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관련 정보
- 다른 뜻은 훌리건(동음이의어) 참조.
Hooligan
1 개요
축구 등에서 응원하는 팀의 경기 결과에 따라 난동을 부리는 전투종족 손놈 극성팬.
...사실 승패나 경기 결과 따윈 관계없이 무조건 싸운다. 무슨 지거리야 이기면 기분좋아서 싸우고, 지면 기분안좋아서 싸우고
2 상세
기행의 나라 영국에서 유래되었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훌리건들은 해외에서도 그 위용과 악명을 떨쳤으나 영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으로 인해 현재에는 숫자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영국 클럽들이 해외 원정을 떠날 때마다 그 나라 경찰들이 "당연히 영국 클럽의 팬들이니까 지랄맞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자국 클럽팬들과 원정을 온 영국 클럽팬들이 싸우면 일단 영국 클럽팬들부터 때려잡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해외에서 싸움만 났다하면 해외 클럽팬들과 경찰에 의해 항상 캐털리는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사실, 훌리건은 사회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20~30대 남성계층의 분노가 외부로 표출된 한 형태. 당연히 영국만 그런 것은 아니며 사회복지 체계가 형편없고 부의 분배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는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사회 불만세력. 나치나 파시스트들도 애시당초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했다.
사진 스코틀랜드 훌리건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리고 깨알같은 담배(...)
이들의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예술 작품으로는 영국의 작가 닉 혼비의 에세이 피버 피치[1]와 역시 영국의 영화감독 대니 보일의 영화 트레인스포팅 등이 있다.
아니 그보다도 훌리건스라는 좋은 영화가 있고, 더욱더 사실적인 훌리건들의 이야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Awaydays나 Rise of the Footsoldier를 추천한다. 나는 영 예술 작품을 감상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훌리건 천국 DCinside 해충갤과 국내야구 갤러리를 눈팅하는 것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 훌리건은 현지의 극렬 폭력 서포터들을 지칭하며, 해충갤러들은 TV와 인터넷으로 축구를 즐기는 만큼 훌리건을 대비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담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영국의 훌리건들이 원정 깽판[2]을 저지르는 바람에 토니 블레어 총리가 독일 TV에 나와서 사과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아예 지난 10년간 훌리건 경력이 있는 8500여명을 출국금지시켜버리는 강경책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훌리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는 80년대의 두 번의 대참사(힐스버러 참사, 헤이젤 참사) 이후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92년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하면서 FA 측에서도 자체적으로 대책들을 마련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예전처럼 리그 경기만 했다하면 동네가 개판이 되는 사태는 크게 줄어들었는데, 싸우는 애들은 다 싸운다고 한다.
다만 예전에는 온 동네에서 깽판을 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경찰의 통제하에 마련된 투기장에서 한따까리 하는 정도? 그나마도 완전한 통제를 못해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심심찮게 생긴다고 한다. 어느 영국 유학생은 훌리건 정책이 성공적인 것은 사실이나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완전 근절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남긴 말이 "압력밥솥에 김빠지는 구멍까지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결국 80년대 마거릿 대처 이후 변방으로 밀려나야 했던 하층계급의 분노가 정부를 향하지 못하도록 교묘히 통제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최소한 경기장 내부에서 싸우는 일은 이젠 절대 없다고 봐도 되고 프리미어 리그를 출범하면서 내세웠던 목표중 하나인 '가족이 함께 하는 축구장'은 성공.
