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역사

1 설립~2000년

SM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수와 MC로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수만이 컴퓨터공학을 배우기 위해 1981년 미국으로 4년간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국 팝문화와 MTV에 큰 감명을 받고 연예기획자를 꿈꾸게 된다.

그러다 1985년 귀국하면서 다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홍종화라는 작곡가를 설득 끝에 섭외하며 앨범을 발표했으나 가수로서는 실패. 이후 이수만은 가수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프로듀서로 전향한다. 그리고 인천 월미도에 헤밍웨이 카페와 방배동 카페를 차려 기획사의 사업자금을 마련한 다음 한동준과 김광진을 영입한다.#

여기서 이수만은 한국에 흑인음악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바비 브라운을 참고한다. 바비 브라운은 두 명의 댄서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춤을 추는 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은 이수만도 3인조 그룹을 기획한다. 구체적인 구상이 끝난후 이수만은 이태원이나 여러 유명클럽에 찾아다니고, 문 나이트에서 최진열[1]을 영입한다. 최진열은 이주노현진영을 이수만에게 소개하였고 고심 끝에 현진영을 자신의 제1호가수로 발탁한다.

1989년 이수만은 송파구에서 SM기획을 창립한다. 최진열에게는 SM기획의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맡기고 홍종화에게는 작곡 및 프로듀싱을 담당하게 한다. 그리고 최진열은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는 정해익을 발탁하고 김경욱도 영입한다. 그런 후 현진영을 데뷔시키기 위해 흑인 트레이너를 붙여 연습시키는 한편 댄스 페스티벌을 열어 구준엽강원래를 영입하여 3인조 그룹을 완성하고 "현진영과 와와"로 명명한다.

1990년 제1집 "New Dance"를 발표하며 현진영과 와와를 데뷔시킨다. 또한 한동준과 김광진의 1집 앨범을 발표한다. 시간이 지난 후 후속곡 '슬픈 마네킹'을 발표했는데 큰 인기를 얻어 현진영은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한다. 그러나 도중에 구준엽과 강원래가 군대문제로 입영하게 되자 이수만은 새로 이현도김성재를 와와2기로 발탁한다.

하지만 1991년 현진영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하게 되면서 그 여파로 최진열, 정해익, 김경욱같은 SM직원들이 경찰에게 수사를 받아 곤욕을 치르면서 결국 최진열은 서태지의 매니저로 이직하게 된다. 이때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한 이현도는 그때부터 다른 기획사로 오디션을 보면서 가수로써 독립을 꿈꾸게 되며 2년 뒤 가수가 된 후 현진영을 디스한다.

그러던 1992년, 유영진이 군대 제대 후 가수가 되고자 여러 기획사에 여러 오디션를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거듭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유영진은 SM기획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 CD를 보내었고 이수만은 유영진에게 “곡이 더 있느냐”고 물어보자 유영진은 하루에 10곡씩 준비해 들려주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입사하게 된다.

1992년 4월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잊고 있던 현진영을 찾게 되고 이탁과 함께 부활을 꿈꾸던 현진영은 8월에 2집 앨범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2집 앨범은 유통사인 서라벌레코드의 부도로 인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1993년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여 무려 40만장을 찍었지만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진영은 구속(...)되었고 방송정지를 당한다. 이때의 여파로 현진영의 음반은 검찰에 압류되고 상품은 소각 처리되어 SM은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월미도와 방배동의 카페를 매각하여 부도위기를 넘기게 된다.

