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아나키즘
1 설명
아나키즘의 분파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흔히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좌익들로부터 '기회주의자'라거나 '모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곤 하며[1] 심지어는 '우익분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물론 우파 아나키스트들은 우익들로부터 '빨갱이'라고 까이곤 한다.(...)
2 고전적인 아나키즘
2.1 상호부조론
상호부조론은 아나키즘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자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알려져있다. 인간의 자발성에 기초한 상호부조의 연대로 공동체를 구축해 나간다는 이론을 의미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집단주의(집산주의)적 사회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많이 언급되었고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아나키스트들의 핵심 원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뭉쳐서 서로 하하호호하며 마을을 하나 맹글고 살아간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2.2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아나코 인디비주얼리즘(Anarcho-individualism)으로도 불리는 이 사상은 사회 사상으로 보긴 좀 뭣하다. 그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개인적 성향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사상으로 보는 편이 옳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개인주의적 전통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자주권과 자주성, 자발성의 밑바탕이 되었고 이는 아나키즘의 토양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자발성을 제 1의 원동력으로 이야기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유의지주의와는 좀 다르다. 항목 참조.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정치사회에 대해 논하는 비중이 커진다면 자유지상주의가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2.2.1 윌리엄 고드윈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정부는 변화의 영원한 적이다. 정부의 특정한 제도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에 존재하는 원동력을 그 활동을 마비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악습을 영원토록 조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순수한 성향을 전도시키며, 우리를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것은 언제나 퇴보하여 결코 전진하지 않는 것이 인간정신의 본질인 양 우리들에게 공공복지를 혁신과 진보가 아니라, 선조들의 결정을 신중하게 따를 것을 촉구한다."
최초의 아나키스트라 일컬어 지는 '윌리엄 고드윈'(1756 ~ 1836)[2]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의의 목적은 최대의 '일반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최대의 '일반선'이란 무엇인가? 고드윈은 당대의 영국 철학자들 처럼 인간의 의식에는 선험적인 어떠한 것도 각인되어 있지 않다는 '타불라 라사'가설을 지지했다. 그에 따라 다른 공리주의자들 처럼 도덕에 대한 어떠한 후차적 해석을 배격하고 인간의 감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요소인, 쾌락과 고통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는 쾌락을 높이고 고통과 불행을 낮춤으로서 공리를 극대화 하는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여타 공리주의에 따른 비판인 소수의 배격이라는 문제를 해결 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의 이론에서는 '일반선'과 '개인선'이 상충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모두 동일한 감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으려 하듯, 그러한 행위는 누구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의심할바 없이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보편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도덕의 목적과, 공리가 그 인간적 보편성을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공리 극대화라는 목적성을 띤다면, 개인의 권리가 침해 당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당연히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을 둔 공리는 나의 권리에 기반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틀안에 내가 포함되므로, 인간에 대한 공리 극대화는 곧 나의 공리를 올리는 것이며, 인간에 대한 공리의 향상의 결과로 개인은 이성이 우리에게 부여한 추론과 진리를 바탕으로 더욱 개선된 판단으로 공리를 끌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동등함은 정의의 요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의의 목적이란 최대의 '일반선'의 창출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도덕적 단계는 계속해서 진보해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보를 주장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저열한 것들이 존재한고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주장한다. 분명 인간은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동일성과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개개인은 고급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는 반면, 저급한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고, 지적이며 애타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자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우리는 그의 공리주의적인 입장에 따라 어떠한 행위를 하는 자가 더 가치있는가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당연히 그러한 행위가 더욱 큰 '일반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드윈은 인간의 가치를 4단계로 나눈다.
- 최하층에 속한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에 시달려야 하므로, 삶에 행복을 느끼거나 여러가지 지적 활동을 하게 할 물질적 시간적 여유란 없다.이들에게 행복(쾌락)이란 기껏해야 더 적은 고통을 기도하는것 뿐이다.
-그 다음 서열은 부자들이다.
이들은 최하층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단지 그것 뿐이다. 이들에게 쾌락이란 육체적 향략같은 저급쾌락일 뿐이며, 잉여자원을 저급 쾌락에만 사용하며 어떠한 '일반선'도 창출해 내지 못한다.
- 그 다음 서열은 '취미의 인간', 예술가나 학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자나 부자로 분류되는 유형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학문을 존중하며 진리를 탐구한다. 즉 이들은 지적쾌락, 고급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나누며, 사회에 이바지 하기 보단 자기만족을 위해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이다.
- 마지막으로 최상의 유형은 '박애의 인간'이다.
