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사카 히로시/앙가우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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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17일 오전 5시 경, 날이 밝자 미 해군의 함선들이 앙가우르 섬을 향해 함포사격을 시작했고, 뒤이어 섬의 서쪽에 미군의 수송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59연대 1대대장 고토 우시오 소좌는 섬의 서쪽으로 3중대를 파견했다.[1]

그러나 이는 미군의 양동작전이었으며, 실제 미군의 주 병력은 동쪽 해안과 동북쪽 해안으로 상륙해 들어온다는 것을 정오 즈음에야 깨달은 지휘부는 2중대를 동북해안으로 보내 상륙을 저지하려 했다. 후나사카가 소속된 1중대는 섬의 중앙에 집결해 있다가 미군이 방어선을 돌파하고 들어올 것을 대비했다.

이하의 내용은 후나사카 히로시의 자서전, 《영령의 절규, 옥쇄의 섬 앙가우르전기》[2]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9월 17일

그날 밤, 앙가우르 섬의 하늘은 한 점의 별도 없는 어둠이었다. 정찰병이 전해 온 미군의 진행지점을 들여다 보면 쌍안경의 렌즈에는 그저 먹을 녹여놓은 것 같은 밤이, 결전과 죽음의 위기감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략)
대원들은 긴장한 나머지 툭 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슈우우, 슈우우 하는 으스스한 울림과 함께 하늘에는 조명탄이, 머리 위로는 예광탄이 폭풍처럼 덤벼들었다. 어둠은, 완전히 변했다. 한낮같은 밝기였다. 그날 아침에 상륙한 미군은, 물가의 진지를 뚫고 우리 중대의 전면에 공격을 건 것이었다.

1중대는 섬의 중앙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 미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이동하게 된다. 후나사카는 이동하면서도 천혜의 요새로 믿고 있던 섬의 동북항이 정말로 미군에게 돌파당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벌써 적병과 조우한 것일까, 미군은 근처에 나타난 것일까? " 라며 모두 숨을 삼켰다.

그러기엔 일렀다. 지금 적과 조우한다는 것은, 절대 견고하다고 믿고 있던 동북항이 궤멸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섬의 해안선을 볼 때, 동북항은 최고의 자연 요새였다.

그 절벽에 밀어닥치는 파도는 크고 높으며 광풍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인간, 또는 선박도 가까이 할 장소가 아니었다. 섬에 사는 카나카족의 원주민들조차 거기에는 배를 대지 않았다. 아무리 물량을 자랑하는 미군이라도 이 동북항만은 피할 것이라고 수비대원 전원이 믿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그 동북항을 지키는 2중대의 안부는 싸움의 판국을 가리는 중요 포인트였다.

하지만 곧 최전선의 척후병이 돌아와, 미군이 근처에 있다고 보고한다.

그 보고를 미약히 들었을 때, 중대원들은 화석처럼 침묵을 지켰다. 믿고 있었던 2중대를 미군이 격파하고 동북항에 상륙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때 미군은 동북항의 암벽을 엄청난 포격으로 깎아내, 단애절벽을 평지로 바꾸어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시하라 중대장이 중기관총을 찾아서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후나사카는 척탄통 분대를 이끌고 중대의 최전방으로 나아갔다가 전방의 정글에서 미군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유탄이 제발 터져달라고 빌며 발사 명령을 내렸고, 발사한 유탄들이 폭발하며 미군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다들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잠시 후, 화망을 구축한 미군의 일제 사격이 중대를 향해 쏟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글 속에서 수만 발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다. 맹렬한 사격은 불길의 다발이 되어, 불의 강이 되고 성난 물결처럼 우리의 머리 위에 쏟아지며 작렬했다. 악, 할 틈도 없이 근처에서 선혈이 사방에 흩날렸다. 잇달아 전우들이 차례차례 쓰러졌다. 필사적으로 대지에 이마를 붙인 채 머리를 들지 않았다. 누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제 알 수 없었다.

수비대원 전원이 머리가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붙었다. 경상자들은 아프고 괴롭다며 비명을 질렀고 중상자들은 소리지를 힘도없이 낮게 신음을 낼 뿐이었다. 벌렁 드러누워 아무 소리 없는 자들은 즉사자들이었다.

그 때, 근처에서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후나사카는 기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고, 다른 분대의 마츠모토 상병을 발견한다. 후나사카는 마츠모토 상병에게 어디를 맞았는지 물었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의 상처를 살피다 장기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치료는 늦었다고 생각한 후나사카는 소집병이었던 그가 가족에게 남길 말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에게 유언을 묻는다.

"반장님, 일본은, 어느, 방향인가요..."

후나사카는 북쪽항을 떠올리고 북쪽을 가리켰으나 동쪽을 향해 쓰러진 그에게 보일 리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소총의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그에게 쥐어주었다.

"마츠모토, 너의 총끝이 일본의 방위다!"

몇 차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친 후,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살폈다. 그는 천천히 소총의 가운데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거기까지 그저 2, 30초의 일이었다. 총알의 비가 빗발치는 속에서 내가 그에게 할수있는 최대의 것이었다. 곳곳에서 단말마의 절규가 들렸다. 그것은, 집단학살이었다.

그리고 후나사카는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나는 기존의 중일전쟁과 만주사변의 전투상식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물량을 무턱대고 투입하는 근대전(近代戦)에서는, 어설픈 보병작전 같은 건 아무 소용 없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미군을 지나치게 경시하지 않았나, 그 위력을 똑똑히 알자 나는 처음으로 "옥쇄"를 말이 아닌 실감으로, 피부에 와 닿는 두려움으로 느꼈다.

약 20분 뒤, 미군의 사격이 잦아들자마자 후나사카는 분대원들에게 척탄통을 최대사거리로 발사할 것을 명령하고 척탄통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쏘아댔다. 잠시 뒤 정글 속에서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났다. 곧 그것이 M4 셔먼 무리가 접근하는 소리임을 알게 된 중대장은 즉각 후퇴명령을 내린다.

이 경우에는, 일단 현 지점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폭뢰를 안고 전차에 깔리는 육탄전법전차의 캐터필러에 몸을 버리고 뛰어드는 교란전법은 사단이 만주와 치치하얼에 주둔해 있을 때부터 배워 온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육박공격에 사용할 폭뢰는커녕 화약도 휴대하지 않았다.