그 후 1993년에 유영진이 데뷔하고 1994년에 메이저와 J&J등이 데뷔했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회사가 나락에 빠지게 되고 메인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홍종화는 이수만과 LA의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로 대전엑스포의 포항제철관의 작곡을 완성후 국내에서는 불가능했던 THX 7.1채널 서라운드 프로세싱 작업을 하러 함께 가게되며 일본의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에 심취해 일본유학을 준비중이던 홍종화는 미국의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되며 "일본을 가더라도 큰세계를 경험하고 결정해보라"는 이수만의 권유에 따라 뉴욕대(NYU) 대학원에 유학, 최신 학문인 뮤직테크놀로지 석사과정을 하며 수년간 머물게 되고 그자리를 유영진이 맡게 된다. 한편 메이저는 대중의 반응이 좋았으나 방송국에서 이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에 제재를 가했고 단정하게 나오지 않으면 방송활동을 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하는데... 이수만이 사활을 걸고 그들을 설득해도 서연수와 임범준은 비굴하게 음악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고 결국 공중분해가 되어버린다.

남은 건 유영진과 나이가 어린 연습생 뿐. 결국 이수만은 회사의 모든 역량을 예전에 기획해둔 5인조 그룹에 쏟아 붓기로 한다. 이 때 연습생들이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으로 문희준과 강타는 1995년 유영진의 너의 착각의 무대에서 백댄서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 때 이수만이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1992년경에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내한을 하면서 한국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게 주요 계기 중 하나였는데 이수만이 예전부터 기획에 참고하던[2]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가 기획한 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리스 스타는 당시 어린 소년을 찾아 수년간 트레이닝을 거친 후 데뷔시켰는데, 그것이 뉴 에디션과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으로 5인조 아이돌 그룹이 주축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996년 9월 7일 이수만이 기획하고 유영진이 작곡한 H.O.T가 데뷔하게 되고 HOT가 그야말로 빅히트를 터뜨리면서, 나락에 빠진 회사는 다시 일어서게 된다. 그 후 1997년 S.E.S, 1998년 신화, 1999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2000년 보아가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회사를 안정궤도로 올리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코스닥시장에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 때 한국금융투자협회(당시 코스닥 관할은 이쪽이었다) 측에서는 SM의 상장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봤던 듯하다.기사

2 외전: 개국공신의 축출과 싸이더스의 탄생과정

잠시 이야기를 돌려서,회사의 대표이사였던 최진열이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관두자 정해익이 대표이사가 되었는데, 정해익은 현진영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HOT와 함께 숙소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된다. 98년 정해익의 결혼식은 연예인 결혼 못지않게 하객이 화려해 화제가 되었는데... SM에서 "현진영과 와와"로 있다가 독립한 이현도가 참여했을 정도. 그 당시 와와의 매니저가 정해익이었으니 이현도와 매우 친했다. 그러나 넘버 3인 김경욱과 불편한 대립관계가 지속되다가 김경욱의 주도하에 회사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리고 김경욱이 정식으로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이수만 평전에 의하면 HOT 3집시기에 김경욱이 정해익이 한 뭔가를 고발하여 추방시켰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진 게 없으며, 루머에 의하면 정해익이 HOT 멤버를 빼돌려서 따로 회사를 차려서 독립하려고 했다는 썰이 있다. 물론 썰일 뿐이다.

그러다 2000년 3월 대기업 로커스홀딩스의 대표 김형순은 각종 기획사, 영화사, 제작사 등을 인수하고 싸이더스를 창립한다. 연예계의 거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영입하는데 연예기획사 EBM의 정훈탁, 전직 SM대표 정해익, 우노필름의 차승재, 웹시네마의 김창규,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김종학 프로덕션의 김종학 등을 모두 영입하여 순식간에 영향력과 파워를 키웠다.

