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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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의 제12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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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대 국왕
11대 비류왕 부여비류12대 계왕 미상[1]13대 근초고왕 부여구
시호계왕(契王)
부여(扶餘)
계(契)?
생몰년도음력? ~ 346년 9월 (미상)
재위기간음력344년 10월 ~ 346년 9월 (2년)

백제의 제12대 국왕(건길지).

분서왕의 장남으로 분서왕이 급서하자 아직 너무 어려 한동안 끊어진 구수왕의 후계를 다시 비류왕이 있게 된다. 그리고 40여년 후 그가 승하하자 드디어 고이왕의 후계를 다시 이었다.

하지만 2년만에 사망했다. 지못미. 그리고 고이왕의 후계는 확실히 끊어졌다(...). 계왕이라는 왕명 자체가 고이왕통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契의 훈독이 맺다라는 것인다 고이왕통을 맺었다(마무리했다)라는 의미에서 근초고왕이 고이왕계와의 투쟁에서 승리했고 고이왕통을 단절시켰음을 천명하기 위해 계왕이라는 왕호를 올렸을 것이라는것.

이런 안습한 속성과 적어도 즉위할 때 상당한 나이(최소 40대)를 가졌다는 것으로 보아서 간간히 허구의 인물이라는 설[2] 이 제기된다만... 사실 이 정도 계보는 있을만도 하다. 강직하고 용감하며 승마와 궁술 모두에 능한 왕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른 죽음이 아까운 인물이었으나... 비류왕의 즉위로 부활한 초고왕계 왕족들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위 정황을 볼때 계왕이 행방과 죽음을 아래와 같이 추론해볼 수 있다.

1.1 "대륙백제" 가설

언제적 떡밥이야 이문열이 대왕 쓸때나 되던 떡밥

제8대 왕인 고이왕은 중국 산둥반도로 진출하여 그곳에서 대륙백제를 건설한다. 고이왕이 이곳에 진출한 것은 평소에 국력에 대한 야망이 컸을 뿐더러 주변에있는 중국 여러나라의 견제하기 위함은 물론 중국 국가간의 무역을 원활하게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당시 한반도쪽 백제에서는 고이왕계의 혈통과 귀족들간의 불화가 있었는데. 고이왕이 사망하자 유력 귀족중 하나인 비류계가 이를 계기로 왕위를 찬탈한다.

위협을 느낀 고이왕계는 대륙 백제에 건너가 그곳에서 대륙백제왕이 되어 세력을 키워가고 한반도의 백제에서 왕위를 탈환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 그렇게 대를 이어 가다가 한반도쪽 백제에서 왕인 비류왕이 사망하고 그의 자식이 어리다는것을 알게되어 한반도 백제를 점령, 왕위를 되찾아 정식으로 즉위하는 것이 바로 계왕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신변에 위협을 느꼈던 비류계 혈통중 하나였던 근초고 또한 왕위에올라 이를 계기로 계왕과 왕위를 가지기 위한 전쟁을 하였고 결국엔 승리하여 계왕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록이 불분명하며 짦은것도, 이름을 모르는것도, 재위기간이 햇수를 따져봐도 겨우 2년인것도, 근초고왕의 기록이 20년 이후부터 기록된 것도 후대의 왕족들이 그들의 혈통을 살해하고 기록을 지울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기 때문이란 것.

1.2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에서는 한진희씨가 연기한다. 위례궁주로 자신의 왕위를 빼앗아간 비류왕과 으르렁 거리다가 결국 비류왕의 제1비(최명길분)와 모의해서 비류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얻는걸로 나온다. 40년 동안을 절치부심하여 왕위에 올랐으나 태자 자리를 두고 비류왕의 왕자들과 위례궁 왕자들의 갈등사이에서 골머리를 썩는다. 설상가상으로 요서에서 리턴한 부여구의 군대와 고구려군 사이에서 대치가 일어나고 자동적으로 백제군도 참전하게 된다. 재수없게도 전장에서 제1왕후의 계략에 빠져 독을 마셔버리고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까딱 잘못하면 백제가 고구려에게 먹혀버릴수도 있다는걸 직감한 계왕은 비밀리에 자신의 심복인 해건에게 부여구를 후계로 세우라 명하고 죽는다.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연기는 위례궁주로 은인자중하다가 비류왕이 죽게되자 부여구의 목숨을 구하려한 비류왕의 아버지 흑강공(서인석분)을 옛날 자신이 당한 그대로 머리를 꿍꿍(...)찧으며 절하게 하는 장면.

"원하지요. 미친 듯이 원합니다. (중략) 늙어서 기억이 희미해지셨습니까.. 이 부여준이 그렇게 뻣뻣했습니까. 이마로 땅을 찧으며!!! 애원하였습니다! 소리가 왜 이렇게 작은가! 내가 흘린 됫박피는 어디갔던가!!!"

(...) 결국 흑강공도 이마가 피투성이가 된다. 여구를 살려주게!

김지수가 연기한 부여화의 아버지로 비류왕의 뜻으로 부여화가 고국원왕의 부인이 될때도 원통해한다. 뭐 그렇다고 여구에게 호의를 보인것도 아니지만. 역시 한진희씨는 딸내미 바보 속성 하긴 그래도 살려주긴 했다.

최후가 굉장히 안습하고도 비참한데 위례궁과 비류왕가의 분열을 종식시키기위해 제1왕후에게 자결할것을 종용했다가 역으로 자기가 독이든 술을 잔뜩 마셔버리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후 자신이 승하하고 나면 왕위가 공백상태가 되어 고구려에게 먹혀버릴것을 우려, 자신의 심복에게 여구를 왕위에 올리라 비밀리에 명하고 심복에 손에 칼빵을 맞고 진짜로 죽는다 안습. 프란츠 2세? 근데 프란츠는 나폴레옹에게 복수했잖아? 계왕은 안될꺼야 아마...

1.3 삼국사기 기록

一年冬十月 계왕이 즉위하다
三年秋九月 계왕이 죽다

추가로 삼국사기 제사 편에서《고기》의 기록을 인용해 재위 2년 여름 4월(345년 4월)에 동명묘에 제사지냈다는 기록 뿐. 이게 끝이다. 사반왕 다음으로 기록이 적은 왕으로 혜왕과 함께 No.2. 하지만 혜왕은 즉위한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거 같지만 계왕은 2년간 왕위를 지켰다. 그런데 기록이 2줄.

사실상 기록 적기로 이 분야 본좌다.

2 하나라 2대 왕

하나라의 역대 국왕
초대 국왕 2대 국왕 계3대 국왕 태강

啓王

우왕의 아들로 도산씨 소생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한경제의 이름을 피휘하기 위해 개왕(開王)으로 기록했다.

3 드래곤볼에 나오는 신의 계급

계왕(드래곤볼) 항목 참조.
  1. 부여준이라는 이름은 전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에서 지어낸 창작된 이름이다. 확실한 본명은 알 수가 없다.
  2. 즉위한 이후 임금으로서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즉위와 관련된 설명에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어, 계왕이 실제로 존재했다기보다 후대에 백제 사람들이 왕실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건국연대를 조정하기 위해 삽입한 가공의 인물이 아닐까 추측한 견해도 있다 -네이버 지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