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국

550px

파일:/image/311/2016/04/23/1461402250272 99 20160423183603.jpg

2013년 LG의 마운드에 화려하게 등장한 승리의 아이콘
2016년 LG를 이끌어 나가는 (무적의) 캡틴

LG 트윈스 No.11
류제국(柳濟國 / Jae Kuk Ryu)
생년월일1983년 5월 30일
신체190cm, 105kg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용답초-청량중-덕수정보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1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시카고 컵스)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LG 트윈스)[1]
소속팀시카고 컵스(2006)
탬파베이 (데블)레이스(2007~2008)
LG 트윈스(2013~ )
등장음악스타워즈 OST - The Imperial March[2]
2013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미치 탈보트(삼성 라이온즈)류제국(LG 트윈스)헨리 소사(넥센 히어로즈)
LG 트윈스 등번호 11번
박현준(2010~2011)류제국(2013~ )현역
LG 트윈스 역대 주장
이진영
(2014~2015)
류제국
(2016~)

Ryu Empire[3]

1 개요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팀의 주장.

2 경력

2.1 괴물같은 고교시절

덕수정보고 시절 굉장히 유망한 투수였다[4]. 고교 야구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150km의 구속을 찍은 몇 안되는 투수. 당시 서울권에서 류제국에 필적할 만한 투수는 없었고, 전국적으로 따져야 김진우라는 초고교급 라이벌이 있을 뿐이었다.

2001년 청룡기 준결승전에서는 경기고와의 경기에 등판, 9이닝 1실점 20탈삼진 완투승을 따내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에선 시즌 2관왕을 노리던 광주진흥고를 꺾고 승리하였다.[5][6] 청룡기 최종 성적은 4경기 등판해서 29⅓이닝 7자책 53탈삼진에 4승 평균자책점 1.82. 말 그대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거기에 청룡기 최우수선수상, 최우수투수상, 수훈상을 싹쓸이했다.

2.2 미국 시절

당시 박찬호의 성공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국내 팜의 유망주를 찾기 위해 대한민국을 자주 찾던 때였으며, 당연한 순리인지 모르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시카고 컵스와 1라운더 급의 규모인 160만 달러의 계약을 맺어 마이너리거로 활동하면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3년의 물수리 사건[7]을 겪으면서부터 점차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2004년 후반기 즈음에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구속이 떨어졌고, 2006년 5월 29일에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랐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맞붙었던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1과 1/3이닝 동안 4홈런을 맞고 7실점(6자책)한 후 조기 강판당하고 다음 날인 그의 생일에 마이너리그로 쫓겨났다.... 이미 상실한 구위와 계속된 잔부상에 시달리며 류제국은 기대치를 전혀 채우지 못한 채, 외야수 앤드류 로페스와 투수 그렉 라인하드를 상대로 탬파베이 레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승리(구원승)를 거두었지만, 이게 메이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이팀 저팀 돌아다녔지만 고질화된 팔꿈치 부상 때문에 확실한 자리를 잡을 수 없었고, 결국 2008년 시즌 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방출된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이적했으나 시즌 시작 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류제국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이적을 거절당하며 2009년에는 무적 선수로 남았다. 이듬해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을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비자 문제로 합류가 늦어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마저 방출당하며 이대로 야구 인생이 끝나나 싶었다.

2.3 영구 귀국

결국 뛸 팀을 찾지 못한 그는 팔꿈치 부상을 안은 채 2010년 4월에 충격적인 영구 귀국 선언을 한다. 귀국 후 병무청으로 가서 신검을 받은 그는 재검 끝에 팔꿈치 부상을 사유로 그 해 6월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귀국 후 자신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는 LG 트윈스 입단을 타진했다. 하지만 류제국이 군 미필이라는 점이 걸렸다. 병역 문제를 더 이상 미룰 방편이 없다시피해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고양시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여 2013년 복귀를 목표로 병역과 재활을 병행했지만 오랜 기간 실전 피칭을 중단한 상태였던 류제국이 어느 정도의 투구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로 보였다. 박동희 기자의 트위터에 따르면 트윈스 구단은 메디컬 체크를 검토한 후에 영입을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이후 당장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지, 소집해제를 눈 앞에 둔 2012년엔 5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세 번 구리구장으로 가 공을 던지고 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2009년 10월까지도 구리 구장에서 공을 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재활에 매진하다가 최근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 페이스북을 했는데[8], LG로 올 거냐는 팬의 질문에 명확히 답을 하지 않아 다시 다른 리그로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으나, 위의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본인의 의지도 그렇고, 병역의무가 끝나고 곧바로 LG 트윈스에 입단할 것으로 보였다.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계약금 문제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류제국 쪽은 봉중근이 입단할 당시의 금액을 원하는 반면, LG는 부상 경력 때문에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봉중근도 국내에 돌아오기 전 마이너리그 시절에 팔꿈치 부상으로 1년을 날렸었다(…)