로커스홀딩스의 대표이자 싸이더스의 대표인 김형순은 배우 기획은 정훈탁에게, 가수 기획은 정해익에게 맡기는데 정해익은 SM의 직원들과 매니저들을 대거 영입한다. 특히 정해익은 전직 SM 대표이사라서 내부사정을 잘알고 있었고, HOT, SES와 매우 친했는데 정해익은 2001년 계약이 만료된 HOT의 멤버 토니안, 장우혁, 이재원을 영입하여 JTL을 그해 말 데뷔시킨다. 또한 싸이더스는 SES의 유진도 영입한다. 싸이더스의 무차별영입으로 SM은 주 수익원인 HOT와 SES가 해체하게 되어 매우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때마침 이수만은 배임혐의로 도피하여 SM의 암흑기가 닥치면서 매우 큰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고 정해익이 맡았던 가수가 장혁(TJ Project)이고 그 다음이 GOD인데 GOD를 정상의 그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예능 육아일기도 원래 HOT한테 오퍼 왔던 것을 정해익이 기억해뒀다가 GOD를 맡을 때 힘을 써서 하게 된다. 싸이더스는 GOD의 매니지먼트는 정해익이 담당하고 프로듀싱은 박진영 쪽 회사가 담당하게 된다.

이때 박진영은 지오디의 프로듀싱을 맡게 되면서 원 멤버였던 김선아를 내보내고[3] 김태우를 집어넣게 된다. 문제는 GOD 2집과 육아일기가 대박이 나자 박진영이 GOD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싸이더스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박진영과 정훈탁이 대립하면서 지오디는 갈라져서 서서히 인기가 식어버렸고, 이 때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정훈탁과 박진영은 2010년 말 박재범 사건으로 다시 서로를 디스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잘나가던 싸이더스는 임원들의 배신으로 인해 정훈탁, 강우석, 정해익이 분사해버리면서 회사가 공중분해가 되고 김형순의 야망도 끝장이 나버린다. 배후로는 정훈탁이 있다는 썰이 있으며 정훈탁은 독립하면서 iHQ라는 새로운 연예기획사를 세운다. 결국 로커스홀딩스는 싸이더스를 플레너스로 개명한 후 CJ에게 매각하면서 플레너스를 CJ인터넷이라는 회사명으로 변경하고 CJ엔터테인먼트로 편입이 된다.SM 역사에 왜 싸이더스 역사가

3 2001년부터의 침체기와 재부상

다시 SM 이야기로 돌아가서, 2001년 배임혐의로 촉발된 검찰수사로 이수만이 한동안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김경욱이 전권을 행사한다. 김경욱 체제 하에서 SM은 밀크, 신비, 이삭N지연, 트랙스, 블랙비트 등을 데뷔시켰지만, 이수만이 사라진 SM은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회사 구조도 불안정해지고 무엇보다도 김경욱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새롭게 데뷔시킨 가수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전부 망하게 된다. 모든 사업이 폭망하여 큰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소녀가장보아가 한일 양국 뼈 빠지게 뛰면서 벌어준 돈으로 메꾸지 않았다면 SM은 부도가 났을지도...결국 특별사면[4]을 받아 풀려나게 된 이수만은 김경욱을 해고한 후 김영민을 새로 대표이사로 취임시킨다.

김경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사실 이때 김경욱은 상식적으로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한다. 1번째는 그 당시 김경욱이 SM에서 전권을 행사할 때 SES와 신화의 재계약 시기가 도래했는데, 둘 다 재계약의지가 강했으나 김경욱의 SM측에서 가수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조건을 내밀어 재계약을 무산시켜 매출을 급감시킨 점이다. 유진도 인터뷰에서 SES의 재계약 시기에 이수만이 부재한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2번째는 김경욱의 SM은 아티스트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자회사를 만들어 신비를 Cid.K 엔터로, 밀크를 BM 엔터로, 다나를 샤이닝 엔터로 데뷔시킨 점이다. 보통 회사의 규모가 크면 레이블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티스트 하나당 회사를 차리는 것은 누가 봐도 쓸데없이 회사의 역량과 인력, 자금을 낭비시키는 행위라는 점이다. 3번째는 김경욱이 대표이사로 올라간 이유가 내부다툼 끝에 전임자를 고발하여 추방시키고 올라갔다는 점이다. 루머에 의하면 김경욱이 고발한 내용은 정해익이 HOT 멤버를 빼돌려서 따로 회사를 차려서 독립하려고 했다는 썰인데, 이 썰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김경욱에게 너무 유리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이수만에 의해 김영민이 취임하고 김경욱이 물러날 때, 김경욱은 '동방신기를 꼭 망하게 하고 만다.'라며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비추어볼 때 김경욱의 원래 목적은 SM이라는 회사를 집어삼키려는 것 아니었나 라는 일부 호사가들의 설레발도 있다. 물론 추측일 뿐이다.

