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積滯.
1 개요
특정한 직급이나 계급에 인원이 몰리면서 승진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2 원인
보통 인사 제도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한다. 티오가 실질적인 인원 운용을 감안하지 못 하거나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 할 때 발생한다. 가령 어떤 사장이 원래 한 해에 상무를 5명씩 선발했는데 특정한 한 해에만 50명 선발했다고 치자. 그러면 10년 동안은 부장들이 상무로 승진하지 못 할 것이다.
인사적체의 대부분은 중간관리직이 두툼해지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유도하는 게 필요한데 민간에서도 쉽지 않고 공무원이나 군대의 경우엔 정말 힘들다.
3 폐해
권위 문서에는 권위와 권력의 차이가 설명되어 있다. 인사적체가 심해지면 중간관리직이나 중견급 실무자들의 수가 많아지지만, 승진을 포기한 이들은 대개 조직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어버린다. 이러면 조직 입장에서는 효율이 낮아진다.
부하 입장에서 보면, 승진을 포기한데다 일도 포기한 이들은 대개 부하들로부터 승진이 뒤집힐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철저한 서열의식과 권위의식을 요구하면서 부하를 밟는 데 온 정성을 쏟는다. 이러면 유능한 부하가 이직을 하게 된다.
4 사례
4.1 공무원
4.1.1 일반직 공무원
6급이 대표적이다. 보통 6급까지는 근속승진하게 되는데 6급으로의 근속승진은 대상자의 20%까지만 가능하다는 게 함정 사무관부터는 자리가 나야만 승진임용[1]이 가능하기 때문에 병목 현상처럼 인사적체가 이뤄진다. 다만 하부 행정기관이 독립해 나가거나 (예- 충남 연기군 교육지원청이 세종시교육청으로 독립) 상부 행정기관에서 독립해 올때 (예 - 경상남도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 인사적체가 어느 정도 해소되기는 한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인 시가 광역시로 승격될때 구청은 자치구로 전환되므로 대폭의 인사 승진이 이루어 진다. 왜냐하면 기초자치단체하에서의 구청은 소속시와 독립되지 않은 하부 행정기관일 뿐이고 구청에서의 최고위급이 4급까지지만 광역시에서의 구청은 독립된 기초자치단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적인 해소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을 안뽑을 수도 없고?
4.1.2 경찰
경위에 인원이 몰리면서 인사적체가 발생한다. 순경부터 시작해서 경위로 올라오는데는 20년쯤 걸리지만 매년 경찰간부후보생, 경찰대 졸업자가 유입되기 때문에 항상TO가 모자란다. 하지만 군대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데다가 경찰은 경정부터 계급정년을 적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경출신 경위는 더이상 진급하기 싫어한다.사실 하기도 힘들다 경감! 경감을 다오!그래서 2014년 현재 경찰 중 가장 많은 머릿수를 차지하는 계급이 경위.
