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섬 해전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 넘어옴)

파일:Attachment/사보섬 해전/savo.jpg

아이언 바텀 사운드(Iron Bottom Sound)라 불리는 사보 섬 인근 해역. 위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배들이 가라앉았다. 구축함에서 순양함, 전함, 항공모함까지 원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가라앉을 수 있는 모든 군함들은 여기에 다 가라앉았다.

사보섬 해전

[1]
날짜
1942년 8월 8일 ~ 1942년 8월 9일
장소
사보 섬, 솔로몬 제도
교전국미군
오스트레일리아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군
일본 제국
지휘관 리치몬드 터너
빅터 크러츨리
미카와 군이치
전력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8척
중순양함 5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척
피해규모중순양함 3척 침몰, 1척 대파
구축함 2척 손상
1,273명 전사
중순양함 1척 침몰[2], 2척 손상
101명 전사
결과
일본군의 승리, 미군의 제해권 상실

1 사보섬 해전

1.1 개요

적을 과소평가하면 전투효율과 준비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적이 약하다는 태도를 보이면 결국 자기 발등을 찍게 되죠.
- 월리엄 보데트, 히스토리 채널 <배틀 360>, 지옥의 혈전

1942년 8월 7일~8월 10일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에서 벌어진 미국과 호주의 연합군와 일본 해군의 해전. 양 측 수상함대가 항공모함 없이 정면으로 부딪친 전투지만, 미 해군은 스스로가 역사상 최악의 해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철저하게 개발살났다. 일본에서는 '제1차 솔로몬 해전'이라고 불린다.

1.2 경과

1.2.1 제8함대의 출격

과달카날 섬이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라바울에 있던 해군중장 미카와 군이치 제독은 제8순양함대를 이끌고 미 해군 함대를 야간에 급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함대 편성은 제8함대 기함인 타카오급 중순양함 초카이와 제6전대 소속 중순양함 4척이었지만, 제18전대의 경순양함 텐류와 유바리, 제29구축대의 카미카제급 구축함 유나기가 참가 의사를 표명한다. 미카와 중장은 "배가 낡았고 숙련도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들의 참가를 거부했지만, 제18전대 참모의 끈질긴 탄원으로 동행을 허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동행은 미카와 제독에게 두통거리가 되었다. 제6전대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봤으니 문제가 없지만, 난데없이 끼어든 텐류와 유바리와 유나기는 초카이와의 무선연락조차 안 되는 상태라서 제대로 된 싸움이 불가능했던 것. 게다가 유바리는 추진기 고장으로 속도가 느려진 상태여서 함대의 속도를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또한 비행기의 지원은 바랄 수도 없었고, 미 해군의 순양함과 구축함 전력은 제8함대를 압도하고 있었으며, 제61임무부대의 항공모함 와스프,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도 과달카날에 상주하고 있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도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작전을 허가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연합함대의 명령은 아니다"는 조건을 달아 출격을 승인했다.

이렇게 패배 플래그를 잔뜩 꽂고 출발한 제8함대였지만.

1.2.2 일본 함대의 진격

1942년 8월 7일, 16:00에 제8함대를 이끌고 라바울을 출항한 8함대는 미군 잠수함과 정찰기에 발각되었지만, 경미한 피해를 입은 채 과달카날로 순조롭게 항진했다.[3]

이즈음 8함대를 발견한 허드슨 정찰기는 맥아더 장군 휘하의 호주군 소속이었는데, 이들은 아군 함대로 바로 보고를 보내지 않고, 정찰 구역을 열심히 돈 다음에 맥아더 장군한테 보고를 올렸다. 맥아더 장군은 진주만에 전했지만 해군소장 켈리 터너 제독이 이 정보를 받았을 때는 이미 한참 늦어서 이 되었기에 정찰기를 띄울 수 없었다. 게다가 함종도 잘못 기재되었기에 터너 제독은 적의 규모를 오판해버렸고, 이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당시 과달카날의 함대를 지휘하던 터너 제독은 "해병대 1사단이 상륙을 끝내려면 사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 엄호 좀 해줘."라고 요청했지만,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어이쿠 그러고는 싶은데 우리 항공모함이 배고프다고 해서 곤란한데요?"라면서 곰리 제독한테 함대를 빼겠다고 요청하고 8월 8일자로 과달카날 근해를 벗어났다.

