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3000

Fiat 3000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이탈리아군 기갑장비
장갑차장륜 장갑차Lancia 1ZM, Fiat 611, AB40/41, AB43, S.37, SPA Dovunque 35, AS.42, Lince
반궤도 장갑차Breda 61, 피아트 727
전차경전차피아트 3000, L 2/29, L3/33, L3/35, L3/38 , L6/40
중형전차M11/39, M13/40, M14/41, M15/42, 사하리아노
중전차P26/40, P43
노획 전차T-34, 르노 R-35/40, 소뮤아 S-35
자주포/대전차 자주포세모벤테 L40, 세모벤테 75/18, 세모벤테 75/34 , 세모벤테 75/46, 세모벤테 105/25,
세모벤테 90/53, 세모벤테 149/40, 기타
차량Breda 32, SPA 38R, 피아트 618, 피아트 626, 피아트 666, Lancia Ro, TL 37, 피아트 508
모터사이클Guzzi Alce 500

1 제원

파일:Attachment/Fiat3000.jpg
피아트 3000 모델 21.

Fiat 3000
중량6t
전장4.29m
전폭1.65m
전고2.20m
승무원2명 (전차장, 조종수)
장갑6mm ~ 16mm
무장3000A : 6.5mm 기관총 2정
3000B : 37mm 전차포 1문, 6.5mm 기관총 1정
엔진Fiat 4기통 가솔린 엔진 (50hp)
현가장치수직 스프링
항속거리100km
속도21km/h
생산량152대 (mod 21 : 100대, mod 30 : 52대)

2 개요

피아트 3000은 이탈리아에서 시리즈로 대량생산된 첫 전차이다. 프랑스경전차 르노 FT-17이 베이스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안습한 기갑전력 상황에서 한동안 전차의 주력을 담당했다. 피아트 2000의 네이밍을 이은 전차지만 둘의 연관성은 이름뿐이다.

3 개발

1919년 5월 1,400대가 발주되었으나, 종전에 의해 당초의 주문이 취소되었고, 오직 100대만이 납품되었다. 첫 피아트 3000 전차는 1921년에 취역했으므로 "피아트 3000 돌격전차 모델 21(carro d'assalto Fiat 3000 Mod. 21, 영어로 Fiat 3000 assault tank, Model 21)"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모델의 테스트에서 주무장인 2문의 6.5mm 기관총이 적당하지 않다고 여겨져 주포로서 37mm 포가 요구되었다.

37mm 포를 탑재한 버전의 3000은 1929년 테스트를 받았으며 1930년 취역하였으므로 "피아트 3000 돌격전차 모델 30(carro d'assalto Fiat 3000, Mod. 30)"이라고 명명되었다. 모델 30은 무장의 강화와 더불어 더 강한 엔진과 현가장치를 도입했고, 엔진실 형태가 바뀌는 바람에 외장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일부 모델 30은 모델 21처럼 37mm포 대신 2문의 6.5mm 기관총을 재도입하기도 했다. 소수의 모델 21은 1930년대가 되기 전에 알바니아라트비아, 아비시니아, 덴마크 등으로 수출되었다.

이들 전차의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전차명칭 통합화 과정에서 수정되어 모델 21은 "L.5/21"으로, 모델 30은 "L.5/30"으로 다시 명명되었다.

4 운용

모델 21은 1926년 2월 리비아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 1935년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2차 이탈리아-아비시이나 전쟁의 일부 전투에서 운용이 목격되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에서는 이 전차를 사용하지 않았다.

덴마크군이 덴마크 침공 때 독일군에 대항해 이 전차를 사용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에 이탈리아가 참전하면서 소수의 3000 시리즈가 이탈리아 육군 소속으로 운용중이었으며, 작전에 따라 그리스-알바니아 전선인 그리스 침공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투입된 M11/39와 함께 별로 큰 성과를 거두지도 못한채 파괴되거나 노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한 1943년 7월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할 때 이 섬에 남아 저항했던 2개 중대가 운용한 전차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 중대는 전차의 차대를 땅속에 묻어 고정 포대로 사용했으며, 다른 중대에서는 다른 생존 전차들과 함께 젤라 상륙전에서 운용하였다. 물론 이미 이 시기에는 장갑이 너무 얇고 느려서 미군의 M3 37mm 대전차포같은 2선급 대전차포의 밥이 되었으므로 성과도 없이 피해만 많이 봤으며, 그래도 살아남은 몇 대는 연합군이 노획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5 평가

이탈리아군에게 전차의 존재와 운용방법을 알려준 것 외에는 의미가 없는 퇴물이다.

사실 개발이라고 위에 써놓았지만 사실은 프랑스의 르노 FT-17을 노골적으로 복제한 것이며, 덕분에 해당 전차의 단점도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약간 개선된 점은 있지만 시기상으로 몇 년 흐른 뒤의 일이므로 그 정도도 개량안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거기다 기관총 2정의 무장으로는 아무리 선회포탑이 있더라도 탱켓취급 당하기 딱 좋은데다가, 도입한 37mm 전차포도 장갑관통력이 거의 없어서 대전차전 능력이 없는 유탄발사기급 물건인지라 제대로 된 전차전 수행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속도도 느리니 히트 앤드 런을 할 수 없는데다가 항속거리도 짧고 현가장치도 그렇게 믿음직한 녀석이 아니므로 험지에서 굴리기가 좀 꺼림직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험준한 산지가 많은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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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Lynx, L-180, L-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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