이 와중에 나타난 것이 다름아닌 캐주얼족(Casuals)이다. 과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던 훌리건들이 공권력에 두드려맞자, 공력권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마초적인 복장이 아닌 평범한, 그렇지만 싸움박질하기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기 시작했고 그것이 캐주얼족의 시초가 된 것. 앞서 말한 영화 '훌리건스'는 캐주얼족 훌리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훌리건들은 의외로 서브컬쳐 문화/패션에 영향을 꽤 끼쳤다. 50년대에는 리젠트 머리를 한 테디보이들이 훌리건의 다수를 차지했고, 60년대 들어서는 짧은 머리에 데저트 부츠를 신고 멜빵을 한 하드 모드족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며, 하드 모드족들이 자연스럽게 스킨헤드로 진화하면서 훌리건=스킨헤드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스킨헤드가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스웨이드 헤드, 스무디로 점차 변화하였고, 결국에는 캐주얼족으로까지 진화하게 된다. 캐주얼족의 차림새는 거의 일반인과 구분이 가지 않지만, 값비싼 이탈리아제 브랜드를 입는(대표적으로 스톤아일랜드, 덜 튀기 위해서 와펜을 제거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두 개의 단추는 남는다) 식으로 대충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캐주얼족에 대한 영어 위키 자료) 현재는 이 자리를 서브컬쳐 사상 가장 개념없는 새퀴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차브족(Chavs)[3]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훌리건 정책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중 하나가 200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태가 몇 번 발생한 것도 있다. 시칠리아를 연고로 하는 팔레르모와 카타니아의 더비경기가 끝나고 나서 벌어진 난장판의 와중에 경찰이 죽는 일도 발생하고 맨유와 AS 로마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영국인이 칼에 찔리기도 하는 등 심각한 사건이 터졌다. 강력사건이 계속 터지다보니 이탈리아 정부에서 강경책을 내놓아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 3대 빅리그를 갖고 있는 스페인은 보도가 안 되는 건지 진짜 안 싸우는건지 훌리건들이 패싸움을 했다거나 이런 뉴스는 별로 없다. 대신 이쪽은 경기장 내부 인종차별이 잊을 만하면 터져서 문제지. 상대팀 관중들이 흑인 선수인 사무엘 에투를 향해 원숭이 울음소리를 낸다든가 하는 식. 스페인 관중들은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도 잉글랜드 흑인선수들을 향해 원숭이 울음소리를 냈고 이에 격분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굉장히 거친 플레이를 했다. 그래서 프리메라 리가는 아프리카 국적을 가진 선수들은 용병으로 취급 안 하는 인종차별 억제정책을 펴고 있긴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은 전반적으로 유럽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약한 국가다. 영국은 경기장에선 일어나지 않아도 사회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축이다.
영국 정부도, 영국 경찰도 어떻게 제지를 못하는 훌리건 싸움이 있는데, 바로 웨스트 햄과 밀월의 훌리건들. 이들은 1890년대부터 프리미어 발족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경기장 안에서 싸우는 로망을 보여주는 근성가이들이다. 앞서 전술한, 영화 훌리건스의 하이라이트인 단체 패싸움 장면을 위해 실제로 훌리건들을 모집했는데 자진해서 저지 입고 집결한 녀석들이 바로 저 두 전투종족들. 웨스트 햄이야 프리미어 리그 팀이니 그렇다고 쳐도, 밀월은 1부 리그팀이었다가 성적부진으로 리그 1[4](3부 리그)까지 내려간 상황이라 FA컵이나 칼링컵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09년 칼링컵 추첨에서 웨스트 햄과 밀월이 붙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런던 경찰까지 숨 죽이며 대진표 추첨을 지켜봤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경악하며(결과적으로는 밀월팬들의 분노만 샀지만) 웨스트 햄 홈구장으로 원정가는 밀월팬들의 표를 반으로 줄이고 경비인원을 평소의 다섯배로 늘리는 등 대책을 짰고, 정부와 왕실마저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 경기가 끝나고 나서 인외마경이 된 건 당연한 일이다. 44세의 남성이 흉기에 가슴을 찔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고, 최소 70명 이상의 훌리건이 쇠고랑을 찼다.
2009년 웨스트 햄과 밀월의 경기현장. 밀월팬들이 그전에 있었던 칼럼 데이븐포트 사건[5]과 경기전 친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웨스트햄의 웨일즈 국가대표 미드필더 잭 콜린슨을 조롱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불렀고, 밀월이 0:1로 이기다가 역전골이 터지자 웨스트 햄 팬들이 밀월 선수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기장에 난입. 이에 밀월 팬들도 경기장에 올라서면서 야! 신난다~. 그런데 1:1 동점골이 터졌을 때만 그런게 아니라 웨스트 햄이 역전골이 터트렸을 때, 세번째 골을 넣었을 때도 경기장에 난입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2010-2011 시즌에 웨스트 햄이 강등당해 챔피언십에서 둘이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헬게이트가 열린 셈이다.