결국 계약금 문제로 엘지와 틀어졌는지 통수 치고 일본행으로 가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라고 했는데, 자신의 팬카페에 직접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오히려 봉중근 급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주장했고, 협상이 잘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계약할거 같다라는 글을 남겼다. 참고로 일본행 기사를 쓴 기자는 이종범 LG 코치설을 썼던 성환희 기자였다. 하여튼 기레기들

그런데 다시 돌연 미국으로 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게 문제가 되는게, 그동안 LG 트윈스로부터 온갖 지원을 다 받아놓고 연봉이 맘에 안든다고[9] 그냥 비행기를 타 버린 것이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온갖 썰이 나돌었지만 일단 중론은 메이저리그 통산 3시즌 동안 고작 39⅔이닝에 7점대 방어율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왔으면 1수창이라도얼마를 주든 감사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네이버 댓글창이든 야갤이든 LG 트윈스 갤러리[10]든 엠팍이든 대동단결하여 류제국을 깠다.

또 다른 기사에 의한 협상과정의 전말은 이렇다.
1차 협상: 류제국 13억 원 vs. LG 8억 원
2차 협상: 류제국 10억 5천만 원 vs. LG 9억 5천만 원
3차 협상: LG 다시 1차협상 때 제시 금액인 8억 원을 다시 꺼내들었고 이에 열받은 류제국 미국행.#

그래도 결국은 LG 입단 초읽기에 들어갔고, 먼저 미국행이나 협상과정의 기사들을 부정하고 계약사항의 모든 것들은 구단에 일임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3년 1월 31일 연봉 1억, 계약금 5억 5천만 원에 계약하였다. 협상과정에서 오가던 제시액인 8억이나 10억 등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금액에 계약한 셈.

2.3.1 류제국의 실패 이후 유망주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논란

류제국뿐만 아니라 많은 고교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마이너리그로 갔지만, 그 중 성공한 선수는 추신수 한 명 뿐이다. 대학교까지 확대하면 한양대 재학 중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까지 성공한 사람은 두 명이다. 마이너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메이저리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많아지며 이래저래 '국내에 남는 게 더 좋지 않나?'라는 의견이 목소리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건 이게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애초에 마이너리그는 소위 '끌어올려주는' 아시아 야구 시스템과 달리 '떨어뜨리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 한국 고교 선수들만 마이너리그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게 아니다. 미국 선수들도, 남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국 선수들은 한국에 남아서 국내리그를 정복한 뒤 가야한다' vs '어릴 때 가서 마이너리그를 통과하는 걸 무작정 말릴 순 없다' 사이의 논쟁은 류제국 하나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며, 누가 옳고 그름을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3.2 2013 시즌

2013년 LG 트윈스의 승리의 요정.

퓨처스 리그에서 뛰면서 몸을 만들며 시즌을 시작하였다.퓨처스 리그에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퓨처스 리그에서 뛰는 1군 투수들의 상당수가 이 정도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 때문에 마냥 기대를 걸 상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핵병기로 유명한 이 분조차 퓨처스 리그에서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1군 리그와 퓨처스 리그의 격차는 크기 때문이다.

착실히 몸을 만들어 최고 구속이 140km/h 중반까지 나왔다. 김기태 감독은 류제국의 몸이 100% 완성돼야 1군 콜업을 할 것이며 그 시기는 6월 쯤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그리고 생각보다 컨디션이 빨리 올라왔는지 5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그리고 이 날부터 LG 트윈스에서 제국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이날 경기는 김진우와의 맞대결로,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투수였던 둘의 대결로 기대를 한껏 모았지만, 김진우는 LG 타자들에게 공략당하며 4⅔이닝 동안 7실점(3자책)을, 류제국 또한 홍재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이후 6회 들어 나지완에게 다시 투런홈런을 맞은 뒤 내려갔다. 이 날 류제국은 5⅓이닝 81투구수 5피안타 2피홈런 2사사구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4:7로 이겨서 승리 투수가 되어 대한민국에서의 첫 승을 선발승으로 따냈다.