이들은 '취미의 인간'들 처럼 지적 고급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나, 개인의 지적 만족을 얻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누며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류의 보편적 행복에 이바지 함으로서 쾌락을 느끼는 자들이다. 이 박애의 인간이야 말로 정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고드윈은 인류자체의 진보를 위하여 개개인은 스스로를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란 개인적인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의 집단에서, 사소한 이득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 지적 고급 쾌락을 향유하며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협력과 박애를 주장하는 사람이 탄생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마찬가지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표현하기 전에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사회라면, 지적 탐구자가 탄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 자신은 세계에 던져진 채로 무력하게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을 부정한채 모든 책임을 단지 개인에게 떠넘기며 의식의 진보를 요구 하는 것은 광인의 망상이나 다를바 없다.
"사회는 만일 그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비참한 노예상태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자유는 진리를 전달한 피고측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생각한 바를 말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어린아이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어린 시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모욕이며 얼마나 무지몽매한 소치인가."
따라서 고드윈은 모든 억압의 분쇄를 주장했다. 그것은 국가적인 것이건, 정치적인 것이건, 사회적이건, 종교적이건, 경제적이건, 가부장적이건 개인을 억압한다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인간의 도덕적 진보, 일반선의 극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 이라고 고드윈은 말했다.
"진리는 오직 그것을 가장 성실히 숭배하는 자에 의해서만 완만하고 지속적인 수준에 따라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개혁을 하게 될 것이지만 혁명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드윈은 혁명을 부정했다. 그는 단순히 혁명을 주장하는 그러한 행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이상주의적 이라고 했다. 반면 그는 여론의 개선과 의식의 계몽을 주장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국가, 권력, 체제, 종교, 가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요소이며 유일한 실체인 인간 의식의 인정으로 인하여 어떠한 방식으로건 존재하게 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존재하지 않는 그 허상들은 우선 인간 의식의 계몽으로 그힘을 잃어야 하며[3], 그 뒤에야 체제의 변환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법이다. 때문에 고드윈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 했으며, 이러한 신념을 가진자들로 하여금, 토론을 주져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하며 이성과 진리가 최대한 퍼져나가도록 한다면 인류의 정신이 진보하여,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4]
허나 이러한 변화와 계몽을 거치지 않은, 대중 의식의 상태를 무시한다면, 개혁이나 혁명이 아무리 고결하고 완벽한 이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하다라도, 좋은 결말을 맺을 순 없다. 그러한 혁명이란 폭력과 야만, 또다른 독재자와 폭정, 더 수구적인 체제로의 반동으로서 귀결될 것이라고 고드윈은 주장했다.
2.2.2 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국가는 누구든지 자기의지를 가지지 말것을 강요한다. 만약 한 인간이 그것을 가졌다면 국가는 그를 배제하고 폐쇄하고 추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일 모든 인간이 그것을 가진다면 그때는 그들이 국가를 배제할 것이다. 자기의지와 국가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적대관계에 있는 힘이다. 양자간에 영원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정신의 발전
인간은 '자기의지'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나, 탄생하는 순간 '자기의지'로 자신의 존재에 책임을 져야하는 피투적 숙명에 놓이게 된다. 모든것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자기자신의 고유성과 타자와의 충돌을 경험하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유지해야 하는 인정투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은 물질과 자연의 힘 앞에 강요를 당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자기 자신의 결정과 용기로 이내 강요를 극복하며, 자신을 강요해 왔던 대상들이 자신의 용기와 의지보다 약하다는 실체를 깨닫고서는 그것들을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내 인간은 정신을 발견하며 관념의 동물이 된다. 인간은 새로이 발견한 정신의 힘으로 세상을 극복하려 한다. 그는 사상이란 이름의 유령을 만든다. 그 사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 조국, 민족, 그리고 '인간일반' 같은 것들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또한 어디에서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 같은 것들이다. 어째서인가? '국가와 신' 같은 것들은 그자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선 관념의 '동물'인 인간의 '의지'가 필요하다. 사상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정당성을 보유하기 위해 관념을 '천상의 것'으로 드높였고, 반대로 '대지의 것'은 경멸할만한 것으로 매도 되었다. 인간 자신의 의지 마져도. 그리고 이내 인간은 그 신성한 사상들을 의심하게 되며, 사상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문제삼는다. 그는 사상들의 배후에서 개인의 의지를 본다. 따라서 그는 사상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관념의 동물인 인간의 창조물로서 여기게 되며 자신의 본래 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사상들을 휘어잡아 모든 것을 자기존재와 연결시키는 '에고이스트'로서의 개인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들은 육체화 되어 더이상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되려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는 신성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유령들은 본디 나의 힘이다.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며, 나는 그러한 힘을 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나 자신을 위하여 철저히 '에고이스트'적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유령은 스스로 힘을 얻어 반대로 창조자를 지배하게 되었다. 개인이 유령에게 휘둘리는 것은 '자기소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자기소외로 부터의 탈피를 위해선, 우선 모든 사상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창조한 에고이스트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야한다. 슈티르너는 그의 저서 '유일자와 그의 소유'의 첫번째 장에서, 개개인 본래의 모습인 '에고이스트적 인간' 대한 자각을 다음과 같이 요구 한다.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무이다."대체 나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선이란 이유, 그리곤 신, 인류, 진리, 자유, 인간성, 정의, 그 다음으로 나의 국민, 나의 군주, 나의 조국이라는 것, 끝으로 정신과 그 밖의 다른 무수한 것들이 모두 나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오직 '나'의 것만이 결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에고이스트여!"[5]
유일자와 에고이스트
슈티르너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이라고 부른다. 에고이즘은 이기주의 혹은 자아주의로 번역된다. 여기에는 주의 해야할 점이 있는데, 슈티르너가 말하는 에고이즘이란 독자를 향한 요구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에고이스트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에고이스트임을 자각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와 그렇지 못하는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로 나뉜다.