4.2 군대
4.2.1 대한민국 국군
부사관에서 계급적체가 심각하다. 과거에는 하사에서 중사까지 2년이면 진급이 가능했고 장기복무 지원자도 적었기 때문에 인사 이동이 빨랐지만 1990년대를 지나면서 부사관 지원자가 늘어났고 인원 유입이 증가하면서 중사가 증가했는데 기존에 일찌감치 상사로 진급한 사람들의 숫자가 워낙 많은 탓에 진급이 안 되는 일이 늘어났다. 그때문에 군은 결국 원사 위에 선임원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장기복무를 할 경우 최대 30년 이상을 근무할 수 있는 부사관이 단 4계급으로 운영되서 그렇다. 복무기간이 2년인 병도 4계급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교는 10계급이라서 덜한데 건군기에 30대에 장군과 고위 영관을 단 사람이 워낙 많아서 1950년대에는 7-8년차 소위들이 있었다고 한다. 건군기 초기의 급속한 진급으로 선배 기수들이 인사적체를 일으킨 탓에 불만이 많은 초급장교와 군부의 분위기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1964년에 장군 티오는 260명 수준이었다. 육군사관학교가 생긴 뒤에 입대한 인원들이 장성급이 될 1970년대에도 인사적체가 심해졌고 유신사무관을 도입하는 식으로 적체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고 12.12 군사반란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 후에도 인사적체가 심해졌다. 1976년 도입된 유신사무관으로 인해 사관학교의 임관수를 늘렸다. 대위 이상의 장교가 일정한 시험을 통과하면 5급 공무원으로 임용해주는 사기적인 제도였다. 1988년 노태우 정권은 이 제도를 폐지했고 이 제도로 인원이 빠질 거라 생각해 인원을 늘려받았던 육사 38기(1978년 입학, 1982년 임관)[2] 이후 인원들은 타격을 받았다. 계급 정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인원이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늘려 받은 인원이 그대로 군에 남게된 것이었다. 이때문에 남은 장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정년이 소령은 43세에서 45세, 중령은 47세에서 53세, 대령은 50세에서 56세로 늘어나게 된다. 티오 때문에 진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인원 과다에다가 정년 연장으로 선배기수들이 더 오래 버티게 되면서 진급속도는 더뎌졌다. 그에 따라 대령 포기한 중령이나 장군 포기한 대령가 속출하게 되었고 전역 안 하고 정년까지 버티는 이들로 인해 후배 기수들의 진급은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장교의 고령화 현상을 낳았다.
1970년대에 임관한 사람들은 소령을 7년만에 달았지만 요새는 가장 빠른 전투기조종사들도 10년이 걸리는 편이다. 40대 중반의 장성도 나오기 힘들어진 상태다.
병의 경우 베트남전쟁 시기엔 참전용사들의 계급 인플레이션으로 베트남에서 병장들이 대거 나오고 한반도 본토에선 상병의 인사적체가 이뤄져 상병 전역자들이 수두룩했다고. 대표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당된다. 다만 당시에는 병장 진급이 지금과 다르게 쿼터제로 이루어졌던 부분은 감안해야 한다. 이 시기 병장에 진급하는 방법은 단 두가지 뿐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거나[3] 분대장을 하거나 이 둘 중 하나에 해당되어야만 병장 계급을 달아줬다. 그 나머지는 모두 다 상병 전역이었다.
4.2.2 자위대
상병에서 인사적체가 심하다. 자위대는 하사부터 장기복무이고 하사 이상의 계급은 계급정년이 최하 53세로 처우가 좋은 편이다. 그때문에 하사가 되려는 인원은 많은데 인건비나 기존의 인원이 잘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하사로 진급하기가 어려워 상병에 인원이 쏠려 있다. 상병이 일병과 이병을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소위도 기존의 부사관에서 승진 시험을 쳐 올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한국처럼 1년 뒤에 자동으로 중위를 다는 구조가 아니다.
4.2.3 독일군
그런 거 없다. 애초에 인사적체를 미리 계산하고 그에 맞게 인원을 선발하기 때문에 보직에 인원이 딱 들어맞아 인사적체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지휘보직 중 하나인 소대장은 아예 쿨하게 부사관한테 줘버려서 소위 임관자를 최소화했고 여기서부터 인사적체가 될 원인을 제거해버렸다. 다만 각 중대마다 1소대장만은 장교를 소대장으로 보임시켜서 중대장 유고시를 대비하도록 조치했다. 게다가 장교도 2가지 신분으로 임관시키는데 지휘자 장교가 참모 장교보다 머릿수가 더 많아서 중령 이상의 상위계층의 인사적체 역시 미연에 차단했다.
지휘자 장교는 소대장과 중대장까지만 보직시키는 대신 그들 중에서 능력이 특출난 극소수에게는 대대장까지는 할 수 있게 해주고 정년을 보장해주고 있다.
참모 장교는 위관급 장교 시절 내내 대대급 이상 부대의 참모로만 복무하다가 소령부터 대대장에 임명됨으로서 지휘보직을 처음 시작한다. 다만 이들은 목표가 장관급 장교이므로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경쟁에서 밀리면 바로 제대하는데 그 대신 진급이 빨라서 여타의 군대보다 장관급 장교의 나이가 5살 이상씩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