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 군항 공습

사진에 나오는 함선은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이다.[1]

구례군을 공습하는 게 아니다.

1 개요

  • 영어: Bombing of Kure
  • 일본어: 呉軍港空襲(くれぐんこうくうしゅう)

미 육군 항공대에서 실시한 도쿄 대공습해군 버전
1941년 12월의 복수전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7월 24일~28일간 구레 항에 남아 있던 일본군 해군 연합함대 잔존 전력을 말살하기 위한 미-영 연합군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대규모 공습. 이 공습으로 한때 세계 제3위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일본 해군은 그나마의 전력조차 박살나고 말 그대로 빈털털이가 되어 약소국 해군도 상대 못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2 배경

1945년 7월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해군중장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2]이었다. 오자와 제독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전력을 보존하여 패전 후를 대비하려고 했고, 항전파들은 남은 수상함을 모조리 해안 요새로 활용하여 본토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양측은 목적은 다르지만 어쨌든 함대의 출항을 막는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보급 및 수송 목적으로 움직이는 소형함들을 제외하면 일본의 모든 대형함들은 항구에 숨어 있었다. 게다가 움직이고 싶어도 커티스 르메이 장군툴툴거리며[3] 깔아 놓은 기뢰밭을 돌파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당장 대형함을 움직일 연료도 바닥나 있었다.

연합함대 최후의 전력이 그렇게 안전한 구레 군항에서 숨어 있는 걸 본 미 육해군 수뇌부는 골치 아파하면서도 후일 있을 일본 본토 상륙전에서 일본 해군이 방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사전에 미리 연합함대의 전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홋카이도까지 폭격했음에도 더 이상 때릴 표적이 안 보이기도 했다.

이미 구레는 3월 19일에 대규모 공습을 받은 바 있었는데, 이때는 일본군이 마지막까지 남은 전력을 다한 결사적 저항을 했다. 실제로 1945년 3월 19일 제1차 구레 공습 당시 일본은 대규모 카미카제는 물론 N1K-J 시덴으로 구성된 정예 요격기 부대까지 출동시켜 결사적으로 구레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미군도 항공모함 1척(CV-13 프랭클린)이 대파되고 함재기 부대가 큰 피해를 입는 등 손실이 많았으며, 항구 폭격 자체는 실행되었지만 생각만큼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1945년 7월의 시점에서는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극심한 소모로 더 이상 띄울래야 띄울 전투기도 없었고(…) 그나마 남은 잔존기체들은 본토 결전을 대비하여 출격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반면 미군의 전력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었다.

미 해군 제3함대 사령관 해군 대장 윌리엄 홀시 제독은 휘하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동원하여 구레를 공격하기로 했다. 미 해군은 해군 중장 존 S. 매케인 시니어 제독[4]이 지휘하는 TF38을 동원했고, 영국 해군도 3함대에 편입된 TF57에 속한 항공모함 3척(HMS 포미더블, HMS 인디패티거블, HMS 빅토리우스)을 동원했다. 이 공격은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일본 본토 공격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한편, 홀시의 함대에는 영국 해군 태평양함대가 동행하고 있었다.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자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윈스턴 처칠이 루즈벨트 생전에 담판을 통해 얻어낸 성과였는데 미국 해군 입장에선 아오 우리가 잽스 애들 다 두들겨팼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수준의 취급을 받았다. 때문에 홀시는 영국 함대 사령관에게 오사카와 시코쿠에 일본군 함대 및 기지가 있으니 그쪽을 처리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고, 영국군 사령관은 속으로 양키 개갱키들이 우릴 물로 보나 하면서도 그 정중한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여 구레 공습에서 빠지게 된다.

3 공습

3.1 7월 24일

1945년 7월 24일, 날이 밝는 것과 동시에 말 그대로 하늘을 까맣게 메운 미 해군 함재기들이 구레항으로 몰려들었다. 이 날, 미 항공모함 부대가 띄운 소티는 무려 1,747소티로 그야말로 가공할 물량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대규모 항공모함 항공대 공습은 전례가 없었다.

