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형이 사망했을 경우 남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풍습.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경우도 있고 단순히(?) 형수와 성관계를 갖고 임신시켜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방법(쉽게 말해 씨내리)도 있다.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는 아버지가 죽은 후 아버지의 처첩(적어도 생모는 제외)을 아들이 취하는 수계혼 풍습이 있다.
2 상세
이러한 제도는 가족의 중요한 노동력인 성인 여성을 배우자의 사망과 같은 사소한(?) 이유로 놓치지 않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는 장자 상속 체제를 유지시키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체제이기도 하다. 또한 결혼으로 이어진 두 집단의 유대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행해진 경우도 있다.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이어받는 수계혼의 경우에는 부친이 죽으면 처첩들이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그 생계를 아들이 뒤이어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출산증감의 조절이다. 남자는 줄어도 여자가 그대로면 다음세대 인구 수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고구려와 부여에서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만주 지역 북방 기마민족들의 경우 계속 행해졌다. 청나라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는데, 병자호란 이후 조선 출신 의순공주가 끌려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죽은 뒤 형사취수로 다시 한 번 결혼했다. 결국 조선에 돌아간 뒤 오랑캐에게 몸을 두 번 더렵혔다고 괄시받게 된다. 성경을 보면 유대인 사이에서 이러한 제도가 최소한 예수가 활동했던 시대까지 존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12:18~12:27.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이 예수에게 "형사취수에 따라 7형제가 차례로 한 여자와 결혼했을 때, 부활하면 여자는 그 중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를 질문한 일화. 예수의 대답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가복음 12:25) |
"오나니즘"의 어원이 되는 오난 역시 이 풍습과 관련되어 있다. 동양의 경우 문화적으로 앞선 농경민족이 문화적으로 뒤쳐진 기마민족을 변태, 미개인이라고 까는 소재로 쏠쏠하게 써먹었으며(...) 결국 중화주의와 유교의 확산으로 유목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점차 소멸되었다.
추모왕과 소서노의 결혼도 형사취수의 일종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소서노의 전 남편도 부여의 왕족이라는 것.
모 개그만화에서는 이걸 이용한 개그를 선보인 적도 있다. 왕소군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인데, 모략에 휘말려서 후궁으로 들어가 냉궁에서 황제에게 한번도 눈에 띄인 적이 없던 절세미녀였던 그녀가 흉노족에 자진해서 시집을 가자, 기다리고 있던 왕이 미남이었고, 그 뒤를 따라오는 형제들도 하나 같이 미남이었는데, 자신들의 풍습으로 말하길 형이 죽으면 형수는 동생이 받는다, 라 하여 평생 미남들과 잘먹고 잘살았다는 얘기다. 역하렘 만세!!
일본에서 2차 세계 대전후 수많은 아이 있는 미망인이 생겨나자 시동생들이 자신의 집안과 조카를 위해 기꺼이 형수와 결혼했다. 당연 시대가 낳은 어쩔수 없는 현상들이었고 지금은 당연 볼수 없는 현상.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자기 형제/자매의 배우자였던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이혼을 했든 사별을 했든 마찬가지다. 불가능한 이유는 중혼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하면 혼인관계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금친혼 등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제809조에 걸리기 때문이다. 제809조 2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여기서 형제/자매의 배우자는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었던 자에 해당하여, 혼인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현행 일본 민법상으로는 형사취수가 가능하다. 일본 민법상, 혼인이 금지되는 경우는, "직계혈족 또는 3촌 등 내의 방계혈족(§734)"[1], "직계인척간(§735)"[2] 등인데, 형제/자매의 배우자는 방계인족[3]으로,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혼인이 가능하다.
3 NTR
형이 살아 있는데 형수를 취하는 경우는 형사취수라고 하지 않는다. NTR이라 부른다.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 에 나오는데, 라이언 긱스 같은 경우는 동생이 살아있는데도 제수를 NTR...
하지만 일처다부제를 시행하는 종족의 경우, 형사취수와 마찬가지의 이유 + 남아선호사상으로 남여성비가 깨짐 등의 이유로 인해 진짜로 형이 살아 있는데 형수를 취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 이런 경우에는 남자쪽은 NTR이 아니지만, 여자는 사실상 여러 남자가 동시에 자신을 소유하는 셈이라 죽을 맛이라는 것이 문제.
4 형사취수를 실천한 인물들
역사적으로 권력자들 사이에서의 결혼은 99% 정략결혼이었으므로, 기껏 맺어 놓은 결혼동맹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사취수는 실제로 아주 흔한 일이었다. 약혼 상태에서의 형사취수는 남녀를 불문하고(언니가 시집가려던 자리에 여동생이 시집간다거나) 당연하게 행해졌고[4], 사회 통념상 형사취수혼이 근친상간의 일종이 된 후에도 헨리 8세의 경우처럼 교황을 통해 허가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5]
4.1 실존인물
- 산상왕 (동천왕의 아버지. 형수 우씨를 아내로 맞이함.)
- 헨리 8세 (첫 왕비인 스페인 공주 캐서린이 본래 형 아서의 아내.)
- 알렉산드르 3세 (황후인 마리아 표도로브나 (1847년 11월 26일생 ~ 1928년 10월 13일 사망, 본명 : 덴마크의 다그마르 공주)가 본래 형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의 약혼녀였다.)
- 조지 5세 (왕비인 테크의 메리(1867년 ~ 1953년, Mary of Teck)가 본래 형 앨버트 왕자의 약혼녀였다. 실제 결혼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좁은 의미에서 본다면 형사취수로 보기 어렵다.)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6]
- 오난[7]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유다#s-1.1.1의 둘째 아들로, 형인 엘이 죽자 형수인 다말과 결혼하였다. 그런데 오난도 죽어서 다말은 유다의 셋째 아들인 셀라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여차저차하여 이 2단콤보(...)는 실현되지 않았다.)
4.2 가공의 인물
☆ : 형사취수의 대상이 된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