브 11홀드[7] 387탈삼진 평균자책점 4.02
  1. 아마도 5월에 합류하여 시즌 10승을 거둬 낸 류제국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2. 공교롭게도 이날 중계한 경기가 LG 대 삼성의 잠실 경기였다.
  3. 그리고 차명석은 "저 이렇게 잘리나요?" 라는 드립으로 화답했다.
  4. 줄무늬와 붉은색은 LG 트윈스 창단 이후 변치 않은 구단의 상징물이다. 줄무늬 유니폼과 붉은색 기업 로고가 그 예.
  5. 사실 이전에 뛰었던 레다메스 리즈의 상태 관찰과 재영입 검토 목적도 있다.
  6. LG의 암흑기 기간 중 이런 흐름에 역행한 투수코치는 최계훈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사실 양상문도 있지 스타일은 다르지만 최계훈 역시 유능한 투수코치로 잘 알려져 있다.
  7. 참고로 홀드 기록은 KBO에서 2000년부터 집계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 이전부터 기록했다면 차명석은 어마어마한 홀드 숫자를 남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