이에 대응하는 일본 해군의 전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항공 전력은 미약한 데다가 출격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었고, 대공포도 태부족인 데다가 레이더도 당시 일본군의 기술력 덕분에 능력이 바닥을 달리던 상태였다. 이에 더해서 선박 수리 시설과 도크등 항구 자체를 대공 방어할 필요성 때문에 대다수의 함정에 설치된 대공포까지 대부분 철거해서 육상 진지로 이동한 상태였으므로 이번 폭격의 주요 목표인 대형함은 중순양함 아오바를 빼면 말 그대로 대공 능력이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이세처럼 주포 고각을 최대로 올린 후 3식 통상탄을 마구잡이로 발사하는 것이 대공 사격의 전부인 경우도 많았다.

그나마 아오바는 대공 화기를 증설하고 군항의 얕은 곳에 정박해서 대공포 진지로서 나름대로 준비되었지만, 이건 배의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본 해군이 해상 대공포 진지로 활용한 경우였다. 구레 군항에는 그 외에도 전손 판정을 받아 대공 포대로 개조된 가이텐 모함 키타카미가 있었고, 대공 화기를 떼어내지 않은 항공모함 카츠라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대공 화기를 충실히 갖추었다고 해도 너무나 열세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식으로는 공습에 저항할 수 없다. 그래서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큰 목표였던 항공모함 아마기가 집중적으로 폭격을 얻어맞고 대파당했고, 아마기의 함장은 전원 퇴함 명령을 내려야 했다. 뒤이어 항공순양함 오요도도 폭격당했다. 사실상 기함 역할을 한 두 함선이 얻어맞는 동안, 구레 항의 나머지 대형함들도 신나게 폭탄 세례를 받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대형함들은 공습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했고 항구 주변에 도배된 기뢰 덕분에 도주조차 할 수 없었다.

운류급 항공모함 2번함 아마기와 3번함 카츠라기, 이세급 전함 이세와 휴가, 공고급 순양전함 3번함 하루나, 아오바급 중순양함 1번함 아오바, 생존 구축함들, 그리고 러일전쟁 때 쓰다 예비역으로 짱박혀 있던 걸 급하게 꺼내 온 구식 장갑순양함 이와테와 이즈모까지 모조리 다 공격당했다. 그나마 수심이 얕아서 완전한 침몰은 면했지만 대부분은 착저 상태로 상부 구조물만 을씨년스럽게 수면 위에 내놓은 상태였고 일부는 아예 전복된 상황이었다. 휴가는 살아남았지만 27일에 좌초함으로서 함생을 끝냈다.

같은 시각, 영국 해군은 오사카 항을 공격, 호위항공모함 카이요와 700톤급 호위함 2척을 격침시키고 단 4기의 항공기 손실만을 입었다.

3.2 7월 28일

24일의 대공습 이후 잠시 쿨타임 휴식을 취한 미 해군은, 항공 정찰 결과 의외로 다수의 대형함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추가 공습을 준비했다. 사실 24일의 공습으로도 대형함들은 대부분 중파 내지 대파되고 구획 일부가 침수된 상태였지만 미 해군은 진주만 공습때 격침당한 전함들을 대부분 되살린 자신들처럼, 일본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했다.[5]

28일의 공습은 그나마의 중요 전력이던 이세, 하루나, 아오바에 집중되었다. 이세는 16발, 하루나는 8발의 폭탄을 맞고 완벽하게 격침됐으며 아오바도 4발의 폭탄을 맞았다. 뒤이어 24일에 화를 면한 항공모함 카츠라기도 2000파운드 폭탄을 맞고 중파당했고, 이미 대파된 아마기도 확인사살로 폭탄을 맞았으며, 이건 아마기를 2번 죽이는 거에요 오요도도 폭탄 4발을 더 맞고 전복되어 격침되었다. 그러나 아오바가 아직 안 죽었다고 판단한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날아온 육군 항공대B-24 폭격기 79대를 추가로 투입했고, 이들은 아오바에게 4발의 폭탄을 더 먹여서 숨통을 끊어 놓았다.

