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절/한국
奉恩寺
파일:Attachment/4ba5dc75397ea.png
1 개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로에 위치한 도심 속의 고찰(古刹). 대한불교 조계종 종파의 사찰이며, 신라 원성왕 때인 서기 794년에 창건되었다.
본래는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산사(山寺)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1] 강남 지역의 발달 및 도심화로 인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가는 방법은 봉은사로를 통해서 가거나, 2015년 3월 28일에 개통한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 구간의 봉은사역 1번 출구를 이용하면 된다.
한국 최대 불교종파인 조계종은 조계종본사를 조계사에서 봉은사로 옮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 역사
서기 794년 신라 원성왕 시절에 처음으로 창건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見性寺)'였고, 위치도 선릉 근처라 지금과 달랐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성종의 능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절이 이동되고, 많은 땅을 하사받게 된다. 이 때문에 '은혜를 받든다' 라는 뜻의 봉은(奉恩)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불교를 사랑했던 문정왕후 때에 선종 수사찰이 되어, 과거 제도 중 승과 시험을 보는 장소가 되었다. 이 때문에 많은 유생 안티들이 양산되었다. 봉은사는 한양과 가까운데다 승과시(僧科試) 시험장이었기 때문에,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 유생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봉은사와 승과시험을 없애야 한다는 유생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능침사찰이라 회암사처럼 불태워지는 사태는 없었다. 하지만 승과고시 때문에 당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이 승려로 입산해서 관직에 오르려고 했고, 이 때문에 서산대사, 사명당 같은 이름 있는 승려들이 나와 임진왜란 등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봉은사.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에 큰 대형 화재를 겪었으며, 1950년 6.25 전쟁 때 전각이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이후에 재건되었다. 때문에 봉은사 건물은 판전 등 소수의 건물을 제외하면 주로 1940년대와 1980년대 전후로 재건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때 경기도 광주군(現 경기도 광주시)에 속하여 경기도 사찰로 분류되었으나, 1963년에 이 지역이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경기도 사찰에서 서울특별시 사찰로 변경되었고, 후에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강남구 관할로 편입되었다.
2.1 부동산 진통
강남이 개발되기 전까지 봉은사 주변은 허허벌판 논밭이었고, 한양에서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오지와 다름없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봉은사는 주변에다 말죽거리의 1만평 논까지 합쳐 10만평에 달하는 땅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투기 1번지 강남이 개발되면서 갈등이 생겼다.
시초는 조계사나 여타 한국 불교사찰들이 다 그랬지만,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대처승[2]과 비구승[3]의 갈등이었다. 8.15 광복 이후 봉은사는 꾸준히 왜색 불교 정화활동을 벌여, 1965년에야 겨우 비구승이 대처승을 몰아내게 된다. 그러나 이 사이에 정부는 개발지 한가운데를 차지한 봉은사의 땅을 싸게 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대처승과 그 가족들이 봉은사의 땅을 불법으로 파는 등 진통이 있었다.
이후로도 부유한 절의 주지 임면권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터져나왔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것이 1988년 이른바 ‘봉은사 사태’였다. 폭력배들까지 동원되어 절의 주지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었다.
2.2 볼거리
사찰 입구에는 거대한 일주문이 있으며 2마리의 코끼리 석상이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경내에는 법왕루, 대웅전, 북극보전, 선불당 등 법당이 있으며 1996년에 세웠던 미륵대불상이 있다. 사실, 도심 속의 사찰이란 점에 의의가 있지, 오래된 절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과천에서 기거하던 말년 추사 김정희가 자주 찾던 절인만큼, 대웅전과 판전의 현판은 그의 작품이다. 특히 판전 현판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어린아이의 글씨 같아 보이면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초월한 느낌을 주는 글씨로 알려져있다.
그 외에도 대웅전 법당에 하루 종일 앉아 공부하는 여고생 수험생들과 그 옆에서 108배를 하는 학부모가 자주 보인다. 인근 대치동 학원가와 강남 8학군의 특성인 듯.
3 트리비아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영화를 보고 조금 어둑해진 저녁시간 때에 가면 엄청 낭만적이다. 절 내부는 조용하고 평안한 분위기에,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초고층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와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코엑스의 아름다운 야경이 정갈하게 수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심의 한 발짝 뒤에서 고요한 분위기를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입구 바로 맞은편에 코엑스가 있고 차량도 엄청나게 많지만 신기하게도 봉은사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바깥의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2010년 직영사찰 전환문제로 정치권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여기에 당시 주지승이었던 명진 스님이 개입되었다는 일설이 돌면서 봉은사 승려들과 신도들이 강력반발하기도 했었다. 이에 당사자인 명진 스님은 승적을 포기하고 조계종단 승적까지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동년 10월에는 찬양인도자학교라는 단체가 봉은사 입구에서 개신교식 예배를 올리는 동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후에 이들은 봉은사를 방문하여 사죄의사를 표하였고 사찰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모 개신교 단체가 봉은사를 오가는 불특정 다수의 불자들을 상대로 '부처님 계신 곳 좋은 만남'이라는 라벨이 붙은 CD를 배포했는데, 정작 CD를 틀면 목사의 설교가 나오는(…) 페이크 불경 CD를 만들어 배포한 적도 있다.#
점심 때 코엑스를 가서 밥값이 너무 비싸다 느낀다면, 이 곳에서 점심 공양을 하면 1천원(!)으로 매우 저렴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기간 세계각국의 정상들과 영부인들이 방문하였다.기사
서울 지하철 9호선 929번 정거장과 인접하기 때문에 봉은사측에서 929번 정거장 명칭을 봉은사역(가칭)으로 지정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당초 이 정거장은 주변에 코엑스, 아셈센터, 도심공항터미널이 있기 때문에 코엑스역(가칭)으로 지을려고 하였지만, 봉은사측이 코엑스보다 더 오래된 봉은사의 역사적 가치 등을 고려하여 정거장 역명을 봉은사역으로 지정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한편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의 부역명이 코엑스이다. 그리고 바로 옆의 928번 역은 삼성중앙역이 되었다. 현재는 봉은사역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