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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도시전설?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경고문이 뿌려졌다."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는 과거에 없었던 신형 폭탄이 투하됩니다. 이것이 떨어지기 전에 천황에게 항복하라고 권고하십시오. 만약 천황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8월 6일이 되기 전에 히로시마에서 반경 50km 바깥으로 떨어진 곳으로 피난하시오."
물론 대본영의 선전에 따라 일본이 전쟁에 이기고 있는 줄 안 대다수의 히로시마 시민들은 이 경고문을 무시했고, 결국 역사대로 1945년 8월 6일 투하된 원자폭탄에 30만명이 3초만에 폭사했다. 반면 이 경고문대로 피난한 극소수의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경고문은 없었다. 당연하지만 주된 내용은 잘못된 유비추리의 오류의 전형적인 예이다.
기본적인 사실은 전부 왜곡, 과장된 것으로 일단 히로시마의 경고문은 사후 투하되었고 원폭 투하 이전에 살포되지 않았다. 대규모 공습에 대한 경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원폭이라는 경고는 아니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항목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미국은 몇 개의 원폭 투하 후보지를 정해놓고 기상조건 같은 여건에 따라 목표를 바꾸기도 했다. 또한 원폭으로 30만명이 사망했다는 것도 거짓이며 약 7~8만명이 8월 6일 당일에 사망, 전후까지 9~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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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전설의 원본은 한 목사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여러분도 지옥불에 타 죽게 될 거다' 라는 요지로 날조한 고인드립 내용이다. 이 만화를 그린 장본인은 목사겸 만화가인 조대현으로 울퉁불퉁 삼총사의 작가이다.
2 실제 살포된 경고문
실제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아니지만 7월 말부터 8월 초에 걸쳐 주요 도시 지역에 살포되었던 경고문이 있긴 하다. 초기 버전은 도쿄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두 번째 버전에서 지워버렸다고 한다.[1] 도쿄 대공습의 후일담 참조. 구글에서 관련 도시전설을 검색하면 이 전단과 비슷한 사진이 검색되는 것으로 볼 때 이 전단의 존재가 과장되어 도시전설을 더욱 유포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아래 사진은 세 번째 버전으로 8월 3일에 투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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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 예고>. - 이 도시가 미공군의 다음 공격 목표입니다.
삐라를 담은 포장지(?)부터가 대단히 살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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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초토화된 독일 베를린 시.''연합국에 항복하러 온 수만의 나치 독일군.'
'초토화된 독일 시가지, 유럽의 평화와 동시에 신독일 정부가 진입한다'.
먼저 빠따 맞고 쑥밭이 된 나치독일의 풍경을 경고문에 넣어 위협감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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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예고가 뿌려진 도시를 따로 친절하게 넣어놓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 어디에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이름은 없다는 것. 실제 이때문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카사키, 교토는 폭격하지 않더라'면서 피난민들이 이런 도시에 몰려들기도 하였다.너희 이 JAP녀석들 내 함정카드에 걸려들었구나.[2]
공습을 예고한 도시는 왼쪽부터 나가노(나가노 현), 타카오카(도야마 현), 구루메(후쿠오카 현), 후쿠야마(히로시마 현), 도야마(도야마 현), 마이즈루(교토 부), 오쓰(시가 현), 니시노미야(효고 현), 마에바시(군마 현)[3], 고리야마(후쿠시마 현), 하치오지(도쿄 도 타마지역), 미토(이바라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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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에 적힌 본문 해석.
일본 국민에게 고함당신 본인이나 친형제 혹은 친구의 목숨을 보전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도움을 바란다면 이 삐라를 읽어주십시오.
수 일 내로 이 삐라 반대편에 적힌 모든 도시, 혹은 일부 도시에 위치한 군사표적에 미군 비행기가 날아와 폭격을 가할 것입니다.
위 도시들에는 군사표적 및 군용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습니다. 군부가 이 승산이 없는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사용할 병기들을 미군은 전부 폭격할 것입니다만, 폭탄에는 눈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아시겠지만 인도주의적인 우리 미국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쪼록 위 도시들로부터 피난하십시오.
미국의 적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전쟁에 끌어들인 군부야말로 적입니다. 미국이 구상하는 평화는 여러분을 군부의 폭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 더 나은, 새로운 일본을 건설할 것입니다.
전쟁을 끝낼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반대편에 적히지 않은 도시에서도 폭격이 있을지 모릅니다만, 조금이라도 반대편에 적혀있는 도시에서는 전부 혹은 일부 지역에서 폭격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하겠사오니, 반대편에 적힌 도시들로부터 피난하십시오.
오오미국오오
이 경고문이 일본 민간인들에게 준 심리적 충격은 엄청난 것이어서 당당히 어디를 친다고 사전에 경고하고 그걸 실제로 행하는 미국의 힘에 질려버린 나머지 전쟁승리는 고사하고 생존의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하는 전후회고가 상당히 많다. 이 경고문을 본 기업인들은 중요한 생산설비를 시골로 대피시키느라고 생산효율이 극단적으로 저하되기도 했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 시민의 입장이 되어 상상해 보면 얼마나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실시간으로 관광을 당하는 느낌이었을 듯. 여담으로 경고문의 내용보다도 양질의 종이에 충격을 받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4]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케이스는 적국에 대한 대민 심리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북한과 남한이 서로 열나게 날려대는 삐라 또한 이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는 자신이 히로시마의 경고문을 일본 전시관에서 직접 봤다고 설교하곤 하는데, 아마도 이 공습 경고문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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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6.25 전쟁에서도 위의 공습예고와 비슷한 모양의 전단지가 뿌려진 적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후 제공권을 장악 한 UN군이 북한의 대도시에 폭격을 하기 전에 뿌렸다.