"그대가 신의 계명과 그 밖의 명령에 그토록 귀 기울이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대는 아마도 오직 신만을 위한 친절에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는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주체이고, 각자는 자신에게 '나'만이 모든 것이고, '나'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동한다고 솔직히 털어 놓아야 한다. 만일 신과 명령들은 오직 그대에게 해를 끼치며, 그대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당신은 마치 기독교인이 아폴로나 미네르바 또는 이교도의 도덕을 비난하여 예수나 성모, 기독교의 도덕으로 대치시킨 것처럼 그것들을 폐지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종교를 가지고 신을 숭배하여 내면의 안식을 얻는다면, 그대 자신의 위해 그렇게 행동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재물을 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재물보다 금욕을 택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내면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독재자의 탄압이 두려워 침묵하기를 선택 했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독재자의 아래에서 안락함을 택했다면, 그 또한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행동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이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힘과 풍요 때문이 아닌가? 그대가 신과 국가, 민족, 그리고 '돈'과 같은 것을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는 에고이스트이고, 그대가 그러한 사실을 자각한다면, '자발적 에고이스트'로서 사상에 매몰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소유자가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는 그러한 사상들이 본래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인지 모른채 그것에 지배 당하여, 자기자신으로부터 소외 된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상이 자신의 창조물임을 자각한 자발적 에고이스트에게는 신성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는 사상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숭배한다. 그러한 행위는 사상을 방대하게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어째서일까? 사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인간만이 생각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허상이 힘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의지가 박탈당하여 허상에 의하여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상이 숭배될수록 인간은 약화된다. 결국 이러한 숭배는 현실과는 반대로 사상을 실체화하고 인간을 허상화 함으로서 인간을 극단적인 자기소외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여기서 멈춘것이 아니다. 그는 사상과 인간의 주객이 전도 되는 것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6] 인간과 사상이 전도된 것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생각하기를 그만두고,사상이 인간을 술어화 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허나 그는 인간이 사상화 되어 개인을 술어화 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나아간다.
"근대의 입구에 '신인'이 서 있다. 그 출구에는 '신인' 중에 신만이 사라져 버렸을까? 그리고 만일 '신인' 중에서 신만이 죽었다[7]면 신인도 실제로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러한 물음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날 승리감에 도취되어 계몽의 사업인 신의 극복을 완성하여 과업이 완성된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8]이 스스로 유일신이[9] 되어 높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 비록 신이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위해서였다. '신인' 가운데 신만이 아닌 인간까지도 죽지 않는 한 과연 '신인' 이 죽었다고 믿을 수 있는가?"
그가 신이라는 말과, 인간이라는 말을 합친 '신인' 이라는 표현을 한점에 주목하라. 어째서 였을까? 철학의 입장에서 볼때 신은 오랜시간 정신의 세계에서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이다. 그렇다면 신이 죽어버렸다면, 인간은 찬사를 불러야 하는 것을 그는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은 신이라는 사상을 만든 창조자이다.그렇기에 허상인 신이라는 말을 독단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체인 인간을 붙여서 '신인'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나는 인간일까? 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냐? 그들이 말하는 인간이란, 우선 많은 수의 개인들에게서 포착 되는 '일반적인' 특징과 그들이 '인간적인' 이라고 부르는 미덕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지 못한 개인의 고유성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결국 신성화된 인간이라는 유령 아래서 억압받을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새로운 독재가 되려 하고 있으나,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나요, 유일자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생각치도 않은 채 '인간적인' 이라는 미덕에 대하여 탐구하고, 과거의 사제들이 그러해왔던 것과 같이 동일할 정도로 개인을 지배하려는 새로운 율법을 만들고 있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새로운 신을 향한 숭배 사상이, 이전의 종교 보다도 방대하고 억압적인 것이라고 했는데, 그이유는 '인간' 이라는 사상이 다른 시대의 유령과는 다르게, 나의 무언가에 대하여 말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더욱이 개인이 가진 인간이라는 보편적 무엇에 대하여 말을 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서, 개인에 대한 지배를 더욱 심원적이고 더욱 은밀하고, 더욱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였다. 슈티르너가 볼때 이러한 학자들의 논의는 사제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신의 지배를 더욱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무시무시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사제들보다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당대의 학자들, 특히 청년 헤겔학파 철학자들은, 기독교의 억압을 극복하는 것이아니라, 그것의 모양을 변형한 채로 억압을 계승시킨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간교는 단지 기독교의 마지막 변형일 뿐이다. ...... 인간교는 나의 본질을 나에게서 분리해 그것을 나 위에 놓는다. ...... 인간교는 다른 종교가 그들의 신이나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인간'을 찬양한다. ...... 인간교는 내것을 다른 세계의 어떤 것으로 만든다. ...... 요컨데 ...... 인간교는 나를 인간 아래에 놓고, 그럼으로써 나에 대해 소명을 창조한다."
