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

(기니아에서 넘어옴)

틀:특별여행경보
[1]
[2]

서아프리카의 국가 및 지역
50px-Flag_of_Cape_Verde_%282-3_ratio%29.svg.png
카보베르데
50px-Flag_of_Mauritania.svg.png
모리타니
50px-Flag_of_Mali.svg.png
말리
50px-Flag_of_Burkina_Faso.svg.png
부르키나파소
50px-Flag_of_Niger.svg.png
니제르
50px-Flag_of_The_Gambia.svg.png
감비아
50px-Flag_of_Senegal.svg.png
세네갈
50px-Flag_of_Guinea-Bissau.svg.png
기니비사우
50px-Flag_of_Guinea.svg.png
기니
50px-Flag_of_Sierra_Leone.svg.png
시에라리온
50px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영국)
50px-Flag_of_Liberia.svg.png
라이베리아
50px-Flag_of_C%C3%B4te_d%27Ivoire.svg.png
코트디부아르
width=50
가나
50px-Flag_of_Togo.svg.png
토고
50px-Flag_of_Benin.svg.png
베냉
50px-Flag_of_Nigeria.svg.png
나이지리아

600px-Guinea_on_the_globe_%28Cape_Verde_centered%29.svg.png

gv-map.gif

거울에 비춰 보면?
가나와 헷갈리진 말자

영어: Republic of Guinea
프랑스어: République de Guinée

초록·노랑·빨강은 신호등에티오피아가나에서 최초로 사용한 범(凡)아프리카 색깔인데, 빨강은 독립투쟁에서 흘린 피를, 노랑은 황금과 태양을, 초록은 농업·삼림·나뭇잎·번영을 나타낸다.

Travail, Justice, Solidarité

노동, 정의, 결속

1 개요

서아프리카 대서양에 맞닿은 국가. 수도는 코나크리(Conakry). 기니피그의 바로 그 기니 지방(Guinea)에 속하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기니비사우와 국명이 유사하기 때문에 수도 이름을 따와 기니-코나크리(Guinée-Conakry)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적도 기니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도 비슷한 이름의 나라가 있다[3]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보크사이트의 주 매장지로 유명한 국가이다. 그렇지만 이 자원이 이 나라에 축복을 가져다 주었느냐면 천만에 말씀이다. 기니는 그 불안하기 짝이 없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참혹한 상황에 처해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기니의 취약국가지수를 보면 2015년 현재 12위로 이라크북한보다도 높은데 이것도 불과 4년 전인 2010년의 9위에서 3계단 내려간 거다.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국가들의 수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가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지 순위만으로도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2 지리 및 위치

아프리카 서부의 대서양과 인접해있는 나라로 북서쪽으로 기니비사우, 서남쪽으로 시에라리온, 남쪽으로 라이베리아, 동북쪽으로 말리, 동남쪽으로 코트디부아르와 인접해있으며 서남쪽 일부는 북대서양과 인접해있다.

3 인구 및 언어

인구는 1175만명으로 한국의 20% 좀 넘는다. 아프리카계 흑인이 대부분으로 풀라니족, 말리케족, 수수족이 주요 인구 구성원이며 그 외에 소수 종족이 있다. 과거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공용어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4 역사

역사적으로 유구한 말리·송가이 왕조가 이 땅에 들어섰고, 16세기 풀라인들의 지하드 이후 서서히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1958년 독립한 후 프랑스가 대안으로 내세운 프랑코포니에서 탈퇴했다. 이에 드골 대통령이 프랑스 자본을 전부 철수시킨 이후 급속히 경제가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소련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서방의 원조와 투자를 계속 받았다.

1984년 당시 대통령인 아메드 세쿠 투레[4]가 미국에서 심장 수술을 받던 도중 죽은 뒤 대령이었던 란사나 콩테가 국무총리를 몰아내고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행했다.

2008년 12월 22일 그가 죽은 뒤 이번에는 대위였던 무사 다디스 카마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

1990년대 말 이 나라 출신 소년 두 명이 비행기로 벨기에 밀입국을 시도하려다가 얼어죽은 사건이 있었다.[5] 그러나 소년들의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바로 매스컴을 타 전세계에 널리 퍼진 이 사건은 정작 기니에는 바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너무나 가난해서 일간지 하나조차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알래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 나라의 천하의 개쌍놈급 정부는 예상대로 "별관심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4년 에볼라 확산으로 인해 현재까지 특별여행경보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16년 8월 16일에 기니에서는 현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0만명의 시위가 발생되었다.#

5 문화

추가바람.

6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당초 1978년에 수교했으나 당시 기니 정부의 친(親)사회주의 노선 및 친북(親北) 성향 때문에 2년 후인 1980년에 단교하였다.[6] 이후 2006년 8월에 재수교하였다.

북한과는 1960년에 수교하였다.
  1. 전 지역
  2. #
  3. 파푸아 뉴 기니를 제외하고 이들 국가들은 전부 기니 만을 끼고 있는 곳들이라 과거 식민지배 시절 지배국들이 구분을 위해 조금씩 다르게 부른게 국명으로 굳어진 케이스이다. 파푸아 뉴 기니는 유럽인들이 처음 진출했을 때 기후와 원주민들이 기니 지역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뉴 기니로 부른게 시초.
  4. 이 사람은 강제수용소에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집어넣었는데 창문조차 없는 콘크리트 건물의 독방에 방문은 강철로 만든 뒤 공기만 조금 들어갈 정도의 문틈을 두고 그 안에 희생자들을 집어넣은 다음 굶겨 죽였다.
  5. 정확히는 아프리카의 참혹한 실상을 유럽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결행한 것. 실제로 시신에서 자신들 및 아프리카의 실상에 대해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편지도 발견됐다. 법적으로는 밀입국이 맞지만 아프리카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고자 어린 소년들이 죽음을 자초하면서까지 행동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하다.
  6. 1988년 서울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는 공식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