여튼 내부의 김경욱과 외부의 싸이더스 때문에 이래저래 암흑기를 맞이한 SM이었지만, (김영민의 긍정 재정 관리로 힘입어) 다시 2003년 동방신기, 2005년 슈퍼주니어, 천상지희로 한숨을 돌린 다음 2007년 소녀시대, 2008년 샤이니를, 2009년 f(x)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면서 재전성기를 맞이한다. 여담으로 SM이 재기하는 사이, 대기업 CJ의 이미경은 싸이더스(로커스 홀딩스 → 플레너스)를 인수 합병하고 CJ인터넷이라는 상호명으로 변경하며 CJ엔터테인먼트로 편입한 후 영화시장과 케이블 시장을 독점한다. 이때 음악방송을 하면서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는 거대기획사인 엠넷이 만들어진다.

그러다 2009년경 SM에게 3번째 위기가 닥친다. 동방신기의 멤버 김준수, 박유천, 김재중이 노예계약을 주장하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를 결성하면서 씨제스로 이적한 것이다. 이때 에이벡스는 JYJ의 일본 활동을 전담하면서 자사가 담당하고 있던 SM가수의 일본 활동을 중지시키는 결정을 내리고, 이로 인해 보아와 유노윤호, 최강창민, 천상지희의 일본 활동이 모두 정지되어버린다. 또한 음반시장 문제로 CJ와 분쟁이 일어나 SM은 근 2년간 CJ의 모든 방송을 보이콧하게 되고, 엠넷의 차트에서 SM 가수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MBC 모 PD가 기획한 프로랑 동시간대 타방송사에 강인이 겹치기 출연한 게 논란이 되어 2008년 말까지 SM 가수들이 모두 음악중심[5]에 사실상 출연정지를 먹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닥쳐온 SM의 위기는 드라마틱하게도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가 폭발하면서 대부분 해결된다. 소녀시대의 Gee,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가 터지면서 마침내 매니아적인 SM은 대중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여차저차 MBC의 방송출연정지도 해결한다.[6] (이후에는 EXO찬열박유라 MBC 아나운서(부산)의 친동생으로 밝혀지며 현재로도 MBC와의 긍정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중) 2010년 엠넷은 마카오에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개최하게 되나 SM가수들이 출연하지 않아 공연이 실패하였고, 당시 대세였던 소녀시대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어 반사이익으로 라이벌 로엔이 급성장을 하게 되자 이를 우려한 CJ는 마침내 백기를 들어 SM과 화해를 한다. 그리고 2010년 소녀시대가 유니버설 재팬으로 일본에 진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자 이에 놀란 에이벡스그전까진 잘만 활동시키던 JYJ 소속사 사장의 조폭 관련 문제를 제기하며 JYJ의 일본 활동을 중지시키고 SM가수들의 활동중지는 풀어주었다. 또한 SM타운 파리 콘서트의 성공적인 개최와 언플로 주가는 폭등하였고 2인조로 부활한 동방신기가 크게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거대기획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2006년 반포텍이 스타엠과 합병->스타엠으로 상호 변경, 2008년 웰메이드 스타엠으로 상호 변경, 2013년 웰메이드 스타엠이 예당컴퍼니, 드림티엔터테인먼트 인수, 2014년 웰메이드 예당으로 상호 변경, 2015년 웰메이드 예당이 YMC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였다는 시기로 나란해질 만큼) 2012년에는 SM C&C라는 자회사를 통해 유명 연예인들을 영입하며 음악 산업이 아닌 예능, 드라마 쪽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8월 울림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을 발표하였다. SM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 음악 배급/유통 및 부가사업을, SM C&C가 레이블 기능을 담당할 예정이고, 울림 엔터테인먼트는 SM C&C 내에 울림 레이블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후 YG엔터테인먼트케이플러스, 로엔엔터테인먼트스타쉽엔터테인먼트, 킹콩엔터테인먼트, 에이큐브 엔터테인먼트, iHQ큐브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대형 기획사의 중소 기획사 인수와 레이블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보다 예전인 2006년부터 SM브라보라고 노래방 기기 사업에도 진출해 태진/금영 양대 회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2012년 보이그룹 EXO가 데뷔했고, 이후 열애설과 멤버 탈퇴로 위축되었지만 2010년대 중반 아이돌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 f(x) 이후 5년만인 2014년 걸그룹 레드벨벳이 데뷔해 준수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4 2014년부터의 전략 변경

