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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휴 그랜트 (Hugh Grant) |
본명 | 휴 존 멍고 그랜트 (Hugh John Mungo Grant) |
국적 | 영국 |
출생 | 1960년 9월 9일, 런던 해머스미스 |
신장 | 180cm |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과 |
데뷔 | 1982년 'privileged' |
그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여자들은 그의 주위에 모두 쓰러져 버린다.
-샌드라 불럭, 미국의 배우.
사람들은 내가 휴 그랜트처럼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상위 항목 : 배우/서구권
1 소개
명실상부한 이 시대의 로맨틱 히어로.
대표작으로는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어 보이》 등이 있다. 부스스한 머리[2], 처진 눈매, 특유의 웃음, 포시(posh)[3]한 억양이 트레이드 마크.
2 인기를 얻기 전
그랜트의 아버지 쪽은 군인 집안으로,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고, 어머니 쪽은 영국 총리도 있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썩 부유한 집안은 아니어서, 유년 시절에는 공립학교를 장학금을 받고 다닌 듯하다. 공부뿐만 아니라, 스포츠 활동으로도 두각을 보여 학교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똑똑한 아이들 중에 똑똑한 아이"로 소문났던 그랜트는(그 학교 교장의 말이다), 옥스포드 대학교 뉴칼리지를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고, 옥스퍼드 액팅 소사이어티에서 실력을 쌓았다. 그래도 이튼 같은 비싼 사립학교를 다닌 동기들을 보는 것이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학사를 마치자 영국 유수의 대학들은 자기 대학원에 오라고 했다고. 하지만 연기 경력을 위해 포기했다.[4] 그 후 《모리스》(1987)로 베니스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다.[5] 루퍼트 그레이브스[6]와 그랜트의 풋풋한 젊은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영화로 그랜트는 영국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어 다양한 작품들에서 연기했지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비터 문》을 찍기도 했다[7]) 그리 인기를 얻진 못했다. 마침내 서른네 살에,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라는 영화로 단번에 이 시대의 캐리 그랜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화 기준, 110억 원의 흥행을 달성하며 스타덤에 오르지만..
3 사생활
1995년도에 창녀 디바인 브라운(Divine Brown)[8] 과 카섹스를 하려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벌금을 물었다. 할리우드 사상 최고의 망신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9] 그 당시 그랜트의 애인이자 당대의 유명 모델이자 여배우인 앨리자베스 헐리와의 불화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당시 제이 레노와의 토크쇼가 잡혀 있었는데, 그랜트는 그대로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What the hell were you thinking!"(당신 도대체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이라는 이 당시 레노의 말은 상당히 유명하다. 우리 모두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는 잘못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10] , 그리고 그의 매력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정공법, 《노팅 힐》을 찍음으로써 인기를 회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이것은 꽤 의외의 일이였다. 심지어 "그랜트는 어떻게 인기를 회복했는가?"라는 사회학 논문도 있다. 그리고 그랜트와 헐리는 1987년부터 2000년도까지, 총 13년 간 사귀다가 헤어졌다. 헐리의 아들의 대부가 되어 주는 등 사이는 여전히 꽤 좋은 모양.[11]
그 후 상류사회의 유명인사 제미마 칸과 사귀다가 2007년에 헤어졌다.(역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12] 그리고 팅란 홍과의 만남에서 딸과 아들을 얻었다. 홍이 딸을 임신 하던 중, 파파라치들이 그녀를 괴롭혔는데, 2011년 4월 24일, <뉴스 오브 더 월드>가 ‘휴의 숨겨진 딸’이라는 헤드라인으로 그와 팅란 홍의 사진을 1면에 실은 뒤로 파파라치들의 감시는 강도가 더해졌다. 그랜트는 홍에게 끊임없이 협박 전화가 걸려온 것은 물론, 경찰, 병원 직원, 심지어 홍의 전 남자친구까지 기자들에게 매수돼 개인정보를 빼돌렸다고 털어놓았다.[13]
이와 같이 그랜트는 언론인들에 의한 도청의 피해자가 되어서, 해킹 퇴치 캠페인(Hacked Off)에 참가하여 영국의 언론 보도 규제 부서를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14] 이 캠페인 때문에 영화도 거의 찍지 않았다(..) 이처럼 파파라치와 사이가 매우 안 좋기로 유명하다. 쳐 보면 야구를 하는 듯한 포즈로 물건을 던지거나 발길질을 하는 그랜트를 볼 수 있다. [15]
최근 새로운 아이가 다른 엄마를 두고 있다는 것이 밝혀저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 전 <앨런 쇼>[16]에 나와서 했던 말들을 토대로 보면, 멋진 엄마로서 팅란 홍을 칭찬하고, 아이들을 사랑한다곤 했지만, 진득한 관계까진 팅란 홍과 아니었던 모양(..) 아무리 사생활일지라도 영 좋은 모습은 아니기에 까이고 있다.
