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9번의 저주

1 개요

잠깐 눈물 좀 닦고

현재까지도 아스날 공격진의 빈공을 심각하게 야기하고 있는, 전설의 저주로 이 저주가 없었다면 아스날은 최소 2개의 우승 트로피를 더 들어올렸을 것이다.

등번호 9번은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를 상징하는 번호이다. 호나우두, 앨런 시어러, 로비 파울러,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필리포 인자기, 안드리 셰브첸코, 페르난도 토레스 뭐? 등 내로라하는 스트라이커들이 이 등번호를 달고 뛰며 활약했다. 하지만 아스날에서는 안습의 절정체가 된다.

2 원인

첫째로 아르센 벵거의 벵거볼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벵거볼의 특성 상 전방 스트라이커의 비중이 낮아지므로 당연히 공격수들이 힘을 쓰기 힘들다. 문제는 아스날이 빈약한 공격력 탓에 이를 개선하고자 이름 값 되는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려 드는데, 문제는 그 이름 값 있는 스트라이커들은 죄다 벵거볼의 특성 상 활약을 하기 힘들고, 간혹 스카우터가 안티인지 먹튀급 선수를 데려 온다는 것. 당연하겠지만 벵거가 옷을 벗거나 실리축구로 방향을 바꾸던가, 9번 자리에 벵거볼에 맞는 선수가 와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 따라서 공격력은 공격력 대로 빈약하고 선수는 선수대로 제 기량을 발휘 못하는 것. 실제로 제이미 바디가 이러한 점 때문에 아스날행을 거부했고,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던 로빈 반 페르시내 안의 작은 아이 운운하며 맨유로 이적한 것도 실은 벵거볼로 인해 애초에 본인의 입지가 불안함을 알고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 사실 반 페르시가 월드 클래스니 어쩌니 하는 것도 2010년대 이후 이야기로 최전성기인 11/12시즌 전까지는 부상 등의 이유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적이 많다.- 시즌 반 페르시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1314이전 아게로 취급을 당했다 -

두 번째 원인은 초창기 벵거가 부임했던 시절 있었던 주전 공격수 티에리 앙리데니스 베르캄프 중 그 누구도 9번을 달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애당초 둘 중 하나가 9번을 달았다면 9번의 저주는 언급되지 않거나 언급되더라도 벵거볼이 정착되어 베르캄프는 은퇴하고 앙리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버린 2006~7년대 이후부터 역사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선수들은 주전 공격수로 입지가 워낙에 탄탄했던 탓에 다른 공격수들이 설 자리가 많이 부족했고 당연히 9번을 단 선수는 다른 변수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으로 이 둘에 치여 입지가 부족했을 것이다. 실제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AFC 아약스가 아닌 아스날에 왔다면 커리어가 꼬였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 만일 입단했다면 9번을 주기로 했다고 하니 ...

3 사례

3.1 9번 저주의 시작, 폴 머슨

1996/97
이 저주의 시작은 90년대 중반으로, 원래 1987년 입단해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하던 現 스카이스포츠 해설자 폴 머슨(Paul Merson)이 9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 시작된다. 폴 머슨은 원래부터 사생활에 문제가 있던 선수였지만 9번을 단 1995년 이후부터 팀 내 불화와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등 온갖 안 좋은 이슈를 터뜨리며 미들스보로로 방출되었다.

3.2 멘탈 甲, 니콜라스 아넬카

1997/98 – 1998/99
그리고 이를 물려받은 선수는 니콜라 아넬카. 이 양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질적인 9번의 저주의 기점. 1998년 시즌 종료 후 아넬카가 바람같이 레알 마드리드로 날아갔다.

덧붙이자면 시즌 초반 활약은 준수했고 나이치고 골도 적절히 넣어줬지만 그놈의 멘탈때문에 싸우기만 싸우고 갔다. 그래도 돈 많이 안겨줬잖아. 그럼 됐지

3.3 前 월드컵 득점왕, 다보르 슈케르

1999/2000
아넬카가 레알 마드리드로 날라버린 대안으로 1998년 월드컵 득점왕 크로아티아의 스트라이커 다보르 슈케르를 데려왔지만, 이 선수도 급하게 데려왔던데다 애초에 하향세였고, 9번을 달고 나서 부상과 실력 저하로 먹튀가 되어 완전히 이미지를 구겼다.

3.4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입단 취소)

당시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보비치가 아스날의 9번 셔츠를 받고 입단할 수 있었으나 즐라탄의 거부로 취소되었다. 애초에 즐라탄이 갔어도 저주를 이어갈 확률이 높았는데 그 때 아스날 공격진은 앙리-베르캄프-윌토르-카누의 초호화 멤버들이었다. 즐라탄이 제대로 된 기회조차 못 받고 밑에 있는 제퍼스처럼 폭망했을지도 모르는 일.

