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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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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qWllFL.jpg | |
이름 | 원희룡(元喜龍) |
출생 |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 출생 |
직업 | 제37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
학력 | 제주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력고사 수석, 법대 수석입학)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 전공 석사 제주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 |
선수 | 3선 (16,17,18대 국회의원) |
가족 | 배우자 강윤형[1], 슬하 2녀 |
종교 | 개신교 |
링크 | 공식사이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2015년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로 재임 중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2 엄친아 유년시절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은 제주도에서 지내왔다. 이때 공부로 전국수석을 놓치지 않으며 학력고사까지 수석을 차지하는 흠좀무한 실력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적이 있었다.[2][3] 더욱 대단한 것은 그가 살던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낙후된 곳이었다. 대도시의 내노라하는 명문가의 학생들이 우수한 인프라 속에서 공부하는 상황에서, 원희룡은 과외 한 번 받아보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서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4]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진학하면서 "장차 대한민국을 위해 법사회학자가 되고싶다." 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독재의 현실을 보며 8년동안 야학과 운동권에 뛰어들기도 했으며,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해보기도 했다.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할 시기에 이르자 사회인으로서 일해보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법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1990년에 시작해 단 2년밖에 안되는 준비기간동안 사법시험를 수석으로 패스하는 흠좀무한 역량을 다시 선보이기도 했다.[5] 그리고 사법연수원에서 최상위권인 5등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군복무는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잠시 논란이 되었으나, 자신의 발가락을 인증하며 해명했다. 어릴적 리어카로 장사를 하다가 발가락이 절단되어 봉합하는 과정에서 괴이한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아들이 다치자 급히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했지만, 낙후된 시설때문에 제대로 된 진료가 어려워서 결국 기형으로 남게되었다. 사실 원희룡은 저거때문에 지체장애인(2급)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래서 면제가 가능했던 것. 장애인 군면제라 병역 관련에서는 나름대로 까임방지권 획득자이기도 하다.
이런 경력 덕에 공부의 신이라는 타이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나중에 국회의원 시절에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제주도 출신 중에서 중앙권력의 심층부에 도달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제주도민들 사이에서의 명망이 대단히 높다.
3 정계
사법고시 통과 이후 검사 및 변호사로서 지내오다가 한나라당의 당내 혁신 차원에서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로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계를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 지역구에 공천되어 새천년민주당 박범진 후보를 꺾고 당선에 성공, 젊은 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개혁적이고 소신있는 언행들로 유명해졌는데, 남경필, 정병국과 함께 한나라당의 개혁을 주도하는 소장파 역할을 했다. 이후 같은 지역구를 유지한 채로 국회의원은 3선에 성공하고 2004년에는 최고위원에 선출되는 등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후 국회의원에서 탈피하여 행정으로 진출하고자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자신의 출신지인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본인도 대권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는 중이고[6], 현재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중이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 때문에 힘들다는 평이 대다수. 하지만 젊은 나이인만큼 2022년 대선까지 노릴 수 있는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원희룡지사의 플랜은 제주지사로써 행정경험을 쌓은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컴백한 후 대선에 출마한다는 계획을 짜놓은 상황.
4 논란
4.1 노상방뇨 시비
사법연수원생이던 1994년 9월 15일 밤에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모 가게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다가 이를 나무라는 가게 주인을 폭행하고, 파출소에 연행되자 '사법연수원생을 우습게 보지 말라'라며 파출소 기물을 파손하여 신문 기사에 오른 바 있다.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실제 노상방뇨를 한 것이 아닌데 연행되자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으며, 부끄러운 과거로서 두고두고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4.2 전두환 세배 논란
좋은 의도로 행해졌지만, 의도치 않게 흑역사가 되어버린 사건(...)
"이제 그만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녹여가야 한다" 라는 말을 남기고 연초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세배를 드린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사실 다음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도 방문하여 세배를 드렸고, '얼었다 녹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황태를 선물하여 화합의 역사를 가진다는 취지로 행했지만, 포커스는 전두환에게만 집중되면서 논란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고 결국엔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7]
과거의 상처가 아직 너무나 생생하고, 이를 받아들일 여건이 안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오해를 불러 일으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국회 기자회견 中
5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양천 갑) | 한나라당 | 52,099 (51.2%) | 당선 (1위)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양천 갑) | 한나라당 | 69,056 (56.6%) | 당선 (1위)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양천 갑) | 한나라당 | 49,847 (52.1%) | 당선 (1위) |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새누리당 | 172,793 (60.0%) | 당선 (1위) |
6 기타
스타크래프트를 많이 본 팬이라면 알겠지만, 임요환의 팬이다. 임요환이 나오는 야외 경기에 종종 나와서 경기를 보고 가곤 했다. 전병헌 의원 이전에 e스포츠 팬들에게 가장 이미지가 좋았던 정치인을 꼽자면 아마도 이 사람일 듯. 실제 공군에이스 창단에 힘을 쓴것 같다.기사- ↑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 참고로 1982년 차석이 바로 장하준이다.
- ↑ 이때의
목에 힘 들어간TV 인터뷰 장면이 뒤늦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 그래서 서울대 입학 뒤에 동기들이 털어놓기를, 원희룡 때문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고 한다. 즉슨 저런 제주도 시골마을에서 수석이 나왔는데 내가 너한테 못해준게 뭐냐면서...
- ↑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그의 사법시험 수기를 읽을 수 있다. 꼼꼼하고 처절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교과서를 꼼꼼히 읽었다는 말은 빼놓지 않는다.
- ↑ 이미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을 정도.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에 밀려 거수기이긴 했지만 - ↑ 양강이었던 이명박, 박근혜 후보 때문에 실제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적었지만,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표를 갖고 오면서 입지를 굳히기 바라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사실상 경선에서 리타이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