나중에 전투 보고서에도 연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매우 강조했지만, 이는 플레처 제독의 핑계였고 실제 이유는 라바울에 짱박힌 일본놈들 비행기가 예까지 날아오는데 항모를 박아둘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미 해군 태평양 함대는 산호해 해전에서 USS 렉싱턴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USS 요크타운을 상실했고 USS 레인저는 대서양에서 작전중이었고 USS 호넷은 비행단 재편성을 위해 잠시 후방에 이탈한 상황으로 태평양 함대가 실질적으로 가용가능한 3척의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 USS 새러토가, USS 와스프를 잃을까 우려하던 점도 여기에 한몫했다. 이에 터너 제독은 "주력함대가 비열한 핑계를 치면서 도망쳤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떠난 함대가 돌아올리 있나. 결국 터너 제독이 정보를 받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있었다.

이렇게 미군이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카와 제독의 제8순양함대는 허점을 보이는 연합군을 향해서 순조롭게 진격하고 있었다.

1.2.3 연합군 함대의 분산

8월 8일, 플레처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과달카날을 벗어난 후 연합군 함대는 분산되어 각기 다른 방향을 경계 중이었다. 터너 제독은 자신의 기함인 수송선 맥카울리에서 해병1사단장인 해병소장 밴더크리프트 장군, 영국 해군소장 V.A.C. 크러칠리 제독과 함께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무렵 미 해군 근처에 접근한 미카와 제독은 조심스럽게 정찰기를 날렸다. 주변을 열심히 살펴본 정찰기는 미 해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고 일단 근처에 미 항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미카와 제독은 조심스럽게, 야음을 틈타서 연합군 함대의 뒤통수를 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아오바에서 띄운 정찰기가 연합군 함대에게 접근했는데, 이 정찰기는 모든 등화를 켜고 주변을 살펴보는 간덩이 부은 짓을 했다. 대놓고 나 여기 있다고 밝힌 셈인데, 이 정찰기를 본 미군은 적이라면 상식적으로 등화를 켜고 비행하지 않을테니 저건 아군 비행기라고 판단하여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상군은 항공모함의 철수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아군 항공모함에서 날린 정찰기라 판단했다. 얼씨구?

어쨌든 아오바의 정찰기는 연합군 함대의 위치를 미카와 제독에게 보고했고, 초카이의 야간 견시도 미군 구축함 랄프 탈벗과 블루를 발견한다. 미카와 제독의 함대는 랄프 탈벗에 모든 포를 겨누었지만, 랄프 탈벗은 그냥 북쪽으로 가버렸고 일본 함대는 순조롭게 두 구축함 사이로 빠져나갔다.

9일 새벽 1시에 아오바가 다시 정찰기를 발진시켜 연합군 남부함대의 위치를 확인했다. 곧이어 일본 함대는 연합군 남부함대를 향해 산소어뢰를 겨냥한다.

1.2.4 남부함대

아오바의 정찰기가 조명탄으로 연합군 함대의 위치를 밝혀주는 가운데 일본 함대는 어뢰공격을 개시했다. 이제서야 적 함대를 발견한 USS 패터슨이 경보를 울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고 결국 남부함대는 아래와 같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 8월 9일 1시 34분 구축함 자비스 발견
  • 8월 9일 1시 36분 구축함 패터슨, 버글리 발견 및 중순양함 캔버라, 시카고 발견
  • 8월 9일 1시 38분 일본 함대가 일제히 어뢰 발사
  • 캔버라 피탄 및 전투능력 상실
  • 시카고 피탄
  • 패터슨 피탄

기습을 받은 캔버라는 뒤늦게 반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선수를 친 일본 함대한테는 그냥 먹잇감일 뿐이었다. 결국 캔버라는 5분만에 만신창이가 된 채로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시카고는 어뢰 한발을 맞았으나 피해를 억제하고 반격했다. 그러나 발사한 조명탄이 불발이어서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채로 사격했기 때문에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일본함대가 북부함대 공격을 위해 방향을 돌린 덕분에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으나 일본함대 후방경계임무중이던 구축함 유나기를 발견하고 공격하는데 정신이 팔려 북부함대에 대한 경고도, 일본함대에 대한 추격도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고 유나기에 대한 사격에서도 한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했다.

