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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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No.27
홍상삼(洪相三 / Sang-sam Hong)
생년월일1990년 2월 13일
출신지서울특별시 구로구
학력서울영일초-충암중-충암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2008년 두산 베어스 2차 3라운드 전체 20번
소속팀두산 베어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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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최종인 (덕수정보고등학교)홍상삼(충암고등학교)정인욱(대구고등학교)

1 개요

홍상삼은 서울 출신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2009 시즌 전반기 두산의 선발진이 모두 무너질 때 홀로 호투를 보여주며 승리를 따내는 모습 때문에 '승리의 요정'이라는 별명이 있다.

아나운서들도 이 선수 발음은 엄청 어려워한다. 최훈 카툰에서는 삼(蔘)으로 표현된 바 있다. 별명들도 대체로 이 같은 특이한 이름에서 비롯. 잘할 때는 홍삼[1], 못할 때는 홍뿌리, 홍도라지, 홍더덕, 홍풀때기, 홍잡초, 홍이끼 등등등. 성인 홍에 삼이 아닌 기타 잡초 내지는 삼과 유사한 식물들을 줄줄이 붙이는 양상의 별명이 추가되고 있으며 가장 못할때는 홍독초(…),火상삼,홍폭삼라 불린다.

2013년 6월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3연전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건으로 두바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경기 연속 굿바이 홈런'의 줄임말이다.

유달리 시구, 시타 지도 복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원래 같은 학년의 이형종(LG 트윈스), 최원제(삼성 라이온즈), 이대은(지바 롯데 마린스)와 함께 서울 4대 투수 중 한 명이었고 두산 베어스에서도 1차 지명까지 고려했었다. 그러나 아래 봉황대기 사건으로 프로 팀 스카우트들에게 찍혔고 결국 2차 3순위까지 밀렸다. 하지만 이대은미국으로 떠났고 나머지 세 명 중에 그나마 프로에서 지금까지는 제일 성공한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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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맨이 만든 홍상삼 인생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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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은 2011년 4월 27일 9회초 2사 박한이 타석 때의 장면이다. 이날 두산은 11:0으로 깨졌다.

2 봉황대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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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왕 홍상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고교야구 경기인 2007년 봉황대기 결승 대 덕수고 때 일이다. 이 경기는 KBS N 스포츠에서 중계하였고, 캐스터는 유수호, 해설자는 이용철. 그리고 하일성 당시 KBO사무총장이 게스트로 와 있었다. 야구계의 어른들까지 왔던 이 경기에서 9회말 2아웃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던 9회말, 동료가 실책[2]하여 2루 주자를 잡지 못하고 동점을 내주게 되어 승리를 놓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무릎을 꿇으며 식빵을 부르짖어 해설자에게 신나게 욕을 먹었다. 분노의 홍상삼. 결국 교체되어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3] 그러나 충암고의 만루 찬스가 오자 덕아웃에서 짱구춤을 추는 만행(…)을 벌였다. 이런 행동들이 모두 중계 카메라에 잡혔고, 충암고가 결국 봉황대기를 차지한 뒤 대회 MVP로 뽑혔으나 위의 만행들로 인하여 경기 후 인터뷰도 전파를 타지 못했다. 마지막 동대문야구장 이야기 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래도 MVP인 만큼 뉴스 인터뷰는 했다. 기사

배지헌의 칼럼에서 지적되었듯이, 대한민국 고교야구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 여긴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대놓고 욕을 하고, 춤을 추는 행위를 기자들과 야구관계자들이 좋게 봐줄 리가 없다. 그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이 건과 관계한 안티가 좀 많다고 한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입단 후, 2009 ~ 2011 시즌

2009년 성적은 9승 5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신인치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 중에서도 2009년 롯데전 전적 6전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70.이라는 성적, 그리고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롯데를 떡실신시키는 등 새로운 로나쌩 클럽 멤버 소리를 들었다. 이날 구위며 제구며 너무 좋아서 해설자들이 "완투도 할것 같다"란 소리도 했지만, 7회말 1사 상황에서 조성환의 타구에 팔꿈치를 맞아 그대로 아웃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2010 시즌들어 150km/h까지 나오던 직구 구속이 기껏해야 140km/h 초반 정도까지 뚝 떨어졌으며, 떨어진 구위와 함께 자신감까지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2009년 중후반부터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 2010년까지 이어지면서 그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맞이하였다. 더불어 롯데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며 로나쌩 클럽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4] 다만 9월 12일 롯데를 상대로 6이닝 무실점투를 보여주어서 다시 복귀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4이닝 7피안타 1볼넷 1피홈런 5탈삼진 5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5⅔이닝 8피안타 4볼넷 1사구(死球) 4탈삼진 6실점 6자책점 평균자책점 9.5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홍상삼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9⅔이닝 15피안타 5볼넷 1피홈런 1사구(死球) 9탈삼진 11실점 10자책점 평균자책점 9.31을 기록했다.

