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전차

MBT 이전의 전차분류
체급별 전차
경전차중형전차중전차초중전차
기타 전차 분류순항전차보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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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전차 판터
M4A1 셔먼T-34
4호 전차3호 전차

1 개요

Medium Tank

전차를 중량으로 구분할 때 중간 정도의 중량을 가진 전차를 말한다.

중량구분으로는 보통 25톤에서 40톤[1]사이의 전차를 지칭하지만, 시대와 국가별로 경전차와 중형전차, 중전차를 나누는 기준이 서로 다르며 당시에는 중형전차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1,2세대 MBT의 경우 50톤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기준을 일반적으로 중시하되, 제작한 국가가 중형전차로 부른 전차는 중량이 미달하거나 초과하더라도 해당 항목에 기술하였다.특히 독일하고 일본

2 중형전차라는 용어에 대해

유의해야 할 것은 중형전차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표준어, 즉 국어사전상으로 제대로 된 용어는 중전차(中戰車)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차의 발전 계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라이트 탱크(Light Tank)와 헤비 탱크(Heavy Tank) 사이의 전차를 구분한 미디엄 탱크(Medium Tank)라는 용어를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각각 輕戰車(경전차), 中戰車(중전차), 重戰車(중전차)라고 붙인 게 그 시초이다. 당연히 뜻만 놓고 보면 적절한 한자 번역이고, 일본어에서는 中(ちゅう)와 重(じゅう)로 단어의 발음도 각각 다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던 용어였다.

그러나 일본 사정에는 맞았던 이 번역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아주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한국어에서는 中과 重이 서로 발음이 같은 동음이의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글로 '중전차'라고 표기하게 되면 中戰車를 말하는 것인지 重戰車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국내에 용어를 들여올 때 동음이의어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가 그대로 직역되어 들어온 것은 이 군사용어가 수입될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이 용어가 처음 들어올때는 한자가 당연하게 쓰이던 시대였다. 발음상의 구분 문제는 있을지언정 표기상으로의 구분은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

다만 한국어를 주로 한글로만 표기하는 시대가 오자 이 동음이의어 문제가 다시금 부각되었다. 때문에 중(中)전차와 중(重)전차 같은 식으로 한자를 병기하는 표기를 택한 경우도 있었고, 미디움 탱크와 헤비 탱크로 아예 직역을 해서 구분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예 새로운 용어를 도입한 경우도 있었는데, '중형전차'는 이 과정에서 등장한 비공식적 용어이다.

게임 월드 오브 탱크가 이 용어를 도입하면서 인터넷상에서는 매우 유명해졌으나, 여전히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서적에서는 여전히 한자 병기를 쓰는 빈도가 높은 편이다. 예전에는 나무위키도 한자 병기식 표기를 사용했었으나, 토론에 따라 현재 표기로 바뀌었다.

군사학 서적 등에서도 번역을 매끄럽게 하지 않은 경우 中戰車와 重戰車의 구분이 모호하게 된 경우가 있으므로 맥락에 맞게 걸러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여전히 한자표기를 사용하는데, 이를 한글로 바로 음역하면 中戰車와 重戰車의 구분이 모호해지므로 번역 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무위키상에서도 표현의 일괄적인 통일이 되어있지 않은 편인데, 89식 중전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 일본 전차들의 정보가 나와 있는 글, 혹은 책에서 중전차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은 중(重)전차가 아니라 중(中)전차, 즉 중형전차를 말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중땅크로 표기한다.

3 탄생

중형전차의 탄생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전간기에 카튼로이드 계열의 경전차가 전차의 주력이 된 후의 일이다.