구축함 패더슨은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경보를 울리면서 선회하여 일본함대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포격전 중 4번 포탑에 피탄당해 8명의 전사자를 내고 전장을 이탈했다. 다행이 일본함대가 북부함대 공격을 위해 그대로 북상한 덕분에 더 이상의 피해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구축함 버클리는 패더슨이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불과 몇초 후에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좌회전하면서 우현어뢰 발사를 시도했으나 어뢰요원들이 발사제원 입력에 실패해 발사하지 못했다. 버클리는 함이 완전히 선회한 후 좌현어뢰 8발을 발사했으나 그때는 이미 일본함대가 북상중이어서 속도가 느린 미국어뢰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남부함대는 캔버라가 기습당한 1시 43분부터 패더슨이 패퇴한 1시 49분까지, 즉 고작 6분만에 한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제압당했다. 게다가 패터슨의 경보는 북부함대에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일본 함대는 이제 북부함대를 향해 전진했다.

1.2.5 북부함대

남부함대를 격파하고 5분 후, 일본 함대는 초카이가 탐조등을 비추는 가운데 포문을 열었다. 제일 먼저 공격을 당한 미군 중순양함 아스토리아는 포술장의 지휘 하에 반격에 나섰지만, 잠에서 깬 함장이 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포술장은 지금 적이 공격하고 있다며 무시하고 포격을 계속했지만, 함장은 더 큰 목소리로 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너 일본인이냐? 아군을 포격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함장의 어거지에 아스토리아는 포격을 중지했다가 피격을 당해서야 다시 포격을 시작했지만 마지막 사격에 쏜 포탄이 초카이 1번 포탑에 직격 파괴한 것을 끝으로 다수의 명중탄을 맞은 아스토리아는 결국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북부함대도 역시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 8월 9일 1시 46분 빈센스 포착
  • 8월 9일 1시 48분 어뢰 발사 및 1시 50분 일본 함대의 함포 사격 개시
  • 아스토리아 피탄 및 무력화
  • 퀸시 피탄으로 2시 35분 침몰
  • 빈센스 피탄으로 2시 50분 침몰
  • 랄프 탤벗 피탄
  • 8월 9일 오전 8시 캔버라 자침
  • 8월 9일 오전 12시 15분 아스토리아 침몰
  • 8월 9일 낮 1시 자비스 전장 이탈 중 항공기 공습으로 침몰

아스토리아가 무력화될 때, 중순양함 퀸시는 사력을 다해 항전했지만 함 후방의 함재기가 아오바의 포격을 맞고 화재를 일으키자 눈에 띄는 표적이 된다. 곧바로 일본군의 집중포화를 맞은 퀸시는 큰 피해를 입었고, 최후의 수단으로 초카이를 향해 포격을 가하며 충각 돌격을 감행, 함교 후부에 2발의 포탄이 명중 또 다른 1발은 수상기용 크레인에 명중했다. 함교에 침투한 포탄은 미카와 제독으로부터 6m 떨어진 지점에 명중했지만 불발탄이었기에 작전실이 파괴되고 전사 34명, 부상 3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 미카와 제독은 무사했고 퀸시는 아오바의 어뢰에 맞아 침몰하고 말았다.

일본 8함대가 연합군 북부, 남부함대를 탈탈 털어버리는데 걸린 시간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고 남은 것은 경순양함 2척, 구축함 2척으로 구성된 연합군 동부함대와 수송선들이었다.