그리고 5월 2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 선발 등판하였다. 4⅓이닝 동안 94개의 공을 뿌리면서 피안타 6개와 볼넷 4개를 맞으면서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위기 상황마다 꾸역꾸역 막으면서 결국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류제국이 내려간 이후 팀은 5명의 투수들이 무실점으로 막아내다가 결국 9회말에 정의윤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스코어 0:1의 승리를 거두었다.

6월 30일 잠실 SK전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은 영봉승으로 승리.

6월 말까지 본인은 3승을 챙겼지만 등판한 7경기 중 6경기가 팀 승리로 이어지는 등 승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7월, 8월에도 총 6경기에 나와 2승 2패를 기록했고 그 중 4경기를 이겼다. 특히 위기관리 능력꾸역꾸역 버티는 변태 피칭으로 무사 만루와 같은 상황에서도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기도 하는 등 위기 속에서도 타자를 잡아내는 것이 특징 물론 보는 팬들은 똥줄이 탄다

결국 9월 18일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10승째를 거뒀다. 이는 해외파 선수의 복귀 첫 해 최다승이다. 그 전까지 최고 성적은 2007년 이승학의 7승이었다. 게다가 10승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승률왕 경쟁에 나섰다.

기존에 레다메스 리즈, 우규민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데에 이어 류제국마저 10승 투수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LG 트윈스는 2011년에 이어 다시금 10승 선발 3명을 보유하는 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0월 5일 시즌 마지막 경기, 팀의 2위 탈환이 달려있는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7⅓이닝 2실점 호투로 12승을 따내 시즌 끝까지 자신이 왜 승리의 아이콘인지 증명한다. 팀은 스코어 2:5로 승리하며 이날 한화 이글스에게 진 넥센 히어로즈에게 2위를 뺏어오는데 성공하며 해피엔딩으로 페넌트레이스를 끝냈다. 비록 올 시즌에 합류했지만 류제국도 그동안 LG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선수들과 같이 눈물을 보였다. 또 자신도 힘든 선수생활을 겪었기에 팀에 보탬이 되는 좋은 성적을 올린 것에 대한 눈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승과 승률만 봐서는 에이스급의 좋은 성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운빨과 거품이 가득한 성적이다. 볼넷 허용 비율(BB/9)은 무려 4에 육박하며, 평균자책점이 3.87인 것에 반해 FIP는 무려 4.64이다. WAR는 0.74로 시즌 내내 LG팬이 욕하던 벤자민 주키치와 동급. LG가 6억 5천이나 투자한 것에 반해서는 딱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말하기 힘들다. 사실 LG팬들도 리그 씹어먹는 성적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시즌 내내 잘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실제로도 평균 5이닝 이상을 먹어주었고 거기에 무지막지한 운이 따라주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 류제국이 없었으면 그자리에 들어갈 쓸만한 선발 후보가 정말 너무나도 없었기에 비판하는 여론이 일어도 금방 수그러들었다.[11]

10월 1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109투구수 4피안타 4볼넷 1사구(死球) 8탈삼진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69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고, 10월 16일 경기가 류제국의 2013년 플레이오프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2.3.3 2014 시즌

해당 항목 참조.

2.3.4 2015 시즌

부상으로 5월 9일 kt전에야 1군에서 첫 경기를 뛰었다. 5.2이닝 3실점을 기록했으나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17일 SK전에서는 7이닝 4실점을 기록했고 타선의 도움을 받으면서 시즌 첫 승을 기록하였다.

5월 23일 롯데전은 3.1이닝 4피홈런 9실점으로 말 그대로 멸망하고 말았다. 팀은 11:19로 패했고 당연히 류제국이 패전 투수가 되었다.

8월 4일 NC전에서 1회에만 7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히팀은 8:1로 패했다.

8월 8일 두산전에서는 6.1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8월 15일 KIA전에서는 7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플러스를 기록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또 다시 패전투수가 되었다.

8월 27일 SK와의 경기에서 6이닝 1실전으로 호투했지만 불펜의 방화로 또 다시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재작년에 승운을 다 썼다 카더라 이 정도면 운명인 듯

2015년 11월에 열리는 국제야구선수권대회 WBSC 프리미어 12의 45인 예비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팬들은 박종훈, 조무근과 함께 엔트리 포함 최대 미스터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28인 최종 엔트리에서는 제외되었다.

