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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
이름 | 아즈마 키요히코(あずま きよひこ) |
본명 | 아즈마 키요히코(東清彦) |
출생일 | 1968년 5월 27일 |
출신지 | 효고 현 타카사고 시 |
활동 | 만화가 |
링크 | 블로그 트위터 |
1 개요
あずま きよひこ. 본명은 東清彦동청언(あづま きよひこ). づ를 ず로 고쳤을 뿐이다. 발음은 똑같다. 아니 그것보다도 성이 東씨라니 동씨 성의 순수 한국인[1]
일본의 만화가. 효고 현 타카사고시 출신. 그래서인지 아즈망가 대왕에서는 같은 칸사이 지방인 오사카를 이용한 드립이 나왔고, 요츠바랑! 배경도 효고현 타카사고 시를 모티브로 한 곳이 많다. 맨 뒷 글자가 "코"라서 여자인줄 아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사진으로 보다시피 엄연히 남자다. 정확히 말하면 히코(彦)는 남자 이름 뒤에 붙는 글자다. 예를 들면 비마니 아티스트인 이즈미 무츠히코라든가, 같은 만화가인 아라키 히로히코의 예명도 히로히코(飛呂彦)이며, 양방언의 일본식 이름 역시 '료 쿠니히코'다.
2 상세
출세작인 《아즈망가 대왕》이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즈망가 대왕》의 히트 이전에도 프로 디자이너로서 자잘한 일거리를 오랫동안 맡아 왔다. 최초의 프로 데뷔는 모 야겜의 캐릭터 디자이너라고 하며, 그 외에도 잡다한 앤솔로지 코믹과 파이오니어 비디오 계열 애니의 LD 특전 만화 등을 그리며 활동한 동인작가 출신. 그 중에서 파이오니어계 앤솔로지를 묶어 만든 결과물이 《아즈망가》이며, 이후 '아즈망가 대왕'이라는 제목의 유래가 되었다. 또한 리프 게임을 무척 좋아하여 리프사의 캐릭터를 이용해서 만든 TCG카드게임인 리프파이트 TCG의 초기 원화를 전담하다시피 하기도 했다.
《아즈망가 대왕》의 대히트 이후 차기작인 《요츠바랑!》도 성공적으로 연재해 가며 확실한 치유계 만화가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아즈망가 대왕》과 《요츠바랑!》 관련 저작권을 관리하기 위한 독립 회사인 <요츠바 스튜디오>를 차리고 대표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모에계에서 시작해 《아즈망가 대왕》의 성공으로 4컷 만화,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현 일본 만화 및 애니업계의 트렌드 두 가지를 한번에 정립했음에도 정작 그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서 인정받았다는 게 독특하다.
2012년부터는 문예지 <다빈치(ダ・ヴィンチ)>에서 아사노 마스미가 연재하는 에세이 "ヒヨコノアルキカタ"의 삽화를 담당하고 있다.
요츠바랑! 이후에는 직접 캐릭터 사업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연재주기가 굉장히 늘어지고 있다. 2014년에는 요츠바랑이 단 한번 연재되었을 정도. 휴재왕과 버금 간다.
3 흑역사?
동인지 활동을 할 때의 예명이 조노쿠치 조지(序ノ口譲二), 서클명 A-ZONE인데, 이 명의로 성인용 상업지에 투고했던 적이 있다. 당시 투고했던 7작품이 한 권으로 엮여 1998년에 《음마의 난무》(淫魔の乱舞)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당시 작품의 특징은 유두의 과장된 발기 표현. 유두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까지 발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본인은 그 시절을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절판된 《음마의 난무》가 각종 경매 사이트에서 희귀본 취급을 받으며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했으니 역시 세상 일은 모를 일이다. 다만 이는 한 때의 한정판 몰림 현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작품 가치가 낮아서 그런지 2013년 기준으로는 가격이 확 다운되어 있는 상황. 애초에 2ch 등에서 내린 평가가 아즈마 키요히코의 에로는 에로가 아니다이기도 하고...
회수! 음마의 난무는 회수합니다! 이후로는 그냥 작가 놀리기용 떡밥 정도로 희화화되었다. 애초에 일본에서 19금 상업지 그리다가 메이저 데뷔하는 경우가 매우 흔한 편이기에 그 자체로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에로가 아닌 에로'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그것이 메이저 데뷔와는 별로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네타거리가 되었던 것.