전차를 피하기 위해 중대는 늪으로 뛰어들어,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엇자신들을 덮치치 않을지 두려워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전략)

진흙탕에 발이 빠져 앞으로 고꾸라지는 물소리, 늪바닥의 장해물에 부딪쳐 비틀거리는 사람, 중상이면서도 전차 무리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념으로 늪에 뛰어들었다가 "아, 이미 글러먹었다."라며 흙탕물을 입에 가득 머금은 채로 신음하고 있는 사람. 이것이 그 이름도 '관동군의 정예' 라고 자부하던 앙가우르 섬 수비대의 모습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참상이었다.

온통 갈대처럼 우거진 늪식물이 몸에 감겨오고, 떠다니는 조류와 부평초의 종류가 얼굴과 가슴, 등에 다가올 때마다 나는 늪에 사는 마성의 생물에게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라고 착각했다.
두려웠다.
완전히 썩은 고목이 떠다니다가 갑자기 나에게 충격을 주면 나는 그때마다 거대한 악어가 덮쳐 삼키는 듯한 기분에 빠졌다.

그러나 30여 분이 지나도록 반대쪽에 도착하지 않자 후나사카는 의문을 가진다.

한 30분 쯤 걸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아직 건너편 둔덕에 도착하지 않았다. 확실히, 늪을 가로지르는 진행방향에는 언덕이 있고 능선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암흑 속에서 진행방향을 잘못 잡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한 곳을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의 3시간 넘게 늪에서 헤매인 끝에야 중대는 늪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고, 후나사카는 남은 분대원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나중에 낮에 늪을 보았을 때, 그 늪은 놀랄 만큼 작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3시간 동안 고투하고, 사망자까지 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그때의 우리는 전차의 굉음에 위협당한 전장의 심리 때문에 한 곳을 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중대원들이 늪에서 해맨 피로로 다들 쓰러져 있을 때, 후나사카는 남십자성을 발견하고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감상에 빠져있던 중 전차들이 늪을 우회해서 자신들 쪽으로 오고 있다는 통보를 듣게 되고, 중대원들은 허겁지겁 일어나 섬의 북서쪽 고원지대로 달려간다.

피로의 극에 있는 이 때, 출발 구령이 나와도 누구하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차무리가 온다는 소식은 명령보다 더 큰 통보였다. 우리는 녹초가 된 몸을 채찍질해 허덕이며 300여 미터 전방의 서북고지에 기어올라 능선에 겨우 도착했다. 전차무리가 올라올 수 없는 암벽으로 이루어진 표고 30미터의 산등성이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전에 대대장이 내린 명령을 기억해 냈다.

미군이 상륙하기 이전의 8월, 대대장은 "만약 해안에서 적을 격파하지 못하고 최악의 사태에 빠질 때에는 서북고원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동굴들을 복곽진지로 활용하라."라고 전했다. 그 끝에 사수해야 할 지점에 우리가 집결한 것이었다.

미군이 앙가우르 섬에 상륙한 첫 날, 앙가우르 섬의 일본군은 대대장이 예견한 '최악의 사태'에 빠진 것이었다.

능선에선 앙가우르섬의 북쪽지대가 한눈에 보였다. 조금이나마 함포사격과 폭탄의 피해에서 벗어난 작은 밀림의 녹색이 아침이슬에 빛나기 시작했다. 해상의 물마루도 반짝이며 빛났다.

또 평소와 다름없는 남국(南國)의 강렬한 혹서의 하루가 시작되려 했다. 평화로울 때라면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그 빛마저 증오에 불타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2 9월 18일

18일, 전차에 쫓겨 서북고지 능선에 진을 친 1중대는 동북항 쪽에서 산개한 미군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다.

"앞으로 300미터, 적 부대 발견!" 누군가가 외쳤다. 이때 난생 처음 육안으로 본 적군의 일선은 대부분이 흑인이고 백인이 그 속에 점점이 섞여 있었다.

후나사카는 미군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는 혼자서 구령을 넣으며 직접 척탄통을 발사하며 미군들을 쫓아낸다.
그러나 잠시후 동북항 방향에서 함포사격이 날아와 능선을 타격한다. 그 충격에 후나사카는 기절했다가 흙과 돌에 파묻힌 채로 정신을 차리고 분대원들을 찾아 다닌다.

무수한 요철 위에 찢어진 나무와 분대원의 팔과 상반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었다. 더이상 시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인체의 사지, 반신에 가까운 유해가 누워있었다.

(중략)
"타카쿠! 요시자와! 이나바!......" 나는 차례차례 분대원의 이름을 부르며 주위를 해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단 세 명, 마츠시마 상병과 요시자와 병장, 오야 병장의 목소리 뿐이었다.

중대가 사분오열되고 중대장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절망에 빠진 후나사카는 남은 부하들과 척탄통을 터뜨려 자결하려 하나, 자신들이 전멸했다고 생각했는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미군들을 발견하고 동굴로 퇴각한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원망이 북받쳐왔다. "자결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하나라도 더 많은 미국 귀신을 쓰러뜨리고 죽자. 개죽음은 안 된다!' 나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퇴각을 명령했다. 전사한 부하와 전우의 시체에 붙어 있을 여유는 없었고, 고통받는 전우를 도울 틈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저했다간 세 명의 분대원마저 즉시 저세상으로 가고 말 것이었다.

망연자실해 극도의 긴장에 지친 다른 분대의 병사들은 울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들을 격려하고 능선에서 절벽의 계곡들을 오르내려 서북고원에 있는 석회동굴 중 하나에 들어갔다.
(중략)
"대대장은 왜 처음부터 이 동굴을 이용하여 전원을 여기에 집결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대대장의 명령이 잘못된 것은..... 왜 이 천연의 요새를 이용하지 않았는가..... 여기를 이용했다면 방금 전 죽어간 전우들도 살아있었을 텐데...."

동굴에 도착한 후나사카는 먼저 도착해 있던 병사들과 함께 접근하는 미군을 공격해 쫓아내고 미군이 반격으로 쏘는 함포사격에도 동굴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안심한다.
이날 저녁, 후나사카는 마츠시마 상병에게 다른 동굴들에서 중대 본부를 찾아 척탄통 탄약을 보급받아 올 것을 명령했지만 마츠시마 상병은 빈 손으로 돌아와 중대 본부는 찾지 못했으며, 근처의 동굴들마다에 중상자들이 가득하고,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동굴들에 진지를 치고 있어 연락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후나사카는 직접 중대 본부를 찾으러 나선다.

