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정치 시대
1920년대 태어나 1960년대(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1] 정치계를 풍미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정치를 한 시대를 일컫는다. 길기도 길다 사실상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을 제외한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사를 이 3김에 대한 부분을 빼면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 삼김 이후의 정치인들도 이들의 후계자나 다름없는 동시에, 결국 어떻게든 이들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양김 산하의 정치인들이다. 현재는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고, 민주화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두 계파 모두 보수/진보진영 양측으로 알아서 갈라지거나 제 갈길을 찾아갔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김영삼의 영향이,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당(2016년)(옛 민주당 계열)은 김대중의 영향이 크게 미쳤던 당들이다. 현재는 이 두 당은 YS가 밀어준 이명박 대통령과, DJ가 밀어준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 그 색이 많이 옅어져 YS와 DJ 시절 성향은 크게 감소된 상태다. 김종필의 경우는 민주화 운동가였던 DJ와 YS에 비해 유명세가 딸렸고, DJ가 가진 전라도, YS가 가진 경상남도 기반에 비해 JP의 충청도 기반 위력은 작은 편이었다. 결국 JP는 충청도 지역을 김대중에게 넘겨, 충청도 지역은 당시 민주당의 지역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을 겪으며 충청도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다소 잃었고, 한때 충청지역은 물론, 수도권 일부와 강원일대에서도 선전했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그리고 그 세가 크게 약화된 후신인 국민중심당과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은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다.
삼김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정권을 휘어잡은 건 90년대부터인, 92년 대선과 9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취임한 후부터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경력으로 주목받는 부분은 70년대와 80년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 밎서던 시기[2]이다. 당시 민중운동도 꽤 활발했지만 사실상 정치계에서의 민주화 투쟁이 절대적이었으며, 양김은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당시 야당(민주당, 신민당 등)은 지리멸렬한 상황이었기에 야당에서 민주화 투쟁을 한다며 온몸을 다 바치던 YS나 DJ가 유명할 수밖에 없긴 했다. 이 김씨들은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에게 항상 눈엣가시였다.[3]
일명 DJ(김대중), YS(김영삼), JP(김종필)로 불렸으며, 김종필은 박정희의 밑에서 사실상 넘버투의 자리를 차지하며 일했고, 김대중과 김영삼은 신민당을 이끌며 테러/납치/감금/투옥 등을 겪으며 박정희 정부에 맞섰다. 박정희 정부에 저항하던 김대중/김영삼과 박정희 밑에 있던 김종필은 대한민국 내에서 꽤나 큰 입지를 갖고 있었고, 전두환의 신군부는 정적인 이 세 명을 다시금 탄압했다. 특히 DJ와 YS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에 죽을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건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이 있지만, 그 외에도 흉기 든 깡패, 폭발물 등등...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계에 등장한 세 사람은 1970년대 제7대 대통령 선거와 유신 정권에서 전면에 나섰으며, 1980년대 제5공화국 시대에는 신군부에 고초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계속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결국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신한민주당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3대 대통령 선거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으로 부활한 세 사람은 각각 PK, 호남, 충청(충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합종연횡했으며, 제14대 대통령 선거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차례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대통령은 각각 1998년, 2003년 퇴임하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0선 의원에 실패한 김종필이 정계를 은퇴하는 것을 끝으로 3김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로 김대중 前 대통령은 2009년 8월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2015년 11월엔 김영삼 前 대통령도 사망함으로써 삼김 중 김종필 前 총리만이 남아있다. 그는 정계 원로로서 가끔 언론에 나오는 정도다.
셋 다 성향과는 별개로 젊을 때의 인물이 워낙 좋아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JP, DJ, YS 결혼식 사진들이 특히 유명하다. 이 사진들의 시기는 무려 김대중은 60년대, 김영삼/김종필은 50년대로, 사실 지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할아버지가 아니라 고령 할아버지들인 셈이다. 이 세명은 제1공화국때부터도 주요 요직이나 정치인 자리에 있었으니, 이 세명은 정치에 관해선 수십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인 셈이다.
2 전 드라마
삼김시대(드라마) 문서로.
3 디시인사이드 WOW 갤러리 초기의 필수요소 김씨
1~2기 때 흥하던 필수요소들중 김~으로 시작되는 인물(?)이 3명씩이나 포진해 있어서 이를 와갤삼김이라고 하였다. 다만 김블쏜을 제외하면 사실상 발원지는 다른 갤러리인데 와갤에서도 제법 흥행한 인물이다보니 3김으로 묶었던 것.
- 김기동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원래 수능 갤러리산 밈이라는게 함정 - 김좆키 - 특유의 좌우대칭과 중지욕의 포스 때문에 흥한 것. 다만 이쪽도 야갤산 밈이다. 그러나 야갤보다는 수능 갤러리등 외부에서 다듬어진 밈이다.
- 김블쏜 - 이분만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관련되어 있다. 타나리스(가젯잔)에 있는 고블린(워크래프트) 은행원 NPC인데, 원래는 Gimblethorn이라는 영어이름인데도 독음이 '김'자로 시작되다보니 특히 와우저들 사이에서는 친근감이 들어서 흥했다. 절정기때는 어느정도냐면 디씨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비로그인 유동닉을 쓸때 '김블쏜'이라고 쓰는 정도.
4 한국의 아티스트
파일:Attachment/삼김시대/Example.jpg
뮤지션 김대중, 김일두, 김태춘. 세 명의 김씨가 모여 만든 그룹이다.
사실 그룹이라기 보다 세명이 각각 자신의 노래를 연주하는 기획공연이라고 보는 편이 맞는 듯.
블루스의 김대중, 포크의 김일두, 컨트리의 김태춘. 장르가 다른 세 사람이 모여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통기타한 대로 블루스, 컨트리, 포크를 노래하며 세상에 대한 분노와 삶의 서글픔을 진솔하게, 혹은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5 삼각김밥
본 문서의 리다이렉트명인 삼김은
삼각김밥의 줄임말로 애용된다. 삼각김밥 문서로.- ↑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은 2003년, 김종필 의원이 16대를 끝으로 내려온 때는 2004년이다.
- ↑ 김종필의 경우는 군사정변 당시 핵심적 역할을 맡아, 정권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게 알려졌으나, 삼선개헌 및 유신헌법이 시도될 때 이를 반대하려 하다가 실패(혹은 포기)한 이후에는 2인자의 위치만을 점하게 된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뒤,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받았으며 그들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김대중이나 김영삼은 애초부터 반대 입장이었다.
- ↑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 시절 반독재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갑제 기자는, 이 시기를 김영삼과 김대중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피가 끓던 시절이라고 회고한 바 있었다. 그만큼 민주화운동에서 양김의 상징성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