원래 제1차 세계대전시 출현한 육상전함탱크는 당시의 기술력이 미흡한 점도 있어서 무겁고 비싸며 둔중하고 승무원도 많이 필요해서 급박한 전쟁상황이라면 모를까 평시에 대량으로 운용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판정이 나온지 오래였다. 하지만 종전이 되자 승전국이건 패전국이건 재정이 쪼달리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전차로 전차부대를 편성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숫자라도 맞추기 위해 당시 기준으로도 치안용 및 식민지용인 카튼로이드 계열의 경전차로 거의 모든 전차부대를 통일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전차부대를 편성하고 나니, 편성한 당사자부터가 경전차의 성능에 실망감을 엄청나게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간신히 소총철갑탄을 막을 수준의 장갑에 무장은 경기관총 1-2정, 승무원 2명의 콩알만한 장갑차량이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참호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은 당시의 기준을 생각해봐도 무리였다. 게다가 대전차병기도 진화를 거듭해서 제1차 세계대전 종전시에는 겨우 야포 직사에 보병의 육박공격이 대부분이었던 대전차전이 이미 전간기에 PaK 36으로 대표되는 본격적인 37mm급 대전차포가 일선 보병부대에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종전시 수량이 태부족이었던 대전차 소총도 대량보급이 완료단계였다. 게다가 이젠 기관총도 철갑탄을 대량으로 수급할 수 있었고, 보병이 전차에 육박하는 공격을 할 때도 기존의 수류탄외에 지뢰나 공병용 폭약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미 기존의 경전차는 모든 종류의 대전차전술에 허망하게 박살날 수 밖에 없었고, 덤으로 무장도 빈약해서 선제사격을 하더라도 적을 제압하지 못해서 먼저 보고 먼저 쐈는데 먼저 박살나는 안습한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었다.

일단 위의 문제점들은 경전차의 대량 편성시에도 상당부분 반영되어서 경전차는 그 성능보다는 대량투입으로 승부를 내는 식의 편성을 꾀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인해전술의 전차용 버전인 차해전술을 한다고 하고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대표되는 어려운 경제상황은 경전차마저도 대규모로 보유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경전차 몇 대가 전선에 등장해봤자 알보병 목숨이 사라지듯이 순식간에 박살날 뿐이었다.

따라서 경전차보다 약간 무겁고 크며, 장갑과 무장이 한단계 항상된 전차를 추가로 도입해서 경전차의 진격을 엄호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전선 돌파의 첨병이 되는 전차를 만들자는 제안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형전차의 효시다.

일단 초기의 중형전차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요구받았다.

  • 주포는 37mm급 이상의 본격적인 대포를 장착해서 확실하게 경전차보다 화력에서 우위를 가진다.
  • 장갑은 전면장갑은 대량보급된 37mm급 대전차포의 중거리 직사를 1회 이상 막아야 한다. 다만 각국이 상정한 37mm급 대전차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막상 실전에 돌입하면 타국의 37mm 포탄을 막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 무장과 장갑의 증대에 따라 전차의 크기도 커졌기 때문에 경전차보다 승무원을 늘린다. 다만 각국이 승무원을 늘린 정도도 차이가 커서 프랑스처럼 경전차의 인원수를 유지하거나 1명 추가한 경우에서 독일3호 전차처럼 5명을 배치해서 현대 전차에서 나타나는 승무원 수와 배치를 확립한 경우까지 다양했다.
  • 일반적으로는 대전차전을 감안한 화포를 채택한다. 물론 일본군같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라도 적어도 나중에 화포를 위력이 강한 것으로 업그레이드 할 충분한 여유를 가지도록 설계한다.
  • 총 중량은 수송 및 가교의 중량제한등으로 인해 15톤에서 20톤 사이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따라서 위의 조건을 준수하고 탄생한 초기의 중형전차는 경전차보다 한단계 높은 무장과 장갑을 가진 존재로 사실상 중량급 경전차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각국은 이런 수준의 전차만 있어도 당장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고, 장차 대전쟁이 일어나도 초반에는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4 실전

그러나 이렇게 안이한 생각은 스페인 내전때부터 이미 무너져 내렸다. 스페인 내전에 투입한 전차들은 독일의 1호 전차부터 소련의 T-26까지 몽땅 다 37mm급 대전차포 몇문에 불타는 고철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내전 중기에 이르면 반드시 전차에 호위보병이 따르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 되었다.