4 결과

선빵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4.1 피해를 입은 군함

이 대공습으로 항공모함 1척, 전함항공전함 3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1척, 장갑순양함 2척, 보조함 2척을 상실하고 306기의 항공기 손실과 392기의 항공기 손상을 입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더 이상 남은 게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살아남은 군함들도 손상을 입어서 출격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마지막 남은 대형함은 대파당한 채 요코스카에서 정박중이던 전함 나가토와, 철저하게 은닉된 항공모함 준요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본토상륙에 맞설 해상세력은 완전히 소멸하여, 고정 포대 역할이라도 할 만한 배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만주 작전함경북도 청진등에 소련 해군이 몇 척 안되는 함선으로 상륙 작전을 펼칠 때 이에 대응할 군함이 없었다.

그래도 구축함 중에는 전투가 가능한 생존함이 몇 척 남았다. 대표적인 예는 후부키급 구축함 히비키와 일본군 최고의 사신 강운으로 유명한 가게로급 구축함 유키카제가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 승전국에 배상함으로 넘겨지게 된다. 그리고 중소형함은 다수가 살아남았는데, 어차피 대규모 해전 상황에서는 쓸데가 없었기에 의미가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잠수함대는 어느 정도 건재했지만 수상함대가 이미 전멸한 상황에다가 미 해군의 대잠 전력이 충실했기에 큰 변수는 아니었다.

4.1.1 전함항공모함

출처 http://www.ibiblio.org/hyperwar/OnlineLibrary/photos/sh-fornv/japan/japsh-h/haruna.htm , US National Archives
일본 전함 중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인 공고급 순양전함 최후의 생존함. 대부분의 군함들과 마찬가지로 부포와 대공 화기 대부분이 철거되어 육상으로 옮겨진 상태였기에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 6월 22일에 직격탄 1발[6],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을 맞았으나 피해는 적었다. 그러나 7월 28일에는 8발의 폭탄을 맞고 확실하게 격침. 일본측 자료에 의하면 24일과 28일의 명중탄이 20발인데 명중탄과 지근탄의 기준이 미국과 달랐기 때문에 생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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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와 함께 세계에서도 유이한 항공전함.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2발을 맞았고, 7월 24일의 공습에서는 폭탄 4발을 맞아 함장을 포함한 50명이 전사했으며, 28일의 공습에서는 16발의 폭탄을 맞고 격침당했다. 2번 포탑에 3식탄이 장전된 채로 격침되었기에 포탄 제거를 위해 허공에 발포한 것이 최후의 포격이었다.
80-G-490239, US National Archive, http://ww2db.com/image.php?image_id=19441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10발을 맞아 함장을 포함한 204명의 전사자를 냈고, 27일에 좌초되면서 격침.
width=100% 출처 : http://ww2db.com/image.php?image_id=5049

[7]

7월 24일의 공습으로 500파운드 폭탄과 2000파운드 폭탄에 맞아 대파되었고, 아마기의 함장은 전원퇴함명령을 내려야 했다. 이후 28일의 공습에서 폭탄 여러 발을 추가로 맞은 후 29일 오전 10시에 옆으로 쓰러지며 격침.
  • 항공모함 류호(龍鳳) 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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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3월 19일의 1차 구레 군항 공습에서 폭탄 3발과 로켓탄 2발을 먹고 Total loss(전손. 全損) 판정을 받았다. 넌 이미 죽어있다 이로 인해 항공갑판과 엘리베이터, 보일러가 파손되어서 작전용으로는 완전히 사용 불능이 되었다. 그러나 4월 1일 도크에서 침수로 들어온 물을 빼냈고 다시 띄우긴 했으나 수리할 가치가 없다고 판정되었다. 이후에는 폐선으로 간주되어 그냥 정박해있었으며, 7월 24일과 28일의 구레 군항 공습에서는 이미 무력화된 상태라서 거의 공격받지 않아서 살았다.새옹지마?, 결과적으로는 살아남은 셈이 되어서 위의 사진과 같이 남아 종전 후 스크랩. 덕분에 전후 생존함이라 보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전의 공습에서 진작에 항공모함의 기능은 상실되어서 별 쓸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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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와 달리 대공 화기가 철거당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저항할 수 있었다.
24일에 500파운드 폭탄 1발, 28일에 2000파운드 1발을 먹고 13명의 전사자와 12명의 부상자 발생.
  • 항공모함 호쇼 1발 피격.