9월 15일 드디어 불운을 딛고 시즌 4번째 승리를 따냈다!

시즌 후 LG 트윈스의 주장으로 선임됐다. LG에서 투수가 주장을 맡게 된 것은 이상훈 이후 처음이다. 기존 주장딴 팀으로 가서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애초에 엘지의 주장 임기는 2년이다. 즉 이진영이 가든말든 주장 투표는 진행되었을 것이란 소리. 실제로 이진영 본인도 9월경에 주장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인터뷰를 하기도.[12]

당시 개표방송

2.3.5 2016 시즌


2016년 9월 18일 잠실 삼성 전에서 생애 첫 완봉승을 달성하고.

아마도 가슴에 있는 캡틴 상징이 류제국 선수에게 더 큰 힘을 준 것 같습니다. 류제국 선수는 책임감이 넘칩니다. 자기 야구 하기도 바쁜데, 주장 역할을 맡으며 팀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주장의 자존심으로 힘들었던 7회, 8회를 넘기는 모습이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지면을 빌어 처음으로 담당기자와 선수가 아닌, 동갑 친구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류제국, 오늘 진짜 멋졌다."


자랑스러운 친구 류제국에게 "진짜 멋졌다". 2016년 와일드카드 2차전이 끝난후.

오 캡틴 마이 캡틴
시즌 초만 해도 불지르는 선발인 줄 알았지만... 4월과 7월을 제외하면 망해버린 2016 LG 선발진 중에서 유일하게 제 역할을 다해준 투수.
3년만에 돌아온 10승 투수
부진탈출 넘버원

류제국/2016년 문서로.

2.4 총평

前 용병투수 루카스 하렐 때문에 잘 부각되진 않지만, 이쪽 역시 멘탈이 굉장히 약하다. 사실 그의 약한 멘탈은 물수리 사건으로도 드러난다. 또 다른 단점은 파워피처임에도 지나치게 위기 상황에서의 승부를 피하려다가 볼넷을 내준다는 점 역시 단점이다.[13]

장점은 제구력과 공 끝의 움직임, 그리고 좋은 구위다. 팀에서는 외국인 투수와 에이스 우규민을 잇는 3선발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2015년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분석해보면 류제국은 2015년에 전체적인 기록들이 나빠졌다. 2014년에 9이닝 당 삼진이 7.80개였는데 2015년은 6.09개로 크게 떨어졌다.[14] 특히 9이닝 당 홈런이 1.11개나 된다![15] 이 수치면 이 분과 비슷한 기록. 다만 류제국의 경우는 삼진의 감소+홈런의 증가가 크게 다가온 것이지, 홈런 때문에 모든것이 꼬인 것은 아니다.[16][17] 즉, 득점지원보다 본인의 장점이었던 탈삼진을 잡는 능력의 하락이 생겼다.

주장으로서 팀의 분위기 쇄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한창 세대교체 중으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LG를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덕아웃 분위기를 경험하고 온 것도 도움이 된 듯 하다. LG 그라운드 안팎에 가득한 류제국 효과

3 연도별 주요 성적

3.1 메이저리그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6시카고 컵스10150108.4023617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7탬파베이 레이스1723⅓1207.33311114
200811⅓0000.00011
MLB 통산
(3시즌)
2839⅔1307.49541932

3.2 한국 프로야구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피홈런사사구탈삼진
2013LG 트윈스20111⅔122003.87109115988
201427147⅔97005.121461371128
20152313049004.78134165588
201629161⅔1311004.301521470138
KBO 통산
(4시즌)
995512518004.6538940185304