저 스페인 내전의 결과에 대해 "단지 투입한 전차가 경전차니까 당연히 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개막인 폴란드 침공에서 일어난 일에 충격을 받게 된다. 2호 전차같이 기관포를 가진 경전차도 경전차라서 쉽게 박살나는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지만, 본격적인 중형전차인 3호 전차나 4호 전차도 37mm 급 대전차포에 무력하기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비록 전쟁 자체는 폴란드가 패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의외로 전차손실이 많았던 독일도 다음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래도 긴가민가 했던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프랑스 침공 때부터다. 이 전투에서는 연합군이건 추축군이건 간에 동일한 충격을 받았는데, 연합군은 자신들의 전차로는 독일군의 진격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장갑이 두꺼운 프랑스나 영국제 일부 전차[2]는 자신들의 중형전차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때 독일군은 마을과 교량과 같은 주요 교두보에 자리를 잡은 연합군의 중형전차를 돌파하는데 많은 희생을 경험했고 이를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는 전차가 적 전차를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독일군의 중(中)전차에 적의 중(中)전차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개념이 비중있게 추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때부터 중(中)전차의 무장과 장갑이 급속도로 강화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전차의 성능부족을 뛰어난 전술로 메꾸던 독일군에게 중형전차의 급속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독소전쟁이 개전한 후 등장한 소련군의 T-34KV-1이다. 비록 미숙한 전차병과 불충분한 보급, 그리고 초기형이므로 각종 사소하지만 골 때리는 문제점을 가진 이들 전차는 전략적인 면에서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도로를 깔고 앉아 수일동안 혼자서 진격을 막아낸 이들 전차와의 교전 보고서들은 독일군에게 확실하게 숙련된 인원과 뛰어난 전술로 메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점, 교두보를 점거한 전차를 제거하기 위해서 전차를 잡는 전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당시 전투 보고서를 읽어보면 88mm 대공포를 견인해서 적전차 앞에서 설치하고 방열하는 과정에서 기관총탄에 셀수도 없이 많은 병사가 죽어나가고 마지막엔 전차포에 포가 망가져서 이짓을 처음부터 다시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시선을 끄는 미끼를 던져주고 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물론 88mm 대공포를 동원하기 전에 시도한 수 많은 뻘짓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소련은 영국 프랑스와 다를 것 없이 전통적인 기병전차와 보병전차의 개념으로 BT-7과 T-26을 운용하였으나 스페인 내전(1936~1939)에서 이들 전차는 처참한 꼴을 보았다. 전차 운용과 설계의 개념상 문제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전차 성능이 너무 빈약했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전훈을 통해 소련은 전차의 집중 운용해봐야 보병의 보호없이는 비효율적이라 판단 했고 전차를 집중 운용하는 기갑부대를 해체하게 된다. 반면 독일은 콘돌군단의 경험을 토대로 전차가 무전통신과 기민한 연계 전술을 확보하면 그 한계를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전차를 집중 운용하는 교리를 완성시켜 간다. 그 결과 프랑스가 6주만에 박살 나게 되고 이를 구경하던 소련군은 기겁을 하고 편재를 또 다시 고치는 작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어서 터진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은 전차와 전차간의 대규모 회전이라는 정말로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일본의 전차들에게 호되게 당한 소련군이 독일군보다 먼저 진보된 중형전차 개념을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일본군은 이 회전에서 아무 교훈도 찾지 못하고 몇년 뒤 셔먼과 치하가 맞붙게 된다. 결정적으로 겨울전쟁의 실패를 통해 중형전차가 실전에 필요한 성능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정립하여 T-34라는 걸출한 병기를 탄생시켰다.