3.5 뻥글 유망주, 프란시스 제퍼스

2000/01 – 2002/03
수케르가 떠난 2001년부터는 에버튼에서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한 젊은 유망주 스트라이커 프란시스 제퍼스가 9번을 이어받았지만, 이 선수가 9번의 저주 정점을 찍고 만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 것. 그냥 개 못했다고 한다. 다시 에버턴으로 임대이적 한 후 찰튼 애슬레틱, 레인저스 FC, 블랙번 로버스, 입스위치 타운, 셰필드 웬즈데이,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마더웰, 플로리아나, 아크링턴을 거치고 현재는 에버턴 아카데미 코치직을 맡고 있다.

3.6 스페인이 그리웠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2003/04 – 2005/06
제퍼스를 에버튼으로 돌려보낸 뒤 9번을 이어받은 선수는 세비야에서 100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한 호세 레예스. 이 선수는 기록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향수병이 심했는지 틈만 나면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불평해 팬들에게 어그로를 잔뜩 쌓았다. 2006년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줄리우 밥티스타와 맞임대 조건으로 떠난다.

3.7 컵대회의 사나이 줄리우 밥티스타

2006/07
그리고 그 9번을 이어받은 밥티스타...그렇다. 콰밥만훈의 그 밥이다.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35경기 10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선 3골만 기록한 채 레알 마드리드로 되돌아간다.

3.8 가장 안타까운 9번, 에두아르도 다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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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 2009/10
밥티스타가 떠난 뒤 아스날에서 9번을 달았던 선수는 브라질 출신 크로아티아 대표 선수인 에두아르두였다. 2007년 여름 아스날에 입단한 에두아르두는 시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주전 입지를 굳혀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지금도 최악의 부상으로 간간히 회자되는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1년 뒤 복귀하긴 했지만 떨어진 경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얘가 부상 안당했다면 반통수가 없었겠지

3.9 아시아산 토템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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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그리고 에두아르두 이후 1년간 없던 9번을 이어받은 선수는... 위 사진에도 보이듯이 여러분이 예상하시는 그분 맞다. 이 선수의 아스날에서의 활약은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조차 없다.

3.10 9번의 저주를 거의 깰 뻔했던, 루카스 포돌스키

2012-13 / 2014/15
그분 후에 등장한 No.9는 FC 쾰른의 강등으로 풀린 루카스 포돌스키. 포돌스키는 2012년 10-10을 기록하면서 2004-05 시즌의 호세 레예스 이후 가장 뛰어난 아스날의 9번으로 저주를 깨리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2013-14 시즌의 시작인 페네르바체와의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10주 결장을 찍게 되어 9번의 저주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리그 경기에 교체 멤버로만 활용되며 아스날 9번의 저주가 계속 이어지나 싶었지만, 월콧의 부상 이후 시즌 막판에만 중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3-14 시즌 40경기 12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짙은 아스날의 2선에서 결정력이 뛰어난 포돌스키의 존재는 팀 공격전술의 다양화를 이끌어냈고, 램지, 월콧의 부상 이후 부진에 빠진 지루가 다시금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2013-14 시즌 중반까지 이어지던 포돌스키의 이적설은(드락슬러와의 스왑딜, 도르트문트 이적 루머) 시즌 막판 대활약 이후 잠잠해졌지만, 2014-15 시즌에는 벤치만 달구다가 인테르로 임대 이적하면서 저주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스널에서 폭망해버릴때로 폼이 죽은 포돌스키는 인테르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쳐 1년간 임대생활을 끝내고 런던으로 돌아왔어도 팬들에게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결국 그는 이적을 결심하고 2015년 7월 4일, 갈라타사라이로 둥지를 텄다. 그리고 아스날은 2016시즌이 끝날 때까지 9번은 공석이었다.

3.11 현재, 루카스 페레스는 이 저주를 깰 수 있을까?

2016년 8월부로 드디어 이 번호를 쓰게 될 새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전 시즌 데포르티보에서 17골을 넣으며 대폭발한 루카스 페레스. 세르지 나브리의 이적으로 27번을 달 수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36번, 45번 같은 등번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본인은 존경하는 선배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가 달았던 9번을 선택했다. 과연 이번에는 저주를 깰 수 있을지...

4 여담

올리비에 지루가 포돌스키의 이적으로 이 번호를 달 기회가 있었으나 12번이 마킹된 유니폼을 산 팬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거절한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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