4 작화의 변경점
옛날 덕후라면 한눈에 알아보겠지만(…), 정식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아즈망가 대왕》 당시에는 투하트의 캐릭터 디자이너 미나즈키 토오루의 카피 그림체였다. 실제로 연재 만화가가 되기 이전까지 투하트의 앤솔로지 코믹을 그리다가 데뷔한 케이스. 아즈망가 대왕 신장판에서 그렇게까지 대량으로 집요하게 원고 가필을 해댔던 것도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기 위한 일종의 세탁이었다.
《요츠바랑!》을 그리는 지금까지도 투 하트의 영향은 여기저기 남아있는 편이나, 디포르메 형태의 그림은 완전히 독창성을 가지고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인물 묘사나 디포르메가 단순해지는 대신 배경이 무서울 정도로 디테일해지고 있다. 트레이싱 레벨이 단행본 한 권 단위로 점점 진화하는 걸 볼 수 있을 정도.
게다가 《마법선생 네기마》처럼 컴퓨터 작업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완전 수작업이며, 스크린톤과 붓펜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순전히 기본 펜 테크닉에 중점을 두고 묘사하고 있다. 스크린톤은 역광 들어오는 그림자나 옷(이것도 드물다) 정도에나 가끔 사용하는 정도.
물론 배경 작화는 어시스턴스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즈마가 직접 작화를 담당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고, 다른 작품에서도 점점 수작업 배경의 비중이 늘어나는 걸 감안하면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인물 묘사도 그에 비례해서 자세해지는 경향인데 이 경우는 그 반대라서 주목받는 것이다.
2015년 7월 26일에 열리는 원더 페스티벌 2015에서 에반게리온 20주년 기념 일러스트를 그렸는데, 이 시점까지도 그림체를 계속해서 바꾸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진정한 노력형 만화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2] 해당 캐릭터들은 원더 페스티벌의 마스코트 원더와 리셋으로, 두 번째 그림은 요츠바랑의 그림체를 썼지만 위에 링크되어 있는 첫 번째 그림은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전혀 새로운 애니메이션풍의 그림체를 사용.
5 그 외 트리비아
아즈망가 대왕의 제목은 아즈망가 + 전격대왕이라는 무성의한 조합. 작가 자신이 직접 지은 제목이 아니라, 편집부에서 마음대로(!) 정해준 제목이라서 작가 본인은 이 제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 대놓고 연재분 1화 1페이지에서 타니자키 유카리의 입을 빌려 "이 제목 싫다..."하고 까고 있다.
이름과 그림체 때문에 국내에서 여러 가지 오해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며, 아래는 아즈망가 대왕이 유행할 당시(=아즈마 키요히코가 본격적으로 알려질 당시) ExCF에서 일어났던 실화.
아즈망가 덕후였던 모 회원 曰"이런 만화를 그리는 아즈마 키요히코씨는 분명 귀여운 여자일꺼야!"
라며 아즈마 씨의 사진을 찾기 위한 대모험을 떠났다.며칠 후
"아즈마 키요히코 사진 찾았다"
라는 글이 올라왔고그후 그 사람은 종적을 감췄다.(…)
여러모로 이 작가의 정반대적 존재다. 작품세계부터 성별논란까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토호쿠 대지진의 영향으로 CD케이스가 왕창 엎어지는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트위터로 옮겨가서 인지, 블로그의 업데이트는 2011년 말 이후 중단된 상태. 트위터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투하트의 호시나 토모코가 최애캐인 듯하다. 자세한 사항은 호시나 토모코와 미즈하라 코요미 문서 참고.
작품 내 여성 캐릭터 중에서 단발, 특히 숏컷이 많다. 토모, 카구라, 카오링, 치히로, 후카, 아야세 부인, 토라코, 다리미, 미우라, 미우라 엄마 등등... 엑스트라들도 단발이 많다.
사생활에 대해선 알려진 게 없지만 2011년 11월 27일자 블로그 글에 따르면 "취재용으로 찾다가 귀여운 애들용 의자를 봤는데 우리うち[3]는 요새 짐도 줄이고 있는데다 아직 아이도 없어서 사기엔 좀..."라는 걸 보면 기혼자(혹은 사실혼)이긴 하지만 아이는 없는 것 같다.
6 작품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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