5 발전

이리하여 중형전차는 2차대전 중반쯤에는 적의 중형전차와 1:1 정면대결이 가능하고, 적의 중전차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게다가 전차를 보병집단에 분산해서 운용하는 전술이 사실상 사라지고 대신 대규모의 전차집단이 구성되어 전선의 일각을 돌파하는 전술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대전차포같은 대전차화기도 급속한 발전을 했기 때문에 중형전차의 중량은 생존을 위해서 날로 증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이미 2차대전 중반에서 중형전차의 표준은 M4 셔먼처럼 75mm급 주포에 30톤 이상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이들도 75mm급 대전차포에는 신나게 관통당한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30톤급 중반 체급을 가지게 된다. 나치 독일의 판터는 45톤급이지만 이건 판터가 유독 거대한 특이점에 있는 전차인 것이고 나머지 국가들의 중형전차는 모조리 30톤급으로 연합군은 IS-2 같은 헤비탱크가 판터와 거의 같은 46톤급이었으며 재대로 실전투입된 유일한 미제 헤비탱크였던 퍼싱은 판터보다 오히려 더 가벼운 40톤 초반급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소련군의 신형 중형전차인 T-44도 마찬가지로 판터보다 훨신 가벼운 30톤급 중량을 가졌고 전후전차인 T-54도 역시 30톤급 전차였다. 판터가 유독 특이하게 거대한 전차였던거지 무슨 죄다 40톤을 넘긴게 아니다.

주포도 장포신 75,76mm나 85mm급에 육박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중형전차는 중전차보다 한단계 낮은 장갑과 주포를 가진 존재가 되어버린다. 물론 이 때까지 와서도 일본이나 이탈리아 같은 곳은 15톤짜리 전차를 중형전차로 호칭하고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들만의 기준이었고, 실제적으로는 상대하는 적들이 경전차로 판단하고 격파카운트도 그렇게 세고 있었다.

5.1 평가

"나치독일을 위시한 경전차, 중형전차,중전차의 개념이 선진적이었는가?" 라는 질문에 꼭 그렇다고 답 할 수는 없다. 결국 나치독일군은 중형전차들이 대전차전 임무에 집중하면서 방호와 화력지원을 제공해 보병의 전선 돌파를 도와줄 육상전함의 역할을 할 병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돌격포라는 독특한 무기 체계가 추가로 자리 잡고 나치독일의 군수 체계를 매우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나치독일 스스로 전차의 기동력을 포기하고 공격력과 방어력에 집중하면서 전광석화같은 전차의 기동력을 이용해 적의 후방부터 무너뜨리던 장기를 상실해버렸다.