웨스트 햄이 2부 리그로 강등되던 날. 어김없이 밀월팬들은 웨스트 햄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하지만 웨스트 햄은 1시즌만에 1부 리그로 승격하였던 반면에 밀월은 하마터면 3부리그인 리그 1으로 강등당할 뻔한 위기 끝에 가까스로 2부 리그 잔류에 성공하는 처지로 11~12 시즌을 막내렸다. 밀월팬들은 배가 아퍼야만 했지 그리고 13-14시즌도 밀월은 3부 리그 강등위기에 빠졌다가 겨우 잔류했다. 결국 14-15 시즌 밀월이 부진 하면서 풋볼 리그 1으로 강등했다.
영국의 훌리건들이 어찌나 악명이 높던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는 잉글랜드의 조별 리그 경기를 아예 사르데냐 섬으로 배정을 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는 영국의 4개 팀들이 모두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자 주최국인 미국이 경비에 한 짐 덜게 됐다며 앓던 이가 쏙 빠진 기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조 추첨 당시에도 잉글랜드가 F조[6]에 배정되자 한국측이 쾌재를 불렀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그런데 정작 일본은 베컴 특수에 눈이 멀어서….
유로 2016에서 드디어 기대했던 난투극이 펼쳐졌다(...). 잉글랜드와 러시아의 경기에서 관중들 끼리 난투극을 벌인 것. 차브족 vs 스킨헤드 크림 전쟁 시즌 2(...)
3 남미의 훌리건
아무리 훌리건 하면 영국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진짜 무서운 훌리건들은 남미에 있다. 일단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데, '수페르 클라시코'라고 불리는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경기 때는 경기장에 권총은 물론 기관단총까지 등장한다. 경기 끝나고 사람 죽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말그대로 전쟁.
콜롬비아에서도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자책골을 넣어 팀의 패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콜롬비아 대표팀의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7]는 고향으로 돌아와 술집에서 술 한잔 들이키다가 나오는 길에 주차문제 시비로 싸우다가 총 맞아 세상을 하직했다.[8] 게다가 다른 선수들과 감독은 귀국조차 하지 않았는데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귀국했다가… 게다가 에스코바르 혼자만의 실책이 아니었기에 더욱 안습하다.
브라질에서도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직후 훌리건의 전국구 대난동이 있었다. 그 이유는 브라질이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한테 지지만 않는다면 우승 확정이고 팬들은 승승장구하던 브라질 대표팀이 "설마 마지막에 지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졌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사람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깽판을 부렸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마라카낭의 비극 항목을 참조하자.
이 밖에도 한국 시간으로 2013년 7월 7일, 마라냥주에서 열린 아마추어 축구대회에서 심판인 오타비오 조르다오 다 실바는 도스 산투스 아브레유에게 퇴장명령을 내렸는데, 이 과정에서 시비가 붙고 결국 심판이 선수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분노한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난입, 심판을 다구리치고 광분한 팬들은 결국 그 심판을 참수하고 수급을 꼬챙이에 걸고 다리까지 잘라놓는 광기를 보였다. 월드컵 개최를 불과 1년 남긴 국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인 것이다. 이건 뻥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은 자국 월드컵에서 64년 전보다 더한 미네이랑의 비극을 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유명하고 무시무시한 것은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서 벌어진 축구전쟁. 사실 이건 순전히 축구 때문은 아니지만 축구경기가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4 기타 국가들
그 밖에 터키나 세르비아에서도 훌리건들이 장난이 아닌데, 터키는 3부 리그에서 서포터들을 향하여 총을 쏜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총기들이 다량으로 풀려나서인지 상대 서포터를 쏴 죽이는 일뿐만 아니라, 과격 훌리건들을 아예 극우 민병대로 고용하면서 정치적 인종차별적 테러를 가하기까지 했다.