1.2.6 일본 함대의 철수

그러나 미카와 제독은 현장에 항공모함이 없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철수했다는 사실까진 알지 못했다. 그 결과 항모 함재기의 역습을 우려하여 더 이상 공격은 하지 않고 날이 밝기 전에 빨리 전장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그 덕분에 상륙한 해병대와 아직 미처 양륙하지 못한 물자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한편 사보섬에서의 패전을 들은 플레처 제독은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곰리 제독에게 함대를 뺀다고 이야기했지만 막상 이에 대한 허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패전의 원인을 제공한 입장이 될 수 있었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곰리 제독의 철수허락 메시지가 늦게나마 전달됐고 그 허가를 내린 시간이 함대를 빼기 직전임이 명백하자 안심했다. 이 때 근처에 있던 USS 와스프의 F.P. 셔먼 함장은 함재기를 발진시켜서 미카와 함대에 대한 야간 역습을 기도했지만, 전단 사령관 노이에스 소장이 이를 막았다.

어쨌든 미군의 공습은 실패했고, 일본 함대는 유유히 라바울로 돌아갔다.

1.2.7 그러나 아오바

그런데 8월 10일 오전 9시 8분, 귀환하던 일본 함대는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카코를 잃었다. 6전대 기함 아오바에 좌승한 6전대 사령관 고토 아리토모가 이제 일본군이 장악한 해역에 들어왔으니 잠수함 회피 운동을 중단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는데, 근처에 숨어있던 미군 잠수함 S-44가 이걸 보고 카코에 어뢰를 날린 것. 해전에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기함의 실수로 중순양함 한 척을 날려먹은 것이다. 다만 카코의 함장은 '적이 너무 멀리서부터 쫓아온거니 어쩔 수 없었다'라며 딱히 아오바의 판단을 책망하지는 않았다. 고토 소장은 나중에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했다고.

1.3 결과

일본군의 구식 중순양함들이 막강한 연합군 함대를 물리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미 해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이 참패를 당하고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빼앗긴,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해전이었기에 그 여파도 대단히 컸다. 미군은 일본군이 만만찮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고, 일본군의 사기는 크게 올라갔다.

1.3.1 양측의 피해

연합군 측 피해일본군 측 피해

* 중순양함 캔버라, 아스토리아, 퀸시, 빈센스 침몰.
* 중순양함 시카코 대파.
* 구축함 자비스 전장 이탈 중 공습으로 침몰
* 구축함 랄프 탤벗 대파, 패터슨 중파.
* 전사자 1,273명, 부상 754명
  • 중순양함 카코 침몰
  • 중순양함 초카이, 아오바 소파.
  • 전사 101명, 부상 49명 ||

위에서 보듯 연합군의 피해는 일본군에 비해 그야말로 막심한 수준이었다.

중순양함 카코의 침몰은 해전 중이 아니라 귀항하던 도중에 아오바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초카이와 아오바의 피해는 경미했다. 특히 아오바는 어뢰발사관을 피탄당했음에도 승조원들의 재빠른 대처 덕분에 금방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이 해전의 결과로 미군이 제해권을 상실하자 과달카날에 상륙한 해병대는 한 동안 보급이 끊어진 상태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식량과 시설, 장비, 자재까지 써가면서 생존해야 했으며, 덤으로 도조 타임으로 명명된 일본 함대의 정기적인 함포사격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연합군은 항공모함 함대를 급히 과달카날로 불러들이고 공중과 해상을 통한 물자수송과 병력보강, 전투를 통해 비행장과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 과달카날 전역에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모 한 척(USS 호넷)을 상실, 한 척(USS 와스프)이 초계 중 잠수함 뇌격에 상실, 또 한 척(USS 새러토가)이 초계 중 잠수함 뇌격에 피해를 봐 전선 이탈, 한 척(USS 엔터프라이즈)이 동부 솔로몬 해전과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입은 피해로 수리와 복귀를 하는 등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이런 승리를 거둔 것도 무색하게 결과적으로는 일본군이 수많은 병크를 벌이며 결국에는 과달카날 전역에서 패배했다.

1.3.2 어쩌다 이런 꼴이?

