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섭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파일:/image/358/2011/02/08/44.jpg

李台燮
1939년 05월 21일 ~

대한민국의 전 화학공학자, 정치인, 관료이다.

1939년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상황에서도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학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를 다녔다.

이후 대우엔지니어링 사장, 풍한방직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거구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해당 선거에서 아폴로 박사 조경철(무소속), 정운갑(신민당) 등과 대결하였는데 당시는 중선거구제라서 정운갑에 이어 2등 당선되었다.

전두환이 집권한 후인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사회당 고정훈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장,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민주한국당 이중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듬해인 1986년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 을 지역구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1990년 유흥수와 사돈을 맺었다. 그러나 1991년 김태식, 오용운, 김동주 등과 수서 비리에 연루되어서 이듬해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 을 지역구에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듬해인 1997년 이병희 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수원시 장안구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종희 후보에 패해 정계를 은퇴하고 라이온스 클럽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