(전략)

걷다 보면, 과연 마츠시마 상병이 보고한 대로였다. 놀라며 어디를 돌아보더라도 반라의 중상자들이 가득했다.
(중략)
중상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 무렵, 섬에서 미군만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뿐이었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요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부상자들의 불행이 가슴을 쳤다.

간신히 약간의 탄약을 보급한 후나사카는 부상자들을 안심시키며 중대장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동굴진지로 돌아와 미군이 진지를 구축한 모습을 보게 된다.

다시 나는 동굴에 있는 복곽진지로 돌아왔다. 적의 조명탄은 끊임없이 밀려들었지만, 문득 암벽 사이로 적진의 방향을 보면 적은 앙가우르 섬의 남부와 서부에 무수한 텐트로 바닥을 꾸미고 발전기로 전등까지 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참한 복곽진지에서 그 광경을 본 나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미군은 아마 저 천막 아래에서 깊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독서로 피로를 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에는 천천히 일어나 면도를 하고 아침식사를 듬뿍 하고, 언제나처럼 우리를 공격해 올 것이었다. 빛나는 수많은 전등빛은 '보람된 전투'임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약간 멀리하는 것이 수백 미터, 같은 섬을 양분하고 천국과 지옥이 나뉘어 있는 느낌이었다.

3 9월 19일

19일, 미군이 일과에 따라 포격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북진하는 미군에게 미야 요시오 소위가 이끄는 1개 소대가 공격을 걸어 등대고지(Lighthouse hill)를 확보했으나, 오후에는 신사고지(Shrine hill)를 미군에게 탈환당한다.

후나사카와 3명의 분대원들은 자신들의 진지 남쪽에서 접근하는 미군의 중화기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나, 탄약이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요시자와 병장과 오야 병장이 사망한다.

"아직 수류탄이, 총검이 있다. 마지막에는 미군과의 백병전에서 누구라도 찔러주마."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생각도 무모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특히 총검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오후 4시 즈음에 지근탄이 그의 왼쪽다리에서 터진다.

(전략)

격통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몸을 비틀어 하체를 보자 나의 좌측 대퇴부에는 새빨간 피가 콸콸 흘러 나오고 있었다. 파편이 허벅지 살을 깎아내버린 것 같았다. 식칼로 잘라낸 것처럼 25센티미터 정도 찢어진 왼쪽다리는 남의 다리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중략)
내가 다친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마츠시마 상병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혈액을 내 손바닥으로 가려봐도 조금도 지혈의 효과는 없었다. 이윽고 어둠이 다가오자 미군은 포격을 중단했으나,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어둠속에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혼자서 버티고 있다가 사라졌던 마츠시마 상병이 군의관과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난다.

사실 그동안 단 한 명의 부하 마츠시마 상병은 나의 부상을 보자마자 군의관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그들이 올 때까지 나는 몰랐다. 부상당해 한 시간 넘게 있던 처참한 내 눈앞에 그를 데려온 군의관이 나타났다.

.....그런데 군의관은 내모습을 힐끗 보고는 진찰조차 하지 않았다.
(중략)
적어도 다리를 살펴보고 검진해주지 싶었다. 하지만 군의관은 치료도 하지않고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불쌍하지만 너에게 여명은 얼마 없다. 포기해라." 군의관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섬의 야전병원이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물자가 바닥났다는 것을 알고 있던 후나사카는 군의관에게 감염 예방이라도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군의관은 말없이 그에게 무언가을 내민다.

"적어도, 괴저 예방 정도는 해줄 수 없을까---" 나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군의관에게 호소하려 했지만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군의관은 조용히 무언가를 꺼내어 떨어지지 않게 내 어깨에 뒀다. 그것은 약도, 붕대도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검은 윤기가 도는 수류탄 하나였다.

군의관은 입밖으로 아무 말도 내지 않았으나, "군령이다. 지금, 네 녀석은 즉시 자결하는 게 최선의 길이다."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중상 처방에 수류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마츠시마 상병은 그에게 감사인사를 올리며 명령대로 본대를 찾아 합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군의관과 함께 동굴진지로 돌아가버려 후나사카는 다시 혼자가 된다.

나도 더 이상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고, 동굴 속 중상자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비분의 눈물이 흘렀다. 지금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땅에 발화장치를 퍽, 하고 내려치면, 그 다음은 불을 뿜으며 폭발할 뿐이었다. 그 탄을 단단히 가슴에 품으면 내 상체는 뒤죽박죽하게 날아가 거기에는 다리만 남을 것이었다. 나는 어젯밤 동굴에서 들었던 "자결용 수류탄을 줘!"라는 말을 기억해냈다. 수류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구원이었다. 군의관의 처방은 인정이 넘치는 호의에 찬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군에서도 버림받은 것인가. 백병전에서 적을 찔러 쓰러뜨릴 수는 없는 것인가...."하며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군의관과 마츠시마 상병이 취한 태도는 잔인하고도 잔인한 것이었다. 주위의 상황으로 미루어, 내 부상 같은 건 어지럽게 차례로 일어나는 옥쇄 전장의 사소한 하나의 사망사건일 뿐이었다. 이것이 전쟁인 것이다. 혼자 남겨진 이 때, 나는 "전우"라는 군가를 기억했다. 부상당한 전우를 안아 일으켜 슬픔을 격려하는 전우애의 노래였다.[3] 그러나 앙가우르 섬 전투에 그런 소박하고 느긋한 감상은 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속에서 후나사카는 검도에서 배운 '평상심'으로 자결하려는 생각을 떨쳐내고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굳힌다.

자결을 단념하게 한 것은 내가 살아갈 힘을 불어넣은 소년 시절부터 배운 검도의 가르침이었다. "평상심을 잃지 마라!" 하는 속삭임이 내 마음을 깨웠다. 땀 흘려 검도에 정진했을 무렵, 배운 것은 아무리 비정상적인 환경에 던져졌을 때도 냉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평상심'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지금이 그 때가 아닌가, 너는 무엇 때문에 검도를 배운 것인가!" 라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나를 두고 떠났다는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나는 천천히 자신을 되찾아갔다. 살아야 했다.

"다리 하나 당한 정도로 죽을까 보냐. 이까짓 것, 나는 반드시 살아나 주마!"

지혈을 위해 가제 붕대로 쓸만한 물건을 찾던 후나사카는 품에서 일장기를 꺼내지만, 그 일장기에 입대 전 만몽학교의 교장이었던 육군 중장의 서명이 있다는 것 때문에 사용을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치고 일장기를 접어서 다리에 묶은 채로 팔을 써서 몇 시간동안 기어간 끝에 동굴로 돌아와서 쓰러진다.