소련 역시 나치독일과 마찬가지로 경전차, 중형전차, 중전차의 3분류로 전차를 구분했으나 나치독일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T-34와 KV-1에 크게 쇼크를 먹은 나치독일은 전차의 대전차전 능력에 집중하여 종래에는 중형전차가 상대인 연합군 기준으로 중전차로 분류할 수 있을만큼 거대해진 반면 그와 정면으로 상대하던 소련은 반대로 현재 보유한 전차의 체급을 유지하여 기동력의 저하를 막으면서 대신 그만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꾀하게 된다. 이는 소련의 중전차인 KV-1이 화력도 좋지 않고 기동력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점점 증가되는 나치독일군의 화력에 맞서 유일한 장점인 장갑을 강화하다 보니 너무 기동력이 떨어져 소련내에서 부활한 기동교리를 구현하기에는 성능이 너무나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T-34 역시 설계상 문제와 함께 교리상 문제로 일정이상 무게를 증가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KV-1의 생산라인을 줄이고 T-34를 주력으로 양산하면서 중전차 KV-1과 중형전차 T-34를 통합하는 주력전차를 계획한다. 42년 말에 개발된 KV-13과 T-43이다. 둘다 실패했으나 소련 전차 개발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록 이 계획은 실패했으나 결국 이 계획에서 나온 결과물을 통해 KV-1을 대체하는 스탈린 중전차[3]를 생산하여 적 방어선을 돌파하는 용도로 사용하게 되고 T-43에게 대형 포탑을 얻어 85mm포를 싣게된 T-34는 개발에 실패한 주력전차 역할을 대신 맡게 되어 어마어마한 숫자가 양산되어 모든 전장에 투입된다. 이렇게 소련은 대전 중기 이후 공격력과 방어력에 앞서 충분한 기동성을 지닌 전차를 대량으로 확보함을 우선시 하였고 양이 곧 질이라는 논리와 함께 시베리아 한 가운데에서 조립한 공장에서 비숙련공들이 제작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해져 상대적으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소련도 여러 차체와 여러 주포를 가진 다양한 자주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주포들도 대부분은 기존 병기와 많은 부품이 공유되었으며 한때는 체급이 다른 자주포들을 한 부대에 묶어서 운용하는 병크도 저질렀으나 기본적으로는 체급과 주포에 따른 역할 자체는 어느정도 나눠져 있었다. 최소한 소련은 포르쉐 티거, 엘레판트 같은 것은 없으며 비슷한 역할의 3호 돌격포와 4호 돌격포. 4호 구축전차, 햇쳐를 동시에 만드는 병크도 없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독소전 초기에는 높은 성능으로, 독소전 중기 이후로 주력전차로 대량 양산되어 투입된 T-34였다. 대량으로 만들 수 있었고 모든 목적에 적당히 유효한 성능을 지닌 T-34는 소련군이 가는곳이라면 어디든지 투입되었고 독소전 초기 많은 공장지대와 자원 지대, 병기 상당수를 잃어버린 암울한 상태에서도 시베리아 벌판에서 만들어진 이 중형전차 스팸과 탱크 데산트와 기계화 보병으로 대표되는 제병합동 기동 전략은 소련이 독소전을 승리로 이끈 중요한 전략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계획했었던 주력전차들 보다 부족한 성능의 중형전차를 주력전차로 삼아서 상대 중전차 부대나 잘 짜여진 방어선을 상대로 숫자로 밀어넣는 이런 방식은[4] 필연적으로 상당한 피해가 동반되었으며[5] 이후로도 T-34의 부족한 장갑은 보병을 상대하는 경우에도 시가전 등의 상황에서는 나치독일의 성형작약 무기등에 예상외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이런 T-34의 부족한 성능은 소련도 알고 있었기에 T-43에서 더 발전한 T-44를 2차대전중 양산하여 배치하였고 이 T-44를 기본으로 하여 2차대전중에 이미 T-54를 개발하기 시작하여[6] 47년부터 양산하게 된다. 하지만 T-54로 시작되는 소련의 본격적인 MBT들도 서방 전차에 비해 전차 한대 한대의 성능보다는 생산성의 우세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남아있으며 주력전차가 T-34에서 현대적인 MBT로 바뀐 전후시대에도 소련 전차에 있어서 여전히 제병합동 전술과 기동력을 살린 대량의 전차 운용은 필수적이었고 전차만 도입하고 교리는 재대로 받아가지 않은 국가들이나 심지어는 러시아군 조차도 교리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가 큰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기동교리가 사라지고 나치독일에 비해 단순히 두껍고 강한 화력을 지닌 병기를 만들어내던 소련이 나치독일과의 전쟁을 통해 기동교리가 부활하여 그에 맞게 기동력을 갖춘 병기를 개발하게 되는 반면 기동교리를 가지고 있던 나치독일이 갈수록 교리와는 반대로 높은 방어력과 공격력을 위해 유연성을 희생하는 병기를 만들어내는 방향을 취하게 되는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영국군 또한 대전기간중 나름 비중있는 기갑전을 치른 국가이다. 자국산 전차를 수출한 나라들이 독일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프랑스 침공과 북아프리카와 노르망디에서 숱한 전차전을 치렀다. 하지만 영국은 기존 전차 생산 라인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플랫폼을 제작하는데 시간적, 금전적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대전 말기까지 순항전차보병전차의 운용 개념을 고수하였다. 영국군은 대전 후반기에 셔먼전차을 운용하였는데, 크롬웰이나 처칠 등의 기존 영국산 플랫폼보다 확장성과 성능이 우수해서였다. 또한 영국도 대전차전 수행 등 다목적 전차의 필요성을 받아들여 아킬레스 등의 전차와, 앞에서 언급한 셔먼의 확장성을 이용해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만들어 낸다. 더불어 기존 영국산 전차 플랫폼의 한계를 인식하고 1943년부터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개념을 통합한 Universal Tank A41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이 Universal Tank A41은 최초의 MBT 중 하나로 불리는 A41 센추리온 전차이며, 1945년부터 제작이 시작돼 47년 초[7]에 정식으로 채택된다.