4 성격
본인의 성격이 아주 나쁘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인터뷰 등도 특유의 블랙유머로 비꼬는 태도로 임할 때가 많으며 파파라치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의 성격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도 대부분 그랜트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와 비슷하다. 그러나 사라 제시카 파커는 이에 대해 "그는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인 척 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척 재미있고 신사적인 사람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가볍고 언제나 비슷한 영역을 답습하는 것 같아, 어떤 평론가는 "그가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은 종잇장 한 장 같다"고 깠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이나 (《모리스》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탄 것을 생각해 보라)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어바웃 어 보이》를 보면 상당히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17] 그랜트는 촬영장에서 상당히 완벽주의자라고. 굉장히 꼼꼼하고 철저하며, 촬영 중 실수를 하면 본인이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려 한다고 한다. 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찍어 촬영장 스텝들과 불화설이 있기도 했고, 《모리스》를 찍을 시에는 대본 한 장당 네 장의 분석을 썼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연기했던 세라 제시카 파커는 자신이 본 배우 중에 제일 죽어라 대본을 파고드는 배우로 그랜트를 평가했으며 산드라 블록은 그를 두고 "그는 촬영장에서 몹시 비참했다. 지루해서가 아니라, 일에 관해선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만족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물론 그는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에 자신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사과하는 면모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 없는데, 이미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코믹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충분히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서이다.[18] 더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할 뿐이다. 내가 입센의 작품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 그걸 잘해낼 사람을 많을 것이다. 영화 촬영은 내 인생의 1년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그 일로 세상에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직업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직업 이상으로 여기거나 연기하는 일을 사랑해 마지않는 것은 아니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어느 기자의 "언제 연기의 열병에 감염되셨나요?"라는 질문에는 "그런 병은 앓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그랜트는 또한 굉장한 입담으로 유명하다. 영어를 할 줄 안다면, 그의 이름을 유튜브에 검색해보자. 반어적인 영국식 블랙유머와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잘 구사하는 스타로, 제이 레노는 그의 입담을 두고 "내 쇼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전세계에 열여덟명 정도밖에 없는데, 휴 그랜트가 그 중 하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입담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 부분이 있지만, 파파라치에 시달리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기복제와 같은 연기만 한다"라는 평가는 이제 스스로 자기비하적 개그 소재로 써먹고 있는 수준. 메릴 스트립과 <플로렌스>에서 함께 연기한 경험에 대해 말하면서는 "정말 무서웠다. 메릴은 정말 말도 안되게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에, 내가 이번에야말로 진짜 연기(some real acting)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했다. 사실 꽤 일찍부터 자신이 끔찍한 배우라는 농담은 자주 해왔다. 이안 감독과 함께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촬영하면서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처럼 한번 해보라"라는 감독의 요구에 "아, 그건 이미 많이 보신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고. 할리우드에 도착해 처음 본 오디션에서 감독이 급체로 갑자기 구토를 시작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는 "나는 그게 멕시칸 음식이 아니라 내 연기 탓일거라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19] 스스로의 커리어를 두고 "내 성공적인 영화들이 한 시대에 몰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실패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내 커리어는 런던의 버스 스케줄과 같다. 2시간동안 한대도 나타나지를 않다가 갑자기 스무대가 한꺼번에 몰려온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 트리비아
- 그는 포시 엑센트를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 앤디 워홀의 그림을 술김에 400만 달러에 사서 몇 년 후 다섯 배가 넘는 가격인 2350만 달러에 팔았다.