1.3.2.1 장병들의 피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도 문제지만,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더 노하게 만든 것은 그 과정, 즉 레이더까지 있었는데도 설령 레이더에 기계적 결함이 있었다고 쳐도 견시들이나 전탐병들이 아군 함정 사이로 코 앞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적함을 못 알아봤다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니미츠 제독은 예하 지휘관들을 몽땅 모아놓고 엄중하게 추궁했는데, 그 결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당시 해상 부대는 상륙전이 시작된 이래로 공습을 경험한 뒤에 쓸데없이 신경이 예민해진 지휘관의 지시로 일본군의 후속 공격을 대비하느라 근 이틀동안 전원비상태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틀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은 뻔한 일.

이러다보니 말단 수병에서 함장까지, 모든 승조원들이 뻗어버려서 대부분이 간이침대나 의자같은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싸우기에는 심신이 모두 피폐해졌던 판에 일본군 함대가 야밤에 몰래 숨어들어온 것이니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지휘관들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비상태세를 걸지 않고 승조원들한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했다.

1.3.2.2 지휘관들의 오판

해전 내내 미군 지휘관들은 오판을 거듭했다. 일본군 제8함대를 발견해놓고도 쟤네들은 이쪽으로 안 올거야라고 오판하거나, 전투 중에 아군일지도 모르니 포격을 멈춰라라고 명령하는 아스토리아의 함장 같은 경우는(...)

이 중에서도 압권은 아오바의 정찰기(아오바 1호기)가 연합군 함대의 머리 위를 선회할 때 벌어진 일로, 미군은 분명히 이 정찰기를 발견해놓고도 한 밤중에 불을 켜고 우리 머리 위에 나타날 정도로 일본군이 바보일 리가 없다. 그러니 저건 우리 편 비행기다.며 무시했다. 덕분에 아오바 1호기는 연합군 함대의 모든 정보를 미카와 제독에게 무전기로 보고할 수 있었고, 이는 일본군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바보다! 이 녀석들은 바보다!

해전 이후 미군은 지휘관들을 대대적으로 문책하지 않았는데, 우리 모두 바보였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정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1.3.2.3 전투 능력 제로

해전 상황을 보면 미군의 포탄은 모두 빗나가거나 불발탄이 되는, 가공전기에서나 나오는 엽기적인 결과가 나왔다. 당장 구축함 버클리는 어뢰 발사에 실패해서 공격기회를 놓쳤고, 중순양함 시카고는 조명탄이 불발이 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조준을 못해서 단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압권은 단연 중순양함 퀸시로, 일본군 제8함대 기함 초카이의 함교에 명중탄을 냈는데도 불발탄이어서 미카와 제독 사살에 실패했고, 결국 일본군에게 격침당했다. 아무리 잘 맞춰도 포탄이 안 터지는데 이길 리가(...) 미군도 이 문제를 알아차리고 대대적인 포탄 개량에 나서서, 1년 후에는 불발탄 발생률을 많이 줄이게 된다.

일본군의 전투능력이 뛰어났다는 것도 문제였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훌륭한 포격전/뇌격전 능력을 보여줬으며, 방어에서도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특히 일본군 중순양함 아오바는 어뢰발사관에 피격을 당했는데도 하라는 산소어뢰 유폭은 안하고 재빨리 화재를 진압해버렸다. 데미지 컨트롤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일본군 군함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였다.

1.3.2.4 플레처 제독의 철수는 정당했는가?

미드웨이 해전의 역전승을 일궈냈던 플레처 제독은 연료 부족을 핑계로 함대를 뺐지만 나중에 실제 플레처 제독이 작성한 전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남은 연료량을 보니 굳이 재급유를 안 받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고로 책임회피성이 짙은 핑계를 댔다 하여 전후 역사가들한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이렇게 까일 만도 한게, 제61임무부대에는 일본군 제8함대 따위는 단숨에 박살낼 수 있는 강력한 군함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함 노스케롤라이나를 비롯하여, 항공모함 와스프와 새러토가,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에게 있어 일본군 중순양함 몇 척 정도는 쉬운 목표물이었는데, 싸움도 못하고 패배했으니(...)