다음날, 통증은 남아있지만 출혈은 멈추었다는 것을 확인한 그의 앞에 마츠시마 상병이 나타나 다행이라는 말을 건낸다.

"반장님,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다.

" 마츠시마. 인간은 살아도 죽어도 기력뿐이다. 벌써 죽을까보냐? 오늘부턴 네 손발로라도 흰 돼지 놈들을 모조리 죽여주마." 나는 싸울 기력만은 충분히 되찾았었다. 적어도 하나라도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살아있기로 한 것이었다. 동시에 죽을 바에는 무덤에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가고 싶었다.

오늘도 미군은 반드시 능선을 돌파하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4 9월 20일~26일

20일, 어김없이 미군이 고지에 대한 격렬한 포격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등대 고지를 탈환한 미군이 일본군 쪽으로 향해 왔다.
후나사카는 척탄통으로 미군을 공격하는 한편,[4] 미군의 포격으로 하루에 70cm~1m씩 깎여나간 고지의 동굴들이 무너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과 남은 탄약의 양을 생각하며 불안해 하다가 몰려오는 보병들 뒤로 처음 보는 미군의 차량을 발견한다.

(전략)

그런데 더 후방에서 이상한 신무기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아닌가. 전차의 포탑 대신 야포를 설치한것 같은 "자주하는 포"(대전차포)였다. 우리는 처음 보는 것으로,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 후나사카 히로시는 이 차량들을 대전차포라고 기록했지만, 이후의 기록으로 볼 때 앙가우르 전투 9월 20일자에 미군이 투입했다는 T30 75mm 자주곡사포[5]로 추정된다.

처음 보는 자주포의 모습에 당황한 일본군들은 자주포를 우선공격순위로 삼았지만 자주포를 호위하기 위해 무반동포를 든 미군들이 사격하자 후나사카는 무반동포를 든 병사들을 노리고 공격한다.

하지만 잠시 후, 공병들이 매설한 대전차지뢰에 걸려든 자주포 한 대가 폭발하고 이내 다른 자주포 한 대도 야포사격에 파괴되자 미군은 그대로 후퇴한다.

21일, 아침 6시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진 미군의 고지에 대한 포격이 끝나자마자 다음은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이 폭격을 가한다.
후나사카는 이에 대해 동굴 속 깊숙히 숨은 상태에서 동굴 속에서 울리는 소리 때문에 고생했지만 사상자는 적음, 이라고 기록했다.

30분간 이어진 함재기의 공습이 끝나자 8시까지 다시 포격이 가해지고 미군이 공격해오나 방어에 성공하고, 나뭇잎에 맺힌 이슬까지 핥아먹을 정도로 식량과 식수부족에 시달리던 일본군들은 병사들이 무력화된 셔먼 전차에서[6] 식수와 담배 등을 탈취해오자 진지는 그야말로 추석과 설날이 온 듯한 소동이 되었다고 한다.

22일, 협곡의 철도를 따라 공격해오는 미군에게 역공격을 가하기 위해 새벽부터 후나사카의 직속 상관인 이자와 소위가 움직일 수 있는병사 30여명을 이끌고 미군의 진행 방향인 협곡의 양쪽 고지로 이동한다. 후나사카는 이자와 소위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나 이자와 소위는 움직이는것이 불편한 후나사카를 데려갈수는 없다고 말하고 후나사카는 "네 왼쪽 다리의 복수를 해주마."라는 이자와 소위의 말을 위안삼아 동굴에 남는다.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된 전투는 오후 2시 30분경에 탄약이 고갈된 이자와 소대가 백병전을 시도하는 상황까지 되었으나, 일본군의 대전차포에 피격된 셔먼 전차에 탑승했던 미군 제 322 연대장 베너블 대령과 휘하 장교들이 부상당하자 미군들이 후퇴하는 것으로 종료되고 이자와 소대는 고지에 일장기를 계양한다.

23일, 미군은 작전을 바꾸어 화염방사기, 소이탄, 다이너마이트등을 동원해 동굴들을 공격하며 진격해 협곡을 점령한다. 동굴들이 서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후나사카가 있던 동굴에까지 매캐한 냄새가 돌기 시작하고 그 냄새를 맡은 일본군들은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며 당황한다.

"난 이제 죽고싶은거야. 빨리 누구든 죽여줘....."라고 눈물을 흘리는 병사가 있는가하면 "그 게를 나에게 넘겨! 오예! 앞으로, 나한테 상패 붙는 느낌으로, 이상한 소릴하면 척사알이다." 하며 불한당처럼 난폭해진 병사도 있다.

그런가 하면 중상에 드러누운 채로 혼자서 "인간의 운명따위는 모르는 것이다. 어디서 살았든 죽음은 찾아온다. 일순의 생명을 이 섬에서 끝낸다. 그래서 좋지 않은가."라며 삶의 철리를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 한편에서는 자꾸,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참모 본부 때문이다. 그 XX반장 놈은 어느 동굴을 어슬렁 거리는 걸까, 나를 이 몰골로 만들어 놨는걸." 이라고 투덜대고 있는 자, 혹은 고향을 생각하는 자, 공포에 떠는 자, 변절을 주장하는 자. 모두 몸 어딘가에 적의 소이탄, 화염방사기의 세례를 받고 화상의 흔적이 물집으로 잡혀있었다.

이것이 한때 관동군 제일의 강함을 자랑하던 도치기 사나이들인 것일까? 그 속에서도 "싸우다 죽을 뿐이야. 전우의 원수를 갚아 흑돼지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이는 거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24일에서 25일까지 복곽진지는 미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우리는 긴장했지만, 포위한 채 미군은 공격해오지 않는다. 수비대원도 이제 대군을 쫓아낼 힘은 남지 않은 채로 적에게 총포탄을 쏠 뿐이다.

25일, 미군이 불도저들을 이용해 일본군들이 진지로 사용하던 동굴들을 매우고 전차가 지나가기 위한 도로를 만들기 시작하자 일본군들은 불도저가 자신들이 사용하던 진지를 매워버리는 모습을 보고 공포에 빠진다.

"어쩌면 그 불도저 무리가 복곽진지의 입구를 하나하나 매워버릴지도 몰라."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물도 식량도 없는 동굴속에 생매장 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번 미군의 현대 장비에 한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26일, 미군은 전차를 앞세워 고지를 포위한 뒤, 일본군들을 섬멸하기 위해 진입해온다.