- 그랜트의 성공사는 워킹 타이틀 사와 함께 한다.
- 시사회 때 모두와 같이 웃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 이외에, 혼자 자신이 찍은 영화를 볼 때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왜 이렇게 연기했지? 마음에 안 드네!' 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 런던에만 17채의 집이 있다.
-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어머니는 어린 그랜트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크면서 치는 법을 까먹어 버렸다고(..)
- 런던의 축구구단 풀럼 FC의 열성팬이기도 하다.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질데로이 록허트교수 역은 케네스 브래너 이전에 휴 그랜트가 먼저 제안받았다. 그러나 스케줄을 이유로 포기했다.
-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토마스 생스터와는 사촌지간. 휴 그랜트의 외할머니와 토마스 생스터의 외할머니가 자매라고 한다.
할머니끼리 자매라면 사촌이 아니고 육촌 아닌감?cousin은 사촌만 꼭 집어서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항렬 비슷한 친척을 뭉뚱그려 설명하는 단어라 - 골프광이다. 그러나 자신이 골프광이라는 사실을 무척 부끄러워 한다. 토크쇼에서 당신은 별로 골프를 좋아할거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질문을 받고 "알아요, 저는 제 취미가 부끄러워요. 저도 그게 서핑이나, 뭐 그런거였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니에요. 골프에요. 사실 이거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넘어가시죠."라고 답하기도 했다.
6 출연
뜨기 전에 꽤 다작을 했고, TV드라마에도 자주 나왔었기에, 위키피디아나 IMDb를 찾아보기를 추천. 이 곳의 필모그래피는 한국어 위키백과를 참조했다.
6.1 텔레비전
연도
원제/역할/비고 순.
1985년
Honour, Profit and Pleasure/ 벌링턴 경/ TV 영화
Jenny's War/ 피터 베이네스/ TV 영화
The Detective/ 앤드루 블래커넬/ TV 시리즈
The Last Place on Earth/ 앱슬리 체리 제라드/ TV 시리즈
1986년
Lord Elgin and Some Stones of No Value/ 윌리엄 해밀턴 니스베트/ TV 영화
The Demon Lover/ 로버트 드로버/ TV 영화
Ladies in Charge/ 제랄드 보턴그린/ TV 시리즈
A Very Peculiar Practice/ 콜린/ TV 시리즈
1989년
Till We Meet Again/ 브루노 드 란셀/ TV 시리즈
Champagne Charlie/ 샤를 아이드지크/ TV 영화
The Lady and the Highwayman/ 루시어스 빈-실버 블레이드/ TV 영화
1991년
The Trials of Oz/ 리처드 네빌/ TV 영화
Our Sons/ 제임스 그랜트/ TV 영화
1992년
Shakespeare: The Animated Tales/ 서배스천/ TV 영화
1994년
The Changeling/ 아르세메로/ TV 영화
1992년
Hooves of Fire/ 빌트젠 (목소리)/ TV 영화
Doctor who and the Curse of Fatal Death/ 12번째 닥터/ TV 시리즈[20]
2001년/ Being Mick/ 본인/ TV 영화
2002년/ Legend of the Lost Tribe/ 빌트젠 (목소리)/ TV 영화
2007년/ 탑기어/ 본인/ TV 시리즈
6.2 영화
연도
제목/원제/역할/비고
1982년
옥스퍼드 러브/ Privileged/ 에이드리언 경
1987년
모리스/ Maurice/ 클라이브 더럼/ 베니스 영화제 남우상
1988년
로윙 윈드/ Rowing with the Wind/ 조지 고든 바이런
백사의 전설/ The Lair of the White Worm/ 제임스 더프턴 경
우연한 방문객/ The Dawning/ 해리
벵골의 밤/ The Bengali Night/ 앨런
다이애나의 두 남자/ White Mischief/ 휴 콜먼들리 제3남작
1990년
위대한 챔피언/ The Big Man/ 고든/리엄 니슨이 주연인 영화이다. 그랜트는 조연으로 출연.