구레 군항에 한정하여 전함 및 항공모함급만 이 정도다. 항공모함 호쇼처럼 피해가 작은 경우를 제외하면 중파 이상의 함정들은 아예 수리도 불가능했으니 사실상 격침이었다. 사실 구레 군항 공습 즈음엔 이미 일본에겐 항공모함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다.

4.1.2 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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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3번이나 살아 돌아와 마지막까지 구레를 수호하던 일본 본토 최후의 중순양함. 일본에 귀환한 중순양함은 아오바와 토네 2척이지만 토네는 구레에서 도망간 데다 일본군 공식기록에 경순양함으로 기재되어 있으니 논외이다. 생존한 중순양함이라면 타카오와 묘코가 있지만 이들은 싱가포르에서 대공 포대가 된 후 영원히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므로, 아오바는 정말로 일본 본토 최후의 중순양함이었다.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1발을 먹고 착저. 7월 28일의 공습에서는 함재기로부터 폭탄 4발, B-24 폭격기 편대로부터 폭탄 4발을 더 먹고 후미 부근이 절단되며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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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바와 더불어 살아서 돌아온 유이한 중순양함이지만, 일본군은 끝까지 경순양함으로 분류했다. 3월 19일의 공습 이후 히로시마 에타지마 시의 섬으로 이동했으므로 구레 군항에 정박한 군함은 아니다.
7월 24일에 9대의 함재기의 공격으로 폭탄 3발을 맞고 착저하고, 28일에 본격적인 공습을 당해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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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 최후의 기함.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3발, 7월 24일의 공습으로 폭탄 4발을 먹었고 28일에 폭탄 4발을 더 먹은 후 12시에 완전히 전복되어 침몰.
  • 장갑순양함 이즈모(出雲)
문서상으로는 1등순양함(중순양함)이지만 사실은 구식 장갑순양함.
  • 장갑순양함 이와테(磐手) 격침
이즈모와 마찬가지로 문서상으로만 1등순양함인 장갑순양함

여기에 순양함 4척과 구축함 3척이 추가로 격침되었다. 추가로 구레항에서 건조 중이던 항공모함 아소도 폭격으로 화재가 나서 추가 공정이 불가능해졌고, 역시 건조 중이던 센토쿠급 잠수항모 4번함 I-404는 화재가 너무 커서 끝내 침몰했다.

4.2 생존함

구레에 있던 대형함들은 모조리 개발살났지만, 경항모 호쇼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외에도 가이텐 모함 키타카미, 오래 전에 군함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류호, 중파된 항공모함 카츠라기 정도가 생존했지만 이들 모두 군함으로는 쓸모가 없었다. 일본이 계속 저항하면 추가 공습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원폭 두 발을 맞고 그 전에 항복한다.

5 일본 우익들의 정신승리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2차를 별개 항목으로 만들면 자기들이 털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니까 방어전으로 어느 정도 전과가 있는 3월 19일의 제1차 구레 공습까지 묶어서 항목으로 만들었다. 링크 그래서 손해 비교표가 영어 위키백과와 다르다.링크

특히 일본어 위키백과의 항목 내용은 정신승리가 많이 들어있는데, 특히 일단 일본 군함의 경우에는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경우가 아니면 격침이 아니라고 하고 명백히 대파된 배를 소파라고 우기고 있던 상태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정신승리의 장으로 활용되던 적이 있다. 아래는 일본 측 손실 단락에 언급된 부분.

