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천재 이안》(원제: Being Ian)과는 상관없다. 캐나다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는 EBS에서 방송하였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
감독상 | ||||
제77회 (2005년) | → | 제78회 (2006년) | → | 제79회 (2007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 → |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 → | 마틴 스콜세지 (디파티드) |
제84회 (2012년) | → | 제85회 (2013년) | → | 제86회 (2014년) |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아티스트) | → | 이안 (라이프 오브 파이) | → |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 ||||
제72회 (2000년) | → | 제73회 (2001년) | → | 제74회 (2002년) |
페드로 알모도바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 → | 이안 (와호장룡) | → | 다니스 타노비치 (노 맨스 랜드) |
1 개요
중국어 이름은 李安 (Li An)이고 영어 이름은 Ang Lee이다. 영미권에서의 이름 표기 및 호칭이 좀 깨는데, 표기가 Ang Lee. 발음으론 앵 리가 된다.[2]한국에서는 그의 중국 이름의 한자 표기를 우리 나라 식대로 읽어 이안 감독이라고 부른다.
2 소개
미국 할리우드의 큰 자본의 영화를 만드는 몇 안 되는, 그러면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흥행도 성공시키는 사실상 유일한 아시아계 감독.
상복도 많은 덕분인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감독상을 2번이나 받고,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최고상을 각각 2번 수상했다.
초기 작품인 《쿵후 선생》,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까지는 대만에서 찍다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1995년에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감독하고 이 작품이 상당한 호평을 받아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까지 수상하며 단박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와호장룡》이 북미에서만 1억 달러나 버는, 할리우드의 외국어 영화 중 최고의 흥행을 하면서 할리우드 영화계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고, 2006년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까지 탈 정도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인 영화 감독이다. 다만 해당 작품으로 작품상까지 받을 것이라고 보였으나 뜬금없이 크래쉬가 작품상을 수상했던 점이 아쉬운 점이다.
전반적으로 1990년대 등장한 감독들 중에서도 고전적인 성향이 강하며, 요새 보기 드문 올라운더에 가깝다. 서부극에서 에로틱 스릴러, 홈 드라마, 사극, 무협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포괄하며 대중적으로도 먹힐만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번째 감독상을 수상. 기립박수를 받았다. 문제는 해당 작품의 CG 외주업체가 가격후려치기로 인해 도산했는데, 시상식장에서 이에 대해 미안해 하거나 고마워 하진 못할망정 CG 비용에 대한 절감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그 뒤로 CG 업계에서 이안 감독은 볼드모트 취급 받는다고 한다. 또 영화에서 일본해 표기가 나와 국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색, 계에서 양조위와 탕웨이의 섹스신을 3일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도 진짜 완벽주의자들보단 덜하다
6년 간 살림을 도맡아 하며 시나리오만 집필했으며, 당시 교사였던 아내가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한다.(아내 제인 린은 저명한 미생물학자) 이때 아내가 '당신은 영화감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 신경쓰지 말고 열심히 해' 라고 이야기했고, 그 후 중국계 최고의 영화 감독이 된다는 훈훈한 스토리를 가진 감독.
정치적인 성향이 중국의 높으신 분들에 눈 밖에 나서 그런지 중국에서의 감독작은 많지 않다. 그러면서 대만계 이안을 중국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아들인 메이슨 리는 1990년 생으로,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주연을 맡은 영화는 없고, 루시와 행오버 2에서 조연을 받은 바 있다. 사진을 보면 정상훈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