그래도 플레처 제독에게 실드 쳐 줄 거리가 없지는 않은데, 이미 미군 함대 전반이 개판 오분전인 상황에서 야간 해전에 휘말려 격침되었을지도 모를 제61임무부대의 항공모함들을 살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군 함대가 소멸되는 것조차 모르는 지경으로 전황이 돌아간 꼴을 보면 제61임무부대 항공모함들이 남아 지원해줬다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물론 제61임무부대 함선들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실책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1.3.3 그 후

이 해전으로 플레처 제독은 터너 제독에게 비난을 들었고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이탈한 제61임무부대 함선들은 플레처 제독이 빠지라고 명령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군함대를 냅두고 도망가 버린 상황이 되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제8함대와 재회했고, 여기서 미카와 제독의 휘하 함정들을 개발살내고 일본군 수송선단까지 파괴함으로서 아군의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하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우다가 침몰한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 퀸시의 이름은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퀸시에 계승되었으며, 퀸시와 운명을 함께 한 사무엘 N. 무어 함장의 이름은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DD-747에 붙여졌다. 여담으로 원래 아르토리아, 퀸시, 빈센트는 아스토리아급이었지만, 아스토리아가 침몰한 후 살아남은 동형함인 뉴올리언스급으로 바뀌었다.

사보섬 해전에 참가했던 일본군 군함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중순양함 카코가 해전 이후 귀항하다가 미군 잠수함에 격침된 것을 시작으로, 중순양함 후루타카가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침몰했고 중순양함 키누가사도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복수의 일격을 맞고 침몰했다. 다른 배들도 미 해군에게 걸려 전부 침몰했고, 최후까지 살아남았던 아오바는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 해군의 집중공격을 받으면서도 끝내 버티다가 미 육군 항공대의 폭격으로 격침되었다.

1.4 기타

뒷이야기로, 이때 격침당한 아스토리아의 승무원이었던 밥 쉴러는 후에 수상기 구축함이던 헬포드에 타게 되었고 그를 맞이하러 나온 함장에게 배에 관한 것들을 물었는데...

"헬포드? 그럼 이 배의 함종은 무엇입니까? 경순양함? 중순양함?"

"아니, 이거 구축함이야. ...DD-480..."
"구축함이라니? 구축함은 함재기를 탑재하지 않습니다!"
"이보게나 젊은이, 이젠 그렇다네."

원 사이트에는 아스토리아의 수상기 파일럿으로 구조된 것으로 나와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보섬 해전 당시 할포드(DD-480 halford)는 여전히 워싱턴주의 푸젯 사운드에서 건조중이었다. 할포드의 진수는 42년 10월이었고 취역이 43년 4월이다. 건조중인 함선을 끌고 사보섬까지 갈리가 없다. 밥 쉴러[4]는 소위로 아스토리아에 타고 있었는데 구조된 후 진주만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나중에 할포드에 수상기 파일럿으로 탑승했었다.#

1.5 미카와 제독의 철수명령은 적절했는가?

사보섬 해전 이후, 일본군 수뇌부는 완전한 승리의 기회를 날려버린 멍청이라는 이유로 미카와 제독을 저평가하게 되었고, 과달카날 전투가 일본의 패배로 끝난 후 1943년 4월 1일에 그를 제8함대 사령관직에서 해임하고 한직으로 쫓아냈다. 이 해전은 전후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진주만 공습에서 나구모 제독의 3차 공습 포기, 레이테 만 해전의 구리다 턴과 함께 대단히 아쉬운 순간으로 거론되고 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미카와 군이치 제독에 대해 최고의 전술가라는 평가를 내렸다. 미군이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연합군 함대를 박살내버렸기 때문이다. 워낙 크게 당했기에 전후에도 우린 그때 왜 그렇게 바보처럼 깨졌는가를 연구할 정도였다.

가족들은 병신취급, 적들은 천재취급,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1.5.1 적절하지 않았다

미군 항공모함은 철수하고 있었기에 제8함대를 막을 병력은 미 해군에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군이 과달카날의 미군 수송함들을 격침시켰다면 과달카날 전투에서 일본군이 승리했을 가능성은 매우 커졌을 것이라는 논리다.