  • 전함 하루나(榛名) - 대파착저(大破着底)
'착저했으니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아' 라는 승무원의 자위형 대사를 마치 아직 우리는 더 싸울 수 있다는 투지의 대사인 양 미화하고 있다. 일본 쪽에서는 미 육군 항공대의 B-24와 싸워서 대공 사격으로 2대를 격추하고 8대에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하지만, 영문 위키 하루나에는 그런 거 없고 38기동부대의 함재기들에게 폭탄을 먹고 오후 4시 15분에 격침되었다는 정도만 나오며, B-24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다. 구레 군항 공습을 다룬 영문 위키에서도 B-24의 폭격을 맞는 배로 언급된 건 (대공포 진지로 쓰이던) 아오바밖에 없다.
combinedfleet의 haruna 항목에서는 하루나가 12시 48분에 B-24의 공습을 당했고 이때 B-24 2대를 격추시켰다고 하나, 하루나의 대공포가 대부분 철거되어 육상 요새로 옮겨졌다는 게 문제다. 주포로 3식 통상탄을 발사할 수는 있지만, 3식탄의 대공 성능이 형편없다는 건 미군 조종사들도 잘 아는 사실이며, 부포 역시 철거되었으므로 요격하고 싶어도 요격할 무기가 없었다. 있지도 않은 대공포로 어떻게 미군기를 격추한단 말인가?
어쨌든 일본 쪽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그게 과연 하루나의 단독 전과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으며 생포된 미국 승무원이 히로시마로 이동해서 피폭되었다는 언급까지 위키피디아의 하루나 항목에 남겨놓았다. 미국이 쏜 핵으로 미국인이 피폭! 핵 쏜 나쁜 미국인들 아웃
  • 항공전함 이세(伊勢) - 대파착저(大破着底).(中甲板以下浸水. 중갑판 아래는 침수)
배가 박살나고 해저에 내려앉고 침수까지 되었지만 침몰은 아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공습 이후 2번 포탑의 3식탄을 제거하기 위해 주포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주포를 발사할 수 있으니 격침된 건 아니라는 논리. 그 뒤에는 아무 것도 못했잖아 사람이 죽기 직전에 단말마를 내지르는 걸 보고 말했으니까 살아 있다고 우기는 꼴이다.
  • 항공전함 휴가(日向) - 대파착저(大破着底),(下甲板以下浸水. 하갑판 아래는 침수)
배가 박살나고 해저에 내려앉고 침수까지 되었지만 침몰은 아니다 (2). 그렇게 따지면 애리조나도 침몰한 게 아니다
  • 항공모함 아마기(天城) - 전복(転覆)
배가 옆으로 쓰러졌는데 침몰은 아니다.
  • 항공모함 카츠라기(葛城) - 상갑판 이상 소파(上甲板以上小破),(飛行甲板大破孔. 비행갑판에 큰 구멍)
카츠라기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4일에 500파운드 폭탄 1발, 28일에 2000파운드 폭탄 1발을 맞았다. 2000파운드 폭탄이 비행 갑판을 뚫고 들어와서 항모 안에서 폭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0파운드 폭탄 맞고 비행 갑판이 박살났는데 그게 소파?(…) 게다가 표현만 보자면 비행 갑판에 대파공(大破孔)이란 말을 써서 마치 비행 갑판에 큼직한 구멍 1개 정도 뚫린 사소한 손상으로 보이게끔 유도한다.
  • 항공모함 호쇼(鳳翔) - 손상(損傷)
일부러 애매한 표현인 손상을 사용했다. 그래서 해당 함선이 소파인지 중파인지 대파인지 구분 못하게 했다. 또한 손상이라는 표현은 보통 사소한 손상같이 소파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약한 파손을 지칭하는 말이라서 여기에 쓰기에는 무리가 많다. 즉 살짝 긁힌 상처 정도로 치부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호쇼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일단 폭탄이나 로켓탄 한 발을 맞았고, 15일만에 수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호쇼의 항모로서의 가치는 없다(...)
  • 항공모함 류호(龍鳳) - 3월 공습에서 소파(小破), 7월 공습에서 손상(損傷)
류호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3월 19일의 공습으로 폭탄 3발과 로켓탄 2발을 맞았고, 1번 보일러에 구멍이 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4월 1일에 구레로 돌아왔지만 Total loss(전손. 全損)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이 배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소파(小破)라고 했다(...) 이후 일본군은 류호를 폐선으로 간주하여 항구에 정박시킨 뒤 방치했고,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류호가 7월 24일과 28일에 공습을 받았다는 사실은 기록되어 있어도 피해는 기록도 안 되었다. 그냥 시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어쨌든 일본 위키백과는 당당하게 '손상'이라고 기록했다.
  • 순양함 이와테(磐手) - 7월 24일 대파(大破)、7월 28일 침수각좌(浸水擱座)
이와테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당연히 공습으로 침몰했다고 기록했다.
  • 순양함 이즈모(出雲) - 침수각좌(浸水擱座)
이즈모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당연히 7월 24일에 공습으로 침몰했다고 표기했다.
  • 순양함 아오바(青葉) - 대파착저(大破着底), 함체절단(船体切断)
7월 24일에 착저하고도 모자라서 38기동부대의 함재기로부터 폭탄 4발, 미 육군항공대의 B-24로부터 폭탄을 4발이나 더 맞고 함체가 절단되었다. 배가 쪼개졌는데도 침몰이 아니란다.
  • 순양함 토네(利根) - 대파착저(大破着底),(船体満水. 선체만수)
배가 박살나고 물이 가득찼는데 침몰은 아니다.
  • 순양함 키타카미(北上) - 7월 24일 대파(大破)
아오바와 마찬가지로 대공 포대 노릇을 하고 있었으며, 키타카미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32명이 전사하고 손해를 입었다는 정도만 나왔다. 네놈을 죽이기엔 폭탄이 아까워!(어라?)[8]
  • 순양함 오요도(大淀) - 전복(転覆)
배가 뒤집혔는데 침몰은 아니다 (2).
  • 구축함 요이즈키(宵月) - 7월 24일 손상(損傷)
일부러 애매한 표현인 손상을 사용했다 (2).
  • 구축함 나시(梨) - 7월 28일 침몰(沈没)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일본 군함중 침몰로 인정한 함선은 구축함인 나시 (梨(なし)) 단 1척뿐이다. 게다가 해당 구축함은 침몰한 상태에서 패전을 맞이한 후, 한동안 방치되다가 다시 인양해서 물 위로 끌어올린 후에 개조 작업을 시행하여 전후인 1958년 3월 26일 해상자위대 호위함 와카바 (わかば)로 재취역했다. 결과적으로 공습에서 함선 손해는 단 1척도 없었다는 무언의 외침![9]
  • 구축함 카바(樺) - 7월 24일 손상(損傷)
일부러 애매한 표현인 손상을 사용했다 (3).