5 9월 28일~

28일, 미군의 약 두 개 중대가 고지로 진입해온다. 후나사카가 있던 동굴에서는 약 서른명의 일본군들이 나와서 각자의 무기들을 들고 미군들을 겨냥하고 있었고, 후나사카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부족한 탄약을 낭비하지 않기위해 침착하게 미군들을 향해 척탄통을 조준했다.

...적병이 번쩍 번쩍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명확하게 보인다. 쏴라! 탄환은 천천히 궤도를 그리며- 낙하했다. 맞았다. 보기 좋게 명중했다.

후나사카는 미군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또 명중이닷!"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옆에서 싸우고 있던 전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곧, 내가 노리던 미군들은 흩어지고, 앙가우르섬 특유의 인광석의 하얀 모래 먼지가 퍼졌다.

그러나 잠시후, 후나사카와 일본군들이 있던 지점을 향해 미군들의 집중 사격이 시작되고, 미군의 중(重)박격포 사격이 그를 덮친다.

다음 순간, 눈앞에 중박격포의 포탄이 빨갛게 터지며 근처의 암석과 돌의 우박을 내 위로 쏟았다. 순간 왼쪽 팔꿈치가 날아갔나 싶을 정도의 충격을 받고 끄앗, 하며 숨을 죽였다. "젠장! 움직이지 마!...." 왼팔의 말단이 저리고, 관절의 상부에서 피가 솟구쳤다. 척탄통을 다루려해도 더이상 자유롭게 다룰수 없었다.

왼팔과 왼쪽 다리를 모두 쓸 수 없게 된 후나사카는 가까스로 동굴로 기어들어온다.

결국 나는 오른팔 하나와 오른쪽 다리 하나뿐인 피투성이 전투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일본군의 박격포에 의해 한개 소대, 약 육십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미국정부 간행전사는 발표했는데, 내가 이때 정신없이 살인마가 되어버린것을 생각하면, 전쟁의 무서움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메운다.

이후 미군이 동굴까지 몰려오자 후나사카와 일본군들은 동굴속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

미군들은 화염방사기와 다이너마이트로 동굴속 일본군들을 집중공격했으며, 후나사카와 일본군들은 이에 대항해 척탄통의 탄환으로 쓰던 수류탄이나 미군이 던진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던지며 저항했다.

약 한시간동안 이어진 전투는 미군이 후퇴하는 것으로 끝나고, 후나사카는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낀다.

간신히 적을 쫓아냈다. 적이 후퇴한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다시 왼쪽 허벅지에 통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선혈이 흘러나와 발바닥을 적셨고, 부서진 왼팔도 축 늘어졌다. 이윽고,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무거운 척탄통의 탄환을 정신없이 던진 탓에 오른쪽 어깨가 꺾여버린 것이었다. 전투를 마친 순간, 오른팔도 축 늘어져버렸다.

오른쪽 어깨의 염좌를 치료할 방법을 생각하던 후나사카는 유도 3단의 유단자이던 마스부치 상병을 떠올리고, 그라면 자신의 염좌를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오른발 하나만 써서 동굴속을 세시간동안 굴러다니며 그를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는 못한다. 대신 동굴 구석에서 커다란 탄약 상자를 발견하고 탄약이 들어있기를 바라며 뚜껑을 열었다가 상자의 뚜껑에서 누군가가 쓴 문구들을 발견한다.

"이런 동굴의 안쪽까지, 분명 힘들었겠지." 믿음직한 병사였다.

나는 탄약이 많이 들어있기를 하늘에 빌며 뚜껑을 열었다가 무심코 손을 멈추었다. 칙칙한 나무 뚜껑위에 군데군데 못이나 포탄으로 깎아서 적은 것같은 문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마 소총의 탄피로 적었을 것이다.
"물." "뭐든 먹고싶다." "지원군은 오지 않는건가." "죽기전에 하나라도 적을 더 죽이고 싶다." "죽으면 뼈를 부탁합니다.".....등등.
잘보면 깎아 쓴 흔적에는 점점이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아마 부상자가 고통을 달래기 위해 쓴것이 틀림없었다.

후나사카는 결국 마스부치 상병을 찾지 못한채 탄약상자를 가지고 진지로 돌아갔다.

6 9월 말

9월 말에 이르러 미군은 고지 대부분을 탈환하고, 여남은 일본군의 병력들은 지휘부의 명령을 받지 못한채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후나사카는 자신이 이끌던 분대의 마지막 생존자인 마츠시마 상병의 부축을 받으며 동굴들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7]

그러던 중 미군의 야포사격이 두명을 덮치고, 후나사카와 마츠시마는 그자리에 엎드린 채로 미군의 포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마츠시마, 괜찮나?" 내가 약간 고개를 들고 그를 살폈다. 동시에 그도 내 안전을 확인하려 했는지 내게 시선을 맞췄다. 그런데 눈을 맞춘 그가 희미하게 웃더니 갑자기 털석, 하며 고개를 떨구는게 아닌가.

마츠시마의 부상을 직감한 후나사카는 포격을 피하기 위해 가까운 구덩이로 그를 끌고 들어가 경상이길 바라며 그의 부상을 확인하려 했으나, 자세히 살피진 못한채 미군이 몰려오리라고 생각하고 가까운 동굴로 옮겨 간 뒤 마츠시마가 가지고 있던 붕대로 그의 부상을 치료하기위해 부상을 살폈다.

외부에서 상처를 본 나는 무심코 "이것은..."하고 중얼거렸다. 왼쪽 유방을 중심으로 직경 약 10cm, 포탄의 날카롭고 길쭉한 파편이 그의 왼쪽 가슴에 구멍을 만들고 힘차게 회전해 가슴의 살을 도려낸 것 이었다.

(중략)
즉시 치료를 해달라는 듯이 손을 땐 타박상에 나는 철모를 벗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가 그때 나마저 실신할 뻔했다. 가슴의 구멍에 검은 피가 흔들리고 흑갈색의 장기가 꿈틀대는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녀석은 뭐지? 심장, 아니면 폐인가?" 잠시, 나는 의학에 무지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상처가 자신의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닳은 후나사카는 치료하면 대여섯시간 정도는 버틸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의 상처를 붕대와 거즈로 싸매어두었다. 치료를 받은 마츠시마 상병은 곧 잠에 빠졌다.