1.5.2 적절했다

미카와 제독이 적절한 타이밍에 철수했다는 견해다.

우선 억지로 작전에 참가한 텐류와 유바리와 유나기가 문제인데, 제6전대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사이였지만 텐류를 위시한 3척은 초카이와의 무선 통신도 안 될 정도였고 배의 성능도 크게 떨어졌으며, 승조원들의 능력도 대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데리고 미군 수송함들을 공격한 후, 날이 밝기 전에 미군 항모의 공격권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전투 과정에서 미카와의 휘하 함정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므로 진격을 계속하려면 배들을 일단 집합시키고 어뢰를 재장전한 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잔존 미군 함정들을 경계하면서 나가야 하는데 텐류, 유바리, 유나기 같은 무선 통신도 안 되는 배들이 시간 내에 집합과 재무장과 진격까지 해내는 건 무리였다.

미군 항모의 위협이 엄연히 실존한다는 것도 문제다. 미카와 제독으로서는 와스프와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의 존재를 계산에 넣고 움직여야 했고, 해가 뜨자마자 미군이 공습을 한다고 간주해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와스프의 함장의 공습 주장이 기각되었지만, 미카와 제독이 그런 뒷사정을 알 방법은 없었다. 공습으로 제8함대가 중순양함을 잃을 경우 미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일본군에게는 매우 큰 피해였을 것이다. 제8함대가 미 항모의 무선교신을 엿들은 것도 철수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결과적으로 중순양함 1척을 잃기는 했지만, 미군 항모의 공습을 당할 경우 그 이상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나중에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카와 함대가 칵터스 항공대와 엔터프라이즈의 공습을 당했을 때, 키누가사가 침몰하고 다수의 군함들이 큰 피해를 입음으로서 증명된다.

1.6 대중문화에서의 사보섬 해전

가공전기에서는 미카와 제독이 미군 수송선들을 습격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물론 텐류나 유바리 같은 잉여 군함들은 작전에서 제외되며, 묘코급 중순양함 같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배들이 제6전대와 동행하곤 한다.

엔터프라이즈의 일대기를 다룬 <배틀 360> 3화 지옥의 혈전 편에 이 해전이 나오는데, 일본군 군함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미군이 경험한 끔찍한 패배와 그 여파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해준다. 배경은 불타는 미군 중순양함들.

드라마 더 퍼시픽 1화에서 레키 일행이 밤에 잠시 목격한 해전이 바로 이 사보섬 해전이다. 전투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레키 일행은 "우리 해군이 일본놈들 작살내겠지?"라며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함대 컬렉션에서는 사보섬 해전에 참가한 배들을 모델로 한 칸무스들로 이뤄진 '미카와 함대'를 편성할 수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 수행하는 전용 퀘스트가 준비되어 있다. 난이도는 당연히 극악.

1.7 관련 링크

2 에스페란스 곶 해전

일본에서 에스페란스 곶 해전을 부르는 명칭이 바로 사보섬 해전이다. 이 해전은 아오바(중순양함) 항목에 기술되어 있으며, 와레 아오바로도 갈 수 있다(...)

3 타사파롱가 해전

타사파롱가 해전은 미국측 기록이고 일본측에서는 룽가곶 야전(ルンガ沖夜戰)이라 칭하며, 그 외에 제4차 사보섬 전투라 부르기도 한다.
  1. 아오바의 탐조등에 포착되어 집중 공격을 받는 USS 퀸시.
  2. 교전 후 미군의 잠수함에 의해 격침
  3. 8월 7일 오전에, 제8함대의 출항 이전에 미군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라바울에서 일본군의 1식 육공 27기, 99식 함폭 9기, 제로센 17기가 출격했지만 이들은 미군 항모를 발견하지 못했고, 근처의 연합군 함선을 대신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미군 전투기의 반격을 받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사카이 사부로도 큰 부상을 당한 후 겨우 라바울로 귀환하게 된다.
  4. Bob Schiller 미국의 50~70년대 각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