건조 중이던 함선의 피해는 아래와 같다고 적어 놓았다.

  • 항공모함 아소(阿蘇) - 7월 28일 화재 발생(火災発生)
  • 잠수항모 I-404(伊404) - 대파(大破), 자침 처분(機密保持のために自沈処分)

딱히 멀리 갈 것도 없이 세토 내해의 얕은 수심과 항구 및 항구 근처의 잘 정비된 항로에서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는 배가 몇 척이나 되겠는가?(…) 따라서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대파착저(大破着底), 침수각좌(浸水擱座)[10], 전복(転覆)같은 말은 다 침몰과 마찬가지의 단어다. 그냥 다 싸잡아서 박살났단 말을 쓰자

그리고 착저의 경우는 손상이 심해 침몰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 밑바닥이 해저에 닿은 경우를 말한다. 수심이 깊은 외양에서 착저될 경우에는 그냥 침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실상 격침으로 산정하며, 미국 같이 배를 인양해서 재취역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침몰로 산정하는데다가 배를 되살리더라도 침몰 숫자 세기는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것도 싹 무시하고 있다.

한 가지 어이없는 점은 이래 놓고서 정작 상단의 일본 측 피해 요약 부분에선 항모 1척 침몰, 전함 3척 침몰, 순양함 6척 침몰, 구축함 4척 침몰이라고 잘만 적혀 있었다는 것인데, 그냥 요약이라서 저렇게 적어 놨던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본문의 편집 상태가 저래서 "죽어도 본문에 침몰이란 단어는 못 집어 넣겠다"는 뉘앙스로밖에 안 보인다는 게 문제. 참고로 같은 일본 위키백과 내의 진주만 공습 항목에서는 본문의 미국 측 손실 부분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함마다 격침이라는 말을 꼬박꼬박 써 놓고 있었다. (...) 2015년 기준으로는 이 역시 영어 위키백과 항목의 내용을 바탕으로 수정된 상태로 보인다.