아기호랑이를 들고 있는 게 젤리코 라즈나토비치다. 저 호랑이는 그가 애완용으로 키우던 호랑이였다고. 보시다시피 이런 게 구단주이고 위에 복면하던 것들이 나중에 서포터라는 이름으로 훌리건 저리가라 행패를 일으킨다.이건 훌리건도 뭐도 아니고 그냥 반란군이잖아. 야 사진 똑바로 올려 반란군 선전 사진 붙이지 말고 그냥 한 나라의 군대라고 해도 믿을 듯
특히 위 짤방에 나와있는 세르비아 극우 정치인으로서 터키어인 아르칸이란 별명으로 악명이 자자하던 젤리코 라즈나토비치(1952~2000)가 아주 전설이다. 코소보 전쟁 당시 알바니아 여성들을 강간하라는 명령까지 휘하 민병대에게 내려서 코소보의 강간마 히틀러라는 악명으로까지 불리웠으나 세르비아 극우들에게 인기는 대단했다. 그런데 바로 그가 바로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오빌리치 베오그라드(이름부터가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기사인 오빌리치 이름을 따왔다) 구단주였으며, 정적들을 이 팀 훌리건들을 고용하여 테러를 가하던 게 드러났다. 무엇보다 자신을 싫어하던 더비 라이벌 레드스타 베오그라드(FK 츠르베나 즈베즈다)나 파르티잔 베오그라드 서포터들을 총기로 쏴버리라는 엽기적 명령까지 내렸으며, 심지어 상대방 팀 주전들을 납치하여 감금하기까지 했다. 또한 즈보니미르 보반항목에 기술되어 있는 1990년 레드스타 vs 디나모 자그레브전에도 개입해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 분리 독립 여론에 불을 지르고 유고 내전의 기폭제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오빌리치는 1997~98 시즌 세르비아 리그(당시 이름은 유고슬라비아 1부리그) 우승도 차지하며 98-99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겐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없어서인지 원정에서 0-4로 패해 탈락했다. 그나마 안방에서 1:1로 비기긴 했지만.
그리고 이런 납치행위들이 드러나서 오빌리치에 대한 승점 삭감 및 벌금형이 내려졌고, 팀은 리그에서 중하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르칸은 2000년 1월 15일 호텔에서 눈과 얼굴에 총알을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범인은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았다.
아내인 체카. 1973년생으로 아르칸과 나이차가 21살이나 되었다..
한편 아르칸이 죽자 아르칸의 아내였던 체카(CECA)라는 여인이 남편이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며 구단주가 되었다. 이 여자는 옛날 유고 연방 시기 세르비아에서 인기 여가수로 뛰어난 가창력과 댄스 실력으로 꽤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1995년, 22살에 43살이던 아르칸과 결혼하기 했으며 상당한 재력을 갖춘 범죄자 남편을 등에 업고 횡령,부정부패,비리등 별의 별 전횡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남편과 달리 구단운영 능력은 개허접을 자랑하며 팀은 2005년부터 축구 역사에 남을 강등-강등-강등-강등-잔류-강등-강등 테크를 타면서 몰락했다.게다가 자금 횡령 및 이사들과의 대립까지 일어나고 아르칸에 충성을 다하던 서포터들조차 무능에 치를 떨며 그녀를 배제하여 결국 체카는 구단주에서 반강제로 내쫓겨나 횡령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인과응보
더불어 중동의 이스라엘 프리미어리그도 훌리건이 엄청나다. 중동전쟁이니 여러 전투를 치루다보니 축구도 전쟁터로 여기는지 걸핏하면 축구장에서도 상대방 서포터에게 총을 쏴대지 않나, 서로들 히틀러와 나치의 졸개에서 창부이니 보통 이스라엘에서 하면 미친 넘 소리 듣는 욕도 상대 서포터에게 시원시원하게 마구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텔아비브 더비의 하포엘 텔아비브와 마카비 텔아비브는 현대 이스라엘 건국 이전인 1930년대부터 열기가 악명높기로 유명하며 싸움도 자주 벌어져 사람도 여럿 죽은 바 있다.
5 기타
일반적으로 훌리건들의 난동이나 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TV에서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모방범죄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KBO 리그 팀 중에서는 지방 팀들의 팬들 중 이른바 아재 팬들이 훌리건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면서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훌리건에 비유하여 꼴리건이라 부른다. 물론 꼴리건의 프로토타입이자 아재 팬 중에서 톱클래스에 꼽혔던 마산아재를 비롯해 도원아재, 대구아재, 광주아재 등이 대표적인 KBO 리그의 강성 팬들이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야구장에 가족 관람객과 여성 관람객이 늘어나서 야구판에서의 훌리건은 보기 힘들어진 상황. KBO팀 중 추후 훌리건 출현의 위험성이 높은 팀은 의외로 신생팀인 넥센, NC, KT다. 역사가 짧고 관중이 적은 이들 구단은 특정 팬덤을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가족 단위 관람객 중심으로 일반팬과 매니아의 구분을 없앤 KBO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구단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자연히 근거없는 우월의식을 갖게 되고 이는 팀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행해지는 각종 폭력사태를 부를 수 있다.