슈티르너는 인간[10] 이라는 표현 자체조차도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인간이라는 표현이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사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슈티르너에 의하면 개개인은 인간이라는 말로서 표현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만인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을 지낸 유일한 존재, 즉 '유일자'이다. 유일자는 유일하기 때문에 수로서 표현될 수 없으며, 타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때문에 어떠한 희생도 정당화 될 수 없다.다수의 이득을 위하여 소수를 희생시킨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그것은 소수의 희생으로 공공의 이득을 만들어 낸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이라는 이름의 유령과, 사소한 숫자놀음을 위하여 유일한 세계를 종말 시킨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꿈, 관념, 사상을 탐구하면서 시작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신성한 이론' 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그대는 그대의 신들이나 우상보다도 오히려 그대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대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고, 드러내 놓고, 그리고 그대 자신을 공개하라."
소유와 에고이스트 연합
"정치적 자유는 폴리스 또는 국가가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심의 자유가 양심이 자유롭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처럼 종교적 자유는 종교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국가, 종교,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나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권력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종교, 양심 같은 나를 지배하는 전제자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국가, 종교, 양심의 전제자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자유는 나를 속박하는 족쇄인것이다."
슈티르너는 자유라는 개념 또한 비판했는데, 주로 '소극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다. 반면 그가 내세운 소유란 단지 외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내적인 압력으로 부터 벗어나 자신의 힘을 자신이 소유하여 완전한 자기해방의 길로 향하는것이 소유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그는 자유자체를 허상이라고 치부하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는데, "자유가 외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정말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문제 때문이었다.
파일:LCki0oM.jpg
직업을 가져, 일해, 결혼해, 애도 낳아야지, 유행도 쫓아가, 평범하게 행동하고, 정도로만 다녀, TV나 보고, 법을 준수해, 노후도 대비 해야지. 그리고 나를 따라 이렇게 말하면 돼, "난 자유롭다."[11]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만들거나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것을 원하고 동경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이상이요, 유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현실의 족쇄는 매순간 나의 육체에 가장 깊숙한 상처를 새겨 넣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소유로 남는다. 내가 주인에게 노예이기를 거부할 때 나는 오직 내 자신과 이익만을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채찍질을 할 때 나는 그 매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것을 참아낸다...... 내가 나 자신과 나의 이익만을 응시할 때 나는 주인을 구덩이에 처넣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에고이즘이 전제 되었을 때만이 나는 주인과 그의 채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슈티르너는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의 공동체인 에고이스트 연합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그는 그것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아나키즘 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참여와 탈퇴가 자유로워야 하고 쓸모없는 권력이 존재해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집단은 자기자신을 소유하려 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로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만인이 자기소유 외에는 어떠한 관심사, 숭배의 대상을 갖지 않는 에고이스트의 집단은 어떠한 신성한 권력도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물들의 배후에서 발견하고,그리고 더욱이 나를 정신으로서 발견한 것 처럼,또한 그렇게 나중에 나는 나를 사상들의 배후에서,다시 말해 나를 사물들의 창조자이고 소유자로서 발견해야만 한다.그럼에도 정신의 시대에 사상들은 사상들을 탄생시킨 나에게 더는 복종하지 않았다.다시 말하면 사상들은 고열에 인한 환각과 같이 주위를 맴돌고 나를 진동시키는 하나의 전율케 하는 힘인 것이다.사상은 그 자체로 자신을 위해 육체를 갖추게 되어,신,황제,법왕,조국 등과 같은 유령이 되었다.나는 사상들이 육체화된 것을 깨부순다.그래서나는 사상들을 나에게로 되찾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나만이 육체를 갖춘 존재이다.그리고 이제 나는 사상이 나에게 존재하는 것으로서,나의 것으로서,나의 소유로서 세계를 받아들인다.즉 나는 모든 것을 나와 연관시킨다"
3 사회적 아나키즘
3.1 아나코 콜렉티비즘
미하일 바쿠닌이 창안한 방식으로 단순히 이전까지의 아나키즘이 생산수단의 관리와 분배에 있어 별 방법이 없었다면 바쿠닌은 당대의 좌파 사상가들 및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집산주의(콜렉티비즘)적 방식을 결합한 것으로서 개인주의와 콜렉티비즘의 방식의 혼합으로 평가되곤 한다. 공산주의적 집산주의가 증산에 의한 개개인의 풍요를 가져온다면 아나코 콜렉티비즘은 보다 소규모의 자급자족적 공동체를 주창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증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사적 생산수단을 공유하다 보면 각자 충분히 쓸 만큼 잉여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사상의 가장 흠좀무한 속성은 사적 생산수단의 공유다. ㅎㄷㄷ. 이는 프루동 시절부터 '소유는 도둑이다'[12] 라는 사상에 기인한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사적 생산수단 같은 거 없이도 자유롭게 개인간의 교역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상당부분 사회주의와 비슷한 점이 많으며 어떠한 권위나 국가스러운 기구의 간섭도 배제하며 구성원들간의 자발적인 결정에 따라 집단의 방향을 결정할 것을 주장한다.