1991년
쇼팽의 연인/ Impromptu/ 프레데리크 쇼팽
1992년
비터 문/ Bitter Moon /나이절 도브슨/로만 폴란스키 감독.
1993년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레지널드 카디널
베니스행 야간 열차/ Night Train to Venice/ 마틴 가밀
1994년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찰스/골든 글로브상 남우주연상,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사이렌스/ Sirens/ 앤서니 캠피언
1995년
레스터레이션/ Restoration/ 일리어스 핀/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함께 찍은 시대극. 상당히 망가진다(..)
센스 센서빌리티(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 에드워드 페라스
나인 먼스[21] / Nine Months/ 새뮤얼 포크너/김승준 더빙.
잉글리쉬 맨/ 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untain/ 레지널드 앤슨
딥 어드벤처/ An Awfully Big Adventure/ 메러디스 포터/알란 릭맨과 함께.
1996년
선택/ Extreme Measures/ 의사 가이 루산/직접 제작, 세라 제시카 파커와.
1998년
정킷 호어[22]/ Junket Whore/ 본인
1999년
미키 블루 아이즈/ Mickey Blue Eyes/ 마이클 펠게이트
노팅힐/ Notting Hill/ 윌리엄 태커 /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2000년
스몰 타임 크룩스/ Small Time Crooks/ 데이비드/우디 앨런과 함께.
2001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 대니얼 클리버/콜린 퍼스, 러네이 젤위거와 함께.
2002년
투 윅스 노티스/ Two Weeks Notice/ 조지 웨이드/샌드라 불럭과 함께.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윌 프리먼/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2003년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데이비드(영국 총리)
2004년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Bridget Jones: The Edge of Reason/ 대니얼 클리버
2005년
Housewarming Housewarming/ 새로운 이웃 카메오
2006년
아메리칸 드림즈/ American Dreamz/ 마틴 트위드/ 존 조도 출연했다!
2007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Music and Lyrics/ 앨릭스 플레처/ 드루 배리모어와 함께
2009년
들어는 봤니? 모건 부부/ Did You Hear About the Morgans?/ 폴 모건 /세라 제시카 파커와 또 함께
나무위키에 있는 항목으로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2007), 러브 액츄얼리(2003)가 있다.
6.3 사운드 트랙
-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performer: "PoP! Goes My Heart", "Bad Hot Witch", "Love Autopsy", "Way Back into Love Demo Version", "Dance with Me Tonight", "Don't Write Me Off", "Way Back into Love", "Meaningless Kiss")
- 러브 액츄얼리 (performer: "Good King Wenceslas")
- 어바웃 어 보이 (performer: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7 수상
2006 César Awards: Honorary César - Lifetime Achievement
2003 BAFTA/LA Britannia Awards: The Stanley Kubrick Britannia Award - Excellence in Film
2003 London Critics Circle Film Awards 2002: ALFS Award for British Actor of the Year - About a Boy (2002)
2003 8th Empire Awards: Best British Actor - About a Boy (2002)
2003 Golden Camera (Goldene Kamera) Awards: Best International Actor - About a Boy (2002)
2002 GQ Men of the Year Awards: Film Actor in a Comedy - About a Boy (2002)
2002 Taormina BNL FilmFest: Taormina Arte Diamond Award - Cinematic Excellence
2002 VH1/Vogue Fashion Awards: Leading Man Award
2002 Evening Standard British Film Awards: Peter Sellers Award for Comedy - Bridget Jones's Diary (2001)
2000 5th Empire Awards: Best British Actor - Notting Hill (1999)
1995 골든 글로브 상: Best Performance by an Actor in a Motion Picture - Musical Or Comedy -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1995 Evening Standard British Film Awards: Peter Sellers Award for Comedy -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1995 London Critics Circle Film Awards 1994: Special Achievement Award -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1995 British Academy Film Awards 1994: Best Actor in a Leading Role -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1995 Chicago Film Critics Awards 1994: Most Promising Newcomer -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and Sirens (1994)
1987 베니스 영화제: Volpi Cup for Best Actor - Maurice (1987)
8 외부 링크
트위터의 휴 그랜트 팬봇
페이스북의 팬페이지
네이버 영화 - 휴 그랜트 A to Z
지금은 다 죽은 다음 카페. 대본 등 유용한 자료를 구할 수 있다.