재미있는 건 저 위에서 문제가 된 같은 방법으로 진주만 공습을 평가하면 애리조나와 웨스트버지니아는 대파 착저, 유타[11]와 오클라호마는 전복, 캘리포니아는 침수 좌초, 나머지는 대파 이하가 된다. 즉 격침된 미 함선은 1척도 없게 된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태클을 당한 덕인지, 2015년 6월 기준으로 일본 위키에는 위에서 문제 제기된 본문에 정상적으로 침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지만 사진 설명은 여전히 대파 착저....쓰지 못하게 됐으면 격침이지. 손상이라느니, 착저라느니, 둘러대기는 잘 해요...

6 대중문화에서의 구레 공습

  • 맨발의 겐 1권에서 원폭을 맞기 전 히로시마는 무사한데 폭음이 들리는 것을 보고 나카오카 겐의 아버지인 나카오카 다이키치가 "구레가 폭격당하고 있군."이라고 무심하게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시기 상 구레 군항 공습을 두고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Yamato / 2005년)'에서 1945년 3월 19일 실행된 1차 구레 군항 공습이 잠깐 등장한다.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부상병들이 목발을 들고 입총질로 미군기들을 격추하려 하는 게 웃음 포인트. 하지만 이들은 전쟁 때문에 정신이 상당히 나가 버린 것 같다. 제정신인 사람들은 그걸 보고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1. 출처: http://www.ibiblio.org/hyperwar/OnlineLibrary/photos/sh-fornv/japan/japsh-h/haruna.htm, US National Archives
  2. 왜 사령장관임에도 대장이 아닌 중장인지 하면 이 사람은 대장 이상으로의 승진을 끝까지 거부했다.
  3. 커티스 르메이가 툴툴 댄 원인은 항구 봉쇄할 시간에 군수 물자를 생산하고 있다고 판단된 도시에 대한 폭격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 육군 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 육군 원수에게 기뢰 살포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 이에 아놀드 장군이 해군참모총장어니스트 킹 해군 원수와 담판을 했으나 킹 제독은 "그럼 해군은 빠질 테니까 육군끼리 잘 해 보셔."라는 말로 아놀드 장군을 침묵시켰다. 결과적으로 해군이 주장한 해상 봉쇄로 인해 당시 일본군은 열도 본토에서든, 연안에서든, 뭘 제대로 할 수도 없었으니 상황을 따지면 정답이었다.
  4. 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할아버지다. 참고로 매케인 집안은 이때부터 시작해서 4대가 다 해군에 복무했다.
  5. 이 당시의 일본은 이미 대형 함선들을 건져서 수리할 자원도, 기술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상술했듯 전쟁 기간 내내 3번이나 대파당하고도 살아온 '솔로몬의 늑대' 아오바도 수리를 못해서 기동 불능 상태의 해상 대공포 진지로 전용될 정도였다.
  6. 7발이라 기록된 곳도 있지만 지근탄 포함인듯.
  7. 참고로 세 번째 사진은 공습 직후의 모습은 아니고, 종전 후인 1946년 아마기를 스크랩 처리할 당시의 모습이다. 다만 공습 이후 일본은 좌초된 함선들에 손도 대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던 상황이므로 사실상 공습 직후와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8. 키타카미 항목에도 나오지만, 키타카미는 전쟁 중에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군함으로 유명하다.
  9. 사실 이는 구축함이라 선체 높이가 그리 안 높아서 수면 위로 나오질 않으니 우길래야 우길 수가 없어서 침몰로 인정한 듯하다.
  10. 각좌(擱座)는 좌초와 동의어다.
  11. 전함(BB-31)이 아닌 표적함(AG-16)이 된 상태로 공습 당하던 시기에는 전함이 아니었다.