상당부분 아나코 코뮤니즘이랑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3.2 아나코 코뮤니즘
무정부공산주의. 이 사상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이다. 이 사상은 생산수단의 공유조차 거부하며 아예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 계열에선 화폐의 폐지도 주장했다. 크로포트킨은 사유제가 개인 억압의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타파해야된다고 본 것.
다만 그는 소유권(목적물을 전면적,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물권) 자체는 부정했지만 점유(possession.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 사회통념상 물건이 어떤 사람의 지배하에 있다고 하는 객관적인 관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과 소유를 상당히 이상적으로 바라봤다는 평가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공동체인 자주관리코뮨을 사회 혁명의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코뮨들이 연합하여 집합체를 형성하여 자유연합 같은 형태를 구성할 것을 주창한다.
옘마 골드만도 아나코 코뮤니스트로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다. 1932년 2월 1일자 동아일보.
3.3 정강주의
Platformism
정강주의는 네스토르 마흐노(Nestor Makhno)의 이론을 근거로 하는 하나의 경향으로서[13] 국제 무정부주의 내부에 있는 무정부주의자들이 혁명적 강령 주변에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화된 사례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마크노의 지도력 아레 집결하여 동맹군과 백군 상대로 싸웠던 우크라이나 혁명적 봉기군과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공화국과 동맹을 맺어 프랑코 상대로 싸운 전국 노동 연맹이다.
러시아 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제정 러시아에는 모스크바 중심으로 적지 않은 수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 세력 또한 컸으나 막상 10월 혁명이 터지자 기존의 연대 조직이 없었던 아나키스트들은 자폭 테러를 포함한 적극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볼셰비키들에게 털리거나 흡수당했다. 이러한 상황을 본 우크라이나 일대의 아나키스트들은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이끎 아래 우크라이나 혁명적 봉기군이라는 크로폿킨의 노선을 따르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 토지 재분배, 농민들과의 협력을 기반한 무장 조직을 만들어 당시 우크라이나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던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 그리고 안톤 데니킨 장군의 백군 상대로 혁명 전쟁을 싸우며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대를 3년간 장악하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의 시도는 결국 동맹을 맺었던 볼셰비키 적군의 배신과 공격으로 인하여 와해되었으나 추구하는 노선이 다른 아나키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관심 같는 한 사회의 특정한 문제를 기반으로 연대하여 통합 세력을 만든다는 이 노선은 20년 뒤 스페인 최대 노조였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초기 바르셀로나의 쿠데타군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스페인 공화국의 생존에 지대한 기여를 한 전국 노동 연맹-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합(CNT-FAI)이 계승하였다.[14]
정리하자면 아나키즘 특유의 분산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통된 혁명적 정강하에 이론적, 전술적, 그리고 조직적인 구체적인 입장들에 기초한 "무정부주의 총연합" 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는 하나의 정치적 전술이라 볼 수 있다.
근데 아나키즘이 총 연합으로 활동한 적이 없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3.4 아나코 생디칼리즘
흔히 혁명적 조합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무정부조합주의는 아나키스트들의 노동자 조합 사상으로 기업은 노동자들이 구성한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평의회가 운영해야 하며 자본가가 그에 대한 권위를 갖는 것을 철폐하자는 주장하는 사상이다.
현대에는 노동자 자주경영 이론으로 남아있으며 앞서 말한 스페인 노동조합 전국 노동 연맹의 경우 아나코 생디칼리즘의 직접적인 계승자들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키친아트가 노동자 자주관리 이론을 적극 활용하여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경우가 있다. 사례.