기존 SM 가수들은 소위 말하는 SMP로 활동하고, 높은 음반 성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음원 성적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또한 소속 팀이 많은 문제로 국내외에서 그룹 활동만 짧게 하였으며, 팀 내 개별 활동은 연기, 예능, 뮤지컬, 라디오, CF 등에만 치중되었다. 이러다 보니 연기와 예능에서는 부족한 방송 감각으로 인해 욕을 먹었으며, 뮤지컬에서는 인지도를 널리 알리는 데 제약이 있었다.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SM C&C도 기존 SM 가수들을 다른 영역으로 진출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여러 번 말아먹으면서 비난받았다. 프로그램이 잘 되어야 끼워 팔기를 하지...

2014년에서 15년 1분기는 태민의 솔로 앨범을 시작으로 솔로/유닛[7]으로 채워나갔는데, 음반 활동의 경우 그룹 위주의 정규 앨범 활동에 올인 하고, 솔로 활동은 연기나 MC 등에서만 허용하던 SM이 전략을 변경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특히 규현의 솔로 타이틀곡 '광화문에서' 는 대중성 높은 발라드 곡으로 음원차트 1위를 장기간 지켰다. 이 또한 기존 SM과 슈퍼주니어의 전략과 사뭇 다르다.

2015년 종현의 솔로 앨범에서는 Zion.T, 아이언, 윤하 등의 참여로 SM 외 가수들과 많은 피쳐링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뤄냈다. 종현의 자작곡도 많으며, 선 공개 곡은 트렌드를 반영한 곡 '데자-부' 였다. 또한 엑소의 CALL ME BABY도 발매 당시 상위권을 선전하였으며, 리패키지 앨범에서 대중성 높은 LOVE ME RIGHT도 방송활동이 거의 없던 상태에서 1위를 하였으며,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EXO의 흥행에도 신경을 써 주고 있다. 확실히 아이돌 장사하던 기존 행보와는 많이 다르다. 보아의 8집 또한 개코, 에디킴 등과 콜라보레이션했으며, 선 공개 곡 'Who Are You' 가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선 공개 곡 자체가 SM이 잘 쓰지 않던 방식인데 이제는 '데자-부' - 'Crazy', 'Who Are You' - 'Kiss My Lips' 처럼 대중성 높은 곡을 SM 스타일 타이틀곡 공개에 앞서 먼저 공개하고, 선공개곡이 더 인기를 끌면 활동 곡을 변경하기도 한다! 소녀시대의 5집에서는 선행 싱글로 1곡('Party')을 공개한 후 더블 타이틀을 시도했고, 5집 앨범의 더블 타이틀 중 한 곡인 'You Think'는 음원에서 좋지 않은 성과를 보였지만 다른 한 곡인 'Lion Heart'는 초반 부진을 딛고 2~3주 뒤 역주행으로 5~6위권까지 진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Party'의 선공개로 화력이 분산되어 1위권 진입은 못 해보고 밀려나는 아쉬움을 남겼다.[8]

