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言連續體 / Dialect Continuum
연접한 지방에서 모호하게 연속되는 방언군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ㄱ마을과 옆동네 ㄴ마을에서 쓰이는 사투리는 매우 유사해서, 각 마을의 주민이 ㄱ사투리와 ㄴ사투리로 얘기해도 별 문제없이 대화할 수 있다. ㄴ마을 사람도 ㄷ마을에서 쓰이는 ㄷ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ㄷ, ㄹ, ㅁ... ㅎ마을까지 이어지는데 ㄱ마을 사람은 ㅎ마을 사람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1]
방언과 언어의 경계가 확실치 않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방언연속체가 무너지는 현상이 관찰되는데 이는 주로 표준어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에 기인한다. 즉 '한 민족에 한 언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 되고 또 공교육의 도입으로 인해 한 나라의 사람들 전체에게 똑같은 방언이 보급되면서 예전처럼 마을마다 사투리가 있는게 아니라 나라마다 특정한 사투리(언어)가 생기는 것. 또한 교통/통신의 발달으로 지방간 교류나 이주가 많아지는 것도 한몫한다.
물론 이런 것은 비단 현대의 현상은 아니다. 언어가 정치적인 경계로 따라 분화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항상 찾아볼 수 있는 것. 스위스 독일어가 표준독일어에서 뚜렷하게 차이나게 된 것도 스위스가 정치적으로 독일과는 다른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생물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한 종의 새가 넓은 범위에 걸쳐 서식하고 있을 때, 동경 n도에 서식하는 개체는 동경 n+5도의 개체와 교배가 가능하지만(동경 10도에 서식하는 새는 동경 15도에 서식하는 새와 교배 가능), 동경 10도와 동경 120도처럼 개체간의 서식지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그 개체들끼리는 교배가 불가능해지는 식이다. 종 구분의 어려움을 논할 때 나오곤 하는 이야기다.
방언연속체의 예
- 게르만어군 중 북게르만계 언어들
-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사용하는 언어들도 언어 화자들이 각자 자기 나라 언어로 대화를 해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라고 한다. 다만, 덴마크어와 스웨덴어는 뜻은 통하되 정확하게 잘 통하기보다는 그냥 대충 알아듣는 정도라고도 한다.
-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공용어인 보크몰은 일종의 '노르웨이어화한 덴마크어'다. 그래서 덴마크어와 대단히 유사하며, 특히 문장언어에서 유사성이 더 두드러진다. 계통상 스웨덴어-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아이슬란드어가 친척이지만 아이슬란드어는 장기간의 고립으로 인한 보수적 특징 때문에 다른 북게르만계 언어와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어는 후에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일어난 음운변화를 스웨덴어와 함께 겪게 되는데 이는 언어동조 현상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르웨이어는 발음에서 스웨덴어와 유사성이 많다. 즉 노르웨이어는 계통과는 무관하게-물론 계통상 차이도 매우 작긴 하지만- 덴마크어와 스웨덴어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 독일어의 방언연속체에 네덜란드어와 프리지아어를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독일에서 네덜란드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지역 방언이 네덜란드어에 근접해진다. 다만 최근에는 이것이 방언연속체라기보다는 지역적 인접성에 비롯한 언어동조대라고 보기도 한다.
- 남부 유럽은 원래 같은 세속 라틴어를 쓰고 있었지만 로마 제국의 멸망 후 서서히 다른 지역 방언으로 나뉘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프랑스 남부-이베리아반도(스페인/포르투갈)가 전형이 될 만한 방언연속체의 특징을 보여 준다. 과거에는 프랑스 북부 사람이 남부(예컨대 마르세유)로 여행하면 차라리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혼용해야 겨우 의사소통이 될 정도였다. 다만 근대에 들어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나라가 각각의 표준 방언인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을 제정했기 때문에 이러한 방언의 연속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 물론 예전처럼 매끄럽게(...) 연속되진 않더라도 인접국가의 언어끼리 더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지역방언도 완전히 사멸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히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러한 방언의 연속성을 잘 관찰할 수 있는데 스페인의 포르투갈 인접지역에 쓰이는 갈리시아어는 아예 서어와 포어의 중간언어처럼 여겨질 정도다. (서어와 포어가 서로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 로망스어의 방언연속체를 서에서 동으로 주욱 나열하게 된다면 포르투갈어/갈리시아어[2]→레온어/아스투리아스어[3]→카스티야어(표준 스페인어)→아라곤어→카탈루냐어/발렌시아어[4]→오크어→프로방스어→로망슈어→수많은 이탈리아 북부 방언→달마티아어(사멸)→루마니아어/몰도바어[5]로 이어진다. 이 중간에 오크어, 프로방스어 북쪽으로는 프랑스어가, 북부 이탈리아 방언에서는 남쪽으로 표준 이탈리아어→남부 이탈리아 방언들이 가지치기한다.
- 서로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가까운 언어를 사용한다. 불가리아에서 마케도니아어를 불가리아어 사투리 비스무리하게 보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사실 남슬라브어파 및 슬라브어파 전체를 일종의 방언연속체로 볼 수 있으나 마케도니아어를 불가리아어 사투리로, 체코어를 슬로바키아어 사투리라고 취급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화낼 것이다. 방언과 언어의 경계는 비단 학문적이 아니라 정치적/문화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쓰는 북부 인도와 파키스탄도 방언연속체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다. 따라서 펀잡어를 쓰는 곳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그게 점점 힌디어에 가까워지다가 어느새 힌디어가 되어있고 거기서 계속 동쪽으로 가다보면 어느새 아삼어가 되어있고 이런 식.
- 표준중국어의 모태가 되는 다양한 북방방언도 방언연속체에 속해있다. 그래서 남방 사람들은 표준어를 익히기 어려워하지만[6] 북방의 평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투리가 표준어와 비슷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쉽게 배운다고 한다.
- 튀르크 계열 언어가 통용되는 지역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터키어 사용권과 인접한 아제리어, 튀르크멘어(시리아, 이라크 지역), 크림 타타르어, 가가우즈어 화자와는 서로 말이 통한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옆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통용되는 튀르크멘어는 터키인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의 튀르크멘어 화자는 각각 차가타이, 큽착어족에 속하는 다른 계열의 튀르크어지만 페르시아어와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은 우즈벡어, 카자흐어, 키르기즈어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큽착어족에 속하는 카자흐어, 키르기즈어 화자들은 무리없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지만, 우즈벡어를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으며, 차가타이어족에 속하는 우즈벡어 화자들은 마찬가지로 같은 계열에 속하는 위구르어를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튀르크어족은 분화시기가 상당히 늦은 편으로 로망스어군에 비해서도 기본 어휘의 일치도가 높기 때문에 쉬운 어휘로만 말하면 (물론 해당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아야겠지만) 이해하는 것이 다른 외국어에 비해 쉬운 편이며, 서로간 같은 튀르크계 언어를 익히기 수월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