3.5 크리스천 아나키즘
문자 그대로 크리스트교 신앙을 기반으로 세속 권력의 억압을 거부하며 참된 신앙을 가진 교인들의 상호부조를 통하여 하느님의 권력만 권력으로 인정하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성립하자는 주장이다. 크리스트교 아나키스트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의 <하나님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는 이 사상의 메시지를 가장 핵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과는 다르다 여호와의 증인과는!
다른 책으로는 자끄 엘륄의 <무정부주의와 기독교>를 추천한다.
3.6 아나코 패시피즘
아나코 패시피즘은 무정부평화주의로 번역되며 일군의 아나키스트 평화주의자들의 사상이다. 시민운동의 한 전술인 비폭력 저항(흔히 말하는 무저항운동)이나 시민불복종은 아나코 패시피스트들의 전술로 유명하다.
4 20세기 이후 개발된(또는 아직도 개발되고 있는) 아나키즘
4.1 우파 아나키즘
4.1.1 아나코 캐피탈리즘 (미국식 아나키즘)
대표적인 우파 아나키즘으로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종착역임과 동시에 선술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후계자, 그리고 미국식 아나키즘. 쉽게 말하면 자유시장경제를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쪽. 당연히 유럽의 일반적인 좌파 아나키즘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은 자유시장과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부의 재분배를을 주장하는 좌파 아나키즘들은 공산주의의 그것과 다를게 없으며 필연적으로 권위적인 정부에 다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좌파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이라고 부를수도 없다고 까고, 좌파 아나키스들은 우파놈들이 전통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항해온 아나키즘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깐다.(...) 예를들어 이런거 [15]
유럽의 주류 아나키즘과는 다르게 미국의 아나키즘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경향이 다분하며, 이 때문에 주류 아나키즘이 보통 좌파로 분류되는 반면에 미국의 아나키즘은 보통 우파로 분류된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자본주의적 아나키즘으로서 정교하고, 호소력있게 발전시킴으로써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새로운 철학적 토대와 현대적 실현방안을 제시한 미국의 경제학자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는 스스로를 "우파지향적 아나키스트"라고 지칭했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개인주의적 경향 때문에 미국의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스트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이렇게 파시스트로 오해받는 대표적인 학자가 선술한 로스바드의 직계 제자라고 볼 수 있는 한스 헤르만-호페(Hans Herman-Hoppe)이다. 호페는 로스바드의 방법론을 이어받아 자연법에 기반해 자본주의적 아나키즘을 발전시켰으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기능을 완전히 부정하고 순수 시장으로만 유지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것을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Democracy : The God That Failed)가 있다.
다만 모든 미국의 리버테리언 아나키스트들이 벤자민 터커, 라이샌더 스푸너, 머리 로스바드를 필두로한 철학적 아나키스트들은 아니다. 데이비드 프리드먼처럼 철학적 방법론을 회의적으로 보고 경제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공리주의적 측면에서 어째서 무정부 체제와 순수시장경제가 더 효율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주며 경제의 발전을 이끄는가를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로스바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경제학적 아나키스트들은 사실상 오스트리아 학파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특이하게 프리드먼은 엄연히 주류 경제학에 속하는 시카고 학파의 입장에서 아나키즘을 옹호한다.
미국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그를 계승한 자본주의적 아나키즘이 유럽의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에 비해 가지는 장점은 이론체계가 보다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아나키스트들이 주로 혁명가로서 행동한데 반해, 미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주로 법학자로서, 경제학자로서 행동했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적어도 이론상으로 미국의 자본주의적 아나키즘 이론은 충분히 현실의 국가체제를 대체할만한 체계적이고 거시적인 정치/경제학적 이론을 구축해놓은 상황이다. 미시적인 부분이 부족해서 그렇지.. 더군다나 사적 소유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특징을 이용해서 아나키즘을 구현하려고 하는 시도는 사적 소유를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침해나 죄악으로 간주하는 유럽의 시도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풀어내는데 있어서 개인에게 주도권을 쥐어줬다는 점에서 모든 권위와 강권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적 특징에 보다 충실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술했다시피 미국의 아나키스트들이 우파경향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아나키스트 행동가들은 자유당이나 공화당과 연대하여 행동한다. 유럽의 아나키스트들이 시리자같은 급진좌파들과 함께 연대하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굉장히 충공깽... 공화당과 연대하는 미국 아나키스트로는 대표적으로 로스바드의 제자이자 공화당 전 하원의원의 지적인 스승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미제스 연구소의 류 로크웰이 있다. 2015년 7월 말 기준으로 페이스북 커버 페이지가 아나키즘의 상징인 서클 A... 그외에도 전직 군인이자 반전운동가, 마약합법화 운동가이며, 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미국 총선에 출마하려고 했던 아담 코케시 또한 33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만 이쪽은 학자성향은 아니고 행동가성향.