김혜리 기자의 칼럼
- ↑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항목 참고.
- ↑ 그랜트가 작중 하고 나오는 다양한 헤어스타일들은 그냥 머리 길이를 조절한 것이라고(..)
- ↑ 영국 상류층 7%가 쓴다고 알려져 있다.
- ↑ 재미있는 것은 심지어 더 선 지마저 이런 그랜트를 엄친아로 치켜세운 적이 없다는 것. 영국과 한국 문화의 차이인 것인가(..)
- ↑ 퀴어 영화다. 로맨틱 코미디로 잘 알려져 있기에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상당수. 이때 일본 여고생들의 엄청난 팬레터를 두 다른 주연 배우(제임스 윌비, 루퍼트 그레이브스)와 받았다고(..)
- ↑ 《셜록(드라마)》의 레스트레이드 역을 맡은 배우다.
- ↑ 인기를 얻은 후 엘르 지와의 인터뷰가 상당히 웃기다. "휴 그랜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찍은 《비터 문》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minefield. next question(지뢰밭이었어요, 다음 질문)"
- ↑ 포르노 제작사에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디바인을 기용해 포르노 영화를 제작했는데 위의 머그샷이 표지(...)로 사용되었다.
- ↑ 후에 기자들에게 한 '어떤 일이 할리우드 사상 최대의 스캔들인가?' 하는 설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 ↑ "당신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쁜 일을 했고, 그게 당신이 보고 있는 거죠"
- ↑ 헐리는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도 그를 너무 좋아한다.“고 밝혔다. 재미있게도 그랜트는 그때의 일 빼고는 상당히 자상한 성격이라는 모양.
그런데 이 분은 불륜으로 이혼(..) - ↑ 인터뷰상에서 그랜트는 결혼에 대해 상당히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도 초반에는 이제는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하다가도, 최근에 들어서는 결혼 제도에 회의적이라는 말을 했다.
- ↑ “그들은 항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마지막 지적까지 강경했다. 11월 24일에 열렸던 청문회에는 작가 조앤 K. 롤링도 폰 해킹의 피해자로서 증언대에 올랐다.-출처 씨네 21
- ↑ 언론의 자유를 해친다는 비판도 있지만, 영국의 폰 해킹 문제는 상당히 심각했으며, 납치당한 소녀의 전화기를 언론이 흥미 위주의 보도를 위해 해킹하여,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었을 음성 메시지를 어쩌다 삭제해 버렸고, 사용 내역을 조사한 경찰과 부모들이 기대를 가지도록 만들었으나, 소녀는 결국 죽는 일이 있는 등.. 상당히 황색 언론에 의한 피해가 많았다.
- ↑ 처음에 그랜트는 꽤 친절한 스타였으나.. 2000년도에 엘리자베스 헐리에게 차여 집을 나서던 날도, 치과 치료를 받아 볼이 부었던 날도, 신발가게와 식료품 가게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누드 비치에서도(!)앙대언제나 파파라치들은 그를 따라다녔던 것. - ↑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 ↑ 로저 이버트는 "휴 그랜트는 스타 그 이상"이라고 평하며 높은 점수를 주었다
- ↑ 하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 촬영 당시에 그랜트는 자신이 좁은 영역만 연기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레이엄 노튼쇼에 출연하여 "내 꾀에 내가 넘어갔다. 식인종 분장을 하고 독일의 웬 바위 위에 서 있을 때, 나는 도저히 이런 연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내 분장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없기를 바란다."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 ↑ 이후 함께 출연한 게스트였던 엠마 톰슨의 "그래서 배역은 따냈냐"라는 질문에 "응, 땄어. 감독이랑 잤거든. 아마 그 덕분인거 같아"라고 덧붙이기도(....)
- ↑ 올드 닥터 후 코믹 릴리프.
- ↑ 이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 ↑ 원제로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