미국의 만패델피아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니, 아예 필라델피아를 연고로 한 스포츠 팀 팬들이 강성이다. 그 자체로 필리건. 보스턴 레드삭스도 필라델피아 필리스 팬덤 버금가는 진상으로 유명. 마지막 우승이 100년도 넘은 시카고 컵스팬들도 만만치 않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와 치바 롯데 마린즈가 악독하기로 소문 나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2011년 초, 아이스하키 경기 당시 훌리건들이 폭동을 일으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2011년도 NHL결승전인 스탠리컵 7차전에서 보스턴 브루인스에게 4대 0으로 패해 밴쿠버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사실 밴쿠버 캐넉스는 이때 2번째 스탠리컵 진출이었는데 첫번째가 1994년도에 뉴욕 레인저스와 대결했던 경기였으나 그때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했는데 또 다시 동부지구팀에게 패하는 비운을 맛봤다. 캐넉스에게 2011년도 스탠리컵 좌절이 더욱 더 뼈아팠던 이유는 정규시즌 최고의 성적으로 President's trophy까지 타고 올라왔음에도 패했다는 점 때문이다.
- ↑ 피버피치는 훌리건의 이야기는 아니고 남성 축구 광팬의 성장기이자 에세이다. 게다가 책 초반엔 이 책은 훌리건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95%의 축구 팬들을 다룬 그리고 그들을 위한 책이라고 쓰여져있다. 물론 영국 축구 이야기다보니 훌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 ↑ 당시 프랑스 경관을 벽돌로 머릴 쳐 끝내 죽게 했다. 영국 정부는 경찰 유족들에게 별도의 보상금을 지급했고 가해자 훌리건에게 1급 살인죄로 엄벌에 처하며 응징했다.
- ↑ 스킨헤드의 폭력성 + 힙합의 허세 + 펑크의 무개념 + 모드족의 사치 + 테디보이의 무절제함 정도라고 하니 이 정도면 뭐…. 2011년 런던 폭동의 주역이 되시겠다.
- ↑ 나무위키에서 리그 1을 검색하면 리그 앙 항목으로 간다. 위키백과에서는 풋볼 리그 1항목으로 가니 헷갈리지 말자.
- ↑ 웨스트햄의 수비수로 여동생 남자친구와 그 일당 1명에게 어머니와 같이 피습을 당했다. 데이븐포트는 축구선수의 생명인 다리에 다섯 번이나 칼을 맞았다. 그것도 "더 이상 축구선수 노릇 못하게 만들어 주마"라는 심보로 다리만 찔러댔다고 한다. 무섭다. 이 사건 이전에, 데이븐포트가 자기 여동생을 성폭행했다는 혐의가 발견되어 고소되었지만 2010년 7월 혐의없음으로 무죄처분 내려졌으며, 7월 12일 데이븐포트를 칼로 찌른 여동생 남자친구와 일당은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 ↑ 일본이 배정된 H조와 더불어 조별 리그와 결승 토너먼트(3위 결정전 제외)가 모두 일본에서 치러지는 조이다.
- ↑ 콜롬비아 속옷 TV광고에도 나오는 등 인기가 있던 선수였다.
- ↑ 경기 전 펠레가 콜롬비아가 월드컵에서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조예선에서 탈락했다. 예선 당시 아르헨티나를 5:0으로 쳐바르면서 아르헨티나 감독 모가지에 기여하고 유럽과 남미 언론들도 콜롬비아가 우승후보라고 자찬했기에 펠레의 저주만은 아니었다. 범인은 주차문제로 우연히 싸우다가 죽였다고 했지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2005년 10년만에 가석방되면서 도박에 연루된 갱조직이 배후에 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다. 범인은 출옥된 뒤에 잠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