그외에 미국 아나키즘의 이론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나무위키의 자유지상주의 문서나 오스트리아 학파 문서 참고. 전자의 경우 로버트 노직의 최소국가주의적 자유지상주의가 아니라 로스바드의 아나키즘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작성된 문서이며, 후자의 경우 미국 아나키스트들의 사회과학적 입장과 사실상 완전히 동일한 시장근본주의적 경제학파이다.
- 아고리즘(Agorism)
아나코-캐피탈리즘 사상의 일부로서, 정치 행동을 하는것 그 자체가 바로 자유의 억압이며, 반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사상을 의미. 쉽게 말해서 정당을 창당하고 의회를 만드는것 자체가 반자본주의이고,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고리스트들은 자본주의가 옳다면 알아서 국가는 실패하고 자연히 무정부 자본주의 사회가 실현될 것이며, 여기에 있어서 어떠한 정치 행동을 하는것 자체가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4.1.2 민족 아나키즘(Völkisch Anarchism)
연원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재한 민족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민족정서를 기반으로 한 민족공동체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일반적인 우파와 비슷한데 여기에 국가나 여타 다른 강제적인 단체의 개입을 반대한다. 각 민족은 알아서 각자의 공동체를 건설하면 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이는 인종주의적 색채를 띄었던 우파 급진사상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종종 대안 사회주의라고 불린다. 신국가사회주의?
가장 유명한 단체로 영국의 블랙 램(Black Ram)이 있는데 이들은 아나키즘과 신이교도주의(neo-paganism), 독일의 민족 국가주의 사상을 혼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에 의한 지배와 국가에 의한 지배 모두를 넘어서길 원한다고 주장한다.
4.1.3 내셔널 아나키즘
반자본주의적, 반스탈린주의적, 급진 우파 사상이다. 이들은 상호부조의 민족공동체를 지향한다. 위에 기술한 민족 아나키즘과 별 차이는 없지만(심지어 내셔널 아나키즘도 번역하고 보면 민족무정부주의이기도 하고...)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났던 보수 혁명(보수주의적 혁명운동. Conservative Revolutionary Movement)[16]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좀 더 반공주의적 색채가 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점 때문에 좌파들에게는 크립토 파시즘(crypto-fascism. 비밀 파시즘)[17]이라고 불리고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참전용사이자 보수주의 사상가로 유명했던 에른스트 융어와 일본의 괴짜 정치인 토야마 코이치가 여기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4.2 아나코 페미니즘
아나코 페미니즘은 세계가 사실상 남성 중심주의적인 세계 질서를 뒤엎기 위해 페미니즘적 입장으로 변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종종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4.3 녹색 아나키즘
반인본주의적인 녹색사상을 주 테마로 하는 환경운동 아나키즘이라고 보면 된다.
4.4 아나코 프리미티즘
무정부 원시주의. 아나코 자연주의에서 더 나아가 반 문명을 주장한다.
4.5 아나코 자연주의
아나키즘적 자연주의를 뜻한다. 채식주의, 자유연애, 나체주의로 유명하다.
나체주의에서 솔깃한 사상
4.6 사회생태학
머레이 북친이 주장한 사상.
4.7 후기 좌파 아나키즘
기존의 좌파들의 아나키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고 막스 슈티르너와 상황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주의적 아나키즘 일파를 말한다.
4.8 후기 아나키즘
후기 구조주의와 혼합된 아나키즘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자파티스모(사파티스타 민족 해방전선의 사상)까지 포괄하는 사상이다.
4.9 소요 아나키즘
insurrectionary anarchism
과거 일리걸리즘(illegalism. 불법주의?[18])이라는 19세기~20세기 아나키스트의 폭력투쟁 전술을 이어받은 조류. 사상이라기 보다는 전술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민중봉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좌파적 사상의 연원을 따르며 직접행동의 가장 강력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라 하면 대부분 폭탄 테러나 파괴공작을 일삼는 이미지가 많은데 이것은 소요 아나키즘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일리걸리즘 시절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폭탄 테러나 조직범죄가 이러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 활동했던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집단 본노트 갱이나 루이지 갈레아니(Luigi Galleani)를 추종하여 월 스트리트 한복판에서 벌어진 월 스트리트 폭파사건 등 당시에는 이러한 전술이 매우 유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일리걸리즘의 기본 모토는 직접행동이며 이는 기층민중이 어떠한 기관이나 단체의 영도가 아닌 자결과 자주에 의한 행동을 통해 봉기하면 사회혁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19] 이는 거대한 사회 변화나 혁명을 이야기할 때 필수불가결한 현상을 이야기 함에 있어 민중의 움직임을 시작이자 끝으로 보는 혁명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일리걸리즘은 이러한 소요와 폭동을 계속해서 일으키면 연쇄작용으로 뒤따라올 혁명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일리걸리즘은 보다 조직적이고 치밀한 폭동과 파괴를 이끄는 소요 아나키즘으로 진화하게 된다.[20] 소요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반이 다 지나고 나서 생겼다고 전해진다. 사실 일리걸리즘하고 별 차이는 없거든
이들은 거대 자본으로 상징되는 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의류, 은행 등의 점포를 습격하며 심지어 때로는 은행강도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21] 이들 행동의 근거는 '그런 거 때려 부셔도 어차피 직원들 돈이 아니라 자본가 돈으로 땜빵한다' 라든가 '눈에 보이는 적부터 공격해야 한다' 라든가 하는 것이다. ㅎㄷㄷ.
