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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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根朝
1895년 7월 19일 ~ 1972년 2월 8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1895년 평안도 강서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 전문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1922년 일본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평안남도 평양부(현 북한 평양직할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조만식회장으로 있던 조선물산장려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좌파 인사의 변호를 맡아주기도 하였다.

8.15 광복 후, 평안남도 평양부윤, 미군정청 대법관을 지냈다. 그리고 조선민주당에 몸담았다. 그러나 소련 치하에서 조만식이 평양의 고려호텔에 감금된 뒤, 이윤영을 비롯한 조선민주당의 주요인사들과 함께 월남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기에는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였으나 뒤에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야당에 참여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선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두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민주당에서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신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두한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경기도당 위원장, 중앙당무위원, 정책위원 등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 10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당시에는 당선되지 못하였다. 이후 민주당의 후신인 통합야당 민중당에 있다가 1966년 12월 김성용이 민중당을 탈당하여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다. 그러나 부랴부랴 사퇴서를 제출하여 6일 의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