김선우니퍼트를 제외하고는 특출난 선발이 없는 상황에서 페이스가 올라가기만 한다면 두산의 선발로 가장 기대되는 재목이었다. 멘탈을 고쳤다면 말이지[5]

사실, 2010년 이후로 헬게이트 급의 부진은 흑마법사윤석환 투수코치의 책임이 크다. 2008년 입단 이후 재활을 하면서 서서히 자신에게 적응될 투구폼으로 후반기 털리긴 했어도 5점대 초반에 9승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투수 유망주였다.

그런데 수술하고 자기 투구폼을 맞춘지 1년이 안 되어서, 후반기 부진을 이유로 좀더 강한 직구를 위한다며 투구폼을 또 고쳤다. 어린 나이에 부상에 여러번 투구폼 교정으로 멘탈 붕괴도 일어나고, 그러면서 잊혀져가는 모습을 보면 두산팬들의 입장에선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별 수 있나? 상무나 경찰청가야지

3.2 2012 시즌

홍상삼/2012년 항목으로.

두산 베어스의 핵심 불펜투수

3.3 2013 시즌

홍상삼/2013년 항목으로.

3.4 2014 시즌

홍상삼/2014년 항목으로.

3.5 2015~16 시즌

경찰청 야구단에 입대했고, 2015년 4월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16년 현재 두산의 확실한 불펜이 없어서 이용찬과 함께 빨리 제대해주기를 바라는 의견이 많다. 나 참 홍상삼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2016년 9월 3일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곧바로 1군에 등록될것으로 보이며 등번호는 27번을 받았다. [6]

2016년 9월 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홍상삼이 8회에 올라왔고, 제구는 여전히 안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정도는 아니었고, 최고 구속은 150을 찍었다. 9회에 2아웃을 잡고, 볼넷/안타를 맞는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다행히 경기는 1.2이닝 3K 무실점으로 막았다.

2016년 9월 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올라와 7회 2아웃 상황에서 4구로 깔끔하게 아웃을 잡아 7회를 종료시켰고, 8회는 삼자범퇴로! 끝냈다. 그러나, 김태형 감독이 9회에 밸런스 패치 마무리, 이현승을 등판시켜서 9회에 실점을 하면서 블론, 경기는 10회로 흘러갔고, 10회에 나온 투수는...

2016년 9월 8일, 홍상삼이 9회에 올라와 1이닝동안 던졌다. 두바이의 저주때문인지 병살로 잡았을 공을 오재원의 실책성 플레이로, 아웃을 못 잡았으나, 38구의 투혼 끝에, 1탈삼진 1피안타 1실점으로 세이브에 성공했다.

2016년 9월 1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8회 2사 1, 3루 위기에 올라와서 채태인을 직구만 8개를 던져 구위로 찍어누르며 삼진, 위기를 탈출했다. 그리고 9회에도 선두타자 2루타를 맞긴 했으나 삼진 2개를 곁들여 3아웃을 잘 잡아내며 무실점 세이브를 챙겼다. 점점 두산 불펜이 부상부진 등으로 황폐화되던 차에 큰 도움이 되는 활약.

2016년 9월 15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1점 차로 앞선 9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올라와 첫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뒤 두 타자를 삼진과 주루사로 잡아내면서 시즌 4세이브를 올렸다.

2016년 9월 16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2점 차로 앞선 9회에 올라와 첫 타자 조영훈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뒤 세 타자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면서 시즌 5세이브를 올렸다.

17일 기준 전역 후 6경기 출전 1홀드 5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9월 27일 대전 한화전에서 9회말 2아웃 주자없이 8:5로 앞선 상황에서 0이닝 1피안타 5볼넷 4자책이라는 어메이징한 기록을 내면서 팀의 역대 최다승 타이 91승, 니퍼트의 외국인 최다 타이 22승을 날려 버렸다. 아웃 카운트 하나 못잡아서. 3년 만에 재개봉…충격의 '홍상삼 극장' 돌아왔구나[7]

결국 한국시리즈선 잘해야 셋업맨으로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위 경기의 임팩트가 엄청났단 소리.

그래도 그이후 등판한 경기에서는 실점이 없었다.

4 투구 스타일

평균 140km 중후반, 최고 153km/h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구사한다. 주로 사용하는 변화구는 슬라이더. 신인 시절부터 패스트볼의 위력은 좋은 편. 소포모어 징크스와 부진을 겪은 2010년, 2011년을 빼면 패스트볼의 구속, 구위 만큼은 흠잡을 구석이 없다. 주력 변화구인 슬라이더 또한 변화폭이 크고 구위가 좋아서 상대 타자의 헛스윙을 자주 유도한다.