이들은 이렇듯 무분별한 파괴행위로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려는 보수언론의 떡밥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서 욕을 엄청 먹고 있다. 영화 《배틀 오브 시애틀》에 잘 나와있다.
이들은 2000년도 시애틀의 반 WTO 시위 때 활약했으며 2008년 그리스 폭동 때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그리스 폭동 당시에는 경찰이 일찌감치 폭력과 총격으로 시위대를 탄압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정당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ㅎㄷㄷ. 아나코 커뮤니즘의 상징기인 적백기나 검은 소련기를 든 시위대가 참가했다.- 이동 ↑ 특히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며 줄창 깠다.(...)
- 이동 ↑ 그의 첫 아내는 현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자 프랑스 혁명에서 중요한 인물인 메리 울스톤크래프트(1759~1797)이며, 딸은 바로 그 영문학에 있어서는 SF의 효시라고 볼수있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1797 ~ 1851)이며, 그리고 그의 사위는 조지 고든 바이런, 존 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퍼시 비시 셸리(1792 ~ 1822)다.
- 이동 ↑ 내가 테제를 제기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먹어치우며, 내가 그것을 먹어치울 때만이 나는 '나'다...... 내가 나 자신을 먹어치운다는 사실은 그저 내가 존재함을 보여줄 뿐이다. - 막스 슈티르너
- 이동 ↑ 이것이 위에서 언급된 '사회혁명'의 대략적인 개념이다.
- 이동 ↑ 해당 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나에게 나 이상의 것은 없다."
- 이동 ↑ 그의 저서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주로 청년헤겔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 이동 ↑ 니체는 슈티르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 이동 ↑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 무언가 인간적인 것이 단지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건 결국 또다른 유령이다.
- 이동 ↑ '인간적인' 이라는 유령이 정신의 독재자가 되려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 이동 ↑ 슈티르너는 당대에 새로이 등장한 인간주의적 사상, '유적존재'라는 개념이, 또다른 숭배현상이라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숭배는 또한 결국 개인을 지배 할 것이고 자기소외의 길로 이끌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이것을 종교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는데, '인간'이라는 형상이, 종교, 국가, 자본, 같은 것들이 하는 것과 동일하게 개인을 억압하며 숭배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당대 청년헤겔학파의 주류 입장에 대한 중대한 비판이 된다.
- 이동 ↑ 아마 이 그림이 슈티르너가 자유를 비판하고 소유로 대체한 이유를 간편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이동 ↑ '노예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내가 한마디로 '그것은 살인이다'라고 답한다면, 그 생각은 금방 이해될 것이다. 한 인간에게서 사상, 의지 그리고 인성을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은 바로 생사여탈의 권력이고, 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그를 살해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말을 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 대해 '그것은 도둑질이다'라고 답할 때마다,내 답변이 잘 전달되지 못했다는 노파심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사실 두번째 답은 첫번째 답이 모양을 바꾼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 소유란 무엇인가, 푸르동
- 이동 ↑ 물론 이것도 재외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에서 발행한 한 저널의 아나키스트 일반 연합 조직의 정강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
- 이동 ↑ 그리고 손 잡은 공산주의 정부에게 뒷통수 맞아 털리는 말로 또한 그대로 계승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단순히 적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너진 우크라이나 혁명군과 달리 CNT는 적어도 거점이었던 바르셀로나와 아라곤 일대에서는 정부군을 압도하는 세력을 자랑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부가 내전 중의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진 투항했다는 것이지만.
- 이동 ↑ 흑황은 아나코 캐피탈리즘의 상징
- 이동 ↑ 생각보다 오래된 사상으로서 일제시대 항일 무장투쟁노선을 따르는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적지않게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여러 국가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반대하는 '제3의 위치(third position)' 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 이동 ↑ 파시즘인데 파시즘 아닌 체 하는 사상.
- 이동 ↑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마땅한 번역어가 없어서(...)
- 이동 ↑ 일리걸리스트들은 아나코-생디칼리즘의 조합주의조차 거부했다!
- 이동 ↑ 반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일리걸리즘은 소영웅주의나 모험주의로 불리면서 철저히 폐기되었다.
- 이동 ↑ 영화 아나키스트에도 조직원들이 은행을 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강도 행각을 두고 구성원들이 갈등하는 것은 생 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