치료를 끝내자 잠시 괴로운 호흡을 계속하던 마츠시마 상병은 곧 잠에 빠져 갔다. 개전 이후, 우리는 한순간도 누워서 잘 수 없었다. 미군이 언제, 어디에서 습격해 올지 모르기에 우리는 항상 경계하며 앉아서 잠든 것이었다. 몸을 옆으로 눕혀 잘때야말로, 더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면, 그 긴 불면과 피로에서 마츠시마 상병은 해방된 것이다.

자정 즈음, 동굴 바깥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후나사카는 미군 병사에게서 탈취했던 자동소총을 장전해 동굴 바깥으로 나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좋아, 일단 되든 안되든 기선을 제압하자." 라고 결심했다. 일단 정해지면 아쉬움은 없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중, 고맙게도 조명탄이 머리위에서 바스락 바스락하는 장본인들을 비추었다. 바로 미군 3명 이었다.

(중략)
"다다다다닷....!" 하는 소리와 함께 조명탄도 사라지고 미군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 신경은 아직 팽팽한 상태로 근처에 아직 미군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긴장의 극에 달해 있었다. 우리가 숨어있던 동굴 주변도 이제 적의 수중에 빠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험했다. 그렇다 해도 마츠시마 상병은 움직일 수 없었다.

미군들을 쓰러뜨리고 동굴로 돌아온 후나사카는 총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마츠시마를 진정시키고 그를 부축해 동굴속 더 깊숙히 들어갔다.

다음날, 후나사카는 미군들의 시신을 찾아갔다.

딱히 승리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미군의 시체에 발길질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미군들이 물과 식량을 많이 휴대하고 있기를..." 하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적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도 궁금했다.

(중략)
가장 먼저 응시한것은 허리에 차고있던 수통이었다. 그들은 여러가지 물건을 넣는 전당도 배낭도 가지지 않았는데, 보아하니 공병처럼 일본군의 복곽진지 입구에 지뢰를 부설하고 황색 화약을 사용한 동굴 폭파 공작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수비대원의 저격을 당할 수 있으니, 야간에 은밀히 움직이는 공작대였다. 입술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 미군의 얼굴이 눈에 비치자 나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섞인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내 기분과는 반대로, 손은 열심히 시체의 주머니를 한마음으로 뒤졌다. 있다. 미군의 큰 주머니에서 초콜릿, 껌, 담배가 조금씩 나온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내 철모에 열중해서 넣고 소총과 탄약도 챙겨 마츠시마 상병이있는 동굴로 돌아갔다.
"어이, 마츠시마. 좋은거야. 대전과라고...." 내가 바로 마츠시마에게 전리품들을 보여줬다. 정말로, 도둑질과 다를바 없는 더러운 행동이었지만, 우리에겐 생명이 걸린 소행이었다. 전리품을 보고 마츠시마가 얼마나 기뻤던 것인지 마치 아이처럼 웃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웃은 적도 없었다. 그의 가장 기쁜 날이었다. 이때 둘의 모습을 고국의 부모가 본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마츠시마에게 전리품을 건네면서도 중상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면 위독해 질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후나사카는 그에게 수통을 보여줄지를 고민하다가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며 호소하던 중상자들의 모습을 떠올려 결국 그에게 수통을 건넨다.

이날 낮 동안 후나사카는 바위아래에 숨어서 미군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저격했지만 미군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다음날, 별 탈 없었던 마츠시마 상병의 상처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며 고통을 호소하는 등 그 증상이 악화되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을 본 후나사카는 그가 더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아들이 있던 그가 유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말할 수 없는 그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보이며 그곳에 유언을 한 자씩 적어나가게 했다.

(전략)

히라가나 한 자를 쓰는데 30초에서 1분씩 걸리는 꼴이었다. 나도 열심히 그가 쓴 글을 판독해야했다. 그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자라난 창백한 얼굴을 고통으로 일그러뜨리며 사력을 다해 썼다.
(중략)
「ハンチョウドノ、ゴオン(御恩) ハシンデモワスレマセン. .....シフトカツボー(勝坊・三歳の愛息)ニョロツク. ....チチハリシノパニハタライテ、メイヨノセンシヲトゲタ」[8]...그렇게 쓰는데 약 30분은 걸렸다.
(후략)

약 30분간 유언을 쓴 마츠시마는 수통을 가리켰고, 후나사카는 그에게 수통을 건네준다.

"마음껏 마셔라. 마츠시마!" 내가 내민 수통의 물을 그가 꿀꺽 꿀꺽 소리를 내며 실로 맛있게 마셨다. 그 행복한 얼굴 --- 그것은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마쓰시마 상병은 물을 마시고 곧 숨을 거두었다. 이제 고통스러운 지브, 지브, 슈, 슈, 하는 소리도 조용해졌다.

--- 이날 정오경, 나는 혼자가 된 쓸쓸함을 곱씹으며 어디있을지 모르는 아군의 부대를 찾아 동굴들을 해맸다. 전쟁에 대한 분노와 전쟁에 대한 원망,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마츠시마, 네 원수를 갚아주마." 적에 대한 증오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마츠시마 상병을 잃고 혼자가 된 후나사카는 암벽에 몸을 기대어 오른쪽 다리로 걸으며 아군을 찾아다니면서도 혼자서 척탄통을 사용할 방법을 생각해보나 곧 그것이 무리임을 깨닫고 조수를 찾기로 결심한다.

"어떤 방법으로 척탄통을 쏠 수 있을까? 어떻게든 적을 박살내고 싶다."라고 계속 생각했다. 방아쇠에 긴 철사를 붙이고, 그 끝을 오른쪽 다리에 단단히 묶어 두면 오른쪽 다리를 당기는 것으로 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척탄통은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도 않고, 내가 조준할 수도, 발사할 수도 없었다. 비참한 실패였다.

그런 결심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나사카는 돌을 쌓아 방벽을 만들고 있던 3명의 일본군 병사들을 발견한다.

"너희들은 어느 중대 소속인가?"라고 내가 그들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3명의 젊은 병사들은 작업의 손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더니, 피투성이인 내 모습에 놀라워하는 눈치로 일제히 거수의 예를 올렸다. 아무래도 내가 알던 무리도 있는 것 같았다.

잘 보면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혀 수척했지만, 그중 한명이 같은 중대의 후배인 카나이 상병임을 깨닳았다. 그는 치치하얼 주둔 당시 사무업을 보던 우수한 병사였다.