단점이라면 특유의 투구폼(기타 부분)에 기인한 제구력의 기복이 꽤 있는 편이다. 난공불락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급작스럽게 피장타를 연달아 얻어맞는 모습이 간혹 나온다. 일단 2016년에는 경찰청 복무 중에 고개가 들리는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면서 제구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6년 9월 27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후 등판해 아웃 카운트 하나를 못잡고, 볼질의 진수를 보여주며 역전패의 1등 공신이 되었다. 투구 수 22개 가운데 스트라이크를 고작 6개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제구력과 멘탈이 여전히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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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구 도중 하늘을 보는 기묘한 투구폼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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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중에 오목을 둔다 카더라(...)
  • 위의 사진같이 제구력이 안좋은 투수로 알려져 있지만 특이하게도 데뷔전에서 무사사구 선발승을 거둔 역대 2번째 투수다.[8]
  • 전설의 봉황대기 사건도 그렇거니와 말이나 행동을 보면 좋게 말하면 괴짜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모르는 행동을 한다. 기껏 선배가 챙겨놓은 포스트시즌 첫 세이브 기념구를 아무 생각없이 관중석으로 던져 버린다던가(...) 정수빈의 호수비로 간신히 살아나 놓고선 그거 일부러 그런거니 정수빈이 오히려 나에게 감사해서 밥을 사야 한다고 말 한다던지, 자기의 월미도 바이킹 제구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선배 김재호한테 침착하라고 말한다던지... 적반하장 2012시즌 이후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쳐 (...) 국가대표 승선이 물건너간 것 또한 유명한 일화. 결국 군대가기 직전에 노경은이 "홍상삼은 군대 가서 철 들고 와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으응?
  • 두끝홈이나 포시 한이닝 3폭투 등 다른 투수라면 멘탈 붕괴가 올만한 사건[9]을 두고 타 팀 팬들이 그의 멘탈을 걱정하는 말을 하면 두산팬들이 '홍삼 쟤는 붕괴될 멘탈 자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조차 있다(...). 사실 어차피 멘탈 붕괴가 오든 안 오든 그의 제구는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그런면도 있고. 멘붕이 멘붕이 와서 멘탈이 나을 수도 있다
  • 2013년 11월 20일 라디오 스타에 등장한 로보티즈(ROBOTIS) 한재권[10] 박사하고 홍상삼이 닮았다.이건 백퍼 홍상삼이 노안이기에 비슷한 거다 한재권 박사 미안해요
  • 중간계투로 각성한 2012년부터 이상하게 이대형, 권용관에게 홈런을 맞은 것이나 두끝홈, 한 이닝 폭투 2개 등 결정적인 방화를 보여 주면서 만만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말았다. 비록 2011년의 일이지만 강명구가 현역 선수 시절에 유일하게 쳤던 홈런을 허용한 투수도 홍상삼이다....(그것도 대구가 아닌 잠실에서)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2개의 홈런을 맞은 LG전 상대전적은 준수한 편이고, 실제로 2013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LG를 꺾은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 2016년 9월 15일 NC전 9회 1사에 등판하여 제구가 불안정한 것을 두고 김진욱(야구) 해설위원이 감독시절 썰을 풀었다. 과연 홍상삼은 그 말대로 볼넷을 내주더니 이후엔 깔끔한 제구를 보여주며 세이브(야구)를 해냈다.(...) 과연 감독시절 멘탈레기 투수들을 잘 조련해냈던 김진욱 위원 답다..
제가 홍상삼 선수를 좀 알지 않습니까. 거의 첫타자는 쓰리볼부터 시작하고 운이 좋으면 거기서 카운트를 잡아내지만 거의 첫타자는 볼넷으로 내보낸다, 저는 홍상삼 선수를 기용할때, '볼넷 하나 주고 시작해..' 이런 마음으로. 그렇지 않고 보면 조급해집니다. 홍상삼 선수는 던지면서 좀 (제구를) 잡아가는 스타일.

6 참고항목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9두산 베어스3011796035.231147596
20103096⅔43016.421025486
2011621⅓01006.3326125
20125365⅓52122
(3위)
1.93353169
2013557254592.50514777
2014122103018.57262217
통산-186393⅓23196364.71354241350
  1. 못할 때도 홍삼이라고 불린다. 정확히는 '다른 팀의 보약'(...)이란 뜻으로.
  2. 사실 이때 홍상삼이 전진수비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3. 그의 뒤를 이어 등판해 승리를 따낸 투수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KIA에 지명된 이효상이다.
  4. 심지어 2010년 5월 25일 롯데전에 1회초 6점이나 지원받고도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7점이나 내주는 최악의 피칭을 기록했다. 그것도 1회말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그 다음날인 5월 26일에 불펜 등판했으나 3이닝 3실점으로 얻어맞았다.
  5. 사실 모 매체에서 뿌린 클럽 사진 중에 본인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강민호도 있었다는 건 비밀
  6. 이 번호는 원래 김명성의 번호였다... 입대전 홍상삼이 쓰던 47번은 박세혁이 달고 있어 번호 복귀가 불가능했다.
  7. 오죽하면, 베플 중 하나가 "상삼이 원래모습 찾았구나??"였다(...)
  8. 1호는 김진우(2002년)
  9. 아닌게 아니라 두끝홈 이후 인터뷰에서 '뭐 이름 남기면 좋죠'라고 인터뷰 했다(...).
  10. 재밌는 사실이 2014년부터 두산베어스의 응원단장도 한재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