결국 전차라는 물건의 발전은 전쟁 당사자 각자의 입장에서 전장이 요구하는데로 철학을 발전 시켜 나간 것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는 오늘날까지 일맥상통한다. 미국은 M1 에이브람스전차를 외계인전차 수준으로 강화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전차보다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효율적 이었고, 스트라이커가 한계에 다다르자 미국형 경전차(공수전차)의 직계 후손인 M8 뷰포드에까지 다시 손을 뻗고 있다. 국가간의 전면전은 앞으로 없다며 전차를 해체해서 고철로 팔던 독일연방의회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고는 신규 전차 개발을 승인 한다.

6 변환

2차대전이 끝난 후 각국의 전차는 중형전차가 주력이 된다. 이는 중전차가 위력은 강했지만 비싸고 무겁고 속도가 느리며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어서 대량생산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에는 경전차에 한없이 가깝던 중형전차가 중전차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로 바뀌었기 때문에 소수의 중전차는 다수의 중(中)전차로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하며, 2차대전시기처럼 중전차가 전차무쌍을 찍기 힘다는 점도 중요한 점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1960년대까지 각국의 전차는 경전차는 정찰 및 위력수색, 중형전차는 주력부대, 중전차는 전선 돌파의 최선봉이거나 최종방어라인을 맡는 구성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런 구성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으니 바로 핵무기대전차미사일의 등장이었다.

핵무기는 말 그대로 모든 재래식 병기를 부차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렸고, 대전차미사일은 전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과 적은 인원으로 전차는 경전차건 중전차건 대부분 1-2발로 잡을 수 있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복잡하게 3단계 구분으로 된 전차를 따로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전차는 어느 정도 운동에너지탄을 막을 수 있으며 기동성과 반응성이 좋은 중형전차를 기반으로 한 주력전차로 통일하고, 경전차와 중전차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7 예시

앞서 언급했듯이 중량 기준을 따르되, 제작국가가 중형전차로 지칭하면 기준에 벗어나더라도 중형전차로 인정해서 예시에 넣는다. 영국의 경우 보병전차순항전차로 이원화해서 전차를 생산했으므로 중량만으로 중형전차로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시에서 제외한다.

8 매체에서 모습

8.1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medium_tank.gif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커맨드 앤 컨커 레니게이드에서 출연했으며 타이베리안 던과 레니게이드에서는 GDI가 운용하며 레드얼럿에서는 연합군이 운용한다.

8.1.1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

타이베리안 던 시절에는 맘모스 탱크를 제외한 GDI 기갑 부대의 주축이며 Nod의 빈약한 라이트 탱크따위는 바르고 다녔다.

8.1.2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레드얼럿에서는 취급이 약간 안습해젔는데 105mm 주포 2연장소련군헤비 탱크가 등장하여 맘모스 탱크를 제외한 최강 탱크 자리를 물려주고 그럭저럭 평이한 수준을 가진 탱크 취급을 받았다.

보통 연합군은 빠른 기동력을 가진 라이트 탱크를 선호하나 맞아가면서 싸우는데엔 취약한지라, 그런 때에는 미디엄 탱크를 탱커 역할로 투입해야한다. 미디엄 탱크를 빼면 연합군의 기갑부대는 종잇장 장갑을 가진 탱크 뿐인지라 어쩔 수 없이 투입해야된다. 아니면 소련군 헤비 탱크맘모스 탱크 상대론 답이 없다.(...)

또한 소련군의 보병은 쿨타임 차면 5명씩 무료로 증원(낙하산보병)이 되는데 게임특성상 소수대 소수교전에서는 이 무료유닛들에게 밀리는 안습함도 보여준다.

8.1.3 커맨드 앤 컨커 레니게이드

레니게이드에서는 '중형 탱크'라는 요상한 번역명으로 등장한다. 유저들 사이의 애칭은 중탱. 체력 800에 아머타입은 중장갑. 화력은 적 중장갑 유닛에 대해 40 대미지이고, 가격은 800크레딧.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요상한 번역과 달리 성능은 훌륭해서, 그리 느리지도 않고 그리 약하지도 않은데 그리 비싸지도 않은 적절한 성능을 통해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GDI의 필드전을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주력전차로 거듭났다. Nod는 주력 전차인 라이트 탱크의 화력이 약해서 아틸러리의 화력지원이 필수적이지만 GDI는 미디엄 탱크의 화력과 몸빵이 모두 라이트 탱크에 비해 높아서 미디엄 탱크만으로 필드를 점거할 수 있다.