카나이 상병을 발견한 후나사카는 그에게 자신의 조수가 되어 척탄통을 함께 사용할것을 요청했고, 카나이 상병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탄환을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내가 조준하고 발사할테니..."라는 내 말에 그는 곧 조수가 되어주었다. 생각해보면, 내 분대의 히시누마, 이토, 이나바, 타카쿠, 미네기시, 이소, 오자와, 쿠와하라, 후시미, 오바나, 요시자와, 오야에 이어 마쓰시마 상병과 모든 분대원을 잃은 내가 다시 카나이 상병과 함께 후나사카 분대를 만들게 된 것이다. "임마, 이걸로 적을 해치울 수 있는거야!" 나는 내가 한 다리 뿐임을 잊고 용기 백배가 되었다.

후나사카가 카나이 상병을 조수로 얻은 다음날, 일본군 잔존 병력들에 대한 미군의 선전 방송이 시작된다.

9시경, 적은 우리가 생각치도 못했던 새로운 무기를 우리앞에 가져왔다. 그것은 대포도, 전차도 아닌, 소리를 동굴 진지에 울리게 만드는 여러개의 마이크로 확성기였다.

"일본군의 모든 병사들이여! 용감한 고토 소좌의 모든 병사들이여! 그대들은 모두 미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이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이 이상의 저항은 모두의 전멸만을 부를 뿐이다. 미군에게 두 손을 들고 나와 항복하길 바란다. 미군은 그대들을 환영한다!" 라고 시작한 것이 아닌가, 여기에는 그동안 동요치 않던 나조차 깜짝 놀라고 말았다. 쇠락한 수비대원들의 마지막 기력을 꺾고자 하는 심리전이었다.

"여기에는 물도, 담배도, 맛있는 음식도 준비되어 있다. 상처를 치료할 약과 병원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모두 그대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다들 부모와 형제가 있는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라고 적군이 끝없이 계속했다. "너희를 모조리 찢어죽이겠다." 라고 방송했다면 우리의 높은 적개심은 오히려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설득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이쪽의 가슴에 파고들 듯 했다. 방송이 시작되면 신기하게도 누구나 귀를 기울였고, 말이 끝나도 발포하는 사람도, 호통치는 사람도 없었다.

선전 방송을 들은 병사들은 저마다 동요하나 결국 누구도 항복하지 않았다.

(전략)

한 보충병 일병은 "어차피 우리는 총알도 없고 식량도 없다. 여기에서 객사할 바에는 뭐라도 먹고, 물을 마시고 죽고 싶다." 라고 말했다. 중상자들은 "몇시간도 못 살 목숨이야. 적은 약을 주고 치료도 해준다고 했잖아. 죽은 셈치고 나가볼까." 라고 했다. 경상자 무리에서도 "이젠 싸워도 전멸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나가서 죽어도 좋으니 잡혀보고 싶다. 적이 말하는게 사실일지도 모르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왔다. 모두 인간이 가진 살고 싶다는 본능이 드러난 것이었다.
(중략)
적은 동일한 방법을 괌, 사이판에서 성공한 것이었다. 그 후에도 매일 방송을 계속했지만 점차 중상자들 까지도 반발을 품게 되는 분위기였다. "적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루머 방송을 한거다. 그따위 케케묵은 방법에 당할 것 같냐, 양키놈아!"하는 소리가 주위에서 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방송중에 고국의 가족의 말을 할때마다 우리가 향수에 가슴을 조여온 것은 사실이었다.
(후략)

7 10월 4일~

10월 3일, 미군은 전술을 바꾸어 곡사포격 대신 일본군이 숨은 동굴을 향한 직사포격을 개시했다.

10월 4일, 미군의 포위에 수세에 몰린 일본군들은 한개분대정도의 저격수들을 선발해 동굴에 접근하는 미군들을 공격하고 식량과 식수를 탈취했다.

(전략)

이런 싸움이 몇 번이나 거듭되며 물과 식량의 부족은 처참한 상황이었지만, 저격수가 등장한 다음부터는 그 덕분에 살았다. 미군이 퇴각하고 유기된 시체의 주머니에는 반드시 음식이 있고, 허리에는 수통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이, 루즈벨트 급여다." 라고 서로 말하며 굶주림을 달랬다.
(후략)

10월 6일, 일본군들은 동굴입구에 지뢰를 부설하는 미군에게서 지뢰를 탈취해 미군의 진로에 역으로 매설했다.

8 10월 7일

10월 7일, 미군은 황린탄을 이용하여 일본군을 공격했다.

(전략)

황린은 일단 붙으면 얼굴이나 손발에도, 군복에서도 활활 타올랐다. 때어내려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쓸어 올리면 오히려 광범위하게 퍼졌고, 그 황린이 퍼진 동굴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상을 입고 도망치려 허둥댔다.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도망친 자는 순식간에 포탄의 무수한 파편에 맞아 죽어 갔다.

이후 10시 30분 부터 미군들이 동굴로 다가오기 시작하고 자신이 있던 동굴 근처에까지 미군의 기척이 느껴지자 후나사카는 조심스럽게 동굴의 입구로 향했다.

"헤이! 윌리. 비 케어풀!" "OK!, OK!" 미군의 낮은 속삭임이 내 귀에 들려왔다. 버터에 젖은 듯 끈끈한 그 목소리는 나에게는 괴물, 마귀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중략)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밖을 보니, 작업하고 있던 미군은 3명이었다.

후나사카는 미군들을 공겨하기 위해 일본군들의 시체 사이에 숨어 미군들에게 다가갔다.

(전략)

감시하는 미군은 두리번 두리번하다가, 눈 아래의 음지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눈을 뜨고 내 쪽을 주시했다. 그때, 나는 이미 38식 소총을 그의 뚱뚱한 복부와 가슴팍에 조준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발견한 순간, 그는 입술을 크게 벌려 무어라 외치려 하며 내 쪽으로 자동소총의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신께 기도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린 순간 그는 '욱' 하는 소리를 내며 대각으로 쓰러졌다. 지뢰를 묻고있던 미군 둘이 급하게 이쪽을 보며, "오오! !" 이라 외치고는 삽과 지뢰를 내던지고 어깨에 걸쳐뒀던 자동소총을 잡았다.

그동안 몇초, 생사를 초월한 탓일까, 이상하게도 중상을 입은 내 왼쪽 다리도 제대로 움직인 것 같았다. 나는 첫번째 총알을 쏜 뒤 적병까지 5미터의 거리를 "우옷! , 우옷!"하는 소리를 지르며 총검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죽음을 각오했던 그 기백이, 두 미군을 위협한 듯 했다.