다만 출격시켜야 할 가수들이 워낙 많다 보니 7월말에 소녀시대 싱글 - 슈퍼주니어의 10주년 앨범 - 동방신기의 군 입대 앨범이 거의 동시기에 발매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땐 그나마 실질적으로 활동하던 팀이 소녀시대밖에 없어서 팀킬 같은 건 없었는데, 8~9월에는 소녀시대 - 레드 벨벳의 활동 시기가 겹쳐 레드 벨벳이 컴백 주에 소녀시대에게 팀킬당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고(...), 10월에도 태연 - 규현 - f(x)의 발매 시기가 제대로 겹쳐버렸다.

5 2016년: New Culture Technology

2016년 1월 27일. SM아티움에서 프리젠테이션을 개최했다. 이수만은 2016년에 데뷔할 신인 남성그룹과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프리젠테이션 영상

전용 음원 채널인 SM STATION을 통해 태연의 <Rain>을 시작으로 2월 19일부터 매 주 한 번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간 에스엠 EDM 레이블인 '스크림 레코드(ScreaM Records)'와 EDM 페스티벌을 론칭하고 ,글로벌 팬들의 디지털 놀이터를 표방하는 SM 전용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SM 신인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앱 ‘루키즈 엔터테인먼트(Rookies Entertainment)’, 마지막으로 셀러브리티가 직접 참여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 사업까지 총 5가지의 계획을 공개하였다.

활동 내역을 주로 살펴보자면 1분기는 역시나 솔로 가수들의 데뷔나 컴백이 수두룩했지만, 특이하게 올해는 3월을 넘겨서도 주요 그룹들의 완전체 활동이 거의 없다는 게 눈에 띈다. 레드 벨벳의 컴백이나 NCT U의 한국 데뷔를 제외하면 예성티파니가 솔로로 데뷔한 것, 태민종현이 첫 정규 앨범을 들고 나온 정도가 있는데. 이미 여름 컴백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EXO를 제외하면 심지어 컴백한다는 소문이 나온 그룹도 전혀 없다시피 했다. 물론 작년에 시도했던 물량공세가 성공했기에 조금 더 여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다.

5월 마지막 주를 전후로 레드벨벳의 여름 컴백과 EXO의 6월 초순 컴백이 알려졌다! EXO는 정규 3집을 들고 나왔다. 가요계 의문의 혼돈의 카오스행... 6월 9일에 발매된 EXO의 정규 3집은 초동만으로 하프 밀리언을 달성했고, 가온 차트의 6월 디지털 + 다운로드 + 앨범 차트는 싹쓸이되었다. ㄷㄷ 그리고 레드벨벳은 9월에 러시안 룰렛으로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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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후 이수만을 떠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를 맡았고, 팬들 사이에서 코털아저씨로 유명했다. '태지주노양군과 함께한 1036일'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2. 앞서도 모리스 스타가 발굴한 바비 브라운을 그대로 가져와서 현진영과 와와를 발표한 전례가 있었다.
  3. 1박 2일 2015년 10월 4일 방송분에서 박준형과 김선아의 전화 통화 때 직접 인증했다. 그 전까지 데니안은 김선아가 GOD의 초기 멤버가 아니라고 못 박았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숨겨 왔다고 보는 게 맞을 듯.
  4. 2007년 2월 참여정부 4주년 특별사면
  5. 그 PD가 음악중심 PD도 함께 맡고 있었다. 한마디로 방송국 차원에서 출연정지를 한건 아니었으나 PD의 권한으로 SM가수들 섭외를 안 한 것.(...) 나머지 SM가수들은 무슨 죄
  6. 컴백무대를 음악중심에서 가졌다.
  7. 태민을 비롯해 규현, 소녀시대 태티서, 조미, 종현, 엠버 등등
  8. 사실 이건 모든 가수들에게 있는 일로 그 선례로 보아와 종현도 후속곡에서 아쉬운 성적을 남겼으며, 보통 선 공개곡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화력이 분산되기 때문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