위와 디자인이 똑같다!
삐라 디자인 우려먹기[6]
3 비슷한 에피소드
3.1 걸프전에서의 에피소드
그런데 걸프전에서 이 도시전설과 매우 흡사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해변에 광활하게 매설된 지뢰밭을 제거하다 지친 미군이 BLU-82 "데이지커터"[7] 라는 6.8t짜리 재래식 폭탄을 투하하기로 한다. 이미 베트남전에서 간이 헬기 착륙장 제작에 사용해 톡톡히 효과를 본 소형 전술핵에 필적하는 위력의 후덜덜한 폭탄.
그런데 미군은 폭탄을 사용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것으로 심리전까지 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미군은 이라크군 진영에
이라크군 여러분, 지금 당장 총을 내려놓으십시오. 만약 내일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폭탄[8]세례를 맛볼 것입니다.
는 내용의 삐라를 뿌린 것. 콧방귀도 안 뀌고 이를 무시한 이라크군은 버섯구름까지 수반하는 데이지 커터를 맞았다. 이 폭탄 한 발로 광활한 지뢰밭이 한 번에 정리됨과 동시에 대대급 해병대 병력이 지나갈 수 있는 통과로가 확보되었다.
당시 6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영국 SAS 대원들은 "양키들이 쿠웨이트에 핵을 떨궜습니다!!" 는 보고를 했다고 할 정도로 그 충격은 대단했다. 화약량이 워낙 큰 탓에 데이지 커터가 버섯구름을 형성하는 데서 온 착각이다. 이라크군도 핵공격으로 착각했고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도 많다. 당연히 미군들도 이를 알고 심리전의 일환으로도 썼을 가능성이 높다.
폭탄 투하 이후 또다시 살포된 삐라는...
파일:Attachment/히로시마의 경고문/daisyleaflet1.jpg | 파일:Attachment/히로시마의 경고문/daisyleaflet2.jpg |
항복해서 목숨을 부지하거나, 싫으면 가만히 있다가 죽으십시오
여러분들은 이 전쟁에서 가장 강한 재래식 폭탄을 맞고 엄청난 손실을 당했습니다. 이 폭탄은 스커드 미사일보다 20배는 더 강합니다. 조심하세요! 여러분들은 이 폭탄을 또 맞을 겁니다. 쿠웨이트는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어서 남쪽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과 함께하십시오. 우리는 여러분들을 사랑과 존경으로 대할 것입니다. 거기 계속 있어봐야 안전하지 않으니 빨리 떠나십시오.
이런 삐라를 본 이라크군은 대대장을 위시하여 멘붕을 일으켰고 결국 전원이 투항했다고 한다. 지뢰 매설 지역이 상세하게 그려진 작전도를 바치는 장교까지 있었다고 하니 군생활을 해본 위키러라면 이 부대들이 얼마나 심한 멘붕을 일으킨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2 걸프전의 경우와 비슷한 에피소드
이런 류의 괴담이 또 하나 있는데 군사독재정권 시기 보도할 수 없었던 현대사의 숨겨진 이면을 추적하던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2차 대전 연간에 일본이 핵을 개발해서 흥남 앞바다에 실험했다" 라는 병크 보도를 한 적이 있다. 2005년 6월 12일 방영한 98회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박건식" 편인데, 여기서 증거로 제시한 바다에서 관측된 버섯구름은 기뢰 폭발 등 다른 폭발 목격담을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반도 지역에도 드물게나마 미 폭격기가 떨어뜨렸거나 해류 등으로 인하여 한반도 해역에 기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해방 후 한국 해군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JMS니 AMS니 하는 명칭이 전부 기뢰전 전문함정이라는 사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종북주의자들이 북침괴담으로 자주 이용하였고 여기에 낚인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 ↑ 도쿄는 이때 지도에서 도시가 삭제될 정도의 폭격을 받았다. 그것도 B-29의 만재폭장량을 꽉 채운 네이팜탄으로.
- ↑ 실제로는 미군이 원폭투하 후보지로 정해놓고 재래식폭격을 하지 않은 것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 ↑ 실제로 2차세계대전 당시 군마현에는 방산업체가 많이 몰려있었다.
- ↑ 물품의 재질을 통한 심리전은 생각보다 유효하다. 일례로 북한 주민들은 서해안에서는 한국에서 밀려오는 쓰레기, 동해안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밀려오는 쓰레기들의 품질을 보며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갖는다는 증언이 많으며 일부 PET병 등은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 ↑ 금란교회의 전도지 역시 저 만화를 사용하고 있다.
- ↑ 어찌 보면 당연한 게 6.25 전쟁이 발발한 건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지 5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서다.
- ↑ 기화폭탄으로 많이 오인되지만 일반 폭약을 쓴 폭탄이다. 항목 참조.
- ↑ 사상 최악의 폭탄이라고 적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경우라면 뒤의 착각 이야기가 더욱 신빙성을 얻게 된다.
- ↑ 나치 독일도 기술력은 꽤 있었다. 과학자 오토 한(노벨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과 은근히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초특급 인재들을 실제로 동원하여 핵폭탄 연구를 했었다. 그러나 국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되는 탓에 연구가 부진했다. 미국, 영국, 소련 등 전세계의 절반 이상을 상대해야 했던 독일로서는 애초에 무리.
- ↑ 또한 이를 감지한 영국/미국 정보부서의 방해공작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유태인계 덴마크 과학자 닐스 보어 박사. 나치는 그를 핵무기 개발팀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연합국의 방해로 탈출(!)에 성공. 오히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 ↑ 감이 안 잡히는가? M4 셔먼 전차의 당시 단가가 $47,000이었으니 43,000대를 만들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