시꺼먼 피에 물든 넝마를 걸친 일본군이 해골같은 몰골, 악귀같은 형상으로 달려든 것이다. 불의의 사건에 놀라지 않을리가 없었다. 지뢰를 내던진 한 사람이 재빨리 자동 소총을 '다다다닷'하며 발사했지만, 순간적인 일에 당황한 탓인지, 왼쪽으로 빗나가 내 왼쪽 팔뚝에 맞았다.

두번째 미군이 쏘려 할 때, 나는 이미 그의 2미터 정도의 거리까지 달려왔고, 정신없이 그에게 부딪히며 총검을 허리에 꽃았다. 그순간 실타래처럼 뒤엉키며 쓰러졌으나 분명히 반응이 있었고, 복부를 찌른 감촉이 내 오른팔에 전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하앗!" 이라는 소리를 지르며 뒤에서 달려든 미군이 자동 소총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아군과 내가 뒤섞인 상황에서 사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첫번째에는 어떻게든 피했으나 두번째는 피할 수 없었고, 무작정 달려드는 미군에게 힘껏 총검을 내던진 채로 왼쪽머리에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은 후나사카는 여섯시간 뒤 정신을 차린다.

왼팔의 총상을 포함한 격통과 우레같은 두통의 아픔이 몽롱한 의식에서 나를 깨웠다. 고통에 신음하며 "살아있다....살아있어...."하며 운명의 신을 저주하면서도, 그에게 감사했다.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왼쪽 머리에 대자, 풀처럼 엉겨붙은 피가 잔뜩 붙었다.

살아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비스듬히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한 세명의 미군의 시체가 눈에 비쳤다. 한 사람은 오른쪽 가슴에서 강같은 피를 흘린채 숨을 거두었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덤빈 미군은 자동 소총을 떨군채, 목에 총검이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9 ~ 종전까지

이후 전투 중에 포로로 잡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수류탄으로 자결을 시도했으나 폭발하지 않아 실패한 뒤, 마지막 특공을 하려고 권총 1자루와 수류탄 6발을 몸에 두르고 미군 지휘 천막까지 들키지 않고 침투했으나 수류탄을 터뜨리기 직전에 초병이 뒤통수를 개머리판으로 찍어 기절시켰다. 보급을 받지 못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이 정도까지 했다. 만약 특공이 성공했다면 미군 지휘관 다수가 죽거나 다쳐 지휘체계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때 몸에 입은 부상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4군데의 크고 작은 상처에 대퇴부 자상, 좌측 어깨 관통상, 두개골 함몰, 좌측 복부 총검관통상(치명상)에 우측 어깨골 염좌, 좌측 발목 탈구. 이걸로 끝이 아니라 온 몸에 자잘한 화상을 입고 몸 전체에 20여 개의 포탄파편이 박혀 있었다. Fuck he's dead 혼자서 전국무쌍 시리즈를 찍고 있다. 정말 인간이 아니다... 미군 군의관은 후나사카가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야전병원에 옮겼는데... 후나사카는 3일 후 살아났다. 예수? 깨어난 후나사카는 주위의 의료기구를 부수고 헌병과 대치하며 난동을 부렸다.

이후, 펠렐리우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지만 탈출하여 1km를 걸어서[9] 소총탄의 화약을 모아 다시 미군부대에 잠입해 탄약고를 폭파시키는데 성공했다. 만약 미군이 후나사카를 잡았을 때 차라리 미친 척하고 후나사카를 처형했다면 미군에게 더 이상의 참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비행장에 거듭 불을 지르려다가(...) 미군에게 다시 붙잡혔다.

그 때부터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와 불사신 분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미군도 그의 이름만 들으면 기겁하면서 비껴 갈 정도였다.

와~,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너,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 후나사카 히로시가 포로 수용소에 있던 시절 간수이자 베스트 프렌드였던 버논 포레스트 크렌쇼 상병[10]이 그의 활약을 보면서. 참고로 버논은 약간의 일본어를 할 줄 알았고, 로버트 레키로무스 발튼 버긴[11]과도 친구였다.

이후의 행적은 후나사카 히로시#s-4.2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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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후 3중대는 동쪽 해안으로 이동해 진격하는 미군을 저지하다 대부분이 궤멸당하는데, 박격포 사격으로 미군 321연대 1대대의 참모에게 부상을 입혀 후송시키고 진격을 두시간정도 늦춘다.
  2. 《英霊の絶叫 - 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3. 일본어 위키링크 1905년에 만들어진 군가로, 만주에서 전사한 전우를 그리워하는 가사다.
  4. 이전 문서에는 다친 다리가 이날부터 멀쩡해져서 미군들을 상대로 백병전을 벌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23일까지 부목을 대고 가만히 서 있는 것부터 연습해야 했다고 한다.
  5. M3 하프트랙에 M116 곡사포를 장착한 차량이다.
  6. 따로 파괴했다는 말이 없는걸로 보았을때 이날에 미끄러져서 무력화됐다는 셔먼에서 탈취한 것으로 보인다.
  7. 날자가 정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9월 말인것은 확실하다고 언급된다.
  8. 발음 그대로 가타카나로 유언을 옮겨 적은것 인데, 작성자가 번역하지 못한 관계로 그대로 기재함. 대체로 "반장님(후나사카 히로시),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시후(아내인지 다른 자식의 이름인지는 불명)와 가쓰보에게 전해주세요. 아버지는 용감하게 싸웠고(リシノパニハタライテ, 해당 부분은 의역) 명예롭게 전사했다고"라는 의미인 듯 하다.
  9. 상기했듯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무리 신체가 단련된 군인이라도 저 상태로는 1km는커녕 500m도 걷기 힘들다.
  10. 이 사람의 손녀인 케이티 크렌쇼가 쓴 글에 의하면, 후나사카는 전후에 버논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행적을 몇 년 동안이나 찾아다녔다는데, 그가 문서들에 크렌쇼(Crenshaw) 상병의 성을 그렌쇼(Grenshaw)로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케이티 크렌쇼의 글
  11. 참고로 이 사람이 후나사카 히로시의 아래 행적을 듣자 "오 씨발! 조반니하고 붙었으면 존나게 재미있었겠는데?!"라고 감탄했다.그러게, 존나게 재밌었겠네! 이 괴상한 군인도 추가시켜서 보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