또한, Nod의 아틸러리로 인해 필드 교전에서 맘모스 탱크가 잉여가 되기 쉬우며, 탄속 문제로 MLRS가 대전차전에 취약하다는 문제도 GDI가 땡 미디엄으로 필드전에 나서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유야 어찌 됐든 GDI의 기갑부대는 일반적으로 다수의 미디엄 탱크를 소수의 APC와 MLRS가 지원하는 형태가 되며, Nod를 기지로 밀어붙여 입구를 봉쇄한 이후에 맘모스 탱크를 소수 추가해서 봉쇄선을 구축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GDI가 아주 초반에 다수의 중탱으로 Nod의 기지로 바로 돌격하는 전격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그 타이밍엔 Nod가 싼 가격의 라이트 탱크와 아틸러리로 이미 필드에 진출하여 있는 타이밍이기에 돌파가 쉽지 않다. 허나 Nod에서 초반 필드를 포기하고 스텔스 탱크 러시 같은 걸 준비하다 한 타이밍 앞서 중탱에 카운터를 찔리는 경우는 간간히 있다.

8.2 월드 오브 탱크

월탱에서는 경전차와 중전차의 중간적 특성을 가졌다. 경전차에서 기동력, 위장, 차체크기를, 중전차에서는 화력, 장갑을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병과에 따른 엄격한 구분을 버리고 전차별 개성을 중시하면서 경전차급 장갑과 속도를 가진 중형전차가 좀 늘었다. 특화된 부분이 없어보여 애매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보면 만능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가장 생존하기에 좋으며 이는 승률과 고득점으로 직결되기에 고레이팅 유저 대부분이 미듐 유저이다.

8.3 강철의 왈츠

여기도 월오탱과 동일 장갑과 화력이 비슷하다. 자세한건 중형전차 항목으로.
  1. 50톤으로 잡는 경우도 있으나 2차대전 기준으로 40톤이 넘는 미듐중에 실전 투입된건 나치 독일의 판터뿐이며 KV-1, IS-1,2, 퍼싱 등 연합군 헤비탱크가 모조리 40톤급이기에 40톤으로 변경했다. 유독 거대한 판터를 기준으로 일반적인 중형전차 체급을 놓는건 말이 안된다.
  2. 샤르 B1 bis마틸다 II를 뜻한다.
  3. KV-1에 비해 월등히 높은 화력과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량은 증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후기형 KV-1에 비해 약간 더 가볍기도 하다.
  4. 대전차전 목적으로 제작된 중형 자주포나, 방어선을 깨부수는데 특화된 스탈린 중전차와 중자주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만약 이런 중장비가 근처에 없다면 T-34는 카츄샤와 견인포의 화력지원만 받고도 돌격해야했다.
  5. 특히 1942년말~43년 초 부근이 문제가 많았는데 나치독일이 42년 가을부터 티거 중전차를 투입한 상황에서 소련의 주력전차 계획은 재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자주포 등의 지원 기갑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여전히 T-34는 76mm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6. T-54는 44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여 44년 말 도는 45년 1월에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3월과 4월에 테스트를 받는다.
  7. 또는 46년 12월
  8. 45톤급이다. 2차대전 중형전차 중 가장 거대하며 연합군의 퍼싱보다 무겁고 IS와 거의 같은 체급으로 연합군이면 덮어두고 헤비탱크였을 체급이다.
  9. 원래는 중형전차가 아닌 중전차로 취급했으나 한국전쟁 때 중형으로 분류했다.
  10. 이를 노획한 중공군은 경전차로 취급했지만, 일제는 이를 중형으로 치부했다.
  11. 시제 차량을 포함해서 차체는 6대, 포탑은 2개만 만들어졌다.
  12. 프로토타입을 제작은 했지만 탑재될 예정이었던 자동장전장치의 개발이 지연되어 완성되지 못했다.
  13. 일본군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