4 기타

  • 류현진미국 진출로 같이 유명해진 리키 놀라스코와는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같이 있었는데, 놀라스코와 굉장히 친했다고 한다. 4년 동안 룸메이트였다고 하는데 군대로 치면 같은 내무반 4년 쓴 셈이라(…) 친할 만도 하다. 거기에 놀라스코의 성격이 굉장히 좋아서 류제국에게 미국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상대방이 욕할 때 기죽지 말고 받아치라며 욕도 많이 가르쳐 주는 등 영어도 많이 배운 모양.그리고 놀라스코에게 한국어 욕설을 전수했다 당연히 놀라스코는 류제국에게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놀라스코 역시 2013년에도 대한민국 기자에게 류제국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색을 하며 연락처를 물어보고, 그 연락처를 얻기 위해 직접 자기 연락처를 기자에게 알려줄 정도로 아직도 류제국과의 인연을 각별히 여기는 모양. 류현진을 졸라서 류제국이 등판한 LG 트윈스 등판경기를 다운받아 보기까지 한다고 한다.
  • 2014 시즌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펠릭스 피에와도 방을 같이 쓴 적이 있다. 피에의 똘끼에 대해 원래 미국에서도 그랬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말을 들어 보면 미국에서보단 얌전해진 듯 4월 19일 경기에서 피에와 한국무대 첫 맞대결이 성사되었는데 3안타를 내줬다. 당연히 "적이 되니 무섭다"고.
  • 디시인사이드의 설립자 김유식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래서 '류식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링크 16시즌에는 진짜 로 주장이 되면서 쥐갤에선 류식대장이 공식화되었다 실제로 디시위키의 류제국 문서에 걸려있는 사진 중 하나가 김유식이다.(...) 기타 별명으로는 심형탁? 심형래를 닮았다고 하여 류형래가 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미국시절 결혼을 했고 현재 아들도(류교빈, 영어이름 레오) 있다. 출산지는 애리조나의 병원.[19]
  • 수원시 인계동의 모 헤어살롱에 류제국 유니폼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 마구마구2014에서는 김성욱???이라는 가명으로 나왔다가 다시 본명으로 돌아왔다.
  1. 군 복무 관계로 실제 계약은 2013년에 이루어졌다.
  2. 전광판에 "제국의 역습"이라는 자막이 나오는 것은 덤이다. 여담으로 마구마구에도 이 때문인지 전용잠재력 "제국의역습"이 2016시즌에 생겼다.
  3. 최훈 카툰에서는 등장 곡이 임페리얼 마치라는 점에 착안해 다스 베이더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4. 덕수정보고 2년 후배로 이용규최진행이 있다.
  5. 광주진흥고는 청룡기 직전 개최된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6. 진흥고는 청룡기 결승전 전날에 열린 성남고와의 준결승전에서 많이 던진 관계로 김진우 대신 김경선이 선발투수로 등장했다.
  7. 2003년 류제국이 던진 공에 미국에서도 천연기념물인 물수리가 공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플로리다 주 법원이 류제국에게 사회봉사 100시간을 내렸다.# 동료들이 맞춰보라고 부추겨서 여러차례 공을 던져 물수리를 맞췄고 그의 에이전트가 문화적 차이라고 변명은 했지만 지역신문에선 그 사건을 크게 다뤘고 한국에서도 여러차례 거론되었다. 이를 두고 곽백수트라우마에서 새를 공으로 치면 화내는 백인들이 사람(이라크인)들을 수류탄으로 던져 죽이는 걸 보고 즐거워한다고 비꼬는 걸 그리기도 했다. 그 새가 플로리다 주에서 천연기념물에 들어가는 데다가 잘못도 없는 동물을 괴롭히는 걸 옹호할 게 없다.
  8. 현재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9. 류제국과 LG구단이 생각한 금액 차이가 상당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서재응, 봉중근 급으로 요구를 했다고. 첫 번째 협상 때 류제국은 13억 원, LG는 8억 원을 제시했다.
  10. 특히 LG 트윈스 갤러리는 안그래도 늑장 계약에 짜증이 나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버리니 아주 갈아마실 기세로 깠다. 통칭 류가놈(…).
  11. A : 류제국 거품이다 → B : 류제국 쓸래, 임찬규 쓸래? → A : ...갓제국느님(...). 보통 이 순서였다.
  12. 이진영이 팀을 떠난 2차 드래프트는 11월 29일에 이루어졌다.
  13. 엄밀히 말하면 파워피처는 맞지만, 2009년 수술 이후 구속이 줄어들어 150대를 던지기 힘들게 되자 기교파로 전향하였다.
  14. 당연히 K/BB도 2014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2.21에서 1.60으로 하락한 것.
  15. 물론 극악의 타고투저였던 2014년보다 2015년에 홈런이 더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경기당 홈런 수로 따져도 2014년에는 경기당 2.01개지만 2015년엔 경기당 2.11개다.)
  16. 당연히 FIP도 5.38로 폭등했다. 2014년에 4.38을 기록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
  17. 유희관, 옥스프링, 린드블럼도 비슷한 수를 기록했지만, 이 셋은 K/9과 BB/9에 큰 문제가 없어서 성적의 하락이 없다.
  18. 출처 - 사사구 50회
  19. 2009년 6월